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에겐 현재의 한국이 헬조선, 3포를 넘어선 전포(全抛)시대로 다가오면서 여러분 대부분이 고통에 처해있는 상황입니다. 저도 미래에 대한 전망을 잃고 방황하는 두 자식의 아버지입니다. 때로는 잠을 자다가도 자식들 생각에 식은 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나 앉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다소간의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시기에나 말세론과 종말의식이 있었으며, 동시에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젊은 시절의 과제는 유신체제와 군부독재에 저항하여 민주화의 시대를 여는 것이었으며, 저도 이에 참여하여 4-5번의 체포와 두 번의 제명을 당하면서 이후 대학졸업장 없이 칠십 년 가까운 일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냉정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물론 젊은 세대에게 절망적인 현재의 한국상황을 만든 것은 부분적으로 우리들 선배세대의 책임일 수 있고, 한편으로는 국제적 시대의 흐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지난 십 수 년간 여야를 막론하고 국정을 책임졌던 여러 대통령을 포함하여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촛불시민이 만들어준 역사적 기회를 제대로 대처해내지 못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제가 누구보다도 앞장서 지난 4년 내내 비판의 칼날을 세우고 분노를 분출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비난과 손가락질만으로는 현실을 반전시키지는 못합니다. 오로지 상황에 대한 냉정함과 분노를 넘어선 판단과 선택 그리고 결집된 행동만이 여러분들에게 미래를 열어 줄 것입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MZ이라는 세대집단 그리고 지평을 넓혀 공감하는 시민사회가 함께 결집하여 선택하고 행동할 때만이 변화의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미국을 대표하는 시대의 지성인 웅거 교수는 “각성된 주체”가 변혁의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복잡계라는 현대이론에서는 행위자가 가장 주요한 변수이라는 “행위자 기반(중심)이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여러분들 자신 하나 하나가 변화의 주역이고 반전의 동력으로서 앞장서고 결집하고 행동할 때만이 헬조선같은 현재의 상황에 새로움의 가능성이 열리고 개벽의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40여 년의 세월을 먼저 살고 경험한 꼰대 세대의 한 사람으로 염치를 불구하고, 다가오는 대선이 새로운 변화를 위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여러분들의 판단과 행동에 도움이 되고자 몇 가지 조언의 말을 아래에 적어 봅니다.
첫째의 조언은, 여러분에게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가져온 가장 핵심적인 배경 혹은 시대적 흐름은 어려운 표현이지만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소위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격변이라는 것입니다. 기술적 격변에 대해서는 각설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국경을 넘어서는 생산중심이론과 시장에 대한 절대적 맹신 그리고 금융우위의 통화정책을 기반으로 탐욕스런 자본의 이익실현에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무력화시키는 이념적 체계와 현실정책의 수단을 합하여 통칭 신자유주의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신자유주의가 전행되는 시기에는 스스로 존재가 목적인 인간이 철저하게 이익실현의 수단이 되고 인류모두에게 주어진 토지와 천혜 자연이 아무 제약도 없이 사적 소유물로 전락되고 심하게 오염됩니다. 국가별 관세와 경제정책이 방해가 되면 세계화라는 강대국의 논리로서 이를 무력화시키는 과정에 IT와 금융기법의 신기술 등이 결합되면서, 지난 3-40여 년간 전세계를 대상으로 부의 극심한 집중과 양극화, 비정규직과 임시직의 양산과 노동조건의 열악화(rush to bottom) 그리고 사회안전망의 일방적 축소 등이 이루어져 왔으며, 이전의 20: 80 불평등 사회가 무색하게 10: 90를 넘어서 1: 9: 90의 사회로 급속하게 재편되어 왔습니다.
현재 거대기술기업의 소유주 중심으로 수퍼리치 30명이 지닌 자산이 인류 전체의 절반인 밑으로 40억 명의 재산을 능가합니다. 미국에게 질세라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1%의 부자가 소득의 20%을 독차지하고, 금융과 부동산 자산의 경우에는 이들 1%의 소유가 50%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부모찬스가 없는 MZ 세대 대부분에게는 오로지 비정규직, 임시직, Zero-time의 앵벌이 직업만이 선택지로 주어질 뿐입니다. 그리고 한번 가난에 빠지면 이는 헤쳐 나오기 어려운 함정이 됩니다.
부자들의 넘쳐나는 자금은 금융영역을 넘어 ‘묻지마-부동산’에 몰리면서 투기의 광풍을 일으키고 누진적 보유세와 양도차익 환수 이외의 모든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일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현재의 빈부격차는 삼정의 문란과 배고픔으로 농민반란이 빈번하였던 구한말의 상황보다 더욱 심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에서 여러분들이 선택적으로 인간다운 미래를 만들어 가려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신기술의 혜택을 모두가 공유하는 방식 그리고 이를 추진할 강력한 리더십의 정치지도자를 선택하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당의 모후보는 신자유주의를 기획하고 주창했던 장본인인 시카고 학파의 ‘프리드만’이라는 교수를 가장 존경해 마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다닙니다. ‘프리드만’은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대주주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던 인물입니다.
더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엄청난 타격을 받고 아직도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실정으로,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광범하고 일반적인 합의가 형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신자유주의는 지구에서 추방시켜야만 하는 야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난데없는 홍두깨처럼 괴수인 ‘프리드만’을 스승으로 삼고 신자유주의의 기세를 더욱 확장하겠다고 하는 야당 모후보의 발언은 여러분들을 인간이 아니라 자본의 이익실현의 수단으로 삼아 더욱 옥죄겠다는 폭언의 다름아닌 이야기입니다. 주당 120시간을 일하자?
두 번째의 조언은 인류가 직면한 전면적 위기의 대응 방식에는 여전히 기득체제를 고수하려는 상기에 언급한 야당 모후보의 발언처럼 신자유주의의 꼼수적 연장 또는 이의 변형인 대중영합주의가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민들의 생계를 중심주제로 삼는 변혁적 실용주의, 정치학적 표현으로는 ‘시민주권적 민족주의’가 새로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중영합주의는 현재의 실패와 어려움이 내부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화살을 엉뚱한 외부와 상대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들로 미국의 트럼프와 이탈리아의 살비니 등을 들 수 있는데, 어려움의 원인이 난민유입과 중국 그리고 소수유색인종에 있다고 책임을 돌리고 있으며, 기존의 기득수혜의 계층과 소수의 부자들을 보호하는데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고자 합니다. 이들이 가장 손쉽게 동원하는 것이 달콤한 감세조치이자 (자본을 위한) 규제완화입니다. 감세와 규제완화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이자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기득권과 부자를 위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이 현실적응의 올바른 원칙이며 가난한 자들의 숙명이며 익숙해진 편안함이라고 악마의 궤변을 벌립니다. 더구나 이들은 법전을 앞세워 질서를 주장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정을 이야기합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질서와 공정은 한마디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의미합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일어난 실화를 들어 봅시다. 국기문란죄에 해당하는 고발사주의 배경을 국민 대다수가 백주대낮처럼 지켜보고 있는데도, 엘리트 검사출신이라는 자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이야기하고 있고, 이를 요청한 또 한사람 검사는 법전 뒤에 숨어서 눈알만 굴리고 있습니다 – 이들을 법꾸라지라고 합니다만, 이를 조사해야 하는 검찰과 경찰은 아예 먼 곳의 불구경하듯 합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검찰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같은 ‘공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되, 기울어진 운동장의 조건을 역으로 차별하여 기득권과 부자들을 불리하게 하고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전환적 조치를 이야기한다면, 이는 신자유주의를 혁파하려는 변혁적 실용주의라고 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에 발린 감세와 규제완화가 아니라 1-5%의 부자들을 대상으로 누진적 토지보유세와 자산세를 강화하여 이를 재원으로 95%의 일반서민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특히 젊은 여러분들에게 기본소득과 기본금융과 기본주거권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위한 개벽세상을 열어가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가 중장기적으로 보편적 세제개혁을 실시하고 사회상속계정을 도입하여, 25세에 이른 청년에게 기본자산을 제공하고 아이디어와 의지가 충만한데 자금이 없어 창업을 못하는 젊은이들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하여 봅니다.
한가지 추가하자면 기득권 중심의 영토방어주의에 관한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난민거부로 나타나고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의 차별로 사건화되고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출생의 배경, 학력과 자격증, 국가고시, 부모찬스 그리고 아파트 지역과 평수 등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기득권(영토)을 방어하려는 기제들입니다.
대중영합주의는 상기의 복합적인 기득권의 영토기제를 활용하여 서로에게 반목을 조장하고, 여러분을 굴종의 기회주의자이자 이기적 개인으로 타락시킵니다. 당연히 미래에 펼쳐지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모든 개인에 대한 기회의 존중과 자격이 아닌 능력, 그리고 배경이 아닌 실질적 성과를 기준으로 적용하면서 기존의 영토방어주의를 혁파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차기정부 향후의 경제운용은, 빨대처럼 모든 성과를 상위의 1%가 독차지하는 현재의 구조를 방치한 채, GDP중심의 양적 성장주의가 되어서도 안되고 부자들을 위한 주식지표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맹자가 나라의 역할은 제민지산 즉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듯이, 미국의 바이든이 외교정책의 목표를 미국시민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듯이, 경제와 사회의 발전은 오로지 일반 서민들의 일상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 것에 우선적인 방점을 두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검찰, 법조, 언론, 고급관료, 기회적 지식인 등 지난 70여 년간 특혜와 지위가 형성된 기득권층과 자산가들의 저항이 엄청나고 거세게 일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제어하고 돌파할 행정적, 법제적, 정치적 돌파력을 지닌 의지의 정치인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만 합니다. 새로운 대통령은 기득권에 얽매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다음 대통령은 통치자가 아니라 젊은 여러분에게 기회와 계기를 만들어주는 길라잡이의 수단이어야 합니다.
더욱이 외국의 거대자본과 기업들이 한국을 압박하여 올 때 당당히 국민주권적으로 이를 방어하고 국가적 이익을 지켜날 만큼 민족적 자존과 긍지를 지닌 인물만이 여러분의 미래를 지켜줄 것입니다. 분단상황에 처해 있는 민족의 현실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악용하고 외세에 의존하여 한반도의 불안을 조장하는 자가 아니라, 역사와 민족 앞에 자신을 헌신하고 독자적인 주권국가의 지도자로서 강대국의 압력과 세계무대에 당당할 수 있는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 대선의 향방과 대세가 여러분 MZ세대가 쥐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에 펼쳐질 세상은 바로 여러분들의 판단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번 대선의 성격과 선택은 여야의 후보를 떠나서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과거로의 회귀이냐, 변화의 새로운 시대로 진입이냐
– 신자유주의적 예종의 연속이냐, 자기실현의 변혁적 모험의 길이냐
– 기득권 질서와 법전을 앞세운 검찰공화국의 시대이냐, 아니면 역사의 맥동에 따라 시민주권의 창발적 시대를 실현하느냐
이제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곧 선택의 시기가 다가옵니다. 글맺음으로 나의 마음을 대신하여 프랑스의 전설적인 외교관 스테판 에셀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젊은 시절인 제2차 대전의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시기에 레지스탕스의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고, 종전 이후에는 유엔의 인권대사로 임명되어 인류역사의 금자탑이라고 할만한 세계인권선언문의 초안작업에 참여하여,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영원한 대사님’이라는 명예호칭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가 임종을 앞둔 93세에 유언처럼 작성한 팜프렛에 ‘<분노하라> – 저항하라 그리고 점령하라’고 적었습니다.
레지스탕스 출신다운 그의 격렬한 조언으로, 이후 월가점령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노란조끼의 저항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급기야 금요일의 기후행동으로 십대의 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세계적인 ‘분노의 환경운동가’로 변신시켰습니다.
여러분들도 해방 이후 70여 년간 누적된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악마의 달콤한 밀어에 속지 말고, 직면한 현실에 분노하고 함께 행동하고 미래를 향한 거점을 확보하시길 바랍니다. 내년 3월에 있을 대선에서 여러분의 선택으로 새로운 출발점이 이루어지길 조언합니다.
2021년 11월, 대선을 100여 일 앞둔 어느 날에.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 이사장, 국민주권연구원 상임이사. 철든 이후 시대와 사건 속에서 정신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너와 내가 우주이고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로 만나야 연대가 있고, 진보의 방향으로 다른백년이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활동 중이다. [제3섹타 경제론], [격동세계] 등의 기고를 통하여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논리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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