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이라는 딜레마
‘개벽’보다 어려운 주제를 주셨습니다. 지금의 저에게 ‘유학’은 ‘개벽’보다 버거운 과제입니다. 요즘 같아서는 한국사회에서 개벽을 알리는 것이 유학을 살리는 것보다 훨씬 쉽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벽은 파릇파릇하고 신선하지만 유학은 진부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어느 철학과 대학생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제가 ‘유학의 현대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까 대뜸 하는 말이 “선생님, 유학을 꼭 살려야 하나요?”라고 반문하였습니다. 오늘날 유학의 위상을 단적으로 대변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학의 미래를 고민하는 분들이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지적하셨듯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대학교수를 비롯한 이른바 지성인들이 조선시대의 선비나 군자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은 오구라 교수님도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지적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역할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금의 학자들은 더 이상 사회적 발언도 하지 않습니다. 진보진영에서 내놓는 정치적 발언도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 듭니다. 중도를 지향하는 개벽의 시점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선생님의 개화좌우파 비판이 훨씬 설득력 있고 날카롭습니다.
실체가 없는 유학
민주화 과정에서의 보여준 ‘군자들의 행진’은 지금은 일반 시민들이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촛불혁명도 교수나 대학생과 같은 이른바 지성인들이 주도한 것은 아닙니다. 제일 먼저 촛불을 든 것은 10여 년 전의 여중생들이었고, 촛불혁명에서의 시민들의 모습은 마치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는 영남만인소의 유생들을 방불케 했으니까요. 2001년에 시작된 생명평화운동은 도법스님을 비롯한 불교계에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유학자라는 의식은 없습니다. 유학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무의식의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을 뿐, 그 실체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여기에 ‘유학의 현대화’의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실체와 씨름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유학연구자들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와 같이 한국사회와 유학의 관계에 대해서 날카로운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냥 유학을 옹호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방법론에 있어서도 객관화가 안 되고 있고요. 전통적인 경학이나 서구적인 철학의 틀에 유학을 가둬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학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페미니스트들은 유학을 극단적으로 혐오합니다. 젊은이들은 유학에 무관심합니다. 한쪽에서는 옹호하고 한쪽에서는 혐오하고 젊은이들은 무관심하고… 이것이 오늘날 유학이 직면한 현실입니다.
무엇보다도 유학을 기치로 내건 어떤 사회적 운동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세월호와 같은 국가적 재난 때에 유림계에서 무슨 공식적인 성명서를 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유학의 가장 큰 강점은 사회적 관심과 참여인데, 그런 역할은 오늘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유학은 그냥 대학이나 연구소나 가문에 갇혀 있는 느낌입니다. 그들만의 ‘연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공학(公學)이나 민학(民學)이 아닌 사학(私學)이나 관학(官學)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기에서 유학이 본래 지니고 있는 생명력과 역동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유학을 배척하자는 게 아니라 오늘날 유학이 보여주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감싸기만 하면 자식을 망치듯이 유학을 감싼다고 해서 유학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전과 창조의 부족
유학연구자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은 유학 연구 분야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다카하시 도오루가 제시한 주리주기론의 틀과 조선학연구자들이 창안한 실학 담론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틀에 문제가 없다면 모를까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관점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판이나 문제제기는 계속되는데 ‘창작’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유학에 관심이 멀어지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이렇다 할 매력을 못 주니까요.
저는 오늘날 유학연구자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선생님이 언급하신 ‘창작’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술이’(述而)는 하는데 ‘창작’(創作)이 부족합니다. 대만의 모종삼, 중국의 현대신유학, 미국의 뚜웨이밍, 최근에는 마이클 퓨엣까지, 외국의 유학연구자들이나 유학사상가들에 압도되어 그들의 학문적 성과를 열심히 ‘학습’하려만 했지, 그들의 방법론이나 문제의식을 참고로 정작 한국유학을 ‘창작’할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학습자’ 의식은 강해도 ‘당사자’ 의식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개벽파가 훨씬 도전적이고 창조적이었습니다. 유학은 이런 개벽정신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유학을 연구한다는 분들에게서 개벽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어렵습니다. 미신적이거나 신비적이라는 선입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직도 갈 길이 먼 느낌입니다.
중국유학과 한국유학
제가 생각하기에 유학연구자나 유학 옹호자들의 거대한 착각 중의 하나는 현대중국의 유학과 현대한국의 유학을 동등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근현대 시기의 한국은 사상적 주도권이 이미 개벽과 개화로 넘어갔습니다. 반면에 오늘날 중국은 유학이 여전히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학의 본고장인데다 국가 차원에서 장려하고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중국은 유학의 뿌리가 대단히 깊고 단단합니다. 제자백가 시절부터 이미 노장(老莊)이라는 견제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불교가 가세하고요. 그래서 유학이 긴장감을 갖고 끊임없이 외연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일찍부터 순자와 같은 사회공학적 유학도 있었고요.
반면에 조선왕조 500년의 유학은 온실 속의 화초였습니다. 사상적 대항축이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도덕유학에 편중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점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유학이 경쟁력을 못 갖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게 베트남유학입니다. 엊그제 베트남사상을 연구하시는 김성범 선생님을 만났는데, 근대 시기에 베트남의 유학자들은 향촌사회로 내려가서 한국의 개벽과 같은 ‘토착적 근대화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한국유학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중국유학보다는 베트남유학을 참고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요? 똑같이 식민지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고, 똑같이 중국의 주변국이었고, 토착적 근대화 운동도 일어났으니까요.
한국유학의 자산(1) – 다산의 기독유학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유학의 자산은 대단히 풍부합니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못 살려내고 있을 뿐입니다. 철학 분야에서는 한형조 교수님의 『성학십도』의 현대적 해석, 이은선 교수님의 유학적 영성의 발견, 이원진 박사님의 퇴계도상학 연구 등의 노작(勞作)이 있긴 하지만, 이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양적으로나 수적으로나 너무나 미미합니다.
한국유학의 자산, 그중에서도 특히 근대 시기의 자산으로 제가 먼저 주목하는 것은 다산 정약용의 ‘기독유학’입니다. 유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천주교적인 인격신(上帝) 관념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한국학자 케빈 콜리는 이것을 ‘기독유학’이라고 했습니다. 다산이 서학적 유학을 모색한 것은 유학의 ‘천(天)’ 관념이 지니고 있는 영성의 약화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천주실의』의 저자 마테오 리치와는 작업의 성격이 다릅니다. 마테오 리치는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유학을 천주교 식으로 해석했을 뿐이니까요. 반면에 정약용은 유학과 서학의 접목과 융합을 시도한 것입니다.
다산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유학의 인간관을 주자의 심성론에서 실천론(行事論) 중심으로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학의 실천성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仁)’에 대한 정의입니다. ‘인’을 선천적으로 구비된 본성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적으로 관계 맺는 가운데서 후천적으로 생겨나는 공공적인 마음으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상제 관념의 수용이 영성적인 수직축을 보완하고 있다면 ‘인’에 대한 재해석은 윤리적인 수평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다산은 이처럼 수직축과 수평축을 보강하여 유학의 부활과 완성을 꾀했던 것입니다. 인격적 하늘 관념을 선호하고 사회적 공공성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의 성향을 잘 파악한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한국의 많은 유학연구자들이 다산의 후예라는 점입니다.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의 김승혜 명예교수님은 고대 유학을 연구하셨는데 천주교 수녀님이십니다. 같은 서강대학교 철학과의 정인재 명예교수님은 양명학을 연구하셨는데 가톨릭 신자이십니다. 제 친구인 김동희 박사는 신학과 유학을 연구했는데 괴산의 작은 교회의 목사입니다. 이은선 교수님 또한 신학자이면서 유학연구자이십니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저는 이분들의 선구자가 다산 정약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학의 전통이 깊으면서 그리스도교가 가장 성행한 한국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다산 정약용은 이미 현대유학을 시도하였고 실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양도 하는 그리스도인, 천리(天理)뿐만 아니라 인격적 하느님도 섬기는 유학자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저는 이 모델이야말로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한국적 유학이자 한국적 그리스도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 동학까지 가미되면 더 좋겠지요. 실제로 이은선 교수님이나 김동희 목사는 동학에도 조예가 깊습니다. 『농촌과 목회』를 간행하시는 한경호 목사님도 다음호부터 동학연재를 기획하고 계십니다. 한국의 그리스도교인들이 동학에 대해서 좀 더 알 필요가 있다고 하시면서요.
한국유학의 자산(2) – 최한기의 기학
정약용에 이어 두 번째 한국유학의 자산은 혜강 최한기라고 생각합니다.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와 동시대의 인물인데, 유학을 바탕으로 서학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같은 서학이라고 해도 최제우가 천주교의 자극을 받았다면 최한기는 천문학과 같은 과학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강조하시는 과학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중시한 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한기는 ‘리’가 아닌 ‘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유학을 모색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학문을 ‘기학’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아마 조선시대 유학자 중에서 자신의 학문을 이름 지은 자는 최한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학을 받아들여 ‘기학’을 모색했다는 점에서는 조선후기의 담헌 홍대용의 후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전통적인 유불도 삼교(三敎)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학문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는 점을 보면 최한기와는 또 다른 길을 모색하려 한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이런 기학의 흐름은 정약용과 더불어 오늘날 한국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20세기에 이런 작업을 계승하려 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기철학자’라고 자칭한 도올 김용옥 선생, 기학을 중심으로 동서철학을 아우르려고 한 전 서강대 철학과의 이정우 교수, 『기학의 모험』의 집필자인 김교빈 교수와 김시천 교수 등이 그런 분들입니다. 다만 이 흐름이 오늘날에는 활발하지 않고, 집단지성의 작업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반면에 중국의 현대신유학자들 중에서 과학을 접목시켰다는 말은 못 들어 봤습니다. 풍우란, 모종삼, 당군의, 서복관, 방동미, 뚜웨이밍 등등, 모두 유불도 삼교와 서양철학에 능통한 인문학자들입니다.
한국유학의 자산(3) – 개벽파의 갱정유도
작년 크리스마스 때 일본 토호쿠대학에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근대성」을 주제로 한일공동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와 공동주관으로 열렸는데, 이때 개벽종교 연구자인 윤승용 선생님께서 「갱정유도의 해원과 개벽의 만남」을 주제로 발표를 하셨습니다. 요지는 1951년에 시작된 갱정유도(更定儒道)가 도덕문명을 지향한 개벽파의 막내둥이이고, 한국 전쟁 이후에 냉전체제에 정면으로 반대한 유일한 개벽종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발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1965년의 ‘서울시위사건’입니다. 갱정유도인 500여 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통일과 평화를 위한 민족선언 4대 항목>이 수록된 유인물 30만 장을 배포하다 연행된 사건입니다. 이 선언문에 “원미소용(遠美蘇慂)하고(=미소의 종용을 멀리하고) 화남북민(和南北民)하자(남북민이 화합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당시 정부는 이 문구를 소련을 추종하자는 말로 해석하여, 시위자 500명을 전부 연행 수감했다고 합니다. 윤승용 선생님은 이 사건을 “한국전쟁 이후 민족분단의 냉전체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저항한 첫 민중운동”이라고 높게 평가하셨습니다.
저는 오늘날 유학은 이런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이나 가문에 안주하지 말고 사회로 나와야 합니다. 촛불을 들라는 게 아니라 고전을 드는 것입니다. 지금의 인문학 붐에 부응해서 시민 사회에서 유학고전운동을 벌이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주말에 성경을 강론하시듯이 유학연구자들이 시민들을 상대로 무료고전강좌를 여는 것입니다. 그래야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졌던 유학이 다시 되살아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스티브 비코가 흑인의식운동을 벌이고 손병희가 민족의식을 고취하려 했듯이, 21세기에 유학의식운동을 전개해 보는 것입니다.
한국유학의 자산(4) – 이남곡의 시민유학
마지막으로 제가 한국유학의 자산으로 꼽는 것은 지금도 활동 중인 인문운동가 이남곡 선생님의 『논어 : 삶에서 실천하는 고전의 지혜』입니다. 반세기 동안의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의 생생한 경험이 담겨 있는 『논어』 해석입니다. 그래서인지 학자들의 해설서에서는 맛보기 힘든 시민사회의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학생들에게 과제물로 내서 읽혀 보아도 반응이 좋았고요. 제가 꼽은 이 시대의 ‘개벽유학’입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유학을 유교로부터 구출해서 시민사회에 되살리려고 하는 해석학적 작업입니다. 공자를 꼰대 노인이 아닌 현대 시민으로 부활시키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공자가 말한 ‘인(仁)’을 ‘우주적 생명력’으로, ‘불인(不仁)’을 우주적 생명력을 해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11쪽).
확실히 주자학에서도 ‘인’을 “천지가 만물을 낳은 마음”(天地生物之心)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천리(天理)로 수렴되는 느낌입니다. 반면에 ‘우주적 생명력’은 동학에서 말하는 ‘하늘님’의 뉘앙스를 줍니다. 그런 점에서 동학적 『논어』 해석이고, 개벽유학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은선 교수님도 ‘인(仁)’을 신학적으로 해석해서 ‘생물여성영성’이라고 하셨고(『한국 생물여성영성의 실학』), 오구라 기조 교수님은 ‘인’을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생명력’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새로 읽는 논어』). 이 모두는 유학을 현대화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논어』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관을 ‘자기를 고집하는’ 자아가 아니라 ‘자기를 비우는’ 자아로 해석하는 부분은 장자에서 말하는 허심(虛心)이나 무기(無己)의 성인관과 상통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상대에게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기를 비워서 타자를 수용하려는 태도입니다. “유학=꼰대”라는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 요청되는 인간관이라고 생각됩니다.
개벽고전을 만들자
마지막으로 제가 최근에 우연히 접한 책 중에 『동학』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1923년에 퇴계 이황의 후손인 이상호 선생이 편집한 책인데, 우리가 아는 ‘동학’의 경전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 유학자들의 말씀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부제가 “퇴계학과 실학을 계승한 청소년 인성교육서”입니다. 그래서 ‘동학’이라고 한 것입니다. 일종의 ‘한국학’이라는 의미이지요. 20세기 소학 교재인 셈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이런 한국판 고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유대인에게 『탈무드』가 있고, 서양인에게 『성경』이 있고, 중국인들에게 『논어』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국민고전’이 한 권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다만 그 범위를 유학에만 한정시키지 말고, 원효의 「화쟁론」이나 최치원의 「난랑비서문」, 그리고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나 세종의 「훈민정음 해례본」, 나아가서 개벽파의 핵심구절이나 「기미독립선언문」 등, 한국사상을 대표할만한 핵심 사상들을 망라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시는 소학 3.0이나 개벽학당에도 이런 텍스트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제도권 교육에도 커리큘럼으로 들어가면 좋고요. 기왕이면 조선시대처럼 동네마다 개벽서당 같은 것이 있어서 이런 고전 강독이 생활화되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시민사회의 한국학운동이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학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이런 운동에 앞장서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개벽학당을 중심으로 이런 고전운동을 전개해 보고 싶습니다.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 '다시개벽' 편집인. 지구지역학 연구자. 서강대와 와세다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였고,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한국 근대의 탄생'과 '개벽파선언'(이병한과 공저),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을 저술하였다. 20∼30대에는 노장사상에 끌려 중국철학을 공부하였고, 40대부터는 한국학에 눈을 떠 동학과 개벽사상을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1990년대부터 서양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지구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관된 문제의식은 ‘근대성’이다. 그것도 서구적 근대성이 아닌 비서구적 근대성이다. 동학과 개벽은 한국적 근대성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고, 지구인문학은 ‘근대성에서 지구성으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양자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지구지역학’을 사용하고 있다. 동학이라는 한국학은 좁게는 지역학, 넓게는 지구학이라는 두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장차 개화학과 개벽학이 어우러진 한국 근대사상사를 재구성하고, 토착적 근대와 지구인문학을 주제로 하는 총서를 기획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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