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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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상류를 거슬러 오르다

명상을 시켰다. “철학과는 졸업하면 뭐 해요?”하고 묻던 ‘그 학생’[1]에게. 문화예술 교육이란 목표 아래 모여, ‘요리, 제작, 미디어’라는 각 주제를 탐구하고 실행하는 배움터에서. 다른 강사 동료와 함께 첫주의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짰는데 그곳에서 나는 소년들의 눈을 감겼다. 그 무렵 나는 내가 좋아하고, 그것으로 득을 봤으며, 앞으로 더 잘 하고 싶은 것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이전 기수에서는 보통의 명상이 권하는 대로, 정적인 앉은 자세를 취하게 하고 내레이션을 읊었다. ‘자애심(慈愛心) 명상’이란 제목을 달았고, 모두의 마음 속에 잠재된,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을 꺼내서 느끼도록 했다.

이번 시즌에는 프로그램을 한층 발전시킨답시고 이름도 길게 늘였다. 그동안 지구대학에서 배운 지구적 내용들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녹였다. 그리고 ‘비-인간 존재’가 되어보는 경험을 동작으로 집어넣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은 ‘자애심+ 생동하는 명상’. 먼저 눈을 감고 태초의 시간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에너지가 뭉치고 작은 물질이 다져져 지구가 ‘태어난’ 순간을 상상해보고, 그 지구의 바위를 흉내내도록 했다. 요가의 여러 동작을 끌어왔는데, 바위에게는 ‘아기 자세’, 나무는 ‘나무 자세’ 혹은 ‘산 자세’를 할당했다. 자세를 취하고 감각을 따라 느낄 대상은 총 네 존재였고, 그 중에서 두 번째는 대륙 사이 대양에서 살아가는 ‘물살이’[2]였다.

물살이는 ‘스핑크스 자세’ 혹은 엎드린 자세를 취하게 했다.[3] 수면 위에서는 햇빛이 비쳐들고, 온몸을 감싸는 물은 차갑거나 미지근하다. 물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기 위해 그들은 아가미와 지느러미를 개발하였다. 아가미는 산소를 들이마셔서 다세포의 ‘큰 몸’을 유지하도록 해준 것이었다. 지느러미는 그들이 물살을 거슬러 먼 바다 혹은 강 아래를 이동할 수 있는 ‘손발’이었다. 이때 ‘손발’이란 표현은 포유류를 중심으로 한 말이 아니다. 이번 서평의 대상인 『내 안의 물고기』의 저자 닐 슈빈(의 팀)이 세운 큰 업적은 바로 이 부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의 손은 어류의 지느러미부터 ‘뻗어나왔다’.

 

화석과 배아는 말한다

우리에게 손을 주었다고 하니 감사한 일이다. (그 감사함을 ‘두 손 모아’ 느껴보자.) 하지만 그들 ‘손 발명가’들이 거친 자연 속에서 한 번도 대가 끊기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다’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그들이 물려준 부분을 가지고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나의 손이 다른 경로를 거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그 보장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고생물학과 발생유전학이 수행한다. 저자 닐 슈빈의 연구실에는 흥미롭게도 화석을 보관하는 진열대와 배아를 관리하는 냉장고가 함께 있다고 한다. 그 둘은 상보적인 관계를 이루어 생물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고생물학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찾는다. 그 직업은 한편으로 특정 생물을 계통발생적으로 분류한 지도를 펼친다. 예를 들어 인간은 다세포 생물이고, 좌우가 대칭이며, 척추가 있고, 네발(부속지)이 있으며 중이(중간 귀)뼈가 3개다. 이때 다세포성, 좌우대칭성, 척추를 가졌지만 네발이 ‘없는 생물’과 ‘있는 생물’ 사이에는 그 중간 형태의 생물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빈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 고생물학자는 그것들이 있을 법한 지역을 지도에서 찾는다. 그런 다음 조사하고 발굴한다. 앞서 말한 저자의 업적은 2004년에 북극 지역에서 발굴된 ‘틱타알릭’이다. 그것은 척추 이외 뼈가 ‘없는’ ‘유스테놉테론’과 뼈가 2개 ‘있는’ ‘아칸소스테가’를 잇는다.

살아있는 틱타알릭을 가상으로 복원한 사진 /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iktaalik
틱타알릭을 발견하고, 그것의 머리뼈를 들고 있는 닐 슈빈의 모습 / 출처: https:// en.wikipedia.org/wiki/Tiktaalik

발생유전학자는 현재에서 공통된 과거를 찾는다. 그들은 현 시점까지 번식을 하며 살아있는 생물을 대상으로 연구를 벌인다. 수정된 세포가 성체가 되기까지의 단계에서 DNA에서 벌어지는 일, 세포분열의 과정과 초기의 배아구조 같은 것들을 조작하면서 관찰한다. 유전자 하나를 살펴보자. ‘틱타알릭’이 자라면서 척추가 아닌 뼈를 뻗어낼 때 그리고 이후에 작은 뼈들이 더 붙어서 ‘가락’과 ‘목’을 이뤘을 때, 그들 모두를 제 순서대로 배열되게 하는 것은 ‘헤지호그 유전자’이다. 그것은 ‘극성 활성대’(ZPA)에 의해 활성화는데, 그 단백질을 떼어서 부속지를 가진 모든 생물의 특정 지점에 붙이면, 극점이 두 개로 늘어나 그 부위도 거울 상으로 두 배 분화된다.

 

인간은 물고기의 미래

과거에 개발되어 현재까지 전해지는 생물학적 유산은 팔다리가 전부가 아닌 것이다. 지금은 물고기와 인간의 몸이 많이 달라졌지만, 근본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아직도 같은 과거를 공유한다. 이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고 우리는 먼 조상과 후손이 아닌 현재의 친척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인간 개체가 문화적 기술로 자기 유전자를 직접 편집하지 않는 이상 유전자가 스스로를 재설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물고기는 3억 8만년 동안 문제 없이 작동하는 명품 생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감사할 뿐만 아니라 정말 대단하다! 하긴, 이것이 그들만이 오롯이 차지할 공은 아닐 것이다. 영국의 해부학자 오언이 제시한 ‘신의 원형’[4]은 없다. 원형 이전에 수많은 판본과 수정본을 거듭한 신적인 자연의 원리가 있을 뿐이다.

우주가 펼쳐낸 진화의 역사는 그 밖에도 현란한 작품이 많다. 파충류의 비늘, 조류의 깃털, 포유류의 젖샘, 인간의 머리카락. 이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어류가 창작한 ‘이빨’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빨을 제작하는 원리는 피부 두 층을 접고 그 안팎을 다른 단백질로 채우는 것이다. 이 원리를 활용하고 또 활용해서 각 종의 특성을 이루는 물질들이 생겼다. 생명의 원리는 어찌나 알뜰한지 유용하다 싶으면 옛날 어느 때의 물건이라도 버리지 않는다. DNA를 가진 생물에게는 모두가 공유하는 ‘호메오 박스’가 있는데, 이를 포함한 혹스(Hox) 유전자는 무척추동물에게도 발견된다. 어, 이 유전자 파리 말미잘 너네두…?

그러한 뿌리 깊은 공통점을 놓고 보면 인간이 다른 생물과 변별되는 차이란 별 게 아닐지 모른다. 얼굴을 보자. 눈코입은 물고기에게도 있다. 다만 우리가 그들과 대면하고도 친밀감을 느끼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은 눈꺼풀이 (늘 물 속에서 씻겨지니 필요가) 없어서 눈을 깜박이지 않고, 코와 입도 ‘인류’만큼 튀어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차이는 우리가 그들을 동등한 존재로 대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부수적이다. 눈은 포유류가 유인원이 되는 과정에서 색각을 하나 더 추가했고, 코는 물 속 분자를 감지하는 수용체가 공기 중의 분자를 포착하도록 좀 더 많이 늘어났으며, 귀는 귓바퀴만이 추가되었다.

 

물고기는 아직 ‘밖’에 있다 

그리고 공통점이 아닌 차이점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책의 제목처럼 ‘내 안의 물고기’라고 하면, 그것은 현재의 인류가 어류의 산물을 흡수하여 상위의 존재로 발전했다고 받아들이기 쉽다. 물고기의 미래는 인류’였으므로’ 꼭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미래의 물고기’가 곧 인류인 것은 아니다. 물고기는 ‘다른 미래’ 또한 살고 있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5]에 따르면, 현 어류의 50%에 해당하는 부류는 ‘사람상과’가 출현하던 시점에 다양화의 정점을 찍었다. 현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시점 이후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진화를 이어나갔다. 생물은 멸종되기 전까지는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계속해서 각자의 길을 갈 따름이다.

출처 : 알라딘

환경에 적응한 ‘최선’의 결과는 상황에 대한 ‘최적화’를 의미하기에, 결과물이 꼭 복잡하거나 ‘고등’할 필요는 없다. 사실 인간은 ‘3색각자(trichromat)’이지만 물고기는 예민한 시각이 필요하기에 ‘4색각자(tetrachromat)’이다. 그렇다고 인류가 퇴화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이 어류를 좀 더 존중하는 태도로 다가갔을 때, 그들을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로서 대할 때 물고기는 놀랄 만한 지혜를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민주적 정치 체계를 가진 집단이 있고, 다른 종들과 장기적 관계를 이루어 협력과 배신이 판치는 사회가 있으며, 짝짓기 장소와 이동 경로 등 세대를 거듭해 전수되는 문화가 있다.

이상의 내용은 ‘동물행동학’과 ‘인지생태학’이 밝혀내고 있는 최근의 지식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 ‘사회’ ‘문화’하는 것들은 인간의 기준에서 발견하고 판단한 것들이기에 그들의 입장에서 알아내야 하는 미지의 세계는 광대하리라 생각된다. 결국 그들은 우리 안에도 있지만 밖에도 있다.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의 바깥에 상주하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계속해서 묻는 것이다. 인간은 최고 오래된 존재는 당연히 아니고, 혼자 ‘최신의 존재’인 것도 아니다. ‘내 밖의 물고기’는 물 밖의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것이 금세기 안에 사라질 수 있는 허망한 것임을 상기시킨다. ‘땅살이’는 물살이를 보고, 자연의 흐름을 더 많이 배워야 한다.

 

 

[1] 다른백년, 꿈과 희망이 가득한 양자세계, 2022.7.22.

[2] 한겨레, 물고기가 아니라 물살이다, 2021.4.4. 이 글을 참고해서 ‘물살이’라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3] 이 세상에는 물살이가 많다.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물살이’는 경골어류를 기준으로 한다. 한편 세상에는 햇빛이 들지 않는 ‘반심해대(Midnight zone)’에 사는 심해어도 있고, 문어·조개·해마 등등 지느러미를 갖지 않는 수중생물들이 많다.

[4] 큰 뼈 2개와 작은 뼈 여러 개 그리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합친 몸체를 지칭하는 데 쓰였다. 그 당시에는 이러한 부속지가 어류 이후에 갑자기 창조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신이 직접 만든 원형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5] 조너선 밸컴, 『물고기는 알고 있다』, 양병찬 옮김, 에이도스, 2017.

마카야(배선우)

책읽기를 좋아해서 대학교에 진학한 신분. 전공책보다 소설과 미래학 책으로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를 즐겨하던 학생. 올해 졸업을 앞뒀지만 ‘좋아하는 철학자’는 없고 대학원은 안 갈 예정. 부모님의 주52시간 근무는 그저 존경스러울 뿐, 트렌드에 따라서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싶은 바람. 다행히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감은 하나 둘 늘어나는 나날. 선한 영향력, 세상으로 뿜어대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지만 SNS는 하지 않는 모순. 일상 속에서 심신을 가다듬고 내 일을 사랑하면, 큰 꿈은 없지만 지구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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