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길이 다시 열립니다. 발빠른 친구들은 벌써 유럽, 인도, 태국, 네팔, 남미 등등 제 집처럼 지내던 곳으로 날아갑니다. 사적 모임이 시작된 만큼 공적 모임도 시동을 겁니다. 각 종 컨퍼런스의 초청 소식들도 들립니다. 지난 2년간 꽉 막혀 답답했던 마음만큼, 활짝 열리게 될 세상에 기대가 커집니다.
그런데 무언가 석연치 않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만나는 세계가 낯섭니다. 거짓말 같은 풍경으로 날아간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마음이 듭니다. 이 마음은 기후 변화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일까요.
물론 비행기를 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산더미입니다. 유럽의 당찬 활동가가 선언했듯이, 내가 날아가는 동안 내뿜는 어마어마한 탄소의 양이 있습니다. 또한 날아가는 길 뒤에 숨겨진 비용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늘길이 막혔던 시기, 우리는 공항을 성찰했습니다. 제주, 울릉도, 가덕도 공항 등등 논의가 시작되며, 하늘 길의 외부 비용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비용과 함께 얻은 것이 많습니다. 세계로 날아가며 우리의 지평은 넓어졌습니다. 남한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벗어났습니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등. 추상적인 세계를 직접 만났습니다. 두 발로 땅 위에 서서 문화, 국가, 사회, 그리고 사람들과 섞였습니다. 제 몸으로 제 마음으로 닿아서 세계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늘 길과 함께 국가 너머의 세계를 사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 길에 대한 의문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건 스스로의 작은 경험에서 시작됐습니다. 지난 2년간 온 힘을 다해 땅의 길과 물의 길을 나아갔습니다. 두 발로 강화도부터 제주도까지 걸어나갔습니다. 두 손으로 강과 바다를 나아갔습니다. 작은 발바닥이 커다란 지면을 힘차게 밀어낼 때 무언가 일어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작은 손이 노를 젓고, 돛을 당기며 물살을 부드럽게 밀어낼 때 무언가 일어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순간 지구와 깊게 연결된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와 세계를 넘어선 지구였습니다.
맨발로 걸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직접 지구에 닿기 시작하면 작고 아늑한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의식으로는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일지 모릅니다. 인류는 10만년 전부터 길을 헤쳐나갔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유럽을 지나, 인도를 지나, 그렇게 유라시아 대륙을 지나 아메리카 대륙까지 뚜벅뚜벅 걸어나갔습니다. 그리고 태국, 인도네시아가 연결된 순다 대륙에서 호주와 뉴질랜드로 드러난 사훌 대륙까지 항해를 시작한 것이 이미 6만 5천년 전입니다.
그렇게 길을 나아가며, 마음과 몸과 그리고 지구는 서로 이어집니다. 깊은 차원의 무언가를 함께 만든 것입니다. 그 곳에서 문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이 실크로드의 초석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혹은 대항해시대를 열어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세계대전의 씨앗을 뿌렸는지 모릅니다. 문명이 본격적으로 거미줄처럼 지구를 잇기 시작하며 그 무언가를 만들었습니다. 하늘 길이 석연치 않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인류가 10만년이나 닦아온 길은 저 위에서 바라만 보기에는 아쉬웠던 것입니다.
기후 위기에 앞서 우리는 바다 문명을 다시 성찰해야 될지 모릅니다. 어쩌면 온도는 계속 오르고, 더불어 해수면도 오르고, 그리고 다시 물의 길을 탐색해야 될지 모르는, 그런 공포스러운 이야기도 있겠지만요. 실은 이미 이것은 우리에게 반복된 역사의 일이기도 합니다. 네 번의 빙하기를 거치며 인류는 이미 지구의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며 바다에 잠긴 고대 문명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인도 구자라트 바다 아래, 페루 잉카 문명의 산 속 아래에서 발견된 문명은 더 넓은 시공간을 상상하게 합니다.
과거를 공부하면서 어쩌면 우리는 이 지구적 변화 앞에서 가져야 할 지구의 몸과 지구의 마음을 찾아갈 방향을 발견하지는 않을까요.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이 발견될지 모릅니다. 폴리네시아 문명에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며 걷기보다는, 고개를 뒤돌려 전통을 보며 뒷걸음을 친다”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첫 이야기는 이 곳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섬들의 바다 위에 피어난 선물 경제의 이야기입니다. 그 곳은 3천년 전, 인류의 마지막 대이동이 펼쳐진 드넓은 태평양입니다.
대만, 일본, 중국, 제주 강정 등, 동아시아의 섬에서 다양한 형태로 살아왔다. 동아시아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모시는사람들)을 출판했다. 전남 곡성에 산다. 몸, 마음, 지구를 아우르는 항해학교를 만들고 있다. 물의 길을 다시 꿈꾸는 프로젝트이다. 배를 타고 섬들을 잇는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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