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포로 치킨 너겟을 만드는 주방으로, 비닐팩에 태아를 기르는 실험실로, 자살하는 법을 공유하는 회의실로, 여성과 전쟁을 벌이려는 남성 모임으로 여러분을 데려갈 것이다. (…) 임신하지 않고 아기를 가질 수 있다면, 동물을 죽이지 않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이상적인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완벽하게 죽을 수 있다면, 인간의 본성은 어떻게 변할까?” 6p
인간 없는 섹스
‘어비스 크리에이션즈’의 창립자인 매트 맥멀런은, ‘리얼돌’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 목표는, 간단히 말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겁니다. 세상에는 여러 이유로 다른 이와 일반적인 관계를 맺는 게 어려운 사람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친밀한 관계를, 혹은 환상의 반려자를 제공하는 게 진짜 목적이에요.”(26p)
데이브캣은 (인공)파트너 ‘시도레 구로네코’와 16년째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성입니다. 16년 동안 실제 여성과의 관계가 없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든 외로움을 ‘그녀’가 해결해주었기 때문이죠. 데이브 캣도 현실의 여성들과 애정 관계를 맺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남은 모두 부담스럽거나 실망스러웠고, 그 이후 본인이 관계를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리얼돌의 세계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유기체 인간이 아닌 리얼돌과의 관계에서만 정신적, 신체적 안정감을 느끼게 된 계기를 들어보면 어딘가 석연치 않습니다. “연인은 누구라도 상대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상대가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해요. 어느 정도는 통제광인 거죠. 아마도 저는 그냥 남보다 좀 더 드러내놓고 그게 제 성격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 뿐일 거에요.”(64p)
남성들이 권력과 지위를 잃어가는 시기에 리얼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말의 불편함을 자아냅니다. 페미니즘이 대중적으로 부상하면서, 여성들은 누구와 섹스할지를 선택하는 것을 당연시하기 시작합니다. 남성들은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욕망과 선택권이 있는 존재라는 것은, 남성이 섹스를 하기가 전보다 어려워졌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성적 좌절감을 느낀 남성들은 위험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인셀(비자발적 독신주의자라고 칭해지는 이성애자 남성들)’중에 하나였던 엘리엇 로저는 여성 여섯 명을 죽이고 열네 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자살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리얼돌에 인공지능과 로봇을 탑재시켜, 인간처럼 움직이고 소통이 가능한 섹스 로봇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성능이 날이 갈수록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섹스가 자연스러워지는 세상을 막을 수 없어 보입니다. 어떤 이들은 섹스 로봇이 성적으로 좌절한 남성들에게 여성 없는 섹스의 가능성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아동성애나 성폭력 등 비정상적인 욕구를 지닌 이들에게 긍정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동물 없는 육식
‘탈육식’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명백합니다. 우선 육식에는 피할 수 없는 윤리적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잡식성 식사를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듯이, 인간이 닭과 돼지와 소를 잡아먹는 것도 자연스러웠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을 채식 위주의 식단을 지속했습니다. 고기는 언제나 별미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한 공장식 축산이 가능해지면서, 인간은 전례 없이 많은 양의 고기를 먹기 시작합니다. 70억 가까운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하여 700억 마리의 동물들이 좁은 우리에서 짧고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육식은 환경에도 좋지 않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자, 물과 땅과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산림 파괴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된 동물들은 막대한 양의 항생제를 투여받는데, 항생제 내성이 생긴 동물로부터 얻은 살점이 인간의 건강에 긍정적일 리가 없습니다. 붉은 고기는 현대인들이 겪는 여러 치명적인 질병을 초래합니다.
하지만 인류는 육식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육식을 포기하는 것은 “인류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동물의 주인이라는 역할을 잃는 것과”(124p)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거창한 의미를 논하지 않아도, 입맛을 바꾸는 것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탈육식은 갈수록 요원해집니다. 대부분의 ‘소울푸드’가 치킨, 삼겹살 등 육류를 이용한 요리라는 것은 육식이 문화적 경험과도 긴밀히 결부되어 있음을 증명합니다. 비건을 시도했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논비건으로 돌아가는 것은 비건을 유지하는 것의 어려움을 반증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비건이란 입맛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가치관, 삶의 방식 등을 전부 바꿔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많은 이들이 비건을 실패합니다.
육식을 끊는 게 힘들다면, 육식을 대체할 기술적 대안이라도 적극적으로 탐사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깨끗한 고기’, 즉 배양육을 섭취함으로써, “아무도 습관을 바꾸지 않고 비건이 되도록”(180p) 하자는 ‘핀리스 푸드’의 대표 마이클 셀덴의 주장은 귀 기울여 들을 만 합니다.
여성 없는 출산
출산은 인간 존재의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은 남녀 사이의 중대한 불평등을 초래해왔습니다. 여성이 임신한 상태가 된다는 것은, 생물학적인 ‘유리 천장’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재니 클리먼이 책에서 인용한 논문<The Moral Important for Ectogenesis(체외 발생을 위한 도덕적 명령), Anna smajdor>에 따르면, 임신은 “고통과 괴로움을 유발하는 건강 상태이며, 오로지 여성에게만 영향을 끼친다. 남성이 임신을 겪지 않아도 유전적인 관련이 있는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반면 여성은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은 태생적인 불공평함”입니다. 사회가 진보적이고 남자가 육아에 호의적으로 임하더라도, 임신과 출산 이후 육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여성은 언제나 남성보다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정확히 이 지점에서 인공자궁 기술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사실 인공자궁, 즉 ‘바이오백은’ 조산된 신생아의 사망률과 이환률을 낮추기 위해서 개발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공자궁의 개발은 앞서 언급한 문제, 즉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서 겪는 신체적, 사회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것은, 바이오백이 임신이 불가능한 게이 커플,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본인의 혈육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비닐팩이 자궁을 대체하는 세상이 온다면, 여태까지 대리모 출산이 산출했던 문제들도 제거할 수 있게 됩니다. 한때 SF소설의 주제로 머물렀던 체외수정 기술(수정관 아기)이 상용화된 것을 보면, 앞으로 인공자궁 기술을 광범위하게 이용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통 없는 죽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삶처럼 고된 것은 없습니다. 출생은 개인의 자유의지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삶은 찬란하지만, 그만큼 누군가에겐 불행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태까지는 생존 자체가 워낙 급박한 문제였기에, 자율적인 죽음에 대한 고민이 공론장에 오르던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먹고 사는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지고, 의학과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이전보다 긴 수명을 누리게 되면서 죽음은 전례 없는 실존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존엄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겁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조력 자살을 허용했다고 합니다. 생명 경시 현상을 경계하는 가톨릭이 국교인 국가에서도 조력 자살이 허용된 것을 보면, 자율적인 죽음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이 점차 시급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율적인 죽음을 논할 때는, 당사자가 자유의지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한 판단이 정확해야 합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는 이들은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질병에 걸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사자가 극심한 통증 속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의료진들과 환자의 가족들은 당사자가 죽음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쳐도, 후속되는 법적, 윤리적 공방이 두려워 죽음을 조력하는 행위를 피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자발적인 안락사를 돕는 단체 ‘엑시트’의 설립자 필립 니치키는 자신이 개발한 ‘사르코’에 의해 자발적인 죽음에 얽힌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우선 사르코를 이용하면 고통 없는 죽음이 가능해집니다. “캡슐 안에서 기대어 누우면, 액체 질소가 산소 농도를 빠르게 떨어뜨리며 활성화되고 몇 분 만에 평화로운 죽음”(355p)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계 안에 들어가 인공지능이 집행하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검사를 통과해야지만 기계가 작동되기 때문에 조력자 자체가 필요 없어집니다. 사르코로 인해 완전히 자율적인 죽음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공학의 과잉’과 ‘공학의 기회’ 사이에서
“완전히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이기적인 삶을 사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불완전함, 타협, 희생, 의심과 어울려 살아가는 건 탄생, 음식, 섹스, 죽음만큼이나 인간 경험의 근본적인 부분이다. (…) 우리는 섹스로봇과 인공고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게 우리에게 약속하는 자유와 힘은 이미 우리 손안에 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안다. 그 답을 실행하는 건 단순히 봉투를 열거나 문을 닫거나 스위치를 끄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404p
각 기술에 얽힌 윤리적 난제들을 생각하다 보면, 기술 개발의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긍정적인 선택을 보류하게 됩니다. 섹스 로봇은 여성을 향한 성적 대상화를 강화 시킨다는 주장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기존에 관계 맺던 방식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것도 분명합니다. 타협과 협의가 없이 섹스가 가능한 존재의 출연은, 상호관계를 맺는 능력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배양육은 현재 제품의 완성도가 매우 떨어집니다. 그리고 고기를 배양하기 위한 혈청을 채취하는 과정의 윤리적 결함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식물성으로 만든 대체육 제품은 맛을 내기 위해 사용되는 수많은 식품 첨가물이 문제가 됩니다. 배양육은 개발과 상품화 과정에서, 가금류를 기르는 것보다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는 점도 고민해야 할 것 중에 하나입니다.
만약 바이오백 기술이 더욱 발전해서 체외수정과 출산이 상용화된다면, 남성과 특정 계층의 필요에 맞게 생식 기술이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영화 <가타카>에서처럼 인공자궁 기술을 사회적 통제를 실현하는데 이용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맞이하게 될 수 있는 것이죠.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존엄입니다. 본인의 질병 때문에 가족에게 민폐가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엄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워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안전하고 고통 없이 죽음을 가져다줄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질환에 관한 연구에 적절하게 투자하고, 아픈 이가 자신을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치료와 사회복지에 더욱 많은 재원을 투입해야 합니다.
재니 클리먼이 결론에서도 지적했듯이, 섹스 로봇, 배양육, 인공 자궁, 자살 기계는 단순한 ‘우회 방법’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4가지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우리를 함정에 빠트린 상황을 견디며 살게 돕는 것”(402p)일 뿐이라는 우려는 타당합니다. 기술을 통한 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것은, 인간의 편리만을 고려한 단편적이고 무모한 일이라는 것이죠. 조금 불편하지만 명확한 해결책이 존재함에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가지 기술의 가능성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환경과 동물을 구하고, 아픈 아이를 살게 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새로운 반려자를 제공하고, 병든 이들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기술의 도래는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들이 약속하는 미래가 매혹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술의 어두운 단면들은,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기능은 사실 섹스 로봇의 능력에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고령화와 1인 가구가 보편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인간들은 지능화된 인공물과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상호작용을 경험하면서 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배양육을 상품화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앞다퉈 이뤄지고 있습니다. 바이오백이 약속하는 미래는 여성과 게이 커플과 트랜스 젠더에게는 꽤나 매력적입니다. 죽음 기계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인 이들에게 응답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을 아끼는 다른 훌륭한 방법은 과학을 지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세상에 어떤 종이 있고 그들을 보호하려면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를 배운다. 우리는 지적 능력에 자부심을 갖고 지식의 지평을 넓혀 감으로써, 자연과 교감하고 지구를 보호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유전공학과 같은 일부 과학 기술은 자연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런 기술은 사람들에게 큰 이로움을 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과학 기술을 통해 지금까지 이룬 것 그 너머를 바라봐야만 이제껏 걸어온 길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살아남고 싶다면, 우리는 과학 기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연의 배신』, 댄 리스킨, 259-260p
섹스 로봇, 배양육, 인공 자궁, 자살 기계는 모두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그래서 재니 클리먼이 그것들을 우회 방법이라고 꼬집은 것이죠.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항상 자연스럽지 않음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제왕절개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죠. 제왕절개술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여성과 아이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댄 리스킨은 『자연의 배신』에서 ‘어머니 자연’의 실상을 다룹니다. 자연은 온화하거나 자애롭기만 한 존재가 아닙니다. 자연은 인간을 공격하고 죽이려 합니다. 자연에서의 인간은 한없이 나약합니다. 문명의 역사에는, 무서운 자연으로부터 인간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포함됩니다. 지속가능성과 현대 문명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것에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자연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향은 아닙니다.
역술가에 의하면 “시베리아에서는 냉장고를, 사막에서는 난로를 팔아가며 먹고 살 팔자”를 가졌다고 한다. 재주가 많다는 칭찬인지, 남의 등쳐먹고 살 사기꾼의 자질을 가졌다는 의미인지 종종 헷갈린다. 봄과 가을에는 축구장에서, 여름에는 계곡과 강에서,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사느라 10대 때는 책상에 10분 이상 앉아있어 본 적이 없다. 어찌 된 일인지 고등학교 진학 이후 학습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라 평생토록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던 책과 가까이 지내기 시작한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부생 신분이지만, 제도권 교육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음을 깨달아 얼마 못 다니고 휴학했다. 3년 가까이 휴학생으로 지내며 이런저런 일에 기웃거려보는 중이며, 현재는 다른백년의 사무국장이다. 놀고 먹기만 하면서 태평하게 살고 싶은데, 시대가 수상하여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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