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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영역과 생물 영역이 서로 겹쳐지는 현상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 생체공학적 수렴 현상은 부분적으로 용어 문제에 있다. ‘기계적’이라는 단어나 ‘생명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각기 확장하다 보면 모든 복잡한 사물을 ‘기계적’이라고 볼 수도 있고, 한편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기계는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의미론적 차원을 넘어서서 구체적인 경향 두 가지가 나타나고 있다. (1)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물건이 점점 생명체와 유사하게 행동한다. (2) 생명체에 공학적 요소가 점점 더 많이 가미되고 있다.” p18-19.

케빈 켈리가 보기에 오늘날의 기계들은 생명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케빈 켈리의 주장을 맛보기에 앞서, 자연과 기계를 공존 불가능한 대결항으로 보는 오래된 레토릭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업 문명에 의해 환경과 생태의 몰락을 우려하던 이들은 자연과 기계를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고, 명백하게 배타적인 영역으로 존재한다고 이해했습니다. 이를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이 <한살림 선언>입니다. <한살림 선언>의 ‘전일적 생명의 창조적 신화’ 장에서는 기계의 본질을 경직성, 타율성, 폐쇄성, 직선적인 인과연쇄 등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생명을 소외시키며, 풍요로운 본성을 억압하는 기계적 원리에 포섭된 산업 문명을 ‘죽임의 문명’이라고 명명합니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조목조목 비판을 이어가며 해당 장의 결말에 이른 저자들은, 인류에게 기계적인 문명을 넘어 ‘전일적인 생명’과 ‘거룩한 우주’의 본질로 돌아가라고 당부합니다. <한살림 선언> 말마따나 기계는 생명을 죽이려 드는 존재인 것일까요? 우선, 생명도 물리법칙을 따르는 화학적 구성물일 따름이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생명이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의 네트워크와 같은 배열에서 창발할 수 있는, 거의 수학적인 속성을 지닌 것이라는 관점에 동의한다. 그것은 일종의 확률 법칙과 같다. 충분한 수의 부분들을 한데 그러모으면 시스템은 그렇게 할 것이다. 평균의 법칙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이 법칙에 따라 배열되면 그 결과로 생명이 출연한다. 그리고 그 법칙은 이제야 막 발견되고 있다. 이 법칙은 빛에 적용되는 물리학의 법칙만큼이나 엄격하게 적용된다.” 225p

린 마굴리스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일리야 프리고진은 소용돌이나 회오리바람, 불꽃처럼 명백히 무생물적인 활동 중심을 포함하는 ‘에너지 소산 구조’라는 큰 부류 속에 생명을 포함시켜 생각하는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36p)라고 말하며, 일리야 프리고진에 의해 생명도 화학적인 물질대사를 따르는 존재임이 밝혀졌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생기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이야기하듯, 생명은 살아 있는 몸이나 기계적 기반으로부터 분리되어 운영되는 체제가 아닙니다. 비록 고도로 체계화되고 어떤 무생물도 따라오기 힘든 정교한 형태를 띄우고 있기는 하지만, 생명은 결국 물리학과 화학에 기반합니다. 오늘날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이 생물의 뇌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전뇌 에뮬레이션’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기질 독립성’을 운운하는 이유는, 생명을 환원과 측정이 가능한 하나의 물리적 연산 과정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으며 분산되어 있는 존재이다. 생명은 드넓은 시공간으로 확장되어있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개별적인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홀로 떨어져 살아가는 단일한 생물이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생명은 근본적으로 복수 형태를 취한다 (…) 복잡성은 생명을 가두어 잠근다. 각 부분은 죽지만 전체는 살아남는다. 시스템이 더 큰 복잡성을 향해 스스로를 조직해나가면 그와 더불어 생명 역시 증가시킨다. 생명의 길이를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고 생명 자체를 크게 만든다. 시스템은 더 많은 생명을 갖게 된다.” 212-218p

생명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분자 자체는 살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백질 분자의 집합체인 생물은 분명 살아 있습니다. 단백질 분자에는 생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분자의 총합인 생명체가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창발성’ 때문입니다. 이를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복잡계 과학의 ‘자기 조직화’의 원리를 따른다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복잡계 과학은 ‘초기 조건의 민감성’을 따릅니다. 선형적인 고전 역학과 달리 복잡계 과학에서는 초기 조건의 민감성이 결과에 대한 확실한 예측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작은 입력으로도 막대한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비선형성’입니다. 초기 조건의 민감성에 의해 결과에 대한 예측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어지러운 혼돈의 와중에도 분명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시적으로는 복잡한 현상의 구체적인 경향을 파악할 수 없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특정한 규칙성과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잡계의 원리를 통해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고 작동하는지에 대해 정의해볼 수 있습니다. 우주의 진화를 생각하면 이 부분이 좀 더 쉽게 이해가 됩니다. 빅뱅 이후의 미분화 에너지는 온도가 식으면서 측정 가능한 실체들로 응결했고, 그 입자들이 모여서 원자가 됩니다. 팽창이 일어나고 온도가 식는 과정을 통해 복잡한 분자들이 형성될 수 있었고, 복잡한 분자들은 자기 조직화를 통해 자기 증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부분이 충분히 많은 수로 조직되며 복잡성이 증가하는 과정 끝에서 생명이 탄생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록 우리가 통념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생명과 생물이 아닐지라도, 창발성의 특징을 보이는 모든 것을 생명 혹은 생명에 근사한 존재라고 살짝 비틀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계에 지능을 불어넣고자 실험실에서 씨름하는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창발성의 아이디어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브룩스의 아이디어는 풋볼 공 크기에 바퀴벌레 비슷하게 생긴 ‘징기스’라는 이름의 로봇으로 구체화되었다. 브룩스는 그의 축소와 단순화 미학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징기스는 6개의 다리를 가졌지만 뇌는 아예 없다. 징기스의 모터 12개와 센서 21개는 중앙의 제어 장치 없이 분해 가능한 네트워크 전체에 걸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그런데 이 12개의 근육과 21개의 감각 기관 사이의 상호작용이 놀라울 만큼 복잡한, 생물과 같은 행동을 낳았다. (…) 징기스의 6개의 작은 다리들은 다른 다리들과 상관없이 각자 스스로 작동한다. 각각의 다리마다 행동을 통제하는 개별적인 신경절-작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각각의 다리가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징기스에게 있어서 걷기란 적어도 6개의, 제각기 작동하는, 작은 마음들이 관여하는 집단 프로젝트인 셈이다. 징기스의 몸 안에 있는 다른 작은 부분 마음들은 다리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조율한다. 곤충학자들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개미나 진짜 바퀴벌레들이 걷는 방식이라고 한다. 곤충들의 경우 다리에 있는 신경세포가 다리의 사고를 한다.” 88p

로드니 브룩스는 <빠르고, 값싸고, 제어되지 않는 : 로봇의 태양계 침입>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행위기반의 포섭 구조’를 이야기합니다. MIT 대학의 ‘모바일 로봇연구소’의 소장으로 근무를 하던 로드니 브룩스는 로봇이 외부 동력 없이 작동하며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당시의 로봇 제작계는 전력 공급 장치와 로봇의 뇌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중앙 제어 장치를 외부에 두고 전선으로 본체에 연결해두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전자계 외부 간섭 등의 장애를 피할 수 없었고, 자율성을 지닌 로봇의 발명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던 로드니 브룩스는 신경 회로의 단순 무식한 구성이, 간단한 작업을 수행하는 데는 의외로 중앙 집중식 통제보다 낫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원리를 따라 개발한 로봇 ‘징기스’는 드디어 자율성을 얻어서 생명처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징기스의 탄생은, 기존의 생명과는 다르지만 분명 유사 생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 세상에 첫발을 내딛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통제 불능』이 쓰여진 1995년 당시에 징기스는 자동 로봇계의 최선의 발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공 존재들로부터 생명의 징후를 탐사하던 케빈 켈리에게는 최고의 발견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인공 존재들은 제한된 자율성을 구가하던 징기스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로 진화하는 중입니다. 인공지능이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반도체가 인공지능의 뇌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공지능이 자기 복제 혹은 번식을 하는 존재로까지 진화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기계적이라고 할 만한 진화의 절차 속에서, 생명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복잡하지만 감지할 수 있는 상호연결 속에서, 신뢰할 만한 로봇의 행동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타나 재현 가능한 진보에서 , 단순한 생명체, 기계, 복잡한 시스템, 그리고 우리 인간 사이의 단일한 통일성을 마주한다. (…) 브룩스가 만든 6개의 다리를 가진 징기스가 강철 발을 내밀어 딛을 곳을 찾을 때 나는 로봇에게 일자리를 뺏기는 노동자의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체 아기의 행복한 꿈틀거림을 보았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두 하나의 자연이다. 언젠가 기계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때 성스러운 경외심이 느껴지지 않을까?” 123p    

생명에 근사하는 기계들과의 공존, 즉 ‘신생물학 시대’로의 진입은 기계 문명에 대한 우리의 비관적 시각을 곰곰이 돌아보고 수정하길 요청합니다. 자연이란 무엇일까요? 『오리진』에서 루이스 다트넬은 인류가 굉장히 예외적인 지질시대를 살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우리는 포유류와 속씨식물이 지배하는 신생대의 제4기, 즉 홀로세를 살고 있습니다. 선각자들은 풍요로운 홀로세의 자연을 ‘어머니 자연’이라고 부르며, 온 생명의 유일한 존재 기반인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근대 문명 앞에서 목놓아 울었습니다. 인간에 의해 자연이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고 있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십억 년의 지구의 역사를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면, 지구가 언제나 생명에게 우호적인 공간이기만 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문명을 건설하며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홀로세는 사실 매우 드물고 예외적인 시공간이었습니다. 자연은 아늑했던 홀로세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극히 뜨겁거나 차가운 기후를 반복적으로 오가며 생명의 번영을 어렵게 만들었던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도 분명 자연의 일부입니다.

한편, 인간의 진화가 도구의 발명 없이 이루어졌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질문해보게 됩니다. 불의 사용으로 음식물을 익혀 먹음으로써 식생활의 개선이 일어납니다. 덕분에 소화에 쓰이던 에너지와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어 인지 능력의 발전이 이뤄집니다. 어떤 음식도 조리를 통해 수월하게 섭취할 수 있게 되면서, 조리되지 않은 거친 음식을 먹을 때보다 작고 약해진 턱관절로 자유로운 발성을 낼 수 있게 됩니다. 자유로운 발성, 즉 말을 할 수 있게 된 인류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문화의 축적과 공유를 발전시킵니다. 거기다 활자의 발명이 더해지면서 문헌의 이용과 기억의 전승이 수월해졌으며, ‘문화적 진화’(『초월』, 가이아 빈스)를 더욱 효과적이고 급진적으로 이루어냅니다. 개인의 인지적 처리 과정, 기억, 지식, 노동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상당 부분을 집단 지성에 의지함으로써, 고난한 생존 과정을 효율적으로 지속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인간처럼 지구의 다양한 장소에서 살아가는 종은 없습니다. 인간이 극지와 오지에서도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고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외부 환경에 대한 적절한 개입, 즉 의복과 집과 다양한 사냥도구의 이용 등 생존에 도움을 준 적절한 기술의 발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술, 특히 지식 기술은 우리의 사고 형태를 빚어낸다. 각각의 기술이 만들어낸 가능성 공간은 특정 종류의 사고를 허용하고 다른 종류의 사고를 억제한다. 칠판은 반복적인 수정과 지우기, 무심코 해보는 생각, 자발성을 장려한다. 종이 위에 쓰는 깃펜은 주의, 문법에 대한 신경, 깔끔함, 조절된 사고 등을 요구한다. 반면에 하이퍼텍스트는 다른 사고 방식을 자극한다. 즉, 전보처럼 간결한 사고, 모듈식 사고, 비선형적 사고, 유연한 사고, 협력적 사고를 요구한다.” 875p

대기권 밖으로 쏘아올린 인공위성을 통해, 인류는 언제나 발을 딛고 서있었지만 오랫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지구라는 장소에 대한 자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지구의 날’이 제정되고, 지구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 대한 배려와 공존을 실천하는 집단적 행동을 조직하게 됩니다.

카터 핍스는 『인간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에서 “문화가 발전하면 경제 사회적 차원에서 인간의 상호작용도 더 활발해지고, 더 큰 네트워크에서 윈윈 작용이 더 빈번하게, 더 많은 사람에게, 복잡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기술의 발전으로 더 넓은 사회가 연결될 수 있어서 비적대적 게임은 큰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상호 의존성이 강해지면서 우리는 모두 다양한 비적대적 게임의 거미줄에 서로 엉키게 되고, 결국 그것이 어디에 도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방향은 명확하다. 우리는 점차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의 문명과 민족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109p)라고 이야기합니다. 인류는 멈추지 않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존의 스트레스, 즉 오늘날의 기후위기와 같은 전대미문의 재앙이 출연하여 진화를 퇴보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화적 시간’, 즉 아주 긴 시간 위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인류는 분명 협동성과 상호성을 강화하고 도덕성과 인간성을 증가시켜가는 거대한 진화의 흐름 안에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카터 핍스는 가족 같은 작은 그룹에서 출발하여 부족과 농업 사회를 거쳐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한 인간 사회가 조직된 것, 즉 개인적, 집단적, 국가적인 협소한 단위에서만 추구하던 이익을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게 조화시키려는 움직임이 미약하나마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음에 주목하길 요청합니다.

“나는 카우프만에게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연결이 적정 수준에 이른 사회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가 된다는, 논란이 되는 개념을 언급했다. 사상이 자유롭게 흘러 다니면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내는 곳에서는 정치 조직이 결국에는 피할 수 없는 강한 자기 조직 끌개로 작용하는 민주주의로 향하게 된다. 카우프만은 그 비유에 동의했다. ‘1958년인가 1959년인가 2학년 때 나는 큰 열정을 쏟아부어 철학에 관한 논문을 썼어요. 민주주의가 왜 잘 굴러가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애썼지요. 다수가 지배하는 제도라서 민주주의가 잘 굴러가는 게 아닌 건 명백했어요. 그리고 33년이 지난 지금 나는 민주주의가 서로 충돌하는 소수 집단들이 비교적 유동적인 타협에 이르도록 하는 장치라고 생각해요. 민주주의는 하위 집단들이 국지적으로는 좋은 면이 일부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그다지 좋지 못한 해결책에 매달리지 않게 해주어요.’ ” 756p

우리는 전 지구적인 통신 시스템, 스스로 인큐베이팅하는 컴퓨터 바이러스, 인공지능, 가상 현실 세계, 다양한 인공 생태계와 공진화하는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공 존재들과의 공진화는 기술과 도구가 단순히 신체적 노동의 경도를 감소시키며, 신체의 연장선으로서 생존에 도움을 주는 존재에 그치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인공 존재들의 진화는 인간의 질적 도약을 자극하는 핵심적인 촉매제임이 분명합니다.

한편, 케빈 켈리는 프랑스 엔지니어 레옹 파르소가 개발한 ‘서보 기구’[1]가 무선 조종이 필요한 선박의 운항, 비행기 조종, 독성 물질과 핵폐기물 관리에 쓰이는 것을 언급하면서 인간과 도구 사이의 불가피한 이종 결합을 언급합니다.

“서보 기구가 기계의 조종을 돕는데 그토록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선박의 운행이나 비행기의 조종, 독성 물질이나 핵폐기물 등을 처리하는 데 사용되는 무선 조종 기계 손 등에 여전히(더욱 발전한 기술을 바탕으로)서보 기구를 사용하고 있다. (…) 헤론의 조절 벨브나 와트의 조속기나 드레벨의 온도 조절 장치 등이 순수하게 기계적인 자아라고 한다면 파르소의 서보 기구는 인간과 기계의 공생, 즉 두 세계의 결합 가능성을 암시했다. 비행기의 조종사는 서보 기구와 일체를 이루게 된다. 조종사는 힘을 얻고 기계는 존재를 얻는다. 그 둘이 하나로 합쳐져 기계를 조종한다.” 243p

자연과 인공 사이의 놓인 거대한 장벽이 사실은 허구라는 것을 알아차리자는 것이 케빈 켈리의 핵심 주장입니다. 우리는 생명과 물질, 생물과 기계, 생태와 산업,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는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생명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사물들이 인류와 함께 공진화하는 ‘비비 시스템’의 세계로 거침없이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작금의 기후위기와 생태계의 파괴를 불러온 산업 문명의 파괴성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분명 잘못되었고 과감한 교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산업 문명 자체가 형질 변화, 즉 케빈 켈리가 ‘산업 생태학’이라고 표현했던 세계로의 이행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산업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자연의 영역을 압도하고 축출하려는 잡초와 같은 특성을 보인다. 이런 속성은 자연보호주의자들과 인공물을 옹호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 관계를 촉발한다. 두 진영은 오직 한쪽만이 우세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기계의 미래는 생물학’이라는 약간 낭만적인 관점이 과학계를 관통하면서 유용성의 세계에 약간의 시적 향취를 더해주었다. 이 새로운 관점은 자연과 산업이 함께 우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기적 기계 시스템이라는 은유를 적용함으로써 산업주의자들과 환경주의자들이 (약간은 마지 못해서)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마치 생물계가 스스로 생성한 것들을 스스로 고쳐나갈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356p

케빈 켈리는 산업계가 생명의 유기체적 원리를 모방하며 자연과의 공존을 꾀하고 있으며, 산업이 일으킨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산업의 생태화’를 추진하는 힘에 대해서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우선 ‘해체를 위한 설계’입니다. 제조 과정에서 조립하기 쉽고, 수리하기 쉬우며, 폐기하기 쉬운 공정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제조 과정에서 균일 부품을 이용해 쉽게 해체하도록 설계하는 것, 알루미늄 캔이 생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을 고려하여 설계된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다음은 자연의 순환 시스템을 모방한 ‘닫힌 고리’ 시스템의 이용입니다. 닫힌 고리 시스템은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오염 물질의 양을 극적으로 줄임과 동시에 약간이라도 발생하는 폐기물과 유독 물질은 모두 제조 과정에 재이용하여, 산업을 자연의 순환 시스템에 근사하도록 만듭니다. 도금 회사가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독한 용매와 지저분한 물을 모두 재활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유독 물질을 산업 단지와 지역 전체의 네트워크 안에서 쓰이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닫힌 고리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만약 케빈 켈리의 말마따나 산업계가 “자연 그 자체가 되는 컴퓨터를 설계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366p) 있는 노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면, 생태 운동의 목표를 산업 문명 자체를 부정하고 넘어서는 것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신 기계들을 생태와 생명의 속성을 가지도록 더욱 극한으로 밀어붙여서, 인공의 존재들이 본인들의 존재 기반인 자연에 순순히 순응하도록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케빈 켈리

자동화로 인한 대량 실업과 생명공학에 의한 인간성의 상실이 긴박하고 절박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오늘날, 기술의 진화를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길 제안하는 케빈 켈리의 주장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남길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빈 켈리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생태 운동과 환경 운동이 배경으로 삼았던 대전제에 달린 오래된 의문을 케빈 켈리가 충분히 해명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 연재와 더불어 다음에 이어질 『기술의 충격』과 『인에비터블』을 통해, 모두 케빈 켈리를 충분히 숙고해보길 바랍니다.

 

[1]  자동 제어 시스템의 일종. 수행되고 있는 상태를 감시하고 그 동작을 제어하기 위해 필요한 조정을 하는 장치. 기구나 정지나 운동을 반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위치 결정을 하여 변화량을 비교해서 목적 위치까지 자동으로 제어하고 있는 기구로 된 것 ([네이버 지식백과] 컴퓨터인터넷IT용어대사전, 전산용어사전편찬위원회)

유채운

역술가에 의하면 “시베리아에서는 냉장고를, 사막에서는 난로를 팔아가며 먹고 살 팔자”를 가졌다고 한다. 재주가 많다는 칭찬인지, 남의 등쳐먹고 살 사기꾼의 자질을 가졌다는 의미인지 종종 헷갈린다. 봄과 가을에는 축구장에서, 여름에는 계곡과 강에서,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사느라 10대 때는 책상에 10분 이상 앉아있어 본 적이 없다. 어찌 된 일인지 고등학교 진학 이후 학습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라 평생토록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던 책과 가까이 지내기 시작한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부생 신분이지만, 제도권 교육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음을 깨달아 얼마 못 다니고 휴학했다. 3년 가까이 휴학생으로 지내며 이런저런 일에 기웃거려보는 중이며, 현재는 다른백년의 사무국장이다. 놀고 먹기만 하면서 태평하게 살고 싶은데, 시대가 수상하여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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