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 (Ulrich Beck) 은 말했다.
Poverty is hierarchic, while somg is democratic.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8월 중순, 전국에 쏟아진 기록적 폭우에 안타깝게도 여러 생명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이번 폭우는 결코 민주적이지 않았다. 같은 서울 내에서도, 아파트에 사는 누군가는 에어컨 바람을 쐬며 쾌적하게 숙면을 취했고, 반지하에 사는 일가족은 집이 물에 잠겨 죽었다. 뿐만 아니라 물이 찬 작은 상점과 가판대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하는 이, 천장이 무너지는 위험천만한 지하철 역에서 배수작업을 하는 이, 폭우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잔해들을 정리하는 이, 그들 대부분이 평범한 서민과 노동자들이었다. 이 기후재난은 기후위기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만큼 강력하며, 그로 인한 피해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정치와 경제 체제에 대해서 심도있게 논할 깜냥은 되지 않아 개인의 생활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뭐든 과한 것 – 즉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가 아닐까 싶다. 왜 그렇게 사는데 많은 것들이 필요할까? 그렇게 쉽게 버릴 거라면, 왜 그렇게 많이 만들고 사는 것일까? 그러한 삶의 태도가 모여 결국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 그것들은 양의 되먹임 효과를 통해 점차 가속화 되고 있다.
나는 지금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지내고 있다. 태국 다음의 목적지로 결정한 발리는 이전에도 몇 번 오고 갔던 나의 최애 도시이다. 비행기를 타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도착한 발리, 너무나 소중한 기회라 최대한 오랜 시간 머물고 싶어서 한 달의 시간을 꽉 채워 보내다 가기로 했다. 온라인으로 대부분 일을 하는 터라 가능한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 결혼과 함께 외곽지역으로 이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일을 일부 포기했었다. 일터까지 향하는 거리와 허락되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를 겪으며 일의 방식이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오히려 나는 호재를 맞았다. 임대료 및 관리비에 대한 부담이 적다보니 많은 일을 시도할 수 있었고, 덕분에 수입도 개인 시간도 늘어났다. 그렇게 지난 2년간, 나는 따로 휴가를 확보하지 않고, 가족 여행을 하고 자전거 종주를 하면서 차질없이 일을 해왔다. 물론 그러한 기반을 만드는 데는 노력이 필요했으나, 어느 곳에 있든 일에 제약이 없게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의 삶을 보다 유연하게 디자인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했다.
나같은 사람들을 흔히들 ‘디지털 노마드’ 라고 하며, 디지털 노마드들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번 발리에서 숙소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인터넷 속도와 사무 공간이었고, 나는 그 모든 것이 충족되는 코리빙 하우스에 (Co-living House)에 묵고 있다. 그 곳들은 대부분 기존의 호텔을 개조해서 만들었으며,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이벤트들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며, 그 곳에 머무는 사람들을 위한 네트워킹 및 강연들도 활발하게 열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일에 대한 기회를 엿볼 수 있는 경험 중이다.
이 곳 발리에서의 나의 일상은 한국에서와 비슷하다. 아침이면 여느 때처럼 온라인 요가수업을 하고, 수업 후에는 요가 스튜디오로 가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수련을 한다. 날이 많이 뜨거운 점심에는 수영을 하거나 책을 읽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구석구석 살펴보고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다시 코워킹 공간에 자리를 잡고 외부 강의 및 소셜 모임 등을 이끌거나 공부를 하고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
이런 생활을 하며 더 이상 서울에, 수도권에, 신도시에 살 필요가 없어졌음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도 이미 많이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얼마 전,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도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사람들이 도시에 몰리지 않고 많은 지역들에 분산되는 것만으로도 탄소 배출을 저감하는데,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본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일차원적으로 먼저 온갖 것들의 유혹으로부터 멀어진다. 견물생심이라고 오가며 보는 것들 – 도심에 몰려있는 상점과 물건들, 광고들, 사람들로 인해 받는 영향이 줄어들고 이는 곧 소비감소로 이어진다.
다음은 그동안 학업 때문에, 일 때문에 부득이하게 서울을 중심으로 몰렸던 인구들이 각자의 삶의 방식에 따라 특정 지역으로 이동을 하며 각 지역들이 활성화되지 않을까? 나 역시 이 다음, 진득하게 뿌리를 내려야 하는 지역이 있다면 그 곳은 어디일까 종종 생각해본다. 아마 수많은 요소들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정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서 주목하는 점은 비슷한 가치관과 성향을 갖는 이들이 모여 만드는 ‘로컬문화사업’ 이다. 지역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사람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2주가량 발리에서 지내며 절대 볼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비닐봉투이다. 비닐 대신 포장 시 바나나 혹은 야자잎을 활용하며, 어려운 경우엔 종이 포장재를 사용한다. 물론 상점에서 비닐봉투 판매가 금지된 이유도 있겠으나, 이들은 원래도 일회용품을 잘 쓰질 않는다. 동이 트면 모두들 집 앞을 청소하는 데 여념이 없고, 하루 3번 짜낭사리(제물)를 만들어 감사와 안녕을 비는 의식을 치른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떨어진 꽃, 나무, 이파리 무엇 하나 허투로 쓰는 법이 없다. 프랜지패니 꽃을 엮어 목걸이를 만들어 웰컴선물로 목에 걸어 주는가하면, 떨어진 메리골드로 바닥, 벽, 화장실, 심지어 상점 문을 닫으며 아무것도 없는 가판대 위마저 예쁘게 장식한다. 나는 그러한 문화가 참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서, 만나는 몇몇의 발리인들에게 ‘왜 떨어진 꽃들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곳곳을 장식하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모두의 반응이 하나같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냥’, ‘예쁘니까’, ‘누군가보면 기분이 좋을테니’ 등 심심하고 순수한 답변을 주었다.
나는 우리가 이러한 발리니스의 태도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빈부와는 상관없이 누릴 수 있는 일, 대자연을 존중하며 매일의 일상에 의식적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것, 새로운 것들을 좇기보다 주어진 것들을 즐겁게 활용하고 즐기는 것. 그러한 태도가 로컬라이징과 만나면 무척 강력한 라이프스타일과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 믿는다.
요가를 수련하고 나누는 일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강한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모토로 친환경 라이프를 제안하는 웰니스 커뮤니티 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잔디에 누워 땅의 온기를 수용하며 구름을 관찰하는 일,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촉감을 느끼고 맛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자연의 연결성을 탐구하고, 사이좋게 공존하기 위한 지속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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