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지지’? 잘못이 잘못인 줄도 모르고, 이 땅 고위 관료의 희화화된 자화상
관료의 대표자 격인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달 ‘지지지지’ 발언을 해 ‘지지지지’란 말이 한동안 회자된 바 있다.
“‘최선을 다한 사람은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담백하게 나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의연하고 담백하게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저부터 늘 가슴에 지지지지(知止止止)의 심정을 담고 하루 하루 뚜벅뚜벅 걸어왔고 또 걸어갈 것입니다. 저는 우리 기재부 직원들의 뛰어난 역량과 고귀한 열정, 그리고 책임감있는 사명감과 사투의지를 믿고 응원합니다.” – 2월 2일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 페이스북 글
결론을 미리 말하면, 이 말은 그야말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잘못된 말’이다.
이 ‘지지지지’란 말은 유명한 국문학자 정민 교수가 조선일보에 쓴 기고문이 그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앞의 ‘지지(知止)’는 알려진 대로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뒤의 ‘지지(止止)’에 대해 정민 교수는 그 기고문에서 “고려 때 이규보는 자신의 당호를 지지헌(止止軒)으로 지었다. 지지(止止)는 ‘주역’ 간괘(艮卦) 초일(初一)에서 “그칠 곳에 그치니 안이 밝아 허물이 없다(止于止, 內明無咎)”고 한 데서 나왔다.”라고 썼다.
하지만 이는 오류다. <주역>이 아니고 <주역>을 모방한 <태현경>이라는 일종의 궤변서로서 쉽게 말하면 ‘짝퉁 주역’이며, 그 책에 나오는 止于止라는 어귀에서 止止를 끌어내 앞의 지지(知止)에 자의적으로 붙여 만들어낸 말이다. 언어유희에 불과한 ‘억지 말’이요 ‘엉터리 말’이다.
이러한 ‘잘못된 문자’를 그것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서 오히려 그로써 ‘헛된’ 우월감을 과시하고자 한다.
‘지지지지’, 이 땅 고위 관료들의 희화화된 자화상이다.
고위 공직을 모두 개방직으로 전환시켜야
말단 직급에서 차관이나 장관까지 올라가는 ‘입지전적 인물’이 미담으로 소개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 공직 사회의 후진성의 반영이기도 하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공직에서 국장급 이상의 직위는 우리처럼 기본적으로 관료 출신이 자동 승진하여 당연히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모두 정무직(政務職)으로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우리나라와 달리 공무원들은 대부분 국장급 아래의 직위에서 멈춘다.
미국에서는 대통령과 정부가 바뀌면 정부 국장급까지 정무직(political appointees)으로서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최고위층 공무원은 EL-Ⅰ에서 EL-Ⅴ까지 5등급으로 분류된다(EL= Executive Level).
EL-Ⅰ: Secretary(장관)
EL-Ⅱ: Deputy Secretary(부장관)
EL-Ⅲ: Under Secretary(차관)
EL-Ⅳ: Assistant Secretary(차관보)
EL-Ⅴ: Deputy Assistant Secretary(국장급)
프랑스 역시 중앙부처의 국장, 임명직 도지사, 교육감, 대사 등 500여 개의 직위가 정치적 임명직(자유재량 임명직)으로서 국무회의 심의 심사를 거쳐 특별 채용하는 등 대통령은 총 7만 여 개의 직위를 임명할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대통령의 정무직 공무원 임명권을 제한하는 것은 통상 변화와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인 기존 경력직 공무원의 강력하고 뿌리 깊은 관료주의를 강화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차제에 우리나라도 (탁월한 역량을 보유한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국장급 이상의 고위직군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으로 구성하는 방안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차원에서도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직업 공무원들이 독점하는 고위공무원직을 모두 개방직으로 전환하여 3급 이상 고위 관료군의 문호를 모든 국민에게 개방해야 한다. 이는 유능한 인재 채용의 길이며, 동시에 ‘영혼 없는 관료 현상’의 방지를 위한 실질적 방안이기도 하다.
그들만의 영토, 그들만의 금자탑
관료 조직은 외부에서의 진입이 철저히 봉쇄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내부에서도 지금은 5급 공채로 그 이름만 바꾼 고시 출신의 성골을 비롯하여 진골 그리고 육두품 등등의 차별과 장벽의 철옹성으로 둘러쳐진 이너서클의 조직이다. 온전히 그들만의 영토이고 그 영토 안에서 승진을 매개로 하는 상명하복의 수직적 (vertical) 문화와 관행으로만 ‘잘 훈육된’ 구성원이 존재하며, 그들이 쌓아올린 그들만의 금자탑이다. 그들이 곧 규칙과 룰(rule)의 제정자다.
무엇보다도 민간전문가를 포함하는 일반 국민들의 공무원으로의 진입이 전면적으로 개방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에게 실질적이고 보편적인 공무담임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비단 국가시스템 운용의 합리성 제고라는 측면만이 아니라 국민주권 강화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 제도의 폐쇄적이며 경직된 구조를 극복하고 제도적으로 외부 개방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오늘의 시대정신에도 부합된다. 이는 격변하는 현대의 지식 정보 사회에서 각 분야에 있는 우수 인력에게 국가 관리의 기회를 제공하며, 특히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 사회와 국가에 봉사할 기회가 ‘박탈’된 많은 우수 인력들에게 일종의 ‘패자 부활전’의 장(場)을 열어 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공무원이란 영어로 ‘public servant’로서 문자 그대로 국민을 위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며, 한자어로는 ‘국민의 종’이라는 뜻의 ‘공복(公僕)’이다. 우리 헌법 제7조에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정년 보장은 권력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정파를 초월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를 하라는 의미에서 제공되는 것이다.
과연 공무원에 대한 이러한 신분 보장과 정년 보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오히려 이러한 공무원의 신분 보장과 정년 보장이 헌법이 규정한 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를 게을리 하게 만드는 제도적 온상이 되지는 않았는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LH 사태, 빙산의 일각일 뿐
최근 우연히 드러난 LH 투기꾼 공사직원들 사태는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땅의 관료집단은 국가자본주의 시스템과 발 맞춰 성장해왔다. 그들은 겉으로만 봐서는 정치 권력의 하수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 세력들이 정쟁으로 이전투구를 벌이면서 관료들이 챙겨주는 ‘떡고물’과 낙하산 자리 손에 넣을 때, 그 나머지 대부분의 실속은 관료들의 차지다. 그들은 그렇게 정치 권력에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는 한편 아래로는 시민 세력을 완강하게 억압한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높다란 장벽을 치고 감시와 견제의 철저한 부재, 혹은 그 유명무실 속에서 전현직 모두 어울려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다.
정치 권력은 원래부터 관료개혁에 의지도 없지만, 더구나 관료들의 도움 없이는 권력 유지가 불가능하므로 언제나 관료를 우군으로 여긴다. 그렇게 관료공화국의 철옹성은 더욱 강고해진다.
정치 권력은 여전히 관료개혁에 대해 아무런 의지도 없고 시민 세력 역시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 변화되지 않는 한, 이 땅의 관료공화국은 반근착절(盤根錯節), 계속 번성할 것이다.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국제관계학 박사. 저서로는 『광주백서』, 『직접민주주의를 허하라』,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사마천 사기 56』, 『논어』, 『도덕경』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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