“전남 무안의 바닷가 간척지 10만 평에는 태양광 패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로 옆 7만평 간척지에도 태양광발전 공사를 하고 있다. 무안의 복길 간척지 70만평, 영암 삼호읍과 미암면의 간척지 500만평, 나주 동강면 간척지 60만평, 완도 약산면 간척지 50만평 등 대한민국의 모든 간척지에 태양광 패널을 뒤덮는 광풍이 불고 있다. (…) 전남 순천의 작은 땅에 무려 10곳의 풍력발전단지가 추진되고 있다. 강원도 영월 김삿갓 계곡에도 “풍력 반대” 현수막이 가득 붙었다. 전국의 산정상마다 풍력발전기 광풍이 불어 닥치고 있다. 인천 굴업도와 덕적도에서부터 당진과 태안, 신안, 통영, 여수, 부산 앞바다에 이르기까지 전 해상이 풍력으로 뒤덮이고 있다.”
최병성 <탄소중립,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녹색평론 179호 2021.07.01
“국내 최고령 석탄화력발전소인 호남화력발전소 1, 2호기가 지난해 12월 31일 밤 12시를 기해 가동을 중단했다 …… 이 발전소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세계 최대의 석유화학단지로 발전해온 지난 반세기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고도성장의 상징도 탄소배출 감축과 미세먼지 저감이라는 시대의 흐름 앞에 멈춰 섰다. 호남화력발전소 부지엔 최신 액화천연가스(LNG) 복합 및 연료전지 발전소가 들어선다. 하지만 이런 친환경 전환에도 그늘이 있다. 바로 석탄발전 직종 종사자들의 업무 전환 문제다.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그 희생양으로 선택되기 쉽다. 호남화력발전소의 경우에도 소속 노동자 601명은 모두 재배치됐지만 협력사 노동자 61명은 일을 그만둬야 했다.”
이명익 <친환경 전환의 그늘> 시사IN 748호 2022.01.18
얼마 전 즐겨 읽던 두 잡지에서 무언가 다른 듯 공통된 사례를 발견했다. 나는 위의 두 사례에서 ‘2050 탄소중립[1](넷-제로, Net-Zero)’을 향한 절차적 정의(節次的 正義)의 길을 묻는다. 정의로운 탄소중립. 탄소중립으로 가는 지름길. 가령 어린 나무가 자랄 때 탄소 흡수량이 최고에 다다른다는 주장에 근거, 늙은 나무를 베어내고 어린 나무를 심는다. 탄소 흡수량을 높여 수치적 목표를 빨리 달성한다. 산업단지나 공장, 도심이 아닌 농지나 간척지에, 나무를 잘라낸 민둥산에 풍력발전기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 부의 불균형을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탄소 감축을 설계하지 않는다[2]. 사회 구조의 변화 없이 ‘기후정의’는 실현되지 않는다[3].
전 세계 연간 탄소 배출량은 360억 톤으로 하루 약 1억 톤에 해당한다. 한국의 탄소 배출량은 2017년 기준 약 7억 1천만 톤으로 그중 흡수량은 단 6%인 4천만 톤에 불과하다[4]. 현재 탄소배출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대책은 탄소 배출량을 감소하는 방안과 흡수량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의 근본적인 방법은 단연 재생 에너지 전력 비중을 높이는 것이고, 후자는 크게 그린 카본 자원과 블루 카본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먼저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을 살펴보면 2020년 기준, 세계 평균은 27%, 한국은 6.6%에 불과하다. 미국은 18%, 일본 20%, 프랑스 21%, 중국 29%, 독일은 50% 이상이다[5]. 특히 독일에는 소규모로 재생 에너지 사업을 하는 협동조합이나 개인들이 많다[6]. 나의 독일인 지인 가족도 작지만 풍력 에너지를 생산 및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때때로 고용을 창출한다. 혹자에 의하면 근래 태양광과 풍력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중국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수치는 선진국이라고 하기에 정말 부끄러운 수준이다.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이 이토록 저조한 이유는, 정부와 기업이 석탄이나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바꾸겠다는 확고한 철학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장바구니 들고 전기 스위치 끄고 분리배출 열심히 하고 ‘용기내 챌린지[7]’를 아무리 해도 소용 없다. 석탄화력발전소 한 곳의 연간 탄소배출량이 수십만명의 연간 탄소배출량과 같다. 삼성전자 한 곳에서 1년 간 쓴 전기량이, 경기도민이 쓴 것보다 많다. 화석연료를 쓰는 기업들이 탄소배출량을 줄이거나 정부가 강력한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기후 위기의 본질은 제자리 걸음일 뿐이다. 반면 미국의 글로벌 대기업 구글사는 어떨까? 구글의 신(新)사옥 지붕은 둥근 태양광 패널 9만장으로 지어졌고, 지열 발전 시스템을 추가로 구동하고 있다. 구글은 RE100(재생에너지 100%) 캠페인 가입 회원사이기도 하다.
한편 재생에너지 산업으로의 전환에 따른 고용의 빈틈은 어떻게 메꿀 수 있을까?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되고 가솔린 엔진 차가 전기차로 바뀔 때 누군가는 ‘나는 정규직’이니 안도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걸까? 친환경으로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은? 고용과 환경을 같이 지키기 위해서라도 단단한 사회복지 및 고용노동 정책에 근거한 고용불안 해소와 직업 재교육 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안 그래도 만날 듣는 세계적으로도 부끄러운 노동 후진국, 환경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영영 벗어버리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국내 기업들은 이미지 개선만 생각하며 그린워싱[8](Green Washing)을 위한 광고나 캠페인만 해댈 것이 아니라 기후정의의 실체적 실천과 협력사 비정규직 직원과의 적극적 연대에 힘써야 한다.
두 번째는 탄소중립으로 가는 방법 중 흡수량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다. 나무를 많이 심거나 생장 속도가 빠른 대나무로 만든 화장지를 사용하는 것은 흡수량을 확대하는 두 가지 방안 중 그린 카본 자원에 해당한다. 산림청의 주장대로 기존에 잘 조성된 숲을 없애고 새로 어린 나무를 꼭 심어야 하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도시화에 따라 평지엔 더 이상 나무를 심을 데가 없나? 한 연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나무는 약 3조 그루였다. 인류는 미국 전체 영토만한 면적에 추가로 약 1조 2천억 그루의 나무를 더 심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205기가 톤의 탄소 흡수가 가능하다[9]고 했다. 이 정도면 새로이 나무를 심어볼 만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요즘 공원형 아파트가 유행이고, 아무리 보수적인 지자체장도 지역 건설자본을 활용한 공원조성엔 별 망설임이 없다. 현실이 이러한데, 다른 방식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던지 흡수량을 늘릴 생각은 하지 않고, 수치 달성에만 급급해 세계적으로 잘 가꾸어 진 숲이라 일컫는 곳들을 굳이 벌목해야 하는 것일까?
흡수량 확대의 다른 한 가지 방법인 블루 카본 자원은 말 그대로 해양 자원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종민 서울대학교 해양저서생태학연구실 연구원은 “갯벌 또한 현재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 보고된 탄소 흡수원인 맹그로브, 잘피, 염습지[10] 못지않게 훌륭한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11].”고 한다. 더욱이 세계적인 전문과학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연안 해조류가 제곱 킬로미터당 연간 약 8만 3천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데, 이것은 육지 숲의 3배에 달한다. 석유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져 활성화가 더딘 상황이지만 탄소세가 올라가면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정부는, 문두(文頭)의 첫번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좋은 갯벌을 경제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일찍이 간척지로 개간한 것도 모자라 도심과 산업단지에 필요한 에너지 생산을 위해 다시 한번 농어촌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되레 환경을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십여 년 전 내가 비영리단체의 환경주거정책 분야에서 일할 때, 처음 ‘기후난민’이라는 개념을 접했다. 기후난민이 많다는 방글라데시 출신 NGO대표, 환경전문변호사들과 워크숍이나 포럼을 몇차례 진행하면서도 그 말이 난 참 멀었다. 지난 여름, 내가 몇 년간 홀로 부대끼던,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어마어마한 국지성 폭우를 뉴스로 접하면서 서울의 반지하방에 쏟아진 빗물을 퍼 나르던 나와 내 동생의 젊은 날보다 더 놀랐고 서글펐다. 그토록 한가하고 목가적인 도시의 갑작스런 울부짖음이 아픔을 더했다. 매해 기후위기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가까이 무섭게 다가온다. 그러나 아무리 급하더라도 그 누구도 기후위기로 인한 난민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정부와 기업은 탄소중립을 위해 농부와 어부, 노동자, 소외된 지역의 주민과도 정책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의 기후정의는 바로 서고, 이 땅에 기후난민이라는 용어는 쓰일 일조차 없을 것이다.
[1]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정책위키 2021.11.08 https://www.korea.kr/special/policyCurationView.do?newsId=148881562
[2] 김백민 <2050년 탄소중립까지 무엇을 할 것인가> 시사IN 747호 2022.01.11
[3] 박태주 <노동이 탄소중립과 만났을 때> 같은 책
[4] 2019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
[5] 2020 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 https://www.iea.org/ ), 대한민국 정부
[6] Gemeinde der Nordseeinsel Pellworm (https://www.gemeinde-pellworm.de/projekte/energie-klima-natur/)
[7] 이현정 <용기내 챌린지, 우리 모두 용기내!>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2021.05.10 https://www.korea.kr/news/reporterView.do?newsId=148887012
[8] 이종오 <그린워싱의 7가지 죄악> 프레시안 2021.07.08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70811203573740#0DKU
[9] 스위스 The Crowther Lab, 2018
[10] 염습지의 탄소 흡수 저장고 역할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 참조 <erwartete entwicklung von küstensalzwiesen der nordhemisphäre im klimawandel>: predictive models will have to represent the comprehensive dynamics of the development of salt marshes in face of climate change even more realistically in the future. (Paula Böge, 2022,</erwartete entwicklung von küstensalzwiesen der nordhemisphäre im klimawandel> Christian-Albrechts-Universität zu Kiel)
[11] YTN 사이언스 2021.05.21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후 현장에서의 실천적 운동에 매진. 주로 빈민운동과 환경운동에서 활동. 현재, 조그만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운동을 통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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