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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변) 2007-8년의 세계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등 비상한 수단으로 사태를 잠정적으로 수습하였으나, 양극화 등 패악이 분명해진 신자유주의를 폐기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경제의 정책이 아직 전면적으로 등장하고 있지 못합니다. 새로운 대안 마련의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금융권을 중심으로 하는 기득권 자산가들의 훼방과 포리즘에 가려진 정치적 무능 및 정치인들의 부패일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시장의 맹신을 넘어서는 정부 등 공공의 역할(부활)이 다시 강조되는 가운데, 케인즈 이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보완이 학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신케인즈 학파의 입장을 대변해온 루스벨트 재단 회장이 새로운 경제학의 여정에 대하여 기고한 칼럼 내용을 소개합니다.

 

대공황의 깊숙한 지점에서 집권한 후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정부와 경제의 관계를 재빨리 뒤집었습니다. 뉴딜을 통해 워싱턴은 새로운 산업과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러한 지출 수많은 미국인들을 빈곤에서 구했고 궁극적으로 놀라운 전후경제 호황을 부추겼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작은 정부와 낮은 세금을 경제적 번영의 열쇠로 보는 새로운 초당적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1941년 Roosevelt는 모든 미국인이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으며 이를 주도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1996년에 (무책임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사이에 과연 무엇이 바뀐 걸까요?

Nicholas Wapshott의 새 저술 ‘Samuelson Friedman’ 은 1980년대 중반의 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의 승리라는 이야기를 두 명의 경제거물인 Paul Samuelson과 Milton Friedman 사이의 전투로 설명합니다. 새뮤얼슨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옹호하는 이른바 신고전주의적 종합에 대한 연구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케인즈주의자이었으며, 대조적으로, 프리드먼은 1950년대 이래로 시대의 가장 전투적이고 열정적인 자유지상주의를 주도한 새로운 강자이었습니다.

현재의 팬데믹 대유행 속에서 Samuelson-Friedman 간의 비교는 배울 것이 매우 많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이전시대의 경제학적 명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프리드먼 등이 상상하고 실현한 소정부, 저세금 경제가 마침내 권력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이제 미국시민들은 시장이 자유로운 것이 최고이 정부가 작을 때 최상이라는 오래된 믿음에 의문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스펙트럼을 초월한 전문가들도 이러한 가정이 거짓으로 입증되었음을 점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COVID-19는 경제현실의 데이터가 오랫동안 시사해 온 것을 확실하게 재확인했습니다. 자유방임체제는 공동번영을 가져다 주기보다는 불평등을 매우 심화시켜 왔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이렇듯 공격을 받고 부정되면서, 정치 지도자들은 보다 평등한 경제를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Wapshott은 1960년대 중반에 Newsweek 편집자인 Osborn Elliott가 쟁쟁한 라이벌인 Henry Luce의 Time을 능가할 수 있는 새로운 칼럼니스트를 찾는 이야기로 첫 장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마도 당대의 뉴스에 대해 논평하면서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젊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것으로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Elliott은 당대 최고의 이론경제학자인 새뮤얼슨을 확보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뮤얼슨은 1948년에 처음 출판되고 단순히 ‘The Economics-경제학’ 이라는 제목으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교과서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32세의 나이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정교수가 된 새뮤얼슨은 골치아픈 주제나 잡지 칼럼을 쓰는데 드는 공력에 비해 수입은 형편 없었지만 주간독자수 1400만의 뉴스위크에 진출한다는 아이디어에 매료되었습니다. 엘리엇은 동시에 시카고 대학의 보수적 자유지상주의자인 프리드먼을 영입하려고 시도했는데, 프리드먼은 당시 미국의 20세기 중반 경제사상을 지배했던 케인즈 이론의 외부인(반항자)이었습니다. 프리드먼은 처음에 엘리엇에게 너무 바쁘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프리드먼의 아내 로즈가 이의을 제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 자유와 자유시장경제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작업 . . .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고 1976년 오리엔탈 이코노미스트(Oriental Economist)에 기고했습니다. Wapshott의 저술내용은 Rose Friedman의 말을 더 많이 인용합니다. 자신의 입지를 구축한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Milton Friedman의 많은 작업의 공동저자이자 아내인 그녀는 남편이 행한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제목의 연설을 모아 가장 영향력있는 대중적인 텍스트로 바꾸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Samuelson과 Friedman은 1966년에 Newsweek 에 합류하여 1980년대 초까지 잡지에 글을 기고했습니다. 재임기간 동안 두 사상가는 적절한 과세수준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역할을 포함하여 당시의 주요 경제논쟁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Wapshott이 문서화한 것처럼, 두 사람은 경제 이론의 핵심요소 특히 시장시스템이 외부개입 없이 스스로를 규제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프리드먼은 거의 모든 형태의 정부간섭이 없는 자유로운 버전의 자본주의가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 모두와 동의어라고 믿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새뮤얼슨은 “정부없이는 해결책도 없다”는 말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유지했습니다.

Wapshott의 저술은 지성사의 위대한 인물들을 묘사합니다. 그의 기술내용은 두 경제학자는 재정정책을 통한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관리의 약칭인 ‘케인즈주의’와 중앙은행과 통화공급이 중심이 되는 자유지상주의적 ‘통화주의’ 사이의 주요 논쟁 대부분을 제대로 묘사합니다. 한편, 새뮤얼슨과 프리드먼이 속해있던 지식인 네트워크들이 매우 짧게 언급됩니다만, 이것은 근본적인 생략입니다. 예를 들어 프리드먼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 칼 포퍼 등과 함께 신자유주의 사상을 최초로 개발하고 전파한 영향력 있는 그룹인 몽 펠레랭 소사이어티(Mont Pelerin Society)의 창시자였습니다. 그러한 네트워크는 회원들에게 중요한 지적, 사회적, 정치적 지원을 제공하며, 그들의 아이디어가 수용과 합법성을 얻도록 도왔습니다. Wapshott은 MIT, 시카고 대학교, 버지니아 대학교와 같이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막론하고 여러 세대의 학생들을 교육한 일부 교육기관들의 역할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 언급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기관은 ​​Samuelson과 Friedman에게 별달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큰 문제는 Wapshott이 독자들에게 시대감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성혁명, 시민권 운동은 미국의 오래된 사회, 인종, 경제 질서를 뒤엎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종종 해방적이었지만, 수반되는 혼돈은 선벨Sunbelt의 교외지역 주부들과 남부의 비즈니스 리더들을 포함하여 많은 중산층 백인 미국인들로 하여금 프리드먼의 단순하고 잘 정돈된 체계에 찬성하여 연방정부의 자유기업 개입에 대한 새뮤얼슨의 비전을 거부하게 했습니다. 

변화에서 비롯된 불안들 대부분이 결집되었던 1964년에 공화당 대선후보인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 복지국가론과 1964년 민권법에 반대하는 반공주의적이고 경제적으로 보수적인 강령 출마의 변으로 활용하였습니다. 골드워터는 연방 민권법을 사적 문제에 대한 국가의 부당한 간섭의 또 다른 예라고 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프리드먼의 소정부 아이디어를 인종차별 철폐에 대한 남부백인 반대와 직접 연결했습니다. 한편 1960년대 말까지 시민권 운동자체도 인종과 경제를 명시적으로 연결하기 시작했지만 흐름은 반대의 방향이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은 1967년에 “인종적 불의와 경제적 불의의 문제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급진적 재분배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1960년대와 1970년대 극심한 사회적 격변시대에 프리드먼의 사업, 이윤, 주주중심의 세계관과 새뮤얼슨의 뉴딜 정부의 비전이 맞붙었습니다. 당시 많은 백인 미국인들은 프리드먼의 정치의 개입이 없는 경제학 버전이 더욱 설득력 있는 것으로 선호하였습니다. 그의 버전에 따르면, 올바른 정치적, 도덕적, 경제적 대답은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론인 통화주의(과세와 지출에 관한 복잡한 입법결정에 의존하는 대신 전체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통화공급을 사용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로 매혹적이며 비정치적이었습니다. 프리드먼의 경제적, 정치적 주장은 하나입니다. ‘자유는 제한된 작은 정부’를 의미했습니다. 현재는 부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신자유주의의 승리였습니다.

새뮤얼슨과 프리드먼 사이의 결투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아마도 가장 날카롭고 중추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정부가 이를 길들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1970년 대의 인플레이션은 현재에도 여전히 ​​미국정치에 활력을 주는 경고의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케인즈 주의가 역설적으로 저성장과 높은 인플레이션의 기간인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을 설명할 수 없다는 통념이 새뮤얼슨의 몰락과 프리드먼의 부상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즈 학파가 답을 줄 수 없는 수수께끼를 제시했습니다. 실업률이 높고 성장이 부진한 상황에서 10년 동안이나 연평균 약 7%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상황은 케인즈 주의자들에겐 불가능한 일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프리드먼의 특징적이며 간단한 대답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화폐자산을 3~5%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Wapshott의 저술내용은 이 주제가 매우 강력했으며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 논쟁이 얼마나 복잡하고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수년에 걸쳐 새뮤얼슨과 프리드먼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노조 계약에 의해 뒷받침되는 지속적으로 높은 임금 때문인지, 베트남 전쟁의 비용인지, 아니면 세계 석유공급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에 대해 논쟁했습니다. 오늘날에도 1970년대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여전히 치열한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새뮤얼슨이 제안한 해결책은 결국 세금을 인상하고 높은 수준의 공공지출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자율 인상을 유일한 인플레이션 치료제로 생각하는 데 익숙한 현대경제학자에게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프리드먼은 낮은 공공지출과 통화공급에 대한 신중한 통제의 조합을 계속 옹호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더 많은 지출에 대한 새뮤얼슨의 주장은 실패했습니다. 급격한 금리인상과 고용보다 인플레이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은 프리드먼의 영감을 받은 세금감면 약속과 소위 복지여왕에 대한 거짓인종차별 캠페인(정부 수표를 긁어 모으는 흑인 미혼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정치경력을 쌓아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백악관 앉아서 그는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세금을 인하하고(반대로 노동자의 세금은 인상하면서) 노동조합에 맞서 싸웠습니다. 파업하는 항공교통관제사를 해고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후 케인즈 방식의 복지국가는 적어도 미국에서는 사라졌습니다.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졌지만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프리드먼에게 조차 이러한 결과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폴 볼커(Paul Volcker)가 1979년 가을에 급격한 금리인상을 시행한 것에 대한 프리드먼의 고뇌를 설명한 Wapshott의 언급이 이 책의 가장 강력한 통찰력을 담고 있습니다. 볼커의 20%라는 금리인상을 “완한 통화정책“라고 치켜세운 프리드먼은 이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나 다른 정치행위자들에게 일체의 재량권이 남지 않은 채, 오로지 안정적이고 알고리즘적으로 결정된 통화공급의 변화만을 옹호해 왔습니다. 그러나 단순함 자체가 미덕이자 매력인 그의 정책이론은 실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제이론의 열렬한 사제들조차 미리 정해진 에 의해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제약을 받는 것에 격렬하게 반대하였습니다.

이제 프리드먼-노믹스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1970년대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당시에 케인즈 주의를 무너뜨리고 레이거노믹스를 탄생시킨 경제이론적 단절 경제 거물들의 단순한 충돌로 축소시키기는 쉽지만, 이의 변화는 1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변화는 단순히 개인의 판단과 역량이 아니라 경제이론이 복잡한 정치 현실을 어떻게 걸러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Wapshott의 저술에 따르면 오늘날의 경제 패러다임 전환은 COVID-19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에 시작되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실하게 했습니다. 현재의 격변을 이해한다는 것은 2008년 금융위기와 이후의 경기침체로 이어진 정책실패를 검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간자본에 대한 미국인들의 숭배는 금융대기업인 Bear Stearns와 Lehman Brothers의 붕괴로 흔들렸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은 이러한 금융기관이 더 이상 자신들에게 큰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Gallup 여론조사에 따르면 은행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2004년 53%에서 2009년 22%로 떨어졌으며 결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위기 이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행정부의 최고위직 사이에 매우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경제위원회(National Economic Council) 국장인 브라이언 디즈(Brian Deese)는 현 정부의 COVID-19 경제회복 계획이 전임의 행정부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지난 3월 의회에서 통과된 경기부양책인 미국구조계획(American Rescue Plan)은 실직한 미국인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별 주 및 도시에 직접 자금을 제공하는 것을 우선시합니다. 지난 수십 년의 표어였던 ‘작은 정부의 긴축’은 끝났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자신도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지난 7월 “오래되고 실패한 생각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선언했다

사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내용은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현재 유통되는 화폐의 양에 끊임없이 초점을 맞춘 후자(통화주의)를 거부합니다. 그 대신, 새롭게 부상하는 프레임워크는 연방정부가 미국의 경제와 사회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장려하는 것입니다. 이의 옹호자들은 공공기관들이 기업의 독점을 방지하고, 녹색 에너지에 투자하고, 건강 관리, 보육 및 교육과 같은 공공재에 훨씬 많은 지출을 하기 위해 엄격한 규칙을 만들고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부는 또한 임금, 부, 주택, 교육, 건강 및 기타 영역에서 인종적 격차를 좁히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러한 새로운 비전의 일부가 이미 실현되고 있습니다. 팬데믹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인 CARES 법과 미국구조 계획에 할당된 4조 달러에는 저소득층과 노동 계층의 미국인,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 중소기업에 대한 전례없는 규모의 정부재정 지원이 포함됩니다. 안도감은 비록 일시적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최근 경제침체에서 오는 최악 영향을 억제했습니다. 연방구조 기금은 또한 임금인상을 주도했으며 새로운 COVID-19 관련 셧다운이 없는 상태에서 현재 회복 속도는 대공황 회복속도보다 5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80년대처럼 10년이 걸렸던 것이 아니라 바로 2년 전부터 진행되는 일입니다.

팬데믹 대유행이 프리드먼-노믹스의 관에 마지막 못질을 가할지는 모르지만, 더 높은 세금과 경제에 대한 정부관리의 지속적인 정책(새뮤엘슨이 인식하고 심지어 수용했을 수도 있는) 아직 완전히 출현하지 고 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여부는 1940년대 케인즈 주의와 1980년대 프리드먼식 시장근본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뿌리를 내리게 될지 여부는 많은 요인에 달려 있습니다. 

인종 및 성 평등에 대한 반발에 대한 완곡한 표현인 “문화전쟁”은 미국이 진정으로 포용적인 정책을 실행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소수이지만 기후정책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정치인 그룹은 탄소배출을 줄여야 할 시급한 필요성에 대해 계속해서 방해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인재 파이프라인과 제도적 탄력성은 현재 고려 중인 야심찬 프로그램을 실행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연방정부의 조치를 의심하고 불신하는 미국인들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지도자들이 끈기있게 노력한다면 이러한 모델은 새롭고 방대한 사회적, 정치적 가능성을 열어줄 것 입니다. 국제적 경제협력은 단순히 다국적 기업에 대한 무역장벽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국제탈세 또는 전염병 대비부족과 같은 진정한 공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망할 수 있습니다. 노동계급에 속한 더욱 많은 미국인들이 마침내 임금에만 매달려 생활하는 것보다 사회정책을 통하여 경제적 안정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워싱턴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최악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적시에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장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미합중국이라는 공동체의 자유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이, 시장의 거래에만 의존하지 않고,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미래에 대한 정부의 약속에 대한 신뢰로 바뀔 수 있느냐 입니다.

출처 : 포린-어페어(Foreign Affiars), November/December 2021

 

Felicia Wong, Roosevelt Institute의 회장이자 CEO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 이사장, 국민주권연구원 상임이사. 철든 이후 시대와 사건 속에서 정신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너와 내가 우주이고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로 만나야 연대가 있고, 진보의 방향으로 다른백년이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활동 중이다. [제3섹타 경제론], [격동세계] 등의 기고를 통하여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논리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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