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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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선생님의 글을 무척 아낍니다. ‘민중 자치’, ‘공생공락의 우애 공동체’, ‘순환적 생활방식’의 가치를 잊은 근대인들의 삶은 분명 잔혹했습니다. 선생님은 『비판적 상상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삶의 우주적 연관이나 자연적 근거를 완전히 망각한 문화라는 것은 거의 낯선 것이었다고 할 수 있고, 사람의 에너지를 온통 소득과 소비의 경쟁 속에 쏟아붓도록 강요하는 오늘의 지배적인 산업문화는 인류사에서 극히 예외적인 생존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 단호한 일성 속에는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두둔 되었던 근대문명과 자본주의의  진실이 오롯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나날이 비대해지는 인간들에 의해 존재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숲과 강과 산과 바다와 동물들은 또 어떤가요. 그들을 생각하면 무감하고 이기적인 저조차도 죄의식으로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 때가 간혹 있습니다.

한편 케빈 켈리의 글도 아낍니다. 무기물의 진화가 드디어 ‘창발성’과 ‘항상성’으로 정의되는 생명의 영역을 넘보기 시작했다는 것, 현대기술의 발전이 정치, 경제, 산업, 사회, 문화 영역의 중앙 집권적이고 폐쇄적인 기득권과 아성을 허물어트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자각한 것은 모두 케빈 켈리의 글 덕분이었습니다. 케빈 켈리는 『통제 불능』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경계가 애매해지다 못해 대결이 결탁 비슷하게 변모해갈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로봇, 실리콘 칩 안에 사는 바이러스, 텔레비전 같은 전자기기에 전선으로 연결된 인간, 유전자 수준에서 원하는 형질을 조작해낸 생물, 인간-기계 마음으로 엮인 전 세계…. 이 모든 것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인간의 발명품이 인간에게 생명과 창조력을 부여하고 한편 인간이 발명품에 생명과 창조력을 부여하는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끊임없이 유동하고 부단히 새로워지는 세계로의 진화와 이를 추동하는 기술의 발전. 인간의 지적, 문화적, 도덕적 진화에 발맞춰 이뤄지는 물질의 진화도 ‘진화적 세계관’(카터 핍스)의 일부가 분명합니다.

환경운동가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을 미약하나마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제가 경험한 환경운동과 생태주의는 지구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타자들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아끼고 덜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자연은 풍요로운 꼴을 잃어버린 듯 보입니다. 계몽된 합리적 이성의 질주는 ‘인류세’로 당도하는 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에 닥친 전대미문의 재앙 앞에서 생태주의자들이 오래전부터 가능성을 타진했던 ‘탈성장’의 메시지는 유일한 해법이자 인류가 밟아야 할 자연스러운 경로로 보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이 따라붙습니다. 그들이 돌아가자고 말한 자연이 과연 너그럽고 풍요로운 곳이기만 했던가? 우리는 과연 현대 문명의 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후진국의 경제 개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토록 수상한 시절에도 ‘가장 핵심적인 인간 조건’(한나 아렌트)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존경을 가지고 있는 한편으로, 여러 가지 질문들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은 채 머릿속을 부유합니다.

사실 탈성장과 농본주의를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 하면 안된다는 것을 먼저 짚어야 합니다. 우선, 농본주의는 이미 실현 불가능한 이상으로 판명되었다는 생각을 밝힙니다. 얼마 전에 IPCC에서 6차 보고서가 나왔죠. 보고서는 지구의 온도가 1.5도 상승하는 미래가 10년이나 앞당겨져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기후재앙으로 인해 인류의 존속 여부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기존의 존재 양식으로부터의 탈피를 이야기하는 탈성장은 헛된 공상이 아니라 절박하게 선취해야 할 미래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탈성장은 농본주의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후재앙의 해결책으로서 탈성장을 이야기할 때마다 허구한 날 ‘현대 문명의 성취를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죠. 대중들에게 탈성장의 메시지가 큰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꼴이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기후재앙을 한시라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평범한 대중’들도 깊게 동의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과연 기왕의 생태운동가와 환경운동가들이 대중에게 큰 울림을 주며, 실질적인 결과가 도출될 만큼의 실효성 있는 운동을 이뤄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짙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실 환경 운동 세력 내에도 스펙트럼이 너무나 다양하기에 함부로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환경을 지키자”라는 이야기를 하면 현대 문명을 부정하며 “자연으로 돌아가자” 라는 것과 단순히 “재활용을 잘하자” 라고 하는 식의 제한된 상상력만 떠올리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탈성장 담론은 실효성을 잃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곳곳에서 감지되는 기후위기에 대한 자각과 집단적 대응의 부상은 분명 그들의 노고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이냐 현대 문명이냐를 양자택일하는 낡은 논의 틀에서 벗어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규합할 수 있는 새로운 논의의 장을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은 10년 안에 지구의 기온이 1.5도 이상으로 상승하지 않게 막는 것이 무엇보다도 최우선입니다. 하여 당장 눈에 보이는 실효성 있는 결과를 제출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기적인 해결책도 함께 궁리해야 합니다.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끝끝내 막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지구 위에 발 딛고 살아갈 테니까요. 장애인들도 편하게 살아가기 위해 도시의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배리어 프리’입니다. 베리어 프리처럼 탄소배출을 유발하는 요인을 제거한 새로운 양식의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이 긴요해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일상을 영위하면서도 탄소 배출이 발생하지 않는 ‘카본 프리’ 인프라, 녹색 인프라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죠. 빌 게이츠는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도 새로운 도구가 필요하다. 즉,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도 전기와 물건을 만들고, 음식을 재배하며, 건물을 시원하고 따뜻하게 유지하고, 사람과 물건이 전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방식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즉 소작농들이 더 따뜻한 기후에 적응할 수 있게 혁신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주장이며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일각에서 호되게 비판받고 있는 책 『포스트 피크』에서 제기한 ‘탈물질화’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탈물질화가 집약적이고 효율성이 높은 기술을 통해 유한한 지구의 자원을 덜 이용하고 결국에는 탄소에 기반한 인프라를 해체하려는 현대기술의 경향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카본 프리 인프라와 녹색 인프라 건설에 있어서 탈물질화에 기반한 기술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포스트 피크』를 비판할 지점이 적지 않습니다. 앤드루 맥아피는 탈물질화의 경향성을 근거로 자본주의에 너무도 쉽게 면죄부를 줘버립니다.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 경제성장이 지속 되어서 부의 총량이 늘어난다면 해결될 간단한 문제라고 치부하는 신고전파경제학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는 식입니다. 저는 탈물질화의 경향을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번영을 위해 사용하기를 요청합니다. 선진국의 생활과 경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자원이 소비된 탓에 지구의 건강이 망가지고 있음은 앞서도 언급했습니다. 한편으로, 개발도상국 중에 기본적인 삶의 욕구도 만족시키기 어려운 곤궁한 상황에 처해있는 곳이 많습니다. 『도넛 경제학』에서 말하듯이 식량, 주거, 교육, 정치적 권리 등 인간의 필요와 권리에 해당하는 ‘내적 한계’와 지구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의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가하지 않는 ‘외적 한계’의 안쪽으로 인류를 안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인즉슨, 선진국 국민의 생활과 경제의 규모를 일상을 영위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개발도상국 국민의 생활 수준은 지구의 자생력에 부담을 가하지 않는 정도로 끌어올려 적정한 수준의 경제 영역으로 자리 잡게 하는 전환을 뜻합니다.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한국은 4차 산업혁명을 발판 삼아서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궁리를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갖추어져 있는 부라도 공평하게 분배함과 동시에 곳곳에서 피어나는 ‘유기공업’의 가능성을 성장이 아닌 풍요를, GDP에 대한 집착이 아닌 안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의 질 향상을, 전환의 과정에서 아무도 낙오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해야 하는 것이죠. 지금은 허울뿐인 그린 뉴딜과 스마트 뉴딜의 내실을 다지고, 탈성장을 숙고하는 이들이 출로를 찾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디지털을 말하다』를 택배로 받자마자 하루 만에 다 읽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인사이트가 훨씬 더 풍부하게 담겨있었습니다. 『디지털을 말하다』의 저자이자 대만의 디지털 장관을 역임하고 있는 오드리 탕의 주도로 이뤄지는  ‘디지털 민주주의’ 실험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집니다(본 연재 후반에 다루게 될 것입니다).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평등하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 꿈꾸었던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현실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스러진 이유가, 사상에 걸맞은 현실적이고 적절한 물적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오드리 탕은 책에서 가라타니 고진이 이야기한 ‘교환 양식 X’를 “모두 함께 공유하는 과정에서 온갖 사람과 상호 신뢰 관계를 쌓아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교환 양식 X의 실현은 디지털의 외피를 둘러써야지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의지와 이상만으로 역사가 진척된 적이 과연 있을까요.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가 제기한 문제의식도 그와 유사합니다. 공산주의가 이 땅에 도래하지 못한 것은, 마르크스가 일생동안 다듬었던 이론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이상을 뒷받침할 물질적 기반이 허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희소성의 종말’을 예고하는 ‘3차 대변혁’의 시기가 오히려 ‘화려한 공산주의’를 실현시킬 적기라고 봅니다.

스티브 잡스는 ‘마음의 자전거’를 이야기 했습니다. 인간이 자전거를 통해서 먼 거리를 더 편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듯이, 우리는 기술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마냥 꿈속에만 있던 미래를 선취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비용을 빠르게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인프라를 건설하는 능력을 가진 과학자, 공학자, 자본가들의 의지도 선용해야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기후재앙을 막는데 자연스럽게 일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문제를 두고 가족들끼리 오랫동안 싸웠던 적이 있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아버지와 형제는 부디 에어컨을 설치하여서 쾌적한 여름을 보내기를 바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친척으로부터 선물 받은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으로 길고 긴 싸움은 끝이 납니다. 그때 형제가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나는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몸이 불편해서 바깥 활동이 쉽지 않다. 당신들은 더우면 시원한 곳을 찾아가면 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나는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더운 여름을 에어컨도 없이 견뎌야 한다. 그러니 환경을 위해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신념을 지키는 것이기는 하지만 나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 다종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는 현실의 복잡성은 언제나 우리를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이끌고 갑니다. 진실과 해답은 좌와 우, 선과 악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칼 폴라니가 비판한 허구적인 ‘자기 조정 시장’ 만큼이나 생태운동과 환경운동 진영에서 제시하는 해결책 중에 접근 불가능하고 실효성이 없는 이상은 확실히 구분해내야 합니다.

앞으로 10권의 책을 간단히 리뷰 하는 식의 연재가 격주로 이뤄질 것입니다. 각 책의 입장과 주장을 충실히 전달하되, 개인적인 문제의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환경운동과 생태운동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며, 지구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위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고 써보겠습니다.

 

유채운

유채운

역술가에 의하면 “시베리아에서는 냉장고를, 사막에서는 난로를 팔아가며 먹고 살 팔자”를 가졌다고 한다. 재주가 많다는 칭찬인지, 남의 등쳐먹고 살 사기꾼의 자질을 가졌다는 의미인지 종종 헷갈린다. 봄과 가을에는 축구장에서, 여름에는 계곡과 강에서,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사느라 10대 때는 책상에 10분 이상 앉아있어 본 적이 없다. 어찌 된 일인지 고등학교 진학 이후 학습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라 평생토록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던 책과 가까이 지내기 시작한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부생 신분이지만, 제도권 교육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음을 깨달아 얼마 못 다니고 휴학했다. 3년 가까이 휴학생으로 지내며 이런저런 일에 기웃거려보는 중이며, 현재는 다른백년의 사무국장이다. 놀고 먹기만 하면서 태평하게 살고 싶은데, 시대가 수상하여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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