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역(侍易)이라는 제목으로 다른백년 연재를 시작합니다.
2022년 8월 22일 ‘시역(侍易)’이라는 개념어를 처음 생각하고 이화서원 카페에 이 언어를 처음 생각한 날을 기념하는 의미로 글씨를 써서 남겼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시간이 지난 뒤에 누군가 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역(侍易)’의 창조자로 기억하게 될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2016년에 ‘시로 읽는 주역(내일을 여는 책)’ 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제 삶은 이 책이 있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제 삶의 내용을 바꾼 책입니다. 책을 낸 뒤로 꾸준히 주역 강의를 했습니다. 주역 강의는 제 생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역의 동아시아 우주론을 내면화하는 분들이 생겨났고, 같이 공부하신 분들은 하나 둘 이화서원(頤和書院)이라는 인문 공동체 운동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같이 모여서 생활을 함께 하기도 하고, 일년에 몇 차례의 공부에 참여하기도 하고, 이화서원 공간과 운영을 위한 후원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로 읽는 주역 이후 제 삶은 주역에 기반을 둔 다양한 과제가 펼쳐져 가고 있습니다. 저도 이 길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다 알 수 없습니다. 이화서원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역동적인 장(場)이 만들어 졌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이 장(場)안에서는 거의 매일 매일 다 상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저는 그 역동성이 가지는 매 순간의 의미를 읽어내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책인 주역은 길흉을 읽어내기보다는 역동적인 변화의 장을 운영할 수 있는 지혜와 감각을 가지게 돕는 책입니다. 저는 지난 7년 동안 그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시로 읽는 주역을 기반으로 하면서 역동적인 리듬을 더한 새로운 주역 이론을 만들고 싶어 졌습니다.
시역(侍易) 기획은 두 방향에서 진행될 겁니다. 첫 번째는 제가 쓰는 글입니다. 다른백년과 함께 하는 이 기획은 연재가 끝나고 나면 한권의 책이 될 겁니다. 두 번째는 우리 삶의 문제를 다루는 시역장(侍易場) 집단 상담입니다. 10명 정도의 집단을 만들어 주역에 기반을 둔 삶의 이야기를 서로 듣고 답을 찾아가는 워크샵입니다. 앞으로 쓰게되는 시역 연재에서 살아있는 역동성이 느껴진다면 그 중 상당 부분은 시역장(侍易場)에서 오는 통찰입니다.
시역은 ‘21세기에 적합한 주역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저의 성찰 결과입니다. ‘시역侍易’ 이라는 언어는 동학의 중요한 개념어 중 하나인 시천주(侍天主), 하늘님 모심의 의미와 주역의 변화, 역(易) 개념을 통합한 주역 해석을 목표로 합니다. ‘모심의 주역’이라고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주역은 각 시대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뛰어난 해석가들의 재해석이 늘 있어왔습니다. 대부분 주역이라는 이름 뒤에 ‘해설, 강의, 정의’ 등의 말을 붙이는데, 조선 후기의 주역 사상가 일부 김항 선생은 자신의 주역 체계를 정역(正易)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정의하고 주역 팔괘의 괘상도를 다시 그렸습니다.
‘시로 읽는 주역’을 낼 때 주역 원문 해석에서 길흉의 개념을 다시 다루고 싶었지만그 당시 제 실력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길흉은 상대적 개념이어서 시대와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3천년 전 주역이 편집되던 시대의 길흉과 우리 시대, 그리고 미래의 주역을 생각해 볼 때 길흉 개념을 아예 빼는 것이 더 효율적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원문 내용은 가능한 손대지 않겠습니다. 해석만 새롭게 합니다. 그러나, 어떤 영역, 특히 여성 의식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원문의 수정도 시도하겠습니다. 3천년의 시간을 두고 인간 의식 변화를 성찰해 보면 대부분 우리 의식은 3천년 전에서 크게 진보하지 못했습니다. 눈에 뛰게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은 여성 의식입니다. 주역을 길흉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시적 상상력을 더해서 아름답게 읽겠습니다.
매번 괘 2개를 같이 읽어서 33회 정도의 연재를 하고 싶습니다. 매년 한 해가 시작하기 전에 한 해의 주역괘를 읽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2019년 12월 31일에 2020년을 예측하면서 주역 수괘(需卦)를 읽었습니다. 수괘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다림은 우리를 조급하게 하고 여러 문제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삶의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음식을 먹고 즐거움을 나누며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가게 합니다.
수괘는 이런 마음을 ‘음식연락(飮食宴樂)’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기쁨의 공동체에서는 누구든 환영받고 받아들여지며 새로운 상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수괘에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오시더라도 모시고 공경하며 받아들이자.(不速之客來敬之終吉 불속지객래경지종길)’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2020년에 우리가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인류사적인 사건이 시작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를 새로운 상상으로 이끌게 되는 데 이 일을 대할 때 두려워하게 되면 길을 잃지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더라도 모시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삶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 예측은 보름이 지나지 않아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정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였습니다. 이 이후에 이어지고 있는 일은 우리들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2022년을 앞두고는 천지비(天地否)괘를 읽었습니다. 비괘(否卦)의 핵심 메시지는 천지불교(天地不交)입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지 않아서 세상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만나지 못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도 당연히 위험하죠. 20대 대통령 선거는 누가 당선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0.7%의 차이입니다. 완전히 진영과 진영으로 나누어진 결과였습니다. 사회는 적절한 중간 영역이 있어야 균형을 잡을 수 있는데 이 영역이 힘을 읽으면서 사회 전체에 불안정과 불균형이 심해지고 양 극단으로 몰려가면서 안전하지 못하게 되고 위험이 특별한 공간과 시간이 아니라 일상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10.29 참사는 길을 걷는 일상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늘 한해의 주역괘를 읽기 전에 한해 전에 쓴 글을 다시 읽게 되는데 이번에는 내가 쓴 글을 내가 읽는데도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을 느껴야 했습니다. 시대의 조건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무기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해의 주역괘를 읽을 때는 늘 긴장과 이완을 반복합니다. 한 해의 흐름에서 긴장되는 상황을 읽었으면 한 해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야기에서 찾습니다. 삶은 어느 하나의 흐름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음양이 교차하며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갑니다.
2023년 올해의 주역괘는 가인괘에서 읽었습니다. 가인괘는 아름다운 언어가 가득한 이야기입니다. 가인괘를 하나 하나 읽어 봅니다. 이 번역은 제가 다시 쓰고 있는 시역(侍易)의 번역입니다. 심리학의 언어와 동아시아 여러 경전의 지혜를 빌려온 번역입니다. 한문의 발음도 달았습니다. 한문도 같이 읽어 보세요.
䷤
풍화가인(風火家人). 모심과 살림
家人 利女貞. 가인, 이여정
가인, 우리 안의 여신, 여성성을 공경히 모신다.
彖曰 家人 女正位乎內 男正位乎外 男女正 天地之大義也.
단왈 가인 여정위호내 남정위호외 남녀정 천지지대의야
여성의 자리를 내(內)라고 한다. 남성의 자리를 외(外)라고 한다. (안사람, 바깥사람의 어원) 남성과 여성이 자기 자리가 있는 것이 하늘과 땅이 서로 공존하는 마음이다.
家人有嚴君(嚴親)焉 父母之謂也. 父父子子兄兄弟弟夫夫婦婦 而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
가인유엄군(엄친)언 부모지위야. 부부자자형형제제부부부부 이가도정 정가이천하정의.
가인은 원칙을 세우는 사람이다. 집에서 이런 원칙을 지켜가는 사람들을 엄부(嚴父)와 엄모(嚴母)라고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형과 동생의 자기다움이 있고, 남편과 아내가 해야 할 역할이 다르다. 모두가 각자 ‘자기답게’의 길을 걸으면 개인과 사회는 안정된다.
象曰 風自火出 家人 君子以 言有物而行有恒.
단왈 풍자화출 가인 군자이 언유물이행유항
바람이 불어와 불이 일어나듯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바람이 세상을 따뜻하게 품어 안는다. 따뜻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 나는 내가 말한 것에 대해 실제적인 결과, 물질를 만들어 내고 매일 매일 변함없는 삶을 산다.
初九 閑有家 悔亡. 초구 한유가 회망
象曰 閑有家 志未變也. 단왈 한유가 지미변야
삶의 울타리를 치고 외부의 위험과 추위, 간섭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안전한 공간을 만든다. 이렇게 안전한 공간이 있어야 내 삶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다.
六二 无攸遂 在中饋 貞吉. 육이 무유수 재중귀 정길
象曰 六二之吉 順以巽也. 단왈 육이지길 순이선야
내가 꼭 밖으로 나돌 이유가 무엇인가?
모심과 살림의 공간, 부엌에서 세상을 볼 수 있다. 천지부모(天地父母)님의 은혜인 귀한 밥饋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먹는다.
九三 家人嗃嗃 悔厲吉 婦子嘻嘻 終吝.
구삼 가인학학 회려길 부자희희 종린
象曰 家人嗃嗃 未失也 婦子嘻嘻 失家節也.
상왈 가인학학 미실야 부자희희 실가절야
엄할 때는 엄해야 한다. 좋기만 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절도(節度)라는 것이 있다.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六四 富家(自富) 大吉. 육사 부가(자부) 대길
象曰 富家(自富)大吉 順在位也. 상왈 부가(자부)대길 순재위야
내 삶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고 일어선다. 자유를 위한 경제적 힘을 창조한다. 그래야 내 삶의 자리와 역할이 생긴다.
九五 王假有家 勿恤 吉. 구오 왕가유가 물휼 길
象曰 王家有假 交相愛也. 상왈 왕가유가 교상애야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야 할 사회적 질서가 있다. 우리는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서로 마주보며 사랑한다.
上九 有孚威如 終吉. 상구 유부위여 종길
象曰 威如之吉 反身之謂也. 상왈 위여지길 반신지위야
삶을 통해 우리는 서로 믿고 사랑했고 지켜야 할 질서를 존중했다. 그렇지만 내가 다 알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잘못은 있다. 삶의 빛은 그림자를 동반한다. 나는 나를 다시 돌아본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조금 더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家道正 / 家節 가도정 / 가절
삶의 질서입니다. 부정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옳고 그르고 선하고 악하고를 넘어서 삶에는 삶의 질서가 있습니다. 이 질서를 인정해야합니다. 이런 질서에 대한 인식은 보수와 진보, 남성과 여성 이런 관점으로 나누면 안됩니다. 이 질서를 무너뜨리면 대부분 길을 잃고 반동을 불러오게 됩니다.
言有物而行有恒 언유물이행유항
말하고 생각한 것을 물질화하고 일상적인 삶의 연속성으로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하늘에 떠 다니는 생각을 땅에 자리잡게 하는 일, 자기 삶의 일상 과제로 만들어 그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일을 만듭니다. 이걸 누가 하기 싫어서 안하겠어요.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거죠. 가인괘는 의식의 물질화 과정을 안내합니다. 2023년은 이런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회가 열립니다.
閑有家 志未變也 한유가 지미변야
삶의 울타리를 치고 외부의 위험과 간섭에서 안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지쳤다면 위험한 겁니다. 무조건 중단하고 쉬어야 합니다. 최근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총리직 사임 기자회견을 하면서 ‘지금 내 연료통에는 연료가 다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참고 인내하는 것이 길이 아니라 안전한 공간으로 물러나서 자기를 보호해야 내 생각도 보호됩니다.
在中饋 재중귀
이 중에서 귀饋 이 글자 정말 중요합니다. 먹을 식(食)과 귀할 귀(貴) 두 글자를 모아 만든 글자입니다. 요리를 해서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밥을 나누어 먹는 사회적 운동이 다양한 형태로 일어날 겁니다. 지금은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기보다 밥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의 사회적 힘이 더 강해지는 시간입니다.
富家(自富)
부(富)는 우리 시대의 꿈 중 하나죠. 가인괘에서 말하는 부(富)는 돈으로만 구성된 부가 아닙니다. 경제적 힘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 그리고 영성이 통합된 부(富)입니다. 노자는 이런 부(富)를 자부(自富)라고 읽었습니다.
交相愛 교상애
서로 사랑하자로 읽을 수 있는 너무나 쉬운 글이죠. 가인괘의 흐름 속에서 읽는 교상애는 단순히 서로 사랑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애(愛)라는 글자의 갑골문은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있는 두 사람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애(愛) 글자의 가운데에는 마음을 상징하는 심장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사랑의 시간입니다. 언제까지 우리 삶이 적대감에 휩싸여 있어선 안됩니다. 사랑하도록 이끌어 가지 못하는 모든 생각은 다시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사랑의 감정을 회복하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시간이 오게 될 겁니다.
反身 반신
자기를 반성하고 돌아보는 일은 그가 아무리 선한 삶을 살더라도 해야합니다. 모든 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빛은 그림자를 불러들입니다. 수신(修身)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로 나아가는 분위기라면 반신(反身)은 돌아보는 마음입니다.
시역 연재의 첫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음 연재부터는 건곤(乾坤)에서부터 시작하는 주역 64가지 이야기를 하나하나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어떤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주역의 눈으로 읽어야 할 때는 그 부분을 읽겠습니다. 저도 이 글이 어떻게 나아갈지 모르고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모릅니다.
하늘이 이끄시는 길을 잘 따라 가보겠습니다. 시역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있어서 몸이 무거웠습니다. 연재의 시작이 조금 더 빨랐어야 하는데 제가 스스로 설정한 부담에 제가 눌렸습니다. 앞으로는 가볍게 가볍게 하겠습니다. 시작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3. 02. 16. 빛살 모심
<2023 몸의 주역> 그린 이
김은정 (agastar) : 아름다움(앎+다움)을 탐구합니다. 내 안의 spirit을 발견하여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창조적 사건을 만듭니다. 이 그림은 주역 37괘 풍화 가인風火家人: 사랑으로 부는 바람, 신의 가슴으로 품는 불을 표현적 기법으로 작업하였습니다. 이 <2023 몸의 주역> 작업의 일부입니다.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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