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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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서 노를 저을 때면 마치 춤을 추는 것만 같다. 조각배의 흔들리는 진동이 내 몸으로 전달된다. 엉덩이는 들썩이고, 두 팔은 휘적이며 물살을 가로 지른다. 물의 리듬은 정박과 엇박을 오가며 마치 굽이치는 강물이 되는 것 같다. 물의 패턴은 단조롭지 않다. 고요함과 급박한 물살이 오가며 아름다운 멜로디가 된다.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물의 길을 하나의 악보처럼 상상해본다. 교향곡의 3악장처럼 연주한다. 강물은 곡성에서 시작해서 광양까지, 다시 남해부터 쓰시마까지, 그리고 동해와 일본해까지 진행된다. 물의 길이 흘러가 교토의 항구 도시 마이즈루까지 이어진다. 마이즈루의 경험이 여정의 큰 동력이 되고 있다.

2017년 여름, 나는 교토의 산 속에서 일본의 히피 친구들을 만났다. 음악과 여행을 사랑하는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함께 제주 평화 축제를 참여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일본의 마이즈루라는, 내겐 너무나 생소했던 이름의 공간까지 이어졌다. 나의 친구 무라모토 가족은 오랜 시간 산 속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우연이고 운명 같이 마이즈루라는 지역을 만났다. 작은 일본의 변방 도시는 태평양을 마주했다. 풍요로운 신화와 역사가 있었다. 그 역사 속에는 전쟁의 흔적 또한 깊게 남아 있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일본의 정치 역사의식에 대해 쉽게 벗어나기 힘든 편견이 있다. 그러나 수많은 진보적 견해와 다양한 결의 사람들이 두 나라 똑같이 존재한다. 국적에 갇힌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일본 친구들도 늘 전쟁을 성찰하는 사람들이었다. 무라모토 가족은 음악의 힘으로 평화를 간절히 노래했다.

무라모토 가족은 평화적 실천을 음악의 힘으로 표현하며 살아갔다

1945년 8월 24일 마이즈루의 바다에는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가 침몰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배에는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수천명이 탑승했다. 그들의 대다수는 아오모리의 강제징용 노동자들이었다. 일본의 북부를 떠나 조선의 남쪽 부산으로 입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돌연 항로를 남쪽으로 바꿔 교토를 향했다. 그리고 마이즈루 항에서 폭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일본의 승무원은 출항을 반대했고, 마이즈루 어부들은 바다로 헤험쳐 나가 구조를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지금도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 아비규환의 시간과 전쟁의 트라우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이즈루는 매년 우키시마마루호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나의 일본 친구들은 4.3을 기리는 제주평화축제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일본 친구들과 우키시마마루 사건을 기리는 평화 축제를 기획했다. 일본과 한국의 친구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을 췄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과 우키시마마루의 비극을 향한 치료 작업의 형태였다. 내겐 이 여정이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향한 치유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나는 군대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 우울, 공포로 고통받고 있었다. 2년의 기억은 끊임없이 살아났다. 나는 사회와 군대를 구별하지 못하고 도망치고 있었다.

의학자 베셀은 저서 ‘몸은 기억한다’를 통해 트라우마에 대한 탁월한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트라우마는 몸, 마음, 뇌를 통한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특히 트라우마에 대한 상향식 접근과 하향식 접근의 중요성을 말한다. 상향식 접근이 신체적 감각과 운동 경험을 통한 치유라면, 하향식 접근은 사건에 대한 이성적, 객관적 이해를 통한 치유다.

마이즈루 추모 음악 축제의 포스터. 어설픈 모양이더라도 손으로 직접 그리는 과정이 중요했다
추모 음악회 당일 사진. 누군가의 노래를 대신 부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음악을 직접 표현한다. 사진은 두 명의 일본인과 두 명의 한국인이 함께 행사를 시작하는 세레머니

마이즈루라는 공간에서, 나는 일본과 한국의 친구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내 몸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공간이 되었다. 몸의 감각 운동과 물의 연결성은 내겐 치유의 핵심 키워드이다. 우리 집 앞에서 섬진강이 흐른다. 그리고 강과 바다는 서로 흐른다. 다시 이 흐름은 일본의 마이즈루 항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의 길은 치유와 연결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나, 너, 우리라는 개인은 사회, 나라, 지구로 이어진다. 내가 노를 젓는 것은 하나의 추도가 된다. 우키시마마루라는 전쟁을 향한 추도, 그리고 나 스스로의 군 트라우마를 위한 추도가 된다.

마이즈루로 이어지는 길은 몸의 여정인 동시에 치유와 연결의 여정이다. 물의 길은 치유와 돌봄의 움직임이다. 그리고 나의 지나간 트라우마, 지금의 치유,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실처럼 이어진다. 나는 동아시아의 붉은 실 신화를 떠올린다. 새빨간 인연의 실이 물 위를 흐른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

고석수

대만, 일본, 중국, 제주 강정 등, 동아시아의 섬에서 다양한 형태로 살아왔다. 동아시아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모시는사람들)을 출판했다. 전남 곡성에 산다. 몸, 마음, 지구를 아우르는 항해학교를 만들고 있다. 물의 길을 다시 꿈꾸는 프로젝트이다. 배를 타고 섬들을 잇는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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