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우리나라는 1972년 이후 역대 최저의 강수량을 기록하며 심각한 가뭄난에 시달렸다. 여기저기서 산불이 났고, 작물 생산량이 저하되어 농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살림을 하는 나는 급등하는 농산물 값을 보며 그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가수 싸이(PSY)가 3년만에 그의 시그니처 공연인 ‘흠뻑쇼’를 개최한다고 알렸다. 그의 흠뻑쇼는 ’1회 공연에 물 300톤‘ 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사용된다. 전국에서 10회 가량 진행된다하니 약 3000톤의 물이 쓰인다는 이야기다. 싸이 흠뻑쇼 소식에 여기저기서 티켓팅을 두고 난리가 났고, 예매에 성공한 이들은 여기저기 인증을 하며 부푼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간 코로나로 침체되었던 사회적 분위기와 무더운 여름의 갈증을 해소하기에 흠뻑쇼는 정말로 매력적인 기획이었다.
하지만 예년과는 다르게 싸이의 흠뻑쇼 개최 소식에 사람들은 하나둘 그의 공연을 문제삼기 시작했다. 한 배우는 SNS에 ‘물 300톤, 소양강에 뿌려줬으면’ 이라는 글을 올려 흠뻑쇼를 저격하기도 했고, 뉴스에서도 연일 흠뻑쇼에 관한 분분한 의견들이 올라왔다.
이유는 전국적으로 심각한 가뭄난에 시달리고 농가들이 고통받는 이 시기에 꼭 개인적 유희와 이익을 위해서 막대한 물을 공연에 사용하는 것이 과연 도의적으로 맞는가라는 것이었다.
뒤이어 공연장으로 사용하는 그라운드 훼손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흠뻑쇼는 대부분 축구 경기장에서 진행이 되며, 공연을 위해 그라운드에 크레인이 들어와 무대를 설치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공연을 보며 뛰고, 물과 온갖 음료를 흘린다. 그러면 잔디가 살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공연 후 훼손된 그 경기장을 사용하는 이들이 불편함과 위험을 겪기도한다. 실제로 2019년 흠뻑쇼 이후, 잔디 보수 공사를 위해 13억원을 투자를 했다고 한다. 그 피해가 무척커서 경기장 위탁을 운영하던 하나금융그룹은 흠뻑쇼 제안을 거절하는 일도 있었다.
쓰레기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먹고 버린 일회용컵, 각종 쓰레기 등. 여기저기 나누어주는 사은품과 대기업 광고들. 이 쯤이면 이런 환경 파괴적인 공연 행태가 앞으로 지속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실 흠뻑쇼에 사용되는 물은 농업용수가 아니라 식수라고 한다. 그렇기에 농민들과 전문가들은 공연계의 물 사용을 가뭄과 엮어서 문제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근본적인 가뭄해소를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리고 흠뻑쇼나 워터밤같은 공연이 아니더라도 워터파크나 골프장 등에서도 매우 많은 물소비를 하고 있기에 공연계 물 사용만 비난할 일도 아니라는 의견도.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내 돈으로 물을 사서 공연을 하고, 내 돈내고 그 공연을 즐기겠다는 행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답은 알 수 없다. 다만 세계적으로 K팝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지금, 싸이와 같은 유명인사가 기후나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 사회적인 책임감을 갖고 행동했더라면 흠뻑쇼가 주는 즐거움 그 이상의 유의미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미쳤으리라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 뿐이다.
사실 이번 논란으로 하여금 아쉬운 마음 이면에 약간의 희망을 가져보았다. 제조,유통 분야뿐 아니라 축제,공연 분야에서도 이제 ‘가치소비’가 도입되려나 하는 바람직한 징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해한 방식으로 웰니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나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욕망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연결시키는 일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오늘 하루 신나게 놀자!’ 하는 일회성 공연이나 축제와는 다르게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을 대개 긴 시간을 필요로 하고, 이성적으로 촉각을 곤두 세울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매력적으로 풀어나가는 시도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선례로 영국의 락밴드 ‘콜드 플레이’ 는 지속가능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의 공연 투어에 관한 탄소발자국을 계산하고 그것을 50%로 절감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자에게 의뢰 했다. 그리하여 공연장 바닥에 관객들이 환호하며 뛰면 전력을 생산하는 장치를 설치하는 등 관객들과 함께 실천하는 저탄소 공연모델을 기획하고 있다.
또 한가지 대표적인 축제는 뉴질랜드의 남섬에서 보통 매년 2월에 진행되는,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이다. 이 축제는 음악과 예술, 창의성, 자본주의 탈피, 그리고 자연을 보호하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행사이다. 1회용품이 일절 없어 개인식기를 지참하거나 보증금을 내고 빌려야 하며, 쓰레기통도 없고 술과 콜라 감자튀김 등 몸에 해로운 음식도 없다. 공간을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는 재활용한 밧줄과 고무줄 정도. 자연 그대로의 공간을 최대한 살린다. 대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으며 지역 주민들이 만든 물건만을 판매한다. 수돗가와 샤워부스에서 나오는 온수는 태양열로 데우고, 그릇을 씻은 물은 정화시스템을 통해 흙으로 돌아간다. 물을 사용하지 않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으며, 인분과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로 재활용된다.
이 페스티벌의 소개만 들으면 대부분 환경문제, 지속가능한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이 온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많은 이들이 수준 높은 음악 때문에, 혹은 여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요가와 명상 같은 체험 때문에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예술적이고 즐거운 축제의 형식으로 무해한 삶을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도 그것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뒤이어 내린 장마로 가뭄과 흠뻑쇼 이슈는 금세 사그라 들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되진 않았기에 앞으로 일련의 상황들이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는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에 의해 욕망을 실현하는데 있어 크고 작은 제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논란을 통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조금 더 명료하게 느껴졌다.
바로 ‘개인의 욕망과 가치를 좌절시키지 않고, 그것이 자연스레 사회와 생명을 살리는 행동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앞으로 공연과 여행, 축제 등 경험과 대안적 삶을 위한 진짜 멋진 기획의 상품들 (누구나 따라하고 싶어지는!) 이 생겨나길 바라고, 본질을 잊지 않는 ESG 방식도 많이 도입되어 더욱 활성화 되기를 바라본다.
요가를 수련하고 나누는 일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강한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모토로 친환경 라이프를 제안하는 웰니스 커뮤니티 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잔디에 누워 땅의 온기를 수용하며 구름을 관찰하는 일,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촉감을 느끼고 맛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자연의 연결성을 탐구하고, 사이좋게 공존하기 위한 지속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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