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떨어진 비기너
첫 실험체는 나 자신이었다. 『최강의 단식』을 읽고 나는 눈이 뜨이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새벽 3시에 눈이 뜨인 것이다. ‘처음 단식을 시작한 사람은··· 코르티솔 수치가 상승해서 새벽에 잠이 깰 수도 있다··· 그것은 신체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울리는 경보이다···.’ 당황하지 않고 책에서 읽은 내용을 떠올렸다. 나는 평소 창문 바깥 도시의 총총한 불빛을 별빛 삼아 안대만 쓰고 잠을 잔다. 하지만 이날은 유난히 눈이 부셔서 커튼을 치고 다시 누워야 했다. 책에 기대감을 품고 있어서 그 내용대로 몸이 따라간 걸까?
침대에 누운 채로 한 가지 변화를 더 느꼈다. 의식하지 않고 지내던 디퓨저 향이 코끝을 맴도는 것이다. 이런 말은 책에 없었다. 대신 감각이 예민해졌다고 하면 이해가 된다. 자기 전에도 생소한 일이 있었다. 나는 건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서 끼니를 ‘절대로’ 걸러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날은 새로운 실험을 위해 ‘방탄커피’만을 마시고 버텼다. 그렇지만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았고, 늘 어디를 가든 나에게 찰싹 붙어있던 졸린 느낌도 없었다. 오후까지는 정신이 맑았지만 또 저녁부터는 멍해졌다. 당이 떨어진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비우기의 기술 – 유연한 신체강화
나는 단식을 이제 막 시작한 입문자이기 때문에, 그날 내 몸이 당을 다 소비하고 지방을 연료로 태우는 ‘케토시스’ 상태에 진입했는지의 여부는 모르겠다. 앞으로 속을 비우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며 새로운 경지를 탐색하려고 한다. 시작은 ‘초단기 단식’이다. 단식은 음식물을 먹지 않는 기간에 따라 나뉠 수 있다고 하는데, 시간대별로 몸의 상태가 달라지고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식사를 생략하는 날은 원체 없는 편이지만, 하루에 딱 두 끼를 먹는 사람이니 원래부터 16시간 ‘초단기 단식’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루 세끼는 솔직히 시간이 아깝다. 또한 배가 고프기도 전에 습관적으로 음식을 집어넣는 ‘중독’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날은 이러한 내 생각과 생활에 ‘삼시세끼’라는 말이 왜 있겠냐는 타박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 그 말이 얼마나 ‘따끈따끈하게’ 갓 지어진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데이브 아스프리는 그러한 상식적인 견해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사람이다. 그는 직접 동굴에 들어가 몸소 단식을 실행한 경험담과 이와 관련하여 방대하게 수집한 자료를 버무려서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단식하지 않는 문화, 그러니까 쉬지 않고 ‘꼭꼭 챙겨먹는’ 문화는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식문화이다. 그리고 인류의 유구한 진화론적 기원에 반대되는 것이다. 인간이 음식을 원할 때 섭취하는 것은 극히 최근에 들어서 벌어진 일이다. 필요 이상으로 먹기를 즐기고 탐닉함으로써, 인간은 음식의 각종 독소과 항영양소(antinutrient)에 의해 유발된 염증으로부터 쉴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몸을 ‘자가포식’하고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단식은 최신의 과학 지식이 조명하는 인류의 오랜 지혜이다.
거리두기의 기술 – 성숙한 자기통찰
이 책은 단식을 하는 법을 알려주는 실용적인 지침서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음식, 몸, 건강에 대한 통합적 견해를 제시하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음식은 건강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잘 먹을지를 한다. 여기에 윤리적이고 기후적인 다른 가치들이 더해져 식단에서 과도한 것들을 제외한다. 그리고 단식은, 여러가지 다이어트(식이 조절)와 달리 시간적으로 식사 자체를 뺄셈한다. 더 일반적으로는 ‘탐닉의 대상을 멀리 하는 태도’를 가르친다. 즉 확장된 의미의 단식이다.
디지털 디톡스(해독), 탄소 다이어트 등등 넓은 의미에서의 단식은 우리의 어휘에 이미 들어와있다. 이것들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덜어내기 위한 거리두기를 핵심으로 한다. 이렇게 취해진 거리로 인해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여유가 마련된다. 무언가를 끊었을 때 느낌이 어떠한가? ‘느낌을 느끼는 것’, 이는 내부수용감각[1]의 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이다. 외부를 소화하여 내부를 확대하는 자아의 ‘성장’이 아닌,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리고 자아에 깊이를 더하는 ‘성숙’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신체 해킹의 매력
나아가 저자는 ‘영적인 단식’이란 주제에 대해서도 다룬다. 단식에 의해 얻어지는 정신적 이점과 같은 맥락이다. 신경전단물질 카테콜라민(Catecholamine)은 기분을 활력있게 하고, 케톤은 뉴런 세포를 활발하게 하며, ‘뇌 유래 신경 영양인자’(BDNF)는 해마를 키워 인지력을 상승시킨다. 우리의 영성은 건강한 마음에서 비롯되고,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몸에서 비롯된다는 논리이다. 세계 대다수의 종교에서 단식을 중요한 수행법으로 가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영(令)–심(心)–신(身) 축’의 물질적 연결고리를 하나 발견한 것이다.
이제 ‘바이오 해킹’(Biohacking)이란 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이 말은 우리의 몸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이성의 힘으로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어조를 풍긴다. 또한 자연스러운 상태를 거부하고 인위적인 개입으로 부당한 이익을 누리는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반대로 이 시점에서야 우리가 드디어 신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것과 협력하기 시작했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인간은 분명 복잡한 생물이고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것을 안 다음으로 우리는 ‘깊은 자아’를 스스로 프로그래밍하기를 목표할 수 있는 것이다.
[1] 『움직임의 뇌과학』 서평을 참고할 것
책읽기를 좋아해서 대학교에 진학한 신분. 전공책보다 소설과 미래학 책으로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를 즐겨하던 학생. 올해 졸업을 앞뒀지만 ‘좋아하는 철학자’는 없고 대학원은 안 갈 예정. 부모님의 주52시간 근무는 그저 존경스러울 뿐, 트렌드에 따라서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싶은 바람. 다행히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감은 하나 둘 늘어나는 나날. 선한 영향력, 세상으로 뿜어대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지만 SNS는 하지 않는 모순. 일상 속에서 심신을 가다듬고 내 일을 사랑하면, 큰 꿈은 없지만 지구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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