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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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통영 갱물이

조릿대 타고

섬진강 오르면

전라도 진안에서

첫눈 뜬 샘물이

은어 등에 업혀

청정한 바다로 헤어나와

이날 이때까지

본심대로 사는 이들을

잘도 품어주었기에

첫손 꼽는 안태본* 아니던가

어느 것 하나라도

목 조이고 짓밟고는

성하게 살 수 없는데

섬진강 물로

찻물 끓이지 못하고

통영 갱물로

바닷물고기 키울 수 없다면

발 붙이고 살 곳

다시 있으랴

최정규, 『어느 것 하나라도』, 통영바다  1

태평양 바다를 꿈꾸며 통영까지 노를 저어갔다. 곡성에서 띄운 배는 섬진강 물을 따라, 꼬박 사흘이 걸려 광양 남해안 바다에 맞닿았다. 조립식 배를 고이 접어 고속버스에 싣고 도착한 통영 바다. 그곳에서 많은 시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시인이 건네준 시집의 첫 장에는 놀랍게도 다시, 섬진강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시를 가슴에 품으며 소리내어 읽는다. 나는 마치 은어 등에 업힌 듯 하다. 바다를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간 나를 품어주었던 섬진강 풍경이 하나 하나 스쳐간다. 안녕! 강에서 만난 갈매기들, 햇볕을 감싸준 버드나무, 우거진 생명력을 보여준 달뿌리풀, 아름답게 노랗게 피어난 노랑어리연꽃, 그 위로 날아가는 가마우지 떼들, 그리고 나를 멕여 살린 섬진강변의 달맞이꽃, 고마리, 너희들은 맛있었다. 그렇게 모든 풍경이 뒤섞여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풍요, 경이, 감사함 등등. 이러한 감각들은 ‘손절’을 이겨내고 우리에게 다시 선물 경제를 회복시켜줄 핵심적인 감각이다. 현대 문명의 거대한 허무함을 극복시켜줄 지혜다. 글을 넘어 몸과 마음을 넘어 다시 다가갈 초경험의 영역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이런 지혜를 찾아올까. 비행기를 타고 파푸아뉴기니로 날아가 남태평양의 쿨라를 맛보고 와야될까(쿨라 시스템에 대해서는 지난 글 ‘태평양의 바다공동체’를 참조)

나는 조급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 구층누각도 민들레 홀씨부터, 라는 노자의 글을 열심히 읽고 나서야 스텝 바이 스텝의 가사가 이해됐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이 몸과 마음으로 살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그저 따분한 말로 여기던 시절에는 그랬다. 감자를 심으면 생태주의가 이해되는 줄 알았다. 손으로 모내기를 하면 짚 한오라기로 혁명을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떨어진 나락을 직접 주우면 나락 속의 우주가 마음에 들어올 줄 알았다. 그러나 거대한 지구와 경작하는 마음과 알 수 없는 날씨를 초조하게 하루하루 겪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조각배를 타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두 발로 배를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해나갈 요령이었다. 태평양 바다를 꿈꾼다면 태평양이 스며든 남해안 바다로 갈 노릇이다. 통영 갱물이 흘러든 섬진강 물을 향할 것이다. 그래서 섬진강에 합류하는 구성 저수지까지 걸어간다. 차근차근 해나갈 요량이다.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도 아니다. 급류가 휘달리는 강물도 아니다. 우선은 가장 고요한 저수지 샘물에서 첫눈을 뜨는 것이다.

차가운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때양볕에 땀이 줄줄 나는 여름날의 일상이다. 함께 사는 친구들도, 놀러온 손님들도 매일같이 농어촌공사의 물에 뛰어든다.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이 말했다. ‘그 옛날 섬진강 물은 바다처럼 높고 하얀 모래 사장은 눈부신 윤슬에 빛나고 있었다.’ ‘그 더운 여름날이면 마을 앞 깊은 소에 풍덩풍덩, 남녀노소 모두 뛰어들었다.’ 비록 하천 정비 사업으로 그 물은 반이되고, 하얗게 빛나던 모래 사장은 공사판으로 팔려나갔지만, 여전히 시원한 물속으로 우리는 뛰어든다.

눈을 감고 부드러운 품 속으로 깊이 잠수한다. 어릴 적 배를 살살 문질러 주던 그 손길처럼 따스하다. 내가 5cm도 되지 않을 적에 커다란 세계처럼 광활한 우주가 있다. 물은 태초의 것이다, 라고 나는 거품을 뽀글뽀글 내며 물 속에서 중얼거리는 것이다. 풍요, 안정, 거대함, 감사와 같은 감각이 다시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물의 길을 처음부터 만나간다. 섬진강, 아니 구성 저수지 물에는 태평양의 감사함이 스며든다.

식물학자 윌 키머러는 딸기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혜를 찾는다. “내가 이런 풍요를 누려도 되는거야?”라고 반문한 것은 어릴 적 여름날이면 늘 마주하던 새빨간 산딸기였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산딸기는 풍요를 가르쳐주었다. 사람이 아니라 숲이 길러낸 산딸기는 겸손함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조상, 원주민들이 지구와 살아갔던 지혜가 여기, 작은 곳에서 시작함을 들려준다.

원주민들의 풍요와 감사의 감각은 분명 물과 맞닿아 있다. 그들이 차디찬 베링해협을 건너가 만난 것은 온 대륙을 따스하게 감싸는 강줄기였다. 강에는 풍요로운 생태계가 있었다. 카누를 만들고 강의 길을 따라 미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 켈프 하이웨이라는 인류학계의 유력한 가설 중의 하나인 것이다. 모든 것을 품어내는 감각을 우주너머 지구너머 땅에서 찾아낸 것이다.

나는 이것이 하나의 길이라 여긴다. 지구를 감각하는 탄탄한 길이다. 쌀 한톨에 우주를 찾는 길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고작’ 산딸기 하나에도, 저수지 하나에도 온 몸으로 온 마음이 감동하는 것이다. 수십년 전까지 섬진강물은 우리의 생활이었다. 수백만년 전부터 자연 속에서 만든 길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물 사회를 꿈꾸며 준비한다. 올 여름날은 다가올 내년 여름을 준비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여러분, 전라남도 곡성은 서울에서 KTX를 타고 두시간이면 도착합니다. 섬진강물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화서원을 검색하시면 저희가 여러분과 함께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환영합니다-라고 초대장을 쓰고 싶은 마음이다.

저수지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물길은 섬진강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엉금엉금 걸음마를 하기 위해 수 백 시간을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수신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전라남도 곡성, 섬진강 변에서 이어지는 수신의 실험을 소개하고 싶다.

* 안태본 : 태중에 있을 때부터의 본관을 말함

고석수

대만, 일본, 중국, 제주 강정 등, 동아시아의 섬에서 다양한 형태로 살아왔다. 동아시아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모시는사람들)을 출판했다. 전남 곡성에 산다. 몸, 마음, 지구를 아우르는 항해학교를 만들고 있다. 물의 길을 다시 꿈꾸는 프로젝트이다. 배를 타고 섬들을 잇는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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