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겨울로 깊어가며 냉기가 몸으로 스며듭니다. 하루종일 물가에서 젖은 몸을 말립니다. 성냥에서 시작된 작은 불이 있습니다. 불은 먹고 먹습니다. 개망초 지푸라기를 먹고, 물억새 마른 줄기를 먹고, 다시 어린 버드나무 가지를 먹으며, 천천히 커집니다. 마른 대나무를 먹고, 소나무까지 먹고. 이제 불은 충분히 자랐습니다. 따뜻한 온기에 내 몸이 바싹 말라갑니다.
이제는 불과 친해진 느낌이 듭니다. 수도권 아파트에서 자란 제게 불이란 좀처럼 느낄 수 없던 감각입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가스관을 타고, 저멀리 러시아에서 온 천연가스는 무엇일까요. 송전탑의 눈물을 타고 온 전기로 데펴진 온기는 무엇일까요. 나무를 먹고 자라나는 불씨를 보며, 에너지 대란, 인류세, 기후 위기 같은 말들을 곱씹어 봅니다.
전쟁과 함께 교란된 공급체계가 우리집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모호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도시로 향하는 송전탑이 여러 마을을 짓밟고 세워집니다. 하지만 그 슬픔은 느껴지기 어렵습니다. 직접 연료를 모아 불을 피우니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에너지를 땔감에 치환하자면, 우린 얼마나 많은 지구의 사물들을 불태우며 살아가는 걸까요.
가스 불을 바라봅니다. 불이 주는 생명력을 느끼기 힘듭니다. 벨브를 열고 스위치를 돌리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는 에너지입니다. 편리하지만 그만큼 분리에 가깝고, 다시 분리는 고독감과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인이 느끼는 고독과 분리감은 수많은 단절에서 시작됩니다. 마치 무감각한 몸이 병드는 것과 같습니다. 느끼지 못하면 움직이지 못합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병이 듭니다. 분리된 에너지를 쓰는 감각은 전체 구조를 병들게 합니다.
불을 다시 바라봅니다. 하나의 불씨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결이 필요한 것입니다. 땔감을 모읍니다. 젖지 않고 썩지 않은 적당한 나무들을 찾습니다. 가지를 잘게 부러뜨립니다. 종류별로 차곡차곡 모읍니다. 마른 이파리를 구해 부싯깃을 만듭니다. 조심스레 두 손으로 바람을 막습니다. 다시 조심스레 산소를 불어넣어줍니다. 정교하고 침착한 마음이 있어야 불이 살아납니다.
부시크래프트 캠핑은 최신의 장비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장비로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입니다. 자연과 새롭게 대화하는 것입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자신감과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와구치 타쿠, 부시크래프트 캠핑 교과서
일본의 1세대 부시크래프트 캠퍼 가와구치 타쿠는 자신감, 기쁨, 놀이성을 강조합니다. 영국의 자연학교 교사 폴 커틀리 역시 비슷한 주장을 합니다. 캠핑은 기술과 경험을 통해 자연과 재연결되는 시간입니다.
새롭게 불을 피우는 방식은 낯설고 불편합니다. 젖은 장작에 제 아무리 토치 불을 뿌려도 매서운 연기만 날뿐이고 좀처럼 불을 붙지 않습니다. 순서를 지켜서, 꼼꼼하게, 느긋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천천히 마른 땔감에서 붙은 불은 좀처럼 꺼질 줄 모른채 은근한 온기를 나눠줍니다.
도시와 야생을 오가며 불에는 많은 추억이 쌓입니다. 모닥불을 보며 생기는 안정감 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갑니다. 추운 겨울날이면 캠프의 한 가운데에는 어김없이 불이 피어오릅니다. 온기를 찾아온 사람들이 다시 온기를 서로 나눕니다. 제가 기획하는 캠프에서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온기입니다.
캠핑은 불편하고 낯선 생활입니다. 낮에는 노를 젓고 밤에는 불을 피우는 시간들이 괜한 고생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함께 배우며 불 속의 온기로 서로가 더 연결됩니다. 마음도 몸도 지구도 깊게 이어집니다. 또 타오르는 불처럼 강렬한 의지도 생겨납니다. 이 캠프가 더 지속되고 많아지면 인류세, 기후위기 같은 거대한 단어 앞에서도 자신감이 생깁니다.
물의 길은 도시와 야생이 뒤섞이는 공간입니다. 자동차 불빛이 가끔 달려나갑니다. 달빛에 비치는 물빛과 빨갛게 타오르는 불빛이 다시 소리냅니다. 강렬한 대비 속에서 느낌이 강해집니다. 이 길을 섬진강, 남해 바다를 지나, 대마도까지 이어봅니다. 이렇게 저녁에는 불을 피워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합니다.
모닥불에서 신비로운 온기를 느낍니다. 불이 나눠주는 온기는 몸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나는 여기 어떤 돈이나 대가를 지불한 적도 없습니다. 감사히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더 따뜻하게 작동하는 힘이 있습니다. 다음 글에는 대가없이 주고 받는 관계들을 고찰하고 싶습니다.
대만, 일본, 중국, 제주 강정 등, 동아시아의 섬에서 다양한 형태로 살아왔다. 동아시아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모시는사람들)을 출판했다. 전남 곡성에 산다. 몸, 마음, 지구를 아우르는 항해학교를 만들고 있다. 물의 길을 다시 꿈꾸는 프로젝트이다. 배를 타고 섬들을 잇는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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