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의 ‘정점’,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모여드는 부나방들
지금 우리 국회에서 국회의원의 본업인 입법 과정 중 대부분의 과정을 의원이 아니라 국회 공무원들이 수행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덕성을 지닌 사람이나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왕성한 의욕에 넘치는 사람이 국회에 진입해도 지금과 같은 국회 입법 시스템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러니 “초등학생을 국회의원으로 앉혀놔도 못할 게 전혀 없다.” 혹은 “완전히 날로 먹는 국회”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오는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정당의 공천에서 탈락한 한 젊은 여성 사업가는 자신의 공천 탈락에 대해 “청년 정치에 무슨 이념이 있나?”라 항변했다. ‘정치적 소신’과 ‘이념’에 대한, 무지에 가까운 주관적 혼동이자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출세주의의 진솔한 표현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좀 성공했거나 조금만 유명해졌다 싶으면 그야말로 부나방처럼 아무나, 아무런 부담 없이, 아무런 부끄러움도 모르고 오로지 자기 커리어와 출세의 ‘정점’을 찍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다.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은 기껏 법안발의에서 멈추고, 이후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서의 통과 절차만 남는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을 가진 의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국회를 국회라 말하기도 쑥스럽게 된다.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던 ‘사무장 병원’ 혹은 ‘사무장 약국’과 쏙 닮아 있다.
모름지기 ‘법안 검토’란 입법 과정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 과정을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대리’한다면 국회의원은 자신의 본업인 입법 업무를 사실상 ‘방기’하는 것이다.
거꾸로 이러한 객관적 조건에서는 아무리 비범한 의지와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의원이라고 할지라도, 정작 그 능력을 발휘할 공간과 기회가 구조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차단되고 배제된다. 결국 본업으로부터 ‘이탈’된 의원들의 업무는 겉돌게 되어 무력화되고, 오로지 상대 당에 대한 반대의 전면에 나서는 ‘투사 정객’이 되거나 아니면 ‘연예인’인양 소셜미디어에서 튀려는 노력만이 빛나게 된다.
국회 특수활동비 봉투에 적힌 ‘미성(微誠)’에서 ‘국회 무력화’를 읽는다
세계 어느 나라 의회든 의원이란 마땅히 법안을 검토하고 정당 내에 조직된 소그룹에서 정책전문가들과 법안과 정책과 씨름하면서 연구하고 검토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의원의 본분이며, 국민의 대표로 뽑힌 선출직으로서의 필수적인 의무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원들은 본업을 수행해야 할 바로 그 ‘직무’로부터 철저하게 벗어났다.
그렇게 ‘직무’에서 이탈했지만, 그러나 특권은 여전히 빛난다.
이렇게 왜곡된 상황은 필연적으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있다. 이와 관련해 한 현역 의원의 증언은 우리를 적잖이 슬프게 한다.
“상임위원장을 했던 모 의원이 직접 한 말이다. ‘업무추진비와 판공비 때문에 상임위원장 했던 거다. 그걸로 빚 많이 갚았다’는 말을 직접 했다. 특수활동비는 봉투에 현금 담아서 갖다 드리는 돈과 같다. 영수증 필요 없이 쓰는 돈이다. 당대표 원내대표 되면 월 7000만원 지급된다. 당대표, 원내대표, 국회 상임위원장을 서로 하려는 것은 명성과 실익이 있기 때문이다. 상임위원장에 오르면 평의원들과 삶이 달라진다. 정당 원내대표 임기가 왜 1년으로 됐는지 아냐? 과거에 다 2년이었다. 어느 날부터 당내 민주화 되고 나서 한 사람에게 가는 이익이 너무 크다. 그래서 1년 된 거다.”
피감기관 예산, 즉 국민 혈세에 의한 해외 출장을 비롯하여 오늘 우리가 목격하는, 그리하여 많은 국민들이 혐오하는 국회의 모습은 대부분 본업과 특권 간의 왜곡된 현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한동안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국회의 특수활동비는 ‘미성(微誠)’, 즉 “작은 정성”이라고 쓰인 봉투에 담겨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미성(微誠)’이라고?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국회는 언제나 불신의 끝판 왕이었다. 그간 단 한 번도 불신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국민들에게 국회가 큰 골칫거리가 된지는 이미 너무 오래되었다. 참 대단한 국회다.
그래서 국회 특수 활동비 봉투에 적힌 ‘미성(微誠)’, ‘작은 정성’이라는 이 글자는 ‘국회의원 무력화’ 혹은 ‘통제’에 대한 은유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특수 활동비는 일종의 전리품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국회의 무력화’와 ‘통제’라는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다른 상임위와 달리 ‘힘이 세다’는 법사위 소속 의원들도 그 ‘지위’에 비하면 고작 ‘푼돈’에 불과할 월 60만 원씩 수령하고 있었다.
궁금해진다. 이 국회 특수 활동비는 그리고 그 대상자와 액수는 과연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몇 해 전 TV드라마에서 나왔던, 왕까지도 우습게 아는 비선 비밀지휘조직, ‘밀본(密本)’이라는 괴이한 어휘까지 연상된다.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 전문위원에게 잘 보여야 한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 지인으로부터 자기들 협회가 의원이 아니라 ‘실제로 힘을 가진’ 국회 전문위원에게 로비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말들은 여러 곳에서 적잖게 들을 수 있었다.
국회 전문위원은 특히 행정부에 대해 ‘갑중의 갑’으로 군림한다. 즉, 행정부 각 부처의 공무원들은 국회의원이 아닌 ‘검토보고 권한’을 가진 전문위원들에게 각종 법안과 정책, 예산 그리고 국정감사 등 보고하러 쫓아다녀야 하고, 이들에게 잘못 보이면 검토보고서에서 좋지 않게 반영되기 때문에 이들에게 전전긍긍 로비를 해야만 한다. 장관이 밤에 양주를 들고 국회 공무원을 찾아온다는 것은 국회 주변에서 흔하게 듣는 얘기다. 상임위에 전문위원이 새로 임명되면 소관 부처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줄을 서서 ‘업무보고’를 한다.
더구나 국회법 제42조 제4항은 “전문위원은 위원회에서 의안과 청원 등의 심사, 국정감사, 국정조사 기타 소관사항과 관련하여 검토보고 및 관련 자료의 수집·조사·연구를 행한다.”로 규정하고 있고, 제5항은 “전문위원은 제4항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필요한 자료의 제공을 정부·행정기관 기타에 대하여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 국회 공무원이 대의권(代議權)에 관여하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대의권 그리고 입법권이 빛바랜지 이미 오래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당사자들인 국회의원들은 이 문제에 아무런 인식도 없고 또 개선의 의지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국제관계학 박사. 저서로는 『광주백서』, 『직접민주주의를 허하라』,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사마천 사기 56』, 『논어』, 『도덕경』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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