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 이어짐)
그렇다면 도시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비례해서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각종 도시병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루밍은 기술과 관리가 뒷받침하는 다양한 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규제는 ‘사람’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특정한 ‘행위’를 타겟으로 삼아야 한다. 국부수술을 하듯 세심하게 쪼개서 문제와 대책에 접근해야 한다. 중국 각급정부의 관료주의적 행태는 문제가 발생하면 아예 원인 자체를 봉쇄해버리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중국 정부가 ‘제로코비드’ 라는 거대한 정치적 구호와 성과에 도취되어 훨씬 복잡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위드코로나’로 적절한 시기에 전환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제로코비드 정책을 완화하기 위한 전환을 모색하는 가운데에도 많은 동네/마을 단위 정부들이 일방적인 출입통제라는 방법을 강요하려다가 일부 주민 특히 이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는데, 그들에게는 이런 방법을 쓰는 것이 가장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시에서의 택지개발 제한 문제는 농민들이 원래 고향에 소유하고 있던 택지를 도시의 제한면적과 교환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성간에 건설지표를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시(市)라는 행정단위는 도시가 아니라 한국의 도 정도의 규모에 해당하는 지역을 일컫는다. 이 안에는 도시와 농촌지역이 공존한다. 중국에는 상하이를 포함한 4개의 직할시와 293개의 일반시(地級市)가 존재한다. 상하이를 포함한 모든 시가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발전목표를 수립하고 개발제한농지를 많이 설정했는데, 만일 이중 일부를 택지로 풀어주고, 그만큼 이주해온 농민들이 살던 곳의 택지를 농지로 전환하면 국가 전체로는 농경지 면적을 유지하거나 더 늘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시는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해서 서비스업과 제조업 위주로 발전하고, 농촌은 줄어든 인구와 증가한 농지를 조합하여 규모화된 기계화 농업을 확대해서 발전시키자는 논리이다. 개발권의 지역간 거래는 한편으로 생산요소인 인력, 자본뿐 아니라 토지를 전국적인 시장으로 통일시킨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호구 정책은 자연적 균형이 아니라 인위적 규제라는 점에서 분명히 두얼굴을 가지고 있다. 중국 상하이나 베이징과 같은 대도시 지방정부는 농민공들을 비롯한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비교적 물가와 집세가 저렴한 서민 거주지를 철거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도시를 발전시켜왔다. 초반에는 구도심지역, 나중에는 도시가 확장하면서 교외지역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원주민들은 권리를 인정받아서 많은 경제적 혜택을 입고 중산층으로 도약할 기회를 얻었지만, 세를 들어 사는 이주민들은 철거민 신세로 전락했다. 일종의 중국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2017년 베이징 교외에서 한겨울에 벌어진 무차별적이고 가혹한 철거행위에 대해서 많은 사회적 비판이 제기됐다. 약자(低端人口)의 삶과 노동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 상류층과 고학력자만으로 이뤄진 ‘첨단국제도시’를 만들려는 것이냐는 지적이다. 이들에게는 호구가 배정돼 사회복지 혜택을 누리고 철거된 지역에 새롭게 지어진 고급 아파트를 거래할 수 있는 권리도 따라온다. 학력이 높아서 고소득 직장을 쉽게 얻기 때문에 자산소득과 노동소득 모두 이주민, 특히 농민공보다 훨씬 많아진다. 도시 호구를 얻지 못한 농민공들은 수년간의 노동을 통해 번 수입을 가지고 농촌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들의 자녀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과 문화환경 속에서 성장하므로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도시에 있는 고소득 직장을 얻게 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이렇게 도시와 농촌의 호구가 신분화하고 이를 대물림할 수 있다는 염려는 계급 고착화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당시 베이징 시장이었던 차이치(蔡奇)는 이번 20차 당대회에서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중 한명으로 승진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호구제 유지를 통해서 지역간 그리고 도농간 균형발전을 목표로 한다는 중국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실제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한 선악의 대립구도는 아니다. 호구제도의 폐지는 농민들이 고향에 가진 택지와 농지에 대한 사용권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고향에서 전통적으로 보장돼 있던 생활권을 버리고 도시로 와서 단기간에 생활기반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생존을 보장하는 공공복리 등의 사회안전망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국가에서 전통촌락사회의 사적인 사회안전망조차 없는 대도시에 갑자기 놓이게 된 이주민들이 도시빈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저개발 국가의 도시화, 공업화 사례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루밍은 이를 불가피한 근대화의 댓가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루밍은 남북방 세력권으로 구분되는 전통중국에 대한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시각을 통해 동남연안을 중심으로 한 도시화 추세의 당위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중국대륙에서는 통일국가 수립이후 역사적으로 세번의 중심권 이동이 있었는데 첫번째는 당송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중원에서 장강하류지역으로 이동한 시점이다. 남방의 농업생산력과 상업이 함께 발전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명이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기면서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분리된 시점이다. 다시 북방을 포함한 중국 전역으로 에너지가 분산됐다. 그리고 이 흐름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계획경제 정책이 수행되던 시절에도 지속됐다. 주요 대학과 산업지역을 동북, 서북, 서남지역 등의 내륙에 배치하며 인구와 경제규모를 지역별로 균등하게 유지하겠다는 정책목표가 유지됐다. 78년 개혁개방과 함께 세번째 이동이 시작됐는데 다시 사람과 자본이 동남연안으로 몰렸다. 글로벌 경제와 연결되는 관문역할을 하는 큰 항만지역이 그 중심이 됐다. 장강 하류에 위치해서 적은 물류비용으로 먼 지역까지 경제적 영향력을 넓히기에 가장 유리한 상하이와 장강삼각지대가 일등이고, 홍콩의 배후지인 주강삼각지대와 광둥성이 그 다음이다. 끝으로 발해만을 끼고 있으며 베이징에서 가까운 톈진이 있다. 이 설명은 장기적인 역사적 시각으로 봤을 때, 분산과 쏠림, 중심의 이동이 수백년 주기로 반복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동남연안지역의 도시화, 공업화, 현대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북방의 균형발전세력과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남방의 연안발전 선도세력간의 담론대결이 매우 추상화된 형태로 표현된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원톄쥔과 루밍의 입장은 각기 전형적인 좌파와 리버럴간의 논쟁처럼 들리기도 한다. 원톄쥔은 마오쩌둥의 현장중시와 실사구시를 강조하고 루밍은 자신이 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에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두 학자 모두 자본이나 국가대신 사람과 약자를 위한 경제발전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루밍은 GDP기준의 발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경제주의자처럼 보이지만 그가 지향하는 대도시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지역균형 발전이든 대도시 중심의 발전이든 자본보다는 사람의 이동을 우선 순위로 놓고 생각한다. 자본을 동원해 섣불리 사람을 움직이려 하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배치를 만들어 낼 수 없다고 믿는다. 루밍은 <대국대도시>의 한 챕터를 자살한 폭스콘 노동자 시인 쉬리즐(許立志)의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연다. 호구제도가 도시민이 되고 싶어하는 농민공들의 행복권 추구를 침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그가 기대하는 대도시와 도심지역은 신작로와 마천루로 가득한 곳이 아니다. 그는 베이징과 상하이, 상하이의 신도심(푸동)과 구도심(푸시)을 비교하면서 주로 후자의 손을 들어준다. 즉 큰길과 작은 길이 적당히 섞여 있고, 골목길 상권이 살아있는 “걷기 좋은 도시(walkability)”를 선호한다. 또, 철거와 재개발로 CBD를 만들어 사무실 빌딩만 즐비하고 야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심은 인구밀집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도심지역도 일과 생활이 공존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널따란 신작로로 나뉘어 중대형평수가 중심이 되는 대단위 아파트단지, 기존의 주거지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만들어진 거대한 공원, 그리고 쇼핑몰만 드문드문 놓인 베드타운형 신도시는 가장 좋지 않은 도시의 비유기적인 확장형태이다. 중국의 대도시들은 이런 식으로 인구 밀도를 절반으로 낮췄는데 인구 증가보다 더 빠르게 도시 면적을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태양계모델이라는 특이한 형태를 갖고 있다. 이는 토쿄나 서울처럼 문어발형태로 발전하는 모델과 차이를 보인다. 문어는 주로 수도권으로 통근하는 열차노선을 따라서 주거지역이 방사상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열차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면 녹지와 농지가 펼쳐지다가 행성궤도처럼 주거지역이 나타나고 다시 농지와 주거지역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상하이를 예로 들자면 원래 신중국 설립 당시만 해도 현재의 1/10정도에 해당하는 지역만이 상하이시에 해당했다. 나중에 상하이를 둘러싼 장수성의 농촌을 상하이로 편입시켰는데, 이 농촌 지역들의 도시화가 열차선을 따라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행성 궤도처럼 불연속적으로 보이게 됐다는 의미이다. 역세권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런 방식으로 토지이용률이 높아지게 되는데 중국은 농지를 택지로 전용하는 것에 제한이 많다보니 생긴 결과이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과거 도심을 벗어나 교외의 베드타운으로 주거지를 옮기던 중산층들이 나중에 다시 도심으로 주거지를 되돌리는 흐름이 나타났는데, 중국의 대도시에서도 앞으로 같은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주택단지와 빌딩들은 특히 예전부터 담장을 둘러친 형태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단지내의 도로들이 공공화하지 못하고 그만큼 보행자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태를 유지해왔다. 90년대 중후반 국유기업의 도산과 정리해고 열풍이 불어닥쳤을 때, 이런 담장을 허물고 골목상권과 구멍가게 영업을 활성화시켜서 노동자들이 자영업자로 전환하면서 위기를 극복한 사례도 있는데, 지금 다시 담장을 둘러치고 통로들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도심이 재개발돼도 서비스업 기층노동자들이나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 저렴한 가격에 임대할 수 있는 주거공간이 많이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용도변경을 통해 택지를 늘리고, 소형 평수의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것도 방법이고, 쉐어하우스 등의 주거형태를 장려할 수도 있다. 가능하면 인구 밀집도가 높고 임대료가 낮은 기존의 서민 거주지역을 보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베이징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안전문제 등을 이유로 쉐어하우스를 불허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불법증측이 이뤄진 서민주거지역의 건물을 너무 쉽게 철거해 버린다.
반대로 광둥지역의 광저우나 션전같은 도시들은 농지들을 상업지구나 신흥주택단지로 개발하면서 중간중간 농촌택지 마을들을 포위하는 형태로 남겨놓았다. 한편으로 이곳 원주민들의 서민형 다세대 주택의 증축을 허용해서 소위 도심속의 마을, 성중촌(城中村)이라 불리는 지역이 생겨났다. 지금도 저소득 노동자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도심으로 편리하게 출퇴근한다. 이곳의 주거환경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지만 적당한 관리가 이뤄지면서 과도한 범죄나 위생, 소음 등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또, 중산층 거주 아파트 단지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시민 주거형태가 상업지대, 사무지역과 함께 도심내에 조화롭게 존재해서, 자연스럽게 소셜믹스(social mix)를 만들어 낸다. 베이징 혹은 서울과 같이 계급간에 주거지역이 완전히 분리되는 gated community 현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광저우, 포샨, 둥관, 션전을 잇는 주강 삼각지역 일대는 인구 4천만이 넘는 중국 최초의 메갈로폴리스로 발전했다. 광둥성의 상주인구는 이미 1억이 넘고, 광둥성의 GDP도 한국을 앞질렀다. 만일 정치적인 문제로 갈등이 빚어져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홍콩과 마카우, 중산, 주하이 등이 결합되면 흔히 대만구(大灣區 Greater Bay Area)로 불리는 이 지역은 세계최대의 메갈로폴리스로 발전할 수도 있다. 루밍의 모델링에 의하면 빠른 인구 고령화가 문제가 되고 있는 상하이의 경우에도 노동가능 인구의 적정선을 고려할 때, 2017년 기준으로 2400만인 상주인구가 2040년경에는 4천만을 넘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간미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또 하나의 조건은 호구철폐를 전제로한 공공복리의 강화이다. 루밍은 시장기제의 작동에 의해서 개인별로 소득격차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대도시의 시민들은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기 때문에 수입도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소득을 재분배하기 위해 정부가 누진적 소득세를 통해 수입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재정을 동원해 질높은 교육이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다만 그는 최저임금제와 같이 시장의 운영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반대한다.
그렇다면 내륙의 농촌지역과 중소도시의 발전에 대한 그의 제안은 무엇일까? 그는 전통적인 인구와 경제규모의 지역 균형에 반대한다. 대신에 일인당 실질GDP, 즉 일인당 구매력 기준으로 지역간 격차를 줄일 것을 주장한다. 즉, 개인들이 느끼는 삶의 질이 높아지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할 필요도 사라진다. 각 지역은 자기가 비교우위를 갖는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농촌지역은 농업, 관광업 그리고 자원과 관련한 산업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런 산업들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데는 한계가 있고, 그래서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게 된다. 인구가 줄면 생산자 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개개인의 소득은 자연스럽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사람이 살지 않는 농촌마을(空心村)이 늘어나거나 산업경쟁력이 약한 중소도시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서적으로는 거부감이 들지 몰라도 어쩔 수 없는 혹은 바람직한 변화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과 중소도시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우선은 통신과 교통같은 인프라가 차별없이 고르게 제공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 의료 등 공공복리를 확대하고 질적으로 강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마을에 똑같은 수준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의 중심지역인 현성이나 향진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둥베이 지역은 계획경제 시절 초기인 50~60년대에 중공업 위주의 국유기업 경제가 발전했던 지역이다. 이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중앙정부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지금까지도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어 근심의 대상이다. 이에 대해 루밍 교수는 관점을 바꿔 보라고 이야기한다. 2004~2014년 사이의 경제실적을 보면 일인당 소득은 세배이상 늘었을 뿐아니라 전국 평균을 상회하고 있는데, 과연 이를 퇴보로 볼 수 있냐는 것이다. 드넓은 평원지역으로 기계화된 대농장 경영이 가능한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고 견디기 힘든 혹한을 생각해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벗어나 남쪽으로 이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내 의견을 보태자면 둥베이 지역의 발전은 북한이나 러시아, 몽골 등 인접 국가와의 협력이 관건이 될 것이다. 여기서 오랜 기간 장애물이 되어 온 것은 북한이다. 한때 북녘의 션전이 될 것을 꿈꾸던 항구도시 따리엔(大連)은 왜 그저그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만일 남북한이 활발한 경제협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북한이 개방된다면 자연스럽게 한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이 북한과 둥베이 지역에 투자하고 이곳에 새로운 다자간 북방협력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그러면 둥베이지역은 농업과 관광업이상의 다양한 산업이 새롭게 유치되고 다시 인구가 늘어날 수도 있다.
루밍은 농촌을 보호하는 NGO의 활동과 공공정책의 집행은 차별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어떤 것이 사사로운 향수에 해당해 활동가의 가치관에 의지하면서 보존되어야 하고 어떤 것은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 전통문화이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이 규모의 경제를 갖추면 상당한 결과의 차이를 낳는다. 예를 들어 신장지역에서는 중앙아시아 국가로 많은 신발을 수출하고 있는데 이 신발은 동해안의 저장성에서 만들어져 이곳으로 운송된다. 신장지역에서 직접 제조하여 수출하면 생산원가도 낮추고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리 운송비를 줄여도 신발을 제조하는 큰 생산기지가 이미 조성돼 있는 저장성의 생산원가와 경쟁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또 향촌진흥정책 등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이 목표는 대도시의 발전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무하는 과정에서 더욱 달성하기 쉽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도시 거주민들의 소비능력이 향상됨에 따라서 그 경제적 영향력을 다시 주위의 소도시와 농촌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륙지역의 제조업이나 다른 산업들도 비교우위를 갖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수자원이 풍부한 서남지역에 대량의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혀야 하는 Data Center가 많이 세워지고 있다. 서쪽에서 수력, 풍력, 태양광을 이용해 만든 재생가능 전력이 동쪽으로 공급된다. 또, IT 프로그래머들이 모인 개발센터나 콜센터, 유형화된 서비스를 규모화하여 처리하는 백오피스 업무센터들이 물가와 인건비가 싼 내륙지역으로 이전하고 있다. 소수에 해당하지만 소위 디지털 유목민들이라 불리는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의 전문직종 엘리트들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환경이 좋은 농촌이나 관광지를 포함해서 자기가 살고 싶은 지역에 거주하면서 원격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의 일면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산업들도 고객에 대한 대면서비스, 영업, 기획, 연구개발, 국제교류와 관련한 업무들은 여전히 동남연안의 대도시에 남아 있게 된다. 첨단 제조업의 경우에도 경량이라 항공운송을 이용해도 물류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반도체 등의 산업이 내륙에 위치할 수 있다. 또, 장강의 내륙운하를 이용하는 것도 물류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장강삼각지역의 일부 수출형 제조업은 장강 중류의 우한 지역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후베이성, 안휘성 등이 혜택을 입게 될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필요가 없고 연관산업 부하도 적은 대신 내륙지역의 자체적 소비에 기여할 수 있는 제조업들도 내륙 각 지역에 분산해서 위치할 수 있다. 식음료 산업이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19년부터 호구정책을 대폭 완화하는 정책을 발표해서 실시하고 있다. 이미 인구 삼백만에서 오백만 사이의 도시는 이주민들에게 조건없이 호구를 내어주고 있다. 또 오백만 이상의 도시들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호구를 얻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있고, 자격이 되지 않아도 거류신고를 하면 상당수준의 복리혜택과 참정권(마을투표)이 주어진다. 상하이지역, 광둥지역의 상주인구중 40~50%가 호구를 갖지 않은 이민자들이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과 유사한 사회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 최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베트남은 2023년부터 호구제를 완전폐지할 것을 선언했는데, 중국도 결국 그 길을 따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발전정책과 당초에 중앙 정부가 추진하던 향촌진흥이나 신형성진화 계획은 적당한 선에서 만날 수 밖에 없다. 루밍이 예견한대로 중국내에 인구 수천만에 달하는 메갈로폴리스 십여개가 생기고 각 성의 행정수도와 같은 그밖의 대도시를 모두 셈하면서 인구 포화도를 최대한 충족시킨다고 해도 결국 4억을 넘기는 쉽지 않다. 나머지 10억 인구도 활발히 경제활동을 펼쳐야 할 장소가 필요하다.
루밍도 예로 들고 있고, 향촌건설 진영의 연구자들이나 향촌진흥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에서도 고무적으로 바라보는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 중국의 소도시는 상주인구 5만을 기준으로 삼지만, 농촌지역 곳곳에 ‘타오바오(알리바바)마을’이라 불리는 도시형 경공업 클러스터가 등장해 인터넷 판매로 내수와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이것은 완전히 자생적인 현상이다. 알리바바에서 빅데이터를 분석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해서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농민들이 귀향해 소규모 공장을 만들어서 이케아 가구 모방품을 제조해 알리바바를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웃들도 돈벌이가 되는 것을 보고, 같은 형태의 공장을 차리면서 지역별로 특정 상품의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농촌지역의 제조업 부흥은 개혁개방 초기인 80년대의 향진기업 사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농민들이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농작업과 공장에서의 작업을 겸직했다. 90년대에는 내수보다 수출이 중시되면서 제조업의 중심이 동남연안지역으로 옮겨감에 따라 향진기업은 역사의 무대밖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인터넷 쇼핑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다시 지역에 소규모 제조업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농촌의 수공업 겸업은 역사적인 뿌리가 깊다. 소작농과 소농은 농작물을 수확하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잇지 못했기 때문에 공예품을 만들어 수입을 벌충했다. 중국 인류학과 사회학의 비조인 페이샤오퉁은 이와 같은 농촌의 경제생활을 <강촌경제>라는 역저에 묘사한 바 있다. 그래서 향촌진흥 정책도 농촌에서 1차 산업뿐 아니라 농산물과 농촌의 생태적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산업이 발전한 것을 기대하고 있다. 농촌생태문화관광지(特色小鎮)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 팬데믹이 닥치기 직전에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지난 삼년간은 이동이 제한됨에 따라서 침체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내년부터 중국도 ‘위드코로나’로 태세를 전환하면 다시 활기를 찾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융복합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관건중 하나는 농촌의 디지털화라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알리바바나 텅쉰같은 플랫폼 대기업들도 정부의 격려속에 이 분야의 연구와 실험을 가속하고 있다.
중국의 국토발전 모델은 한국에 어떤 시사점을 갖고, 중국은 또 한국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루밍의 주장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가지 답해야 중요한 문제도 있다. 단 하나의 키워드를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리스크이다. 흔히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 이론을 이야기할 때,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한다. 중국의 지역균형 발전모델도 오랜 역사에 기반한 리스크 관리의 일환이다. 마오쩌둥 시절에 추진했던 삼선개발도 미국 혹은 소련과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군수산업을 내륙으로 옮겨 적국의 공격에서 보호하려던 의도가 있었다. 과연 현재 국제 정세는 평화와 안정속에서 오로지 번영을 추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최근 5년간의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인 것 같다. 대만을 둘러싼 갈등에서 볼 수 있듯 중국은 미국의 경제적 견제를 넘어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을 받고 있다. 한국 언론은 시진핑 정부의 강경한 자세에 기반해서 중국의 대만침공론에 방점을 두어 보도를 하지만 양안관계의 현상을 깨는 발언과 행동은 주로 미국측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역에서의 중국의 변화는 비교적 유기적인 성장에 따른 것이었던 반면 (물론 자신의 몸집이 커지는 것만큼 따가와지는 외부의 시선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하고 성숙한 태도를 갖추지 못하는 중국내부의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해도) 오바마 시절의 Pivot to asia에서 바이든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이르기까지 의도적인 전략적 변화를 추구한 것은 미국과 일본이었다는 사실을 중국밖의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한다. 이때문에 중국내부에서는 미국이 중국을 침공할 것을 두려워하는 기층의 여론이 있다는 것도 한국인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중국이 대만을 쉽사리 침공할 수 없다고 자신하는 반중성향의 한국 전문가들은 역설적으로 진실을 말한다. 소국에 불과한 대만이지만 만일 중국의 동남연안에 집중적인 타격을 가한다면 거대한 중국대륙에 궤멸적인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골리앗이 쉽사리 다윗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의 피해양상도 주목해야 한다. 식량생산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사태와 같은 외부의 재난이 에너지와 식량수급에도 직접 영향을 끼친다. 특히 루밍이 주장하는 기계화된 현대식 농업은 아직도 대규모의 화석에너지 사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원톄쥔은 외부의 자원과 자본이 봉쇄된 시절의 중국을 경험했던 현장 중심의 연구자이다. 그는 또 북한의 현장실사나 쿠바의 경험을 통해서 미국의 봉쇄정책이 농업을 비롯한 여러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살펴봤다. 내일이라도 에너지와 식량을 비롯한 다양한 자원 공급이 외부로부터 끊어질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기후온난화로 빙산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주로 동남연안의 상당지역이 침수될 것이라는 예측도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매년 태풍이나 폭우가 빈발해지고 있는데, 이때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입는 곳도 이들 지역이다. 동남연안지역 대도시의 확장은 이런 변화를 모두 고려한 상태에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원톄쥔은 또 경제사 연구와 지정학적 사고를 통해 글로벌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된 중국의 굴기가 미국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를 피하는 방법은 두가지 밖에 없는데 중국의 금융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서 달러 패권을 받아들이든가 (양털이 깎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아니면 내수와 자급경제를 확대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와 적당히 거리를 두는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여전히 내륙과 농촌을 포함한 지역균형 발전 정책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팬데믹 재난은 또 다른 의미로 지역적 자급을 통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좋은 경험이는데, 중국의 농촌은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고 코비드 중증화 가능성이 높은 노령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지만 인력 유동을 효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초기의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었다. 루밍의 자유무역과 개방에 기반한 동남연안 중심의 대도시 발전 전략은 지금 언급한 어떠한 재난의 발생에도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중국 전체가 “한방에 훅 갈 수도 있는”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루밍과 원톄쥔식 사고가 적절히 타협을 이루는 형태로 표현됐던 것이 바로 2020년에 발표됐던 쌍순환 전략이다. 외순환을 통한 경제 발전과 내순환을 통한 리스크 관리를 함께 추진함으로써 두마리 토끼를 함께 잡겠다는 것이다. 만일 이 계획대로 중국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중국은 2~30년내에 공산당의 목표처럼 미국을 앞지르거나 최소한 대등한 능력을 갖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다.
같은 관점으로 보자면 한국은 여러가지 리스크에 가장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이 점을 사람들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자주 현실을 망각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 만일 북한과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휴전선에 인접한 수도권에 집중적인 공격이 가해질 것이고, 단시간에 수백만명이 사망하는 참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된다. 지금과 같이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이곳이 초토화한다면 한국은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의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한국의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국민의 힘” 지지세력이 수도권 중심의 개발전략을 선호하고 민주개혁진영과 좌파진보가 균형발전을 선호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보수는 안정을 선호하기 때문에 리스크에 민감한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만일 수도권중심 개발이 경제적으로 최적의 답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북한과의 극단적 대치를 회피해서 리스크를 줄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현상유지는 고사하고 늘 선제타격론과 같은 위험천만한 주장을 하거나 “서해공무원 피격 사건”과 철지난 냉전적 사고를 이용해 정국을 어지럽히고 국가안보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보면, 이들은 이념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전략적인 사고 능력도 갖추지 못한 무능하고 탐욕스럽기만 한 집단임에 틀림없다. 식량과 에너지 안보문제를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이 지정학적인 조건 때문에 개방형 경제를 지향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라도 식량과 에너지의 자립도를 높이거나 유지하기 위한 일정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대체적으로 한국의 보수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커다란 문제이다. 진영간 갈등이 어느때보다도 더 치열해졌지만 더 이상 좌우나 진보보수와 같은 가치지향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진 한국의 실정과 비교하자면, 중국의 좌우와 보수-자유주의 매핑은 비교적 용이해 보이기도 한다.
루밍의 동남연안중심 발전론은 마치 한국이 오로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전한 것과 같은 시나리오이다. 루밍은 문화적 친연성을 이유로 일본 토쿄권의 발전을 참고하는데, 일본은 토쿄권으로의 인구집중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교하자면 3~4개의 권역으로 자원과 인구의 분산이 잘 돼 있는 편이다. 봉건제도와 지역분권화가 오래 유지된 역사가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만일 문화적인 친연성을 중요한 요소로 본다면, 중국은 규제가 완전히 사라질 때, 한국의 수도권 집중처럼 동남연안 일극으로의 쏠림 현상이 과도하게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 한중은 유교이념하에서 중앙집권적 관료제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시장지상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고 사유권을 신성시하는 태도가 그 어떤 나라보다 강하지만 루밍이 이야기하는 “관리와 기술”로 도시병들을 해결하지 못한 끝에 세계 최저수준의 출생율을 자랑하게 됐다. 최근 몇년간 중국에서 네이좐, 탕핑 등과 같이 고도로 일체화된 경쟁이 초래한 사회적 부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을 보면, 중국사회가 일본보다는 한국 사회를 닮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루밍과 원톄쥔의 국토발전 모델은 적절하게 타협점*을 찾는 것이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은 도농문제와 함께 수도권대 비수도권의 균형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이제 선진국에 진입한 이상 성장과 발전이 아니라 리스크관리가 더 문제이다.
*공교롭게도 <촌스럽지 않은 촌살이>와 루밍의 두 책은 모두 상하이인민출판사의 서브출판사인문경(文景)Horizon에서 출간됐다.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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