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웨딩 매거진과 ‘지속가능한 결혼식’ 이라는 주제로 내 결혼식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결혼한 지 3년이 흐른 2022년 올해, 이제와 뒤늦게 나의 결혼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회자되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2020년 5월, 청계산 아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과연 현대의 ‘결혼’ 이라는 관습이 여러모로 혼란스럽고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내게 무슨 의미를 갖겠나 싶어 결혼 여부를 두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혼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을 마음에 담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나 결혼식 준비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먼저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높은 천장고에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이 달린 고급 호텔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하고 싶어했다. 왜 그렇게 하고 싶냐고 묻자,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호텔에서 하면 좋잖아.” 라는 시시한 대답을 했다. 나는 내가 가진 결혼식에 대한 생각을 그에게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통 결혼식에 참석할 때 가장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내 친구가 어떤 사람과 결혼하는지, 결혼을 하는 마음은 어떤지 들어볼 새 없이 모든 것들이 빠르게,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부분이였어. ‘인륜지대사’ 라는 결혼, 그 귀한 의식을 20분 만에 기계처럼 찍어내버리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꼭 컨베이어 벨트에 찍어서 나오는 공산품 같잖아. 먼저 확실히 하자면, 나는 그런 결혼식. 그러니까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결혼인지 모를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생각하는 결혼식의 목적은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결혼을 약속하고 맘껏 축하하고 축하받는 기쁜 자리라고 생각해. 그 과정에서 어떤 과시나 낭비 그리고 해함이 없었으면 좋겠어.
여러 생명이 희생된 음식들을 앞에 두고 쫓기듯 순회하며 인사하고 싶지도 않고, 결혼식을 위해 낭비되는 에너지와 소모품은 최소화 했으면 하는 바람이야.
결혼식 뿐만 아니라 집 어딘가에 고이 모셔둘 예물과 예단, 우리의 예산보다 터무니 없이 비싼 신혼집과 혼수마련도 원하지 않아. 말하다보니 내가 참 부정적인 사람같지만, 난 지금까지 이 기형적인 현대의 결혼 관습에 늘 거부감이 있었어. 부디 결혼의 본질과 결혼식의 목적, 그것들에 대해 한번 곰곰히 생각해줘. 그리고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을 해보자.“
고맙게도 구남친은 내 이야기에 전적으로 수긍했고, 마침내 현 남편이 되었다.
우리는 의견 차를 좁혀가며 1년동안 ‘무해한 결혼식’을 준비했다. 장소 섭외부터 결혼식을 이루는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모두 발품을 팔아 알아보고 준비했다. 무엇보다 선례가 없다는 것은 자유로움을 주기도 했지만, 막막함을 줄 때가 더 많았다. 결혼 준비를 하던 어느날 남편은 문득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진짜, 이렇게 결혼식을 해도 될까?”
그런 불안함이 올라올 때마다 서로를 보듬는 방법은 ‘결혼의 본질이 사랑’임을 잊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주러 온 모두가 ‘이 부부는 이런 삶을 살아가겠구나.’ 를 결혼식을 통해 그저 느꼈으면 했고, 그들과 따뜻한 봄날에 맘껏 축하하고 축하받는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떠올리며 동선을 짜고 준비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꼬박 1년에 걸쳐 결혼식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청계산을 병풍삼아 야외 결혼식을 했다. 화창한 봄날씨에 그 어떤 장식도 화려한 조명도 필요 없었다.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었으나 하객을 줄이는 데 실패해, 결국 맞은편 카페까지 섭외하여 오전, 오후 2부로 나누어 장장 7시간에 걸친 느린 결혼식을 진행했다.
나는 신부 대기실을 없애고 나는 활동성 좋은 간소한 대여 드레스를 입었다. 그래서 결혼식에 참석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달려가 두팔벌려 환영할 수 있었다. 남편도 턱시도 대신 결혼식 후에도 지속적으로 입을 수 있는 린넨 수트를 입었다.
절화 대신 뿌리있는 화분을 테이블 위에 장식하여 식 후 하객들에게 답례품으로 나누어 주었다. 소창 손수건을 제작하여 테이블 위에 비치하고 부족한 식탁보는 내가 가지고 있는 패브릭으로 대체하여 물건소비와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했다. 양가어머니 화촉점화 대신에 새로운 가정이 탄생하고 생명이 연결된다는 의미를 담아 나무에 흙을 덮고 물을 주는 세레모니를 진행했고, 그 화분은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무엇보다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식사였는데, 먼저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출장 뷔페 업체를 선정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다. 여러 업체를 만나보며 우리는 음식 솜씨가 가장 훌륭했던 업체를 찾아 아주 세세히 요구했고, 감사히도 우리 결혼식의 취지를 잘 이해해주셔서 전적으로 도와주셨다.
완벽한 채식 식사는 부모님의 반대로 어려웠지만, 채식의 비중을 대폭 늘린 유기농 로컬푸드로 만든 다채로운 음식을 준비했다. 재료의 원산지는 물론 재배방법과 조리법까지, 업체와 함께 고심해서 메뉴 하나 하나를 구성했다. 업체에서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는 우리가 직접 공수해주기도 하고, 비건 베이커리는 결혼식 당일날 직접 준비해서 세팅까지했다. 메인이 되는 음식에는 ‘누가 어디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소로 만든 음식’ 에 대한 메모를 일일이 붙여두었는데, 이유는 음식을 드시는 하객들이 내가 먹는 이 음식이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왔는지를 알게되면 조금 더 음식을 즐길 수 있고 존중감도 갖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마치 마을 잔치 같아서 지나가던 등산객들도 축하를 해주었고, 좋은 날씨에 친구들은 큰 나무 그늘 아래 서서 한 손엔 접시를 한 손엔 젓가락을 들고 서로 대화하며 식사를 하는데 그 마저도 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그런 캐주얼하고 즐거운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양가 부모님들께서 남은 음식까지 다회용기에 싹싹 담아오셔서 진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었다.
7시간동안 약 350명 가량이 다녀간 결혼식이 끝난 후, 쓰레기는 20L 종량제 봉투 딱 2개가 배출되었다.
결혼식에 도움 주셨던 모든 분들이 이런 결혼식은 처음본다며 놀라셨다. 우리 역시 준비부터 철저했지만, 상상했던 일이 실제로 가능했음에 감격했다. 진짜 놀라야 하는 점은 그 과정에서 누구도 번거롭거나 힘든 점 없이 행복하고 즐거웠다는 것이다.
결혼식에서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정말 너희답다!’ ‘영화같다!’ 라는 말이었고, 뿌듯했던 말은 ‘음식이 맛있다’, ‘이런 음식이라면 채식을 시도해 볼 수 있겠어’, ‘우리도 이런 결혼식 한번 고려해볼게.’라는 말들이었다.
처음 우리 결혼식 준비 이야기를 듣고 “결혼식이 무슨 아이들 장난이냐” 며 못마땅해 하셨던 부모님들은 이제 우리 결혼식 이야기가 나올 때면, 정말 즐겁고 멋졌다며 아직도 칭찬해주시곤 한다.
그 후, 우리의 결혼식에 도움을 주었던 공간과 식물 업체들은 지속가능한 웨딩패키지를 만들어 선보였고 현재도 진행하고 있다.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부부들은 종종 내게 정보를 물어오고 있다. (이 또한 2020년보다 2022년에 더 많은 연락을 받았다는 점이 놀랍다.)
무엇보다 우리의 결혼식 비용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결혼식 뿐만 아니라 집을 마련하고, 필요한 가구 가전 등 모든 것들을 ‘꼭 해야한다더라, ‘꼭 사야한다더라’ 하는 것들이 아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과 기분좋게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소비했다. 그러니 만족도는 당연히 높다.
펜데믹으로 인해 많은 예비부부들이 여러 금전적, 정신적 손해를 보며 결혼식을 미루어 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엔데믹 이후로 결혼식 수요가 급격히 몰리면서 웨딩업체의 가격은 점차 높아졌고, 이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까지 더해져 결혼식부터 신혼여행까지 모든 비용이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뉴스를 통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결혼식을 준비하며 좌절하고 후회하고 있는 예비부부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참 안타깝고 속상하다.
아마 이러한 불합리하고 기형적인 웨딩문화, 불안정한 경제와 이슈로 인해 우리의 결혼식이 뒤늦게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예상해본다. 결혼을 생각하는 여느 커플들이 우리의 결혼식을 보며 ‘우리도 우리만의 결혼식을 만들어볼까?’ 라는 마음을 가져보고 시도해보았으면, 또 그런 결혼식을 지원해주는 비즈니스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그리고 분명 이 문제는 결코 결혼식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모든 생활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고있는 문제이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우리의 결혼식을 통해 확신하게 된 ‘지속가능한 삶의 방법’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나답게’ 살아갈 때 행복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미디어와 타인을 통해 이상적인 삶의 기준을 강요당하곤 한다. 결혼식을 처음 준비할 때 남편이 했던 말만 떠올려도 그렇다.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호텔에서 하면 좋잖아.” 불행하게도 타인이 기준이 되는 삶엔 만족이란 없다.
그러니 잠시 비교와 욕망을 내려두고, 그 시선을 온전히 내게로 가져오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분명 필요하다. 가치, 신념, 삶의 방식 등 ‘나다움’을 관찰하고 가꾸며 살아갈 때 삶은 보다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두 번째는 ‘이타적인 관계’ 를 유지할 때 건강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타인과의 관계는 물론, 사회, 환경, 그리고 나 자신.
특히나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은 음식이나 물건 등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관계들을 나만 아는 이기의 마음이 아닌 이타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대할 때, 몸도 마음도 보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특히나 그 이타의 마음은, 만족이란 없는 듯한 현대사회에서,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가치있고 긍정적인 존재로 느끼게끔 하는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부디 앞으로의 세상은 물질적인 것들을 넘어서 진실로 모든 생명을 행복하고 건강케 하는 일들이 번성했으면 한다.
요가를 수련하고 나누는 일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강한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모토로 친환경 라이프를 제안하는 웰니스 커뮤니티 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잔디에 누워 땅의 온기를 수용하며 구름을 관찰하는 일,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촉감을 느끼고 맛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자연의 연결성을 탐구하고, 사이좋게 공존하기 위한 지속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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