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평화로운 둘레길
올해 겨울에는 반 달 동안 제주도에 있었다. 그곳에서 숙소를 몇 번이고 옮기면서 혼자 제주 올레길을 다녔다. 스스로와 나누는 대화는 일단 말문이 트인 뒤부터는 마구 쏟아져 나왔다. 혼자서 농담을 던지면 그 농담을 던진 내가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아무튼 즐겁게 걸었다. 자연 속에서 열심히 걸으며 마음의 숙제가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 것인가 등등.
서울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해도 자주 ‘나다니리라’ 다짐했다. 요즘 뜨는 트렌드 중 하나가 ‘헬시 플레져(healthy pleasure, 즐거움을 주는 건강한 활동)’라고 하던데, 나는 그 중에서 등산화 한 짝만 있으면 되는 등산을 택했다. 집에서 대중교통 타면, 한 시간 반 걸려 북한산에 도착한다. 봉우리에 앞서 둘레길 평정을 시작한 나는 어느 날은 무늬가 희한한 바닥을 발견했다.
사진에는 땅의 겉면에 줄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이 보인다. 중간에는 크림색 띠가, 왼쪽 하단에는 고동색 띠가 지나간다. 나에게 신기했던 것은 이 사진이 암벽이 아닌 바닥을 촬영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는 것은, 이 바위가 오랜 시간 동안 층층이 퇴적된 이후 어느 시점에 바닥으로 눕혀졌음을 뜻한다. 도대체 어떤 힘이 이 지층을 바닥으로 자빠트린 걸까? 바닥에서 고개를 들면 이 곳은 진달래가 피어나고 벌이 날아다니는 골짜기이다. 골짜기란 한편으로는 아래로 꺼지는 힘이, 다른 한편으로 양쪽으로 위로 솟는 힘이 작용했음을 의미한다. 평화로운 북한산 둘레길, 이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분자적 깊이와 우주적 크기의 사유
평소에는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던 것들이 궁금해졌다. 이 책을 읽은 덕분이다. 나를 짧은 시간이나마 자극하고 변화시킨 것이다. 원래 나는 자연 속을 거니는 여행에서 두 명의 전문가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오랜 시간 동안 바랐다. 식물학자와 지질학자 그 두 친구가 길을 지날 때 보이는 모든 것들의 이름을 나에게 떠먹여주기를 원했다. 그랬던 한 때의 소망은 카메라와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면서 흩어져갔다. 이 꽃의 학명이 궁금한가?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면 이제는 높은 정확도로 이름은 물론, 분포된 곳 혹은 키우는 법까지 알 수 있다. 위 두 직업은 전문가의 메리트(?)를 잃어버린 걸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DNA에서 우주를 만나다』는 한마디로 ‘겉보기’와 ‘깊게 읽기’의 차이를 알게 한다. 저자인 닐 슈빈의 직업은 고생물학자로서, 옛날 생물의 화석을 지표면에서 찾는 것이 일이다. 그래서 지상에서 지하를 내려다보는 것이 일상이고, 지층에서 지구를 읽어내는 능력을 갖췄다.
“이 시기의 기후는 먼지와 진흙과 뼈에 기록돼있다. 퇴적물에 갇힌 먼지는 건조한 정도와 풍향 및 풍속의 단서를 제공한다. 해저에 쌓인 진흙은 나일 강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물의 양과 속도를 말해주며, 그것들은 강수량의 척도가 된다. (···) 심지어 기린 화석의 목 길이도 들려줄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목의 길이는 그 지역의 나무가 컸는지 작았는지를 말해줄 수 있다. 보는 법을 알기만 한다면 거의 모든 것이 온도계, 기압계, 풍력계가 될 수 있다.” 270-271p
이처럼 저자는 지구의 표면을 ‘깊게’ 읽는 법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인식해온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철학이 인간에게 드러난 현상 너머의 구조와 의미를 탐구하듯이, 이쪽 ‘과학’은 슈빈의 연구팀이 캐나다 얼음 지형에서 파낸 ‘틱타알릭’ 화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류와 네발동물 사이의 2억 년 시간을 잇는다. 이러한 연결 작업은 고생물과 현생물에서 나아가 태초의 우주와 현재의 인간 사이로 확장된다. 한국어판 제목처럼 ‘DNA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고생물의 화석으로 여겨지고 우주의 역사가 담긴 ‘타임캡슐’로 간주된다. 분자 단위로 깊게 분석하는 동시에 우주 단위로 크게 사유하는 것이다.
태초에 인간은 없었다
우리에게 있어 이 책은 인간의 역사를 극도로 상대화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오래 전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도 『미크로메가스』에서 인간들의 사회를 우주적인 시각에서 조망한 바 있다. 소설 속 ‘시리우스 행성’의 거주자 ‘메크로메가스’의 관점에서 지구인은 ‘지성을 지닌 원소’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거인’ 또한 결국은 상상을 동원한 인간의 확장판이다. 거인의 허리둘레는 ‘5만 피에’로 ‘지구인처럼’ 균형 잡혔고 거인의 지력은 ‘지구인에 비례하여’ 유클리드의 명제를 50개 풀어낸다. 토머스 베리는 ‘인간은 소우주이고 우주는 대인류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는데, 볼테르는 후자의 명제만을 조금 색다르게 반복하는 것이다.
반면 『DNA에서 우주를 만나다』는 인간에 대해 공간적 접근이 아닌 시간적 접근을 취한다. 시간적 접근 중에서는 인간을 유일한 주인공으로 굳히는 ‘인류의 자기애적’ 서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인류 종말 시계(The Doomsday clock)’는 인간 문명의 선택이 ‘멸망 100초 전’의 지구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를 강조한다. 핵전쟁의 위험 또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지구의 역사를 365일로 압축하는 ‘달력의 비유’도 그러하다. 인간의 출현은 자정이 되기 직전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우주를 인류사의 ‘전사(事史)’로 만들고 찰나의 우리 존재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자기도취가 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인류를 성공적으로 축소시킨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주의 시초에서 시작하여 인류의 탄생으로 끝난다. 인간을 덜 말하고 덜 부각시키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인간은 새삼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로 드러난다. 이는 인간을 광대한 관계망 속 연속된 존재로 매김하는 역사의 진정한 목적을 성취한 결과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난 ‘빅 히스토리’, 이 점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둘 다 과학을 통해 우리의 세계관을 조정하고 영성을 고양한다. 『코스모스』가 인간과 우주를 오가며 박진감과 문학적 수려함으로 충만하다면 이 책은 우주보다는 지구, 과학 이론보다는 과학자들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하여 인간이 겨우 탄생했더라
닐 슈빈의 이야기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우주가 대폭발하며 행성과 생물들이 몸으로 삼는 원소들이 생겨났고 퍼졌다. 태양계에서 지구는 절묘한 위치에 놓였고 이로 인해 물이 여러 형태로 풍부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물을 풍부했기에 탄소를 기반으로 삼는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었다. 조류(藻類)와 더불어 지구는 대기 중으로 대량의 산소를 방출해서 큰 몸을 가진 포유류가 살 수 있었다. 동시에 지구는 자기 조절 방식으로 대기 중 탄소 농도를 조절했다. 초대륙이 분화하여 히말라야 산맥이 솟아올랐고 이때 흡수한 막대한 탄소를 빗물이 씻어내렸다. 덕분에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는 태양으로 인해 과열되지 않고 평균 기온을 오히려 낮추었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우주에서 지구로 소행성이 떨어져서 파충류 위주의 공룡이 멸종하였다. 그 가운데 지구 전역에 퍼져 있던 쥐 크기의 포유동물이 살아남았고 대를 이었다. 그동안 기후는 더 추워졌고 동아프리카의 생태 환경이 숲에서 초원으로 바뀌었다. 유인원은 나무에서 내려와야 했고 직립 보행과 더불어 색을 인식하는 능력을 획득하였다. 새롭게 자란 식물군의 종류를 구별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빙하기 때 인간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고 빙하기 이후 온난한 기후에서 주거지를 정착하고 농경 생활을 시작했다.
역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는 재앙을 스스로 불러온 현재의 인류까지 연장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전혀 희망 없는 구제불능은 아니지만, 지구의 입장에서 인간은 자연에서 벗어난 ‘통제불능’으로 보일 것 같다.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율적인 기계를 바라보듯이. 지금까지의 역사는 우주, 지각, 대기, 생태 그리고 생명이 합동한 과정이다. 덕분에 인간은 겨우 존재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역사를 지속하기 위해 우주의 통사를 한 번 깊게 복습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 인간은 “탄소 장학생”이고 지구의 타임캡슐이고 살아 움직이는 화석이다. 또한 인간은 작은 우주이고 지구는 생명의 조상이다.
“하늘의 별과 땅속의 화석은 비록 인류 변화의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천체처럼 오래된 것들 속에서 최근에야 추가된 연결 고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등댓불이다” 285p
사진출처 : https://ar.pinterest.com/pin/258534834852224979/
책읽기를 좋아해서 대학교에 진학한 신분. 전공책보다 소설과 미래학 책으로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를 즐겨하던 학생. 올해 졸업을 앞뒀지만 ‘좋아하는 철학자’는 없고 대학원은 안 갈 예정. 부모님의 주52시간 근무는 그저 존경스러울 뿐, 트렌드에 따라서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싶은 바람. 다행히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감은 하나 둘 늘어나는 나날. 선한 영향력, 세상으로 뿜어대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지만 SNS는 하지 않는 모순. 일상 속에서 심신을 가다듬고 내 일을 사랑하면, 큰 꿈은 없지만 지구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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