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무더운 여름에 떠났는데 선선한 가을이 되어 돌아왔다. 인도네시아에서 약 4주를 머물렀고, 그 중 3주는 발리에서, 1주는 롬복 길리에서 머물렀다. 이번엔 한 달의 여행 중, ‘지속가능한 돈과 업’에 대해 생각하게 된 세가지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발리의 청담동이라는 Canggu. 그 곳에서 한 여성 사업가를 만났다
짱구라는 지역은 좋은 서핑스팟과 감각있는 상점들, 고급 레스토랑과 스파들이 즐비한 세련된 동네이다. 나는 그곳에서 약 4일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짱구에서의 마지막 날, 홀로 비건 그린커리에 맥주로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어떤 여자가 멀리서부터 나를 향해 달려온다. 숨가쁘게 달려와서 내게 한국사람이냐, 이 곳에 거주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 차림새가 너무 간소하고 수수해서 이 곳에 거주중이라고 생각을 했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가는 길을 돌려 나에게 다가왔다고 했다. (나중엔 그녀의 언니와 내가 너무 닮아서라고 이야기했지만) 너무나 적극적인 태도에 처음엔 뭔가 미심쩍어 길에서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내 그와의 대화가 흥미로웠던지라 짱구 거리 구석구석을 걸으며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10살이 많았고, 자카르타에 거주하며 이 곳에는 사업차 들렀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을 본인 사업에 대한 비전과 이 지역에 대한 여러가지 분석을 해주었다. 저 고급 스파는 유럽 건축가가 주인이라 인테리어는 뛰어나지만 실력은 별로이며, 저 소셜다이닝은 호주 서퍼가 주인인데 늘 바쁘지만 실제로는 임대료가 비싸서 순수익이 크지 않을 것이며, 내 숙소 옆에 공사하고 있는 곳은 유명호텔이 들어올 자리라며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이 곳 기획 부동산의 실태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하며, 이전의 발리에서 느낄수 있는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고 했다.
그리곤 한참 뒤, 내게 무슨일을 하냐고 묻길래 구구절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설명하기가 힘들어 요가강사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발리에 와서 사는게 어떻겠냐며, 일급비밀을 털어놓듯 네일아트와 속눈썹 연장 자격증을 따와서 이곳에 뷰티샵을 개업하라며 박수를 쳤다. 그것이 이곳의 아주 유망한 사업이 될것이라며, K-뷰티를 알려보라며 말이다. 다소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신에 찬 얼굴로 뿌듯하게 말하는 그의 마음을 실망케하고 싶지 않아 대답없이 그저 미소만 지었다.
처음 만났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계속 들고 있던 일회용컵이 번거로웠는지 내 눈치를 한번 보곤 그 컵을 땅에 내려놓으며 “아이고 쓰레기통이 없네, 여기에 버리고 가야겠다” 라고 말을 한다. 나는 화들짝 놀라 버려진 컵을 반사적으로 주워들며 “제가 숙소에 가서 버릴게요” 덧붙여 “제가 환경문제에 민감해서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멋쩍다는 듯, 그 컵을 내게서 가져가며 본인은 스킨스쿠버를 하는데, 바다에 가면 매년 환경파괴가 얼마나 빠르게 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다시 헤어지며, 그녀와 나는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만나서 반가웠다고 꼭 끌어안고 다음이 있다면 꼭 만나자고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그 곳에서 서양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하며 발리의 정취가 사라짐을 아쉬워하고, 쓰레기를 땅에 과감하게 버리며 해양 생태계 파괴를 염려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을 보존하는 일’과 ‘돈이되고 편리한 일’이 양립하기가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생각했다.
2. 무동력 섬, 롬복 길리.
인도네시아 롬복 길리는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길리 트라왕안, 길리메노, 길리아이르.
몇 해전, 윤식당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길리 트라왕안섬 (Gili Trawangan Island) 은 그 세 섬중에 가장 크고 상업화된 섬이다. 그만큼 사람들도 많고, 상점들도 많다.
발리에서 트라왕안까지 패스트 보트를 타고 약 90분 가량 극심한 멀미에 시달리며 겨우 도착했다. 그리고 보트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른바다와 찌도모 (마차)였다.
그렇다, 길리는 무동력섬이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같은 이동수단이 없고, 제트스키나 스피드보트와 같은 해양스포츠도 금지되어져 있다. 이동수단은 마차,자전거,도보가 전부이며, 바다에서 하고 놀것은 스노클링과 패들보트, 서핑이 전부였다.
저녁이 되면 바닷가 근처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요기와 함께 맥주를 마셨다. 구태여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라, 여행지에서는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 곳만 가는 편이다. 그들은 동양 여자 혼자, 이 작은 섬까지 여행오는 내가 신기했는지 마지막 날 내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왔다. 길리 아이르에는 대부분 유럽인들이 많이 찾으며, 한국인이 방문하는 일이 극히 드물어서 내가 특별하다고 했다. 그 날은 매니저인 ‘웍’이라는 친구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의 꿈이 한국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내가 부럽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왜 한국에 가고 싶느냐고 물었더니 삶을 바꾸고 싶어서 라고 말했다. 그는 나와 나이가 비슷했고, 아들이 있었다. 너의 삶이 행복하지 않느냐라고 묻자 삶은 행복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이 곳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일을 한다며, 이곳에서 태어나서 한번도 이 섬 밖을 나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발리에 조차 가본 적 없다고 했다. 내게 한국에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며 나의 삶이 멋지고 부럽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보며 본인이 사는 이 섬 밖의 삶은 다를 것임을, 그것이 본인의 삶을 바꿔주리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길리를 생각하면 천국처럼 느껴지다가도, 이내 너무나 예측가능한 웍의 일상을 같이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는 신들의 섬, 파라다이스라고 말하는 이 섬에서 나고 자란 저들은 왜 나의 나라, 나의 마을에서 충족하지 못하며 다른나라로 돈벌이를 하러 가고 싶은걸까?
짱구에서 만난 한인 사업가와 길리에서 만나 레스토랑 매니저, 둘에게 돈은 어떤 의미일까?
돈은 누구를 위해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나는 어느 편에 서야하는 걸까?
3. 길리 아이르에서 그 물음에 대한 힌트를 얻다
‘혼자 여행엔 아이르가 좋을 것’ 이라는 추천을 받고, 트라왕안에 도착한지 3일 후 예정에 없던 길리 아이르로 떠났다. 보트를 타고 15분 가량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길리 아이르 (Gili Air).
이 곳은 트라왕안보다 더 조용하고 아기자기하고 소박했다. 나는 오전엔 일과 요가를 했고, 낮에는 너무 더워 쉬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난 후, 바다에 어슬렁 어슬렁 나가서 수영을 하고 석양을 봤다. 내가 길리에서 유일하게 열심히 한 일이라곤 매일의 석양을 보는 일 뿐이었다. 그리곤 매일 이렇게 여유롭게 석양을 볼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길 가슴 깊이 소망했다. 석양을 보는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매일 아침 요가를 하러 가던 Yoga Garden. 그 곳만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대문을 열면, 작은 숲이 펼쳐지고 자바식 방갈로와 구불거리는 정원길을 지나면 큰 망고나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트리하우스가 있었다. 삐걱거리는 대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사방으로 트인 요가스튜디오가, 그 아래로는 아담한 홀푸드 비건 레스토랑이 있었다. 그 곳의 사람들은 간단한 식사를 하며 작은 목소리를 대화를 하고 있었고, 한쪽에선 편안하게 책을 읽거나 랩탑을 하고 있었다. 게시판을 둘러보니 여러가지 커뮤니티 활동 및 이벤트가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공간은 의도적으로 요가와 웰빙을 중점으로 두고, 지속가능한 건축방식으로 방갈로를 짓고, 자연의 순환 생태계를 지향하는 퍼머컬처를 적용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든 공간이 이질감없이 자연스러웠다.
음식도 가급적 로컬푸드와 직접 재배한 허브를 이용한 홀푸드 비건 음식을 선보였고, 이것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이 있었다. 나는 웰컴 드링크로 허브와 꿀을 이용한 롬복 전통음료를, 조식으로는 스무디볼을 제공받았는데, 실제로 스탭들은 오픈키친에서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내게 주었고, 그것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신뢰하기에 충분했다.
이 요가가든의 비전은 사람들이 이 곳을 통해 즐거움 (좋은 음식, 움직임 등) 과 안락함 (휴식, 재충전, 성찰) 등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 지역 사회와 환경이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사업으로써 발생하는 쓰레기를 줄이는 것을 매우 중요한 원칙으로 세우고 있었기에, 비닐과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으며, 폐기된 음식물은 퇴비로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굉장히 인상깊었던 부분 중 하나가 매우 활기차고 프렌들리한 스탭들이었는데, 그들의 전문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교육과 고무적인 근무환경 그리고 윤리적 급여 구조가 그 근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외에도 지역 내 작은 기업과 크리에이터들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일, 교육 및 기금마련을 통해 지역주민들을 지원하는 일 등을 해오고 있다. 그들은 하나의 철학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소중하다고 믿는 가치들을 지켜나가는 데 본인들의 센터는 진화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그동안 머릿속에 어렴풋이 그려왔던 공간들을 실제로 마주한 느낌이었고, 나는 곧장 숙소를 이 곳으로 옮겨 하루를 보내보았다(거의 풀북인 이곳에서 하루 묵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행운이었다). 그리고 이 공간에 완벽하게 매료되었으며, 급기야 이 곳 창업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이 곳을 만든 사람은 나와 관심사가 매우 비슷한 호주인으로, 요가를 나누고 섭생과 철학을 공부하는 여성이었다.
이렇게 멋진 일과 그것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는 사람들을 찾을 때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예약이 어려울만큼 이들의 가치를 지향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이 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는 것과 2020년 Jetstar magazine에서 선정한 ‘세계 최고의 휴가지 15곳’ 안에 이 요가가든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한 인터뷰에서는 이 요가가든 창업자를 ‘Spiritual Entrepreneur’ 라고 지칭했는데, 단어의 조합이 생소하지만 이 이상 부합하는 단어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사업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까?
사람들을 진정 풍요롭게 만드는 영역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고, 그것이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업. 짱구에서 만난 사업가, 길리에서 만난 웍, 그곳을 찾는 소비자인 나, 더불어 지역 사회와 환경까지 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사업. 부디 그것이 21세기를 이끄는 유망한 사업이 되기를 소망한다.
사진 출처 : 길리아이르 요가가든
요가를 수련하고 나누는 일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강한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모토로 친환경 라이프를 제안하는 웰니스 커뮤니티 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잔디에 누워 땅의 온기를 수용하며 구름을 관찰하는 일,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촉감을 느끼고 맛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자연의 연결성을 탐구하고, 사이좋게 공존하기 위한 지속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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