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악화되는 기후 상황
절망적인 상황이다. 전세계로 급속히 확산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일상을 붕괴시키고 지구의 삶을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신종바이러스의 출현은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 등 환경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바이러스 확산에 앞서 2019년에는 6개월간 이어진 호주 산불로 인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1% 늘어났다. 기후변화로 인한 화재는 호주에 그치지 않는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불타고 북극권 냉대림의 면적도 화재로 줄어든다. 생태의 보고, 생물다양성 등 숲에 대한 수식어는 잠시 제쳐두고 지구 공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
냉대림이든 열대림이든, 나무의 목질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주원료로 이용해 만든 화합물이다. 나무 종에 따라 차이가 좀 있지만 목질의 구성은 중량 기준 탄소 50%, 산소 42%, 수소 6%, 질소 1%, 기타 1%로 되어 있다. 즉 나무 목질은 중량 기준 92%가 탄소와 산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산화탄소의 화학식은 CO2인데 이는 하나의 탄소와 두 개의 산소 분자로 이뤄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숲이 불탄다는 건 나무가 성장하면서 잡아둔 이산화탄소가 다시 변해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로 합류한다는 얘기다.
숲이 불타는 건 수십 년간 숲이 저장해 왔던 이산화탄소가 일시에 대부분 공기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현상인데 이런 현상이 북극지역 냉대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2019년 6월 한달 동안 북극권에서만 화재로 인해 50MW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었으며, 이는 2010년 6월부터 2018년 6월까지 9년 동안 매년 6월북극권 숲의 화재로 인해 발생한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발표했다. 국가 배출량과 비교하자면 인구 천만 명인 스웨덴의 연간배출량과 맞먹는 양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감축하는 나라들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제는 자연도 중요한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가세한 상황이다.
한국 시민사회는 태양열, 풍력 등 재생에너지 생산을 확대할 경우 산림훼손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지만, 필자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더 늦어질 경우 지구에 사람이 생존하기가 어려워지는 끔찍한 결과가 오는 상황이 훨씬 더 우려된다. 그래서 난개발이라도 좋으니 제발 좀 신속히 재생에너지를 확대했으면 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시민사회도 심각해질대로 심각해진 상황을 고려해 입장과 역할을 재정립했으면 한다. 필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현재까지 시민사회의 역할과 우리나라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
한국 시민사회의 에너지 전환 노력
에너지 전환에 있어 시민사회의 노력과 정부의 노력을 정밀하게 분리해 내는 건 불가능하다. 시민사회는 에너지 전환에 있어 주로 서울시 등 지방정부와 협력해 몇 가지 에너지전환 프로그램에서 역할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이 글에서는 에너지자립마을, 마을에너지협동조합, 서울시의 태양도시 정책, 기타 NGO의 에너지전환 캠페인을 중심으로 현재 상황과 지금까지의 성과를 정리해 봤다.
1) 에너지자립마을
2018년 기준 국내 에너지자립마을은 서울시에서만 100개가 등록되어 있으며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실천가, 교육자로서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다. 관련 성과와 현황을 짚은 언론 기사에 따르면 에너지자립마을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성과 지표는 아파트 단지에서 전기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대표적인 에너지자립마을로 손꼽히는 동작구 상도3, 4동 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의 경우 동작구 전체 1인당 전기사용량이 2010년 1,204kWh에서 2013년 1,261kWh로 4.7% 늘어날 때 상도4동은 2010년 1인당1,098kWh이던 전기사용량을 2013년 1,068kWh로 2.8% 줄였다. 상도 3동도 1인당 1,067kWh이던 전기사용량을 2013년 1,023kWh로 4.1% 줄였다.
동작구 전체에서 전기사용량이 늘어날 때 에너지자립마을에서는 전기사용량이 줄어든 건 분명히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성과가 상당히 미미하다는 점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에너지자립마을 프로그램이 실행되던 시기에 동작구 전체의 전기사용량은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런 결과는 절전을 중심으로 하는 소규모 자립마을 프로그램은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는 현재 상황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2) 마을에너지협동조합
마을단위 에너지협동조합은 독일 등 몇몇 유럽 국가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던 프로그램으로 주로 마을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태양광 또는 풍력 발전소 사업을 추진해 수익을 내고 재생에너지 확산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지역에서 지역에너지를 만들고 수익을 얻음으로써 지역이 혜택을 보는 이상적인 형태의 에너지 사업이다. 또한 절전이라는 소극적인 성과를 넘어서 에너지 자립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규모는 2013년 8개의 협동조합이 219kW의 발전소를 운영하던 것에서 크게 증가해 2018년에는 68개의 협동조합이 8,712kW 규모의 발전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협동조합의 수는 8.5배, 총 발전소 용량은 40배가 늘어났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경우 2013년 5월 21일에 안산시 단원구 안산천남로 14(고잔동)에 발전용량 30kW의 안산시민햇빛1호 발전소를 설치했고 2018년말에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1068에 위치한 선부다목적체육관 지붕에 70kW의 용량을 갖는 제21호 발전소를 설치한 바 있다. 안산시는 상대적으로 사업을 늦게 시작한 다른 지역에 모범사례로 알려지면서 지역햇빛발전협동조합 확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18년말까지 협동조합이 재생에너지 확산에 기여한 부분은 전체 에너지전환 성과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할까? 산업통상자원부가 2019년 2월에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설비 보급은 2018년까지 누적 7,862,000kW이다. 국내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는 태양광발전소 규모가 8,712kW이니 협동조합이 설치한 태양광 설비는 전체 설비의 0.11%에 해당되는 매우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2018년 태양광 총 신규설치 용량이 2,027,000kW인데 이 중 협동조합이 설치한 용량이 6,294kW이니 이는 0.31%에 해당된다. 누적설치 기준보다 약 3배가 높다는 건 긍정적이다. 다만 0.31%는 여전히 큰 비중은 아니라는 점은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리하자면 지역협동조합은 태양광 확산에 기여하고 있으나 그 역할은1% 미만으로 미미하다.
3) 서울시 태양의 도시
서울시는 에너지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지방자치단체 중 하나이며 서울시에너지공사를 만들어 태양광 사업을 확대하는 역할을 맡기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17년에 발표된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2022년까지 서울시 소유 부지에 총 243MW의 시설을 구축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미 2017년 말 기준 50MW (50,000kW) 규모의 태양광 설비를 구축하는 성과를 낸 바 있는데 같은 시점을 기준으로 지역협동조합이 구축한 태양광발전소의 규모가 2.4MW (2,418kW)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전환 관련 기여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다만 서울시의 계획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분명한 한계를 보인다.
첫째 2022년에 태양광 발전 설비 243MW로 생산할 수 있는 발전량은 약 319GWh인데 이는 대한민국 2018년 전체 전기사용량인 537,064GWh 대비 약 0.06% 수준이다. 서울에 우리나라 인구의 약 5분의 1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시는 2016년 기준 46,493GWh의 전력을 사용했다. 서울시 계획대로 2022년까지 243MW의 태양광 시설을 설치해 319GWh의 전기를 만든다면 이는 서울시의 2016년 소비량 대비 약 0.7%에 해당된다. 굉장히 낮은 비중이다.
그런데 이런 서울시의 계획마저 차질을 빚고 있다. 서울시는 과천대공원 주차장에 10MW 상당의 태양광 발전소 설치를 추진했는데 일부 지역주민과 시의원의 반대에 부딪혀 최근 무산된 바 있다. 서울시는 2022년 계획에서 수도권 매립지에 140MW의 대형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한다는 계획인데 이마저 무산될 경우 서울시에서 사용되는 전기의 1% 미만을 공급하는 계획마저 달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사업 외에 시민참여를 통해 2022년까지 미니태양광 등을 포함해 1GW의 설비를 설치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한 바 있는데 목표를 달성할 경우 서울시 에너지 사용량의 3%에 해당하는 전기를 공급하게 된다. 전력의 대부분을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석탄-원자력-가스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보다는 태양광으로 3%라도 생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전세계 모든 국가와 도시가 재생에너지 100%로 전환해도 기후변화 대응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서울시 전력의 3%를 태양광으로 달성한다는 계획은 매우 부족한 게 사실이다.
4) 그린피스 재생에너지 캠페인
그린피스 한국사무소의 경우 기업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구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그린피스는 다음, 네이버 등 IT기업이 재생에너지 100%로 전환할 것을 요구해 선언을 이끌어 낸 바 있으며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100% 선언 발표로 이어진 캠페인을 실행한 바 있다. 최근에는 에너지 전환 캠페인의 범위를 자동차로 확장하고 있는데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술인 전기차 생산 확대 등을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 상황과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한 제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절반 감축, 2050년 정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달성하면 조금은 더 덥고 불안정해지지만 급속하게 지구온난화가 진행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은 IPCC의 권고 내용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 상황은 2019년 8월 기준 전력 부문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5% 미만이며 2030년에는 20%, 제3차에너지기본계획에서 2040년에는 재생에너지를 전력 부문에서 최대 35%까지 늘리겠다고 정해 놓았다. 나머지는 원자력, 석탄화력, 가스화력 발전으로 달성하겠다는 계획인데 이런 목표는 기후 위기 상황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첫째, 기후 위기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정부가 제대로 된 목표를 세워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기후 위기 해결은 공학적인 문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정해진 시간 내에 대폭 줄어들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인식하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정부 목표인 2040년 재생에너지 35% 달성이라는 계획은 훨씬 더 강화되어야 한다.
둘째, 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을 적극 지지해 줘야 한다. 대한민국 국토에서는 다양한 개발사업이 벌어지고 있는데 재생에너지 사업의 경우 유독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기후변화로 오는 절체절명의 피해를 감안하면 넘쳐나는 개발 프로젝트 중에서 재생에너지 사업만큼은 신속히 진행되도록 길을 터주는 게 필요한데 시민사회는 적극적인 지지보다는 반대의 목소리에 더 힘을 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셋째, 이상적인 재생에너지 사업 형태인 협동조합 사업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만 협동조합 사업을 하기 위해 일반사업자의 재생에너지 사업 확대를 가로막지는 않았으면 한다. 지금은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확산하는게 급선무인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민간사업자를 견제하는 구도가 되면 곤란하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세계는 지금 한번도 경험해 본 바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평화로운 상황에서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아들이고 빠른 에너지 전환을 완성해야 한다. 완전한 전환이 필요하고 이 전환은 또한 대단히 급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완전한 전환을 위해 다소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목표와 속도, 방법은 시민사회가 주로 선호하는 방법이나 속도와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에너지전환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해 최악의 기후변화를 막아내는데 실패한다면 시민사회가 추구하는 인권, 민주, 평등 같은 가치들 또한 지켜질 수 없다. 생태문명의 실현이라는 목표도 마찬가지다.
한국 시민사회가 이런 절박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가? 제대로 이해하고 결심한다면 한국 시민사회는 지금 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스페셜리스트

한국생태문명 프로젝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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