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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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이어짐)

한편 오구라 기조는 한국인들의 도덕지향을 일본인들과 비교하면서 다양한 예를 들어 알기쉽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밋밋한 감성적 취향의 서사와 달리, 한국의 드라마속 주인공들은 하다못해 연애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도덕적인 투쟁을 하는 진짜 ‘드라마’를 만들기 때문에, 일본인들조차 매료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일본에서 도덕지향이 강한 사람들은 엘리트들뿐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설명하면 보통 일본 사람들이 한국 등 이웃나라와의 정치적 갈등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반면, 특히 일본의 우익 정치가들이 한국, 중국, 북한과 왜 끊임없이 불화하는 지 순식간에 이해가 간다. 샹바오도 보통 중국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과 일본인들의 무관심을 대비해서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보면, 한국, 중국/중화권, 일본의 순으로 ‘도덕지향성’의 강도를 순위 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유교문화권인 동아시아의 이웃들과 달리 자국의 AV문화에 대해서 심하게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도덕적 우월성을 독점하는 것은 당국가이다. 그런데 지식인 사회에서는 암묵적인 예외도 있다. 이를테면 5.4운동의 중심지가 됐던 베이징대학의 핵심정신이 그러하다. 그것은 학문의 자유를 추구하고 체제에 반항하면서 역사의 진보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나는 마침 5.4운동 100주년인 2019년에 서울에서 중국의 유명지식인인 베이징대학 다이진화(戴錦華)교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가 모두에게 바로 이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것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베이징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 한국인 지인도 늘 이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샹뱌오는 자신의 모교인 베이징대학의 이와 같은 영웅주의가 모순적이라고 비판한다. 반항은 기존질서에 대한 회의를 동반해야 하는데 스스로 반항과 진보의 부호가 돼버린다면, 과연 진정한 회의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진보 이념의 깃발을 휘두르는 모교 베이징대학이 아니라 조작성과 물실성에 기반한 실질을 숭상하는 고향, 원저우에서 찾는다. 

그는 또 ‘공감의 학문’을 주장하면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갖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해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친구들끼리는 서로 잘 이해하는데 부모는 자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예로 든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이해의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해를 거부하는 것이고, 이는 입장에 따라 다른 이해관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지 이야기나 몇마디 나누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방의 삶의 환경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실증적으로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흔히 진영간의 투쟁이 과도하게 격렬해지는 큰 이유중 하나가 이런 논쟁이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진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 상대방의 실재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우리는 몇가지 자신의 관찰 포인트를 들어 확증편향에 빠진 채 상대방에 대해 판단하는 오류를 쉽사리 저지르기 때문이다.  

샹뱌오는 도덕성의 문제를 논할 때, 우리에게는 그 문제와 자신의 관계를 분명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주체성을 기르는 훈련과도 관련이 있다. 주체성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식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은 “천상천하 유아독존”과는 정반대의 자기인식이다. 나와 세상의 존재를 우선 분명히 하고, 나와 세상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를 명확히 한 다음에, 이것을 끊임없이 반성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공의 이슈가 발생했을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그게 나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권유한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한나 아렌트가 미국에서의 반전운동과 독일에서의 반전운동이 전혀 다른 현실적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한 점을 설명한다. 미국의 청년들은 피징집대상으로서의 가능성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분명한 동기가 있었지만, 독일 청년들은 이념적인 이유 때문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고가 생략된 독일의 반전시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샹뱌오도 과거 제3자로서 옥스포드 대학 교수들의 파업을 지지해야 할지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도덕적으로만 판단하지말고 이 사건의 이해 당사자들과 자신과의 관계를 우선 명확히 하라고 권유한다. 

이러한 권유는 도덕지향성이 강한 한국인들에게 크게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내가 이 문제를 깊이 절감했던 두가지 사례를 들어보고 싶다. 하나는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그리고 최근에 벌어졌던 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사태가 있다. 미얀마의 상황이든, 우크라이나의 상황이든, 한국의 입장에서는 먼 나라의 이야기이다. 물론, 지금처럼 전세계의 경제적 가치사슬이 연결된 상황에서는 사태의 규모에 따라서 한국의 사정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으킨 공급측 교란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의 방아쇠를 당기는 바람에 한국의 물가와 금리, 환율과 자산 가격 등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의 초기국면에는 분명히 한국사회와 직접 관계를 찾기가 어려웠다. 문제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찍부터 특정한 정치적 관점을 받아들이고 이 문제에 대해서 성급한 판단을 취한 후에 일정한 여론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동맹국인 미국의 입장에 서서 사태를 바라보는 여론을 따라갔다. 미국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와 그 우방에 러시아와의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공급하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북방정책과 연관된 경제문제나, 한반도의 긴장관계 때문에 한국은 섣불리 러시아를 적으로 돌릴 수 없는 입장에 서있었다는 것이다. 침략전쟁의 피해자가 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 판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이런 복잡한 국제 정치나 지정학, 이에 기반한 국익의 계산법은 보통사람들의 삶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들은 제한돼 있고, 우리에게는 신경써야 할 다른 일상의 일들도 많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한 후에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판단을 뒤로 미루고 이 문제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인식을 갖게되고, 또 더 많은 정보를 얻을 때까지 기다려도 늦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는 옳은 판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일방적인 영향을 받은 채 감정적인 판단을 내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여론이 형성되면, 한국의 민주주의 정부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내린 결론에 따른 외교행위가 자승자박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 전쟁이 일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초래한 여러 경제적 문제나 외교적 상황의 변화는 좀 더 깊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전쟁발발 초기만큼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       

미얀마 사태의 경우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모두 성공시킨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자기인식에 의한 것이기도 했고, 실제로 많은 미얀마인들이 자국내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에 이주해 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중에는 매우 과격하고 우려할만한 주장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한국군을 파견해서 미얀마 군부를 굴복시키고 미얀마 민중에게 민주주의를 돌려줘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그보다는 설득력이 있지만 여전히 매우 민감한 주장도 있었는데, 미얀마의 가스전 개발에 투자한 포스코가 군부의 자금줄 역할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분을 철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의로운 자본투자와 정의로운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유럽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사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독일시민들의 주장과도 통한다. 물론 국가와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는 현실적 입장에서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이익을 위해 모종의 행동을 취하고 나서 거기에 도덕적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의 외교와 국방정책의 실행과정에서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사례를 목격하게 된다. 과연 당신의 판단은 무엇인가?

당시 내가 더욱 곤혹감을 느꼈던 것은 한국의 입장에 대한 논란보다는 한국인들이 어떤 가치 판단을 내리고 나서 중국과 중국사람을 비판하는 현상이었다. 한국인들은 미얀마 군부의 뒤에 중국이 서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고,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를 중국이 지원하고 있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의 보통사람들 중에는 미국과 서방국가의 입장을 청개구리식으로 반대한다는 (적의 적은 친구) 태도를 취하면서 러시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일관되게 우리는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판단하기로는 사실 우리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낫다. 하물며 우리의 도덕적 판단기준을 문제의 당사자도 아닌 제3자에게 들이대는 것은 그 자체로도 온당하지 않다. 사람들이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은 그저 원래 가지고 있던 반중감정을 좀 더 강화시킬 이유를 찾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여론의 영향을 받은 탓에 나도 미얀마나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중국 사람들의 태도에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미얀마의 경우가 그러했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미얀마는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 정책의 중요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그곳에 거주한 화교들뿐 아니라 많은 중국인들이 미얀마로 건너가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한국과 달리 미얀마 사태에 대해서 매우 무관심했다. 전통적으로 중국 사람들에게 미얀마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비취원석의 생산지를 연상시킬뿐이다. 또, 미얀마의 국경지대는 한국이 바라보는 중국의 둥베이지역과 비슷한 점이 있다. 화교와 중국인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특히 최근 몇년 사이에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중국내 보이스피싱의 대부분의 근거지가 바로 이곳에 위치한다. 정부가 프로파간다를 사용하거나 올림픽 등과 같이 애국주의를 자극하는 국제관계가 아니라면 중국인들은 자신의 생활이나 이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에 대체로 무심하다. 샹뱌오의 권유는 일정부분 보통 중국인들의 사유방법을 자연스레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중국내에서 샹뱌오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이 점을 거론한다. 그렇잖아도 사적인 관계를 벗어나는 공공차원의 도덕과 정의에 무관심한 중국인들을 더욱 이기적인 존재가 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신장과 홍콩의 문제도, 애국주의의 거품을 걷어내고 보면, 보통의 중국인들에게는 자국의 사정이라기보다는 먼 변경지역의 분쟁정도로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존재들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도덕적인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윤리적인 자세일까? 이것은 형이상학적 질문이고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샹뱌오가 제시하는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둘러싼 부근이 있어야 하고, 부근이라는 것은 자신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들로 이뤄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유기적인 관계는 유한성을 전제로 할 수 밖에 없다.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쓴다는 것은 에너지와 자원을 배정해야 한다는 뜻이고,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자원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년전 뜨거운 관심을 기울였던 한국 사람들중에 지금도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곤경을 잊지 않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부 활동가들이나 캠페인에 일회성으로 자신의 관심을 외주한 것으로 도덕적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반대로 유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는데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 또한 윤리적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나는 미얀마와 국경을 접한 중국의 윈난성 주민들중에 미얀마의 사정을 염려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다만, 중국내에서는 중국 정부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공론장이 봉쇄돼 있기 때문에 이런 사정이 드러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얼마전 홍콩에서 발행된 한 예술잡지를 우연히 살펴보다가 흥미있는 글을 발견했다. 내 짐작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미국 유학중에 만난 미얀마 여성과 윈난성 출신 중국인 남성 연인의 이야기였다. 두 사람 모두 이미 각자의 고향으로 귀국했는데, 미얀마 여성은 연인과 소통하면서 미얀마 군부를 제재하지 않는 중국정부에 대해서 원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만일 두 사람이 결혼하면 두나라의 관계 때문에 이들이 어떤 감정적 굴곡을 겪게 될지 솔직히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여전히 국경을 사이에 두고 만날 수 없는 처지이지만, 서신 등을 교환하면서 나눈 이야기를 콜라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이념만으로는 진정한 연대와 지지의 관계를 만들 수 없고, 반대로 유기적인 관계는 거대한 정치적 장애물에 가로막혀있는 상황에서도 진심어린 도덕적 책임감과 지속적인 행동을 이끌어 낸다. 결국 우리는 남이 내려준 판단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그리고 어디까지가 유기적인 관계인지 고민할 수 있는 윤리적 존재로 남아야 한다.    

윈난성 출신으로 현재 쿤밍에 거주중인 중국인 예술가와 그의 미얀마인 여자친구는 미국의시카고예술학교(SAIC)에서 유학중에 만났다

나는 2022년의 우크라이나 사태, 2021년의 미얀마 군부쿠데타, 그리고 2019년의 홍콩사태와 신장인권문제논쟁을 차례로 접하면서 이 상황들을 지켜보는 한국과 중국의 서로 다른 시각사이에서 상당한 갈등을 느껴야 했다. 양국의 국익이나 민족주의 담론과 관계된 대립보다는 한국인들의 과잉된 도덕주의적 태도와 중국인들의 지나친 무관심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특히 홍콩사태는 내가 사는 광저우에서 불과 수백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다가 내게는 많은 홍콩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좌불안석이 됐다. 당시의 복잡한 심경을 담아서 인터넷 미디어에 익명으로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50239). 나는 또 대부분의 중국인 친구들과 달리 2018년에 신장을 직접 방문해 본 적이 있다. 특별한 사건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다른 지역과 달리 자유로운 생활이 불가능한 신장 사람들을 보고 (당시에는 ‘계엄상태’를 연상했는데 팬데믹을 거치면서는 피크시점의 락다운을 떠올리게 됐다. 이런 상황이 10년 가까이 계속된다고 상상해보라), 또 현지의 일부 한족들의 신장 사람들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들으면서 (서구 주류의 무슬림 비판과 거의 100% 싱크로돼있는 주장), ‘반식민지’상태에 놓인 위구르인들의 처지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최근 코비드제로 정책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우루무치 화재사건이 보통 중국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사건도 주목할만하다. 신장지역에서는 2021년 8월부터 삼개월이 넘는 기간동안 과도한 코비드 봉쇄정책을 취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이어진 반인권적인 지역 통제정책과 코비드 봉쇄정책이 결합하면서 최악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최근 중국의 대도시 지역에서 확진자가 늘면서 코비드제로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이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운나쁘게 억류됐다가 간신히 풀려난 사람들의 경험을 접하면서, 그 심각성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 화재로 수십명의 주민이 사망하거나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갑자기 이 문제는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게 됐다. 확진자가 한명이라도 발생하면 전체 아파트단지 혹은 자기집 문밖으로도 나오지 못하게 된 베이징과 광저우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 학교안 혹은 기숙사에 갇혀지내는 대학생들도 이 문제를 공감하게 됐다. 만일 내가 사는 아파트, 내가 사는 기숙사에 불이 일어나면 과연 나는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을까?  

이후에 미얀마와 우크라이나 사태도 연이어 벌어졌다.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해서 나는 당초 판단을 내리기를 유보했으나, 이에 대한 샹뱌오와 한국 지식인들의 대담을 주선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가 생긴 것이다. 미얀마는 훨씬 더 신경이 쓰였는데, 중국에 오기 직전 내가 몸담았던 하자센터는 미얀마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고, 그곳의 내 동료들은 한국에서 사는 적지 않은 미얀마 출신의 활동가들을 친구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내게 친구의 친구들이었다. 간접적이긴 하지만 역시 유기적 관계를 부인 할 수 없다. 하자센터의 한 옛동료가 쓴 글을 보고 특히 마음이 쓰였다. 그는 같이 라면을 끓여먹었던 과거를 추억하면서 이미 미얀마로 귀국한 친구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TV에서 보도되는 미얀마 상황을 보고 걱정하는 모습을 글로 남겼다. “친구의 마을과 집이 불타고 있어! 그는 안전하게 잘 있을까?” 내게는 매우 직접적으로 와 닿는 표현이었다. 내 마음속에도 같은 울림이 있었다. “친구의 친구의 집이 불타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 있었지만, 여하튼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당시 한중 관계에 관한 글들을 몇편 썼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중국인들을 변호하는 것이었다. 문화적, 사회적인 차이가 있음을 설명하고, 편견에 의한 반중과 혐중감정은 온당하지 않다고 말해줬다. 당시 받은 고료들을 미얀마의 저널리스트들과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 프로젝트에 기부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존경하는 한국의 일부 지인들이 여전히 미얀마에 지속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이미 이념적인 도덕률이 아니라 인연, 즉 유기적인 관계때문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친구의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김유익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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