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통령 선거결과에 반중감정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을 하는 분들이 있다. 특히 대선직전에 열렸던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2021년부터 논란의 대상이 됐으나, 실제 한중관계에서는 눈에 띄지 않던 혐중감정의 지뢰를 밟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매캐한 화약연기가 일정정도 중도층의 2번 선택을 자극했으리라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사실 반중감정은 MZ세대들만 떼어놓고 보자면, 성별구분이나 정치이념과는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시사인의 최근 여론 조사결과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이들이 중국을 싫어하는 동시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사드추가배치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을 보면, 감정적인 호불호와 무관하게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정세에 대해서 상당히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올림픽 진행 초기에 자신들을 “무관의 현실주의자”라 부르는 한 90년생 논객의 짤막한 분석글을 읽고 느낀 바가 있다. 나는 올림픽이 시작되면서 문자 그대로 “작열하는”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서 개탄을 금치못했는데, 개막식 한복 논란속에 조선족 동포들을 대하는 90세대의 관점을 보고 이것은 우리 세대가 가진 전통적인 낭만적 민족주의(혈연과 문화전승에 기반한)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세대의 사람(중년 이상)들은 조선족 동포들에 대한 ‘계급적 우월성(경제, 문화, 정치의식)’에 기반해 과거의 지역주의와 유사한 차별적 시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동포라는 역사적 사실은 잊어버린 적이 없다. 그런데 90세대에게 조선족 동포는 외국인 이민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탈북자 새터민에 대한 관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족 동포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거두게 하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동포애(“우리가 남이가”)에 호소하기 보다는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를 대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조가 더 유효할지도 모른다는 또다른 90년생 논객 길한석님의 의견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 한쪽이 아리지만, 그렇다고 근본도 없다는 식의 비난을 퍼부어 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느껴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청년세대의 민족주의는 전세계를 휩쓰는 ‘정치적 부족주의’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부족주의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여전히 전통적인 민족주의이다. 필리핀 출신 화교이자 미국의 국제정치 전문가 에이미 추아는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자신이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관찰한 다양한 형태의 부족주의를 통해서, 민족주의와는 무관한 미국 사회의 부족주의를 설명하고 있다. 내 생각에 이는 한국의 상황에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미국은 연안지역의 엘리트와 중부지역의 백인 하층노동자, 농민으로 경제적, 사회적 자본 측면의 계급적인 분화가 이루어졌다. 물론 흑인과 소수민족을 포함한 비백인 사회적 약자들도 존재하지만, 일단 가장 큰 전선을 두고 대립하는 것은 전자의 두 ‘부족’이다. 동부 엘리트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월가의 금융가에서 일하는 이들이고, 서부 엘리트를 대표하는 이들은 실리콘 밸리의 테크기업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직장을 얻고, 고액 연봉과 글로벌화된 워킹/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데, 결혼도 인종에 상관없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하고, 자녀들에게도 자신들이 가진 자본을 물려주고 싶어한다.
반면, 중부지역의 러스트 벨트나 농업지대 출신 백인들은 교육수준이 낮고, 경제적으로도 갈수록 빈곤해지고 있다. 이들은 연안지역 엘리트들이 자신들을 무시하고, 모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08년 월가금융위기당시 리먼브러더스가 망했지만, 사실 금융가 사람들은 다시 직장을 얻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한때 국제금융권 변두리에서 일했던 나는 토쿄에서 이런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하지만, 빚을 갚지 못해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중하층 노동자들은 은행을 찾아가 사정해봤지만 “계약서를 들이대며 냉정한 거절의 답을 돌려주는 엘리트들”에게 굴욕감을 느꼈으며, 바로 홈리스로 전락했다. 심지어 “Occupy Wallstreet”운동에 참가했던 이들 대부분도 대학졸업자들이었고, 노동자들은 이들의 시위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들이 바로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일등공신들이다. 예일대 로스쿨에 재직하는 에이미 추아의 지도학생이었던 J.D.밴스가 쓴 논문이 기반이 된 책 <힐빌리의 노래>가 이들의 상황과 정서를 잘 묘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예전에 아메리칸 드림,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계층이 미국사회에 불만을 품고,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연안엘리트들이 미국의 부를 독점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폐지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지지하는 트럼프와 같은 고전적인 대자본(부동산재벌)이 훨씬 더 약탈적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를 하는 것이나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별로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트럼프는 미국 노동자의 생활양식이나 언어습관을 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편으로 느껴지지만, 세련되고 글로벌한 문화적 자본을 지닌 연안엘리트들은 ‘뼛속까지’ 다른 부족이기 때문이다.
토마 피케티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고전적인 상인우파와 구별되는 브라만좌파의 출현을 지적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민주당 지지자인 연안엘리트들이 브라만 좌파에 해당하지만, 이는 글로벌한 현상이다. 강남좌파로 대표되는 한국의 중산층 민주당 지지자들, 586엘리트들이나 소위 ‘깨시민’으로 불리는 그룹이 이에 해당한다. ‘국민의 힘’ 지지자들중 경제적으로 중하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위에 설명한 미국 공화당 지지자중 백인 하층노동자와 근접해있으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외신이 K-트럼프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한 연상만은 아니다.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는 팬데믹 상황 초기부터 ‘혐중감정’을 부채질했다. 윤석열 당선인도 이에 편승해서 외국인노동자 의료보험 문제를 거론하며 특히, 중국출신 노동자들의 사례를 부각해서,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 혐오를 부추겼다. 이들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강한 부족적 결집력을 보여준 2030남성들은 이밖에도 페미니즘 혐오, 장애인 혐오 등 다양한 갈라치기 전술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혐오와 달리 혐중은 ‘다른부족’들에게도 공유되는 감정이다.
새로운 민주당 지지층인, 2030세대 여성뿐 아니라,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2030세대 중도우파 남성들도 그러하다. 전자의 경우 가부장적인 중국체제에 대한 생래적인 거부감이 있고, 후자의 경우 유사역사학 등의 영향으로 중화애국주의로 무장한 ‘소분홍’과 민족주의적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소위 문화공정, 한복공정, 김치공정 등은 중국이 아니라 이들이 만들어낸 조어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데올로기화하는 K, 특히 K-민주주의, 즉 자유민주주의는 중국에서 허용이 되지 않는다. 중국은 언론과 학문의 자유, 인권의식 등이 부족한 국가이다.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도 가까운 시일내에 변화할 가능성은 없다. 그래서 중국은 어쩔 수 없는 비호감국가이다.
부족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사안에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이합집산을 하며 적과 아군이 뒤바뀔 수 있는데, 그렇게 보면, 2번을 지지했던 2030과 1번을 지지했던 2030은 ‘반중’으로 대동단결이 가능하다. 심지어는 심상정 후보 등을 지지한 좌파진보 세력도, 권위주의를 넘어 전체주의적 리더쉽을 추구한다고 평가받는 시진핑과 그의 지지세력에 대한 불만으로 반중감정을 품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그렇게 반중/혐중감정을 중심에 놓고 보자면, 이들은 ‘대한민국 부족연합’을 이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부족연합‘을 이룬 청년들의 중국에 대한 근본적 반감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만일 이들이 자신의 설명대로 이념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현실주의자”라고 한다면, 나는 이들의 반중감정은 한국의 미래 밥그릇 (즉 청년세대의)을 강탈해갈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대한 공포감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문제가 된 한복, 김치, 그리고 숏트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따져보자. 공교롭게도 숏트랙이야말로 한국과 중국 두나라 모두 동계올림픽의 거의 유일한 메달밭이다. 동시에 젊잖은 개인 기록경기가 아니라 가장 치열한 몸짓으로 부딪혀 가며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제로섬 게임이다. 그냥 빨리 달리는 이가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 상대를 견제하기도 하고, 그것도 자기 부족과 협업해서 이런 ‘비신사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우리 부족중 한명을 승자로 만들기 위해, 개인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기다 중국팀에 이런 ‘세기(細技)’를 가르쳐 메달유망주로 키워낸 사람들은 과거 한국을 대표하던 숏트랙선수 출신 코치였다. 어떤 의미로든 한국과 중국의 경제 이익이 충돌하면서 살벌한 부족간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미래상황에 대한 의도치 않은 ‘알레고리’가 될 수 밖에 없다.
한복과 김치에 대해선 한국에서 중국인들의 의도를 매우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지금은 이 논쟁은 접어두자. 한복과 김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요소들이 한국이 자랑하는 K-컬쳐의 ‘환유’라고 볼 수있다. K-컬쳐는 한국에게 있어서 현재와 미래의 먹거리 산업이다. 중국인들은 한국의 K-컬쳐가 세계 문화시장에서 달성한 성과를 실제로 꽤 부러워하고, 국제적 흐름에 민감한 대중문화계 종사자나 코어소비층의 경우 어느 정도 질투의 감정도 갖고 있다. 그리고, 시진핑의 중국몽중 하나는 중국문화의 해외수출이다. 부지불식간에 양국간 경쟁심리가 싹튼 것이다. 숏트랙과 마찬가지로 중국대중문화의 호기로운 발전에서 한국문화의 영향을 지울 수 없다. 두나라 모두 일본이라는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중국대중문화의 급속한 발전을 추동하는 인터넷문화, 팬덤문화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내 남자의 향기” 혹은 “K의 광끼”가 느껴진다. 지금 세계시장에서 한국을 압도해버린 중국의 대표게임 ‘원신(原神)’의 성공비결중 하나인 ‘확률형 아이템’사업의 원조는 한때 중국게임시장의 70%를 점유했다던 한국게임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현재의 상대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성장가능성에 대해 큰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복, 김치, 숏트랙”은 그 자체만 냉정히 따져 보자면 세간의 상상과는 달리 전혀 흥분해야할 이유가 없는 해프닝에 불과한 사안들이다. 중국 어선들의 한국 영해침입과 어족남획같이 중국국가나 중국인들이 한국인의 이익이나 한국 국가의 주권을 부당한 방법으로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안이 발생한다면 이에 따라 한국인들이 갖게 되는 반중정서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 미세먼지 문제도 다는 아닐지 몰라도, 중국에서 날아오는 분량이 적지 않으니 한국 정부는 당당하게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한 세 사안은 맥락을 놓고 보면 그런 범주에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다툼보다는 실은 경제적 이익 충돌에 대한 공포감이 근본적 원인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래서 한국 청년세대가 중국에 대해 품게 된 공포감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거친 감정분출’이 아니라 ‘지혜로운 방법’으로 해소돼야 한다.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정치, 경제, 그리고 각계의 전문가와 리더들이다. 미디어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권과 함께 반중감정 선동에 앞장서는 일부 언론종사자들은 스스로를 정말 이 사회의 엘리트라고 생각한다면 심각하게 고민해보시길 권한다.
중국은 많은 분들이 소망하거나 상상하는 것과 같은 ‘골리앗’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다윗으로 상상하면서 신의 돌멩이 하나를 던져서 물리칠 수 있는 존재가 전혀 아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인류의 고문명중 아직도 문화적 전승을 유지한 채 강력한 국가와 민족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중국인들의 신앙은 특정 종교가 아니라 ‘생존(活下去)’이라는 농담같지 않은 농담이 있다. 인류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과연 중화민족보다 더 오래 존속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쉽지 않다.
또 중국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어떤 식으로 공략을 하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과 동등한 역량을 가지거나 추월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이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 공존해야 하는 이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들과 오랜 기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까?
그 대답중 하나는 중국을 우리와 동등한 경쟁국이라고 여기기 보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간주하고잘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미국이라는 세계의 수퍼파워를 대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처음엔 어렵겠지만 우리는 부득불 이 상황에 익숙해져야 한다. 실은 100년전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 전 특히 조선왕조에서 우리 조상들이 능숙하게 해왔던 일이다. 예전에는 중화가 중심이 되는 ‘천하’세계 하나뿐이었지만 지금은 미국이라는 플랫폼도 여전히 존재하고, 중국도 미국도 아닌 제3지대도 고려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몰빵’은 하지 않아도 된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골라먹는 재미”를 즐기면서 해 볼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중국사람’들과, 레드오션식 경쟁보다는 블루오션식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판을 어떻게 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에 앉아서 이리 저리 머리를 굴리며 고민한다고 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더 많은 이들이 중국으로 건너와서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경험을 쌓아갈 수 밖에 없다. 현지에서 창업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계속 K-문화의 진출을 막는다면, 이곳에 들어와 현지화된 K-문화를 직접 만들어 내면 된다. 중국은 사드를 이유로 한한령을 시작했지만, K-문화가 가진 정치적 잠재력 등의 이유 때문에, 다시 문을 열기가 쉽지 않다. 결국, 중국땅에서 중국상황에 맞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하나의 우회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플랫폼운용에서 중요한 건, 단기적으로 목전의 배당금을 많이 “땡겨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주주가 돼 플랫폼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중국을 더 많이 알아야하고, 중국인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특히,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고, 수용성이 높은 젊은이들이 중국으로 와서 그 일에 참여해야 한다. 물론, 그들이 타국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기초적인 조건들을 지원하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들의 몫이다.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후원으로 다른백년과 함께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