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내 인생이 늘 그렇듯이 시간과 돈에 쫓기다 보니 마흔이 넘어 운전면허증을 땄다. 물론 대도시에서 오래 살아 땅속으로만 주로 다녔기에 자가용을 몰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고 환경보호라는 명목으로 ‘나’라도 운전을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운전면허 따기를 미룬 측면도 있다. 그러다 2019년 여름 휴가 때, 거의 20년 만에 미국에서 함께 공부했던 대만 친구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친구가 20년 전 미국에서도 20년 후 대만에서도 운전을 하며 나를 태우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빚진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 꼭 오라며 내가 너를 태우고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구경시켜 주겠노라 다짐하고 돌아왔다. 그 후 나는 여전히 직장 일에 매진하다 심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몇 달간 병가를 낼 정도로 많이 아팠고 회복기에 접어들자마자 운전면허에 도전, 가볍게 합격했다…고 볼 수 있다.
운전면허를 따고 나니, 게다가 서울이 아닌 중소도시인 지방으로 내려와 살아보니 이동의 자유에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다. 평생 눈에 들어오지 않던 많은 차종들의 디자인과 크기, 연료 들이 더욱 세심하게 다가왔다. 급기야 내 차가 사고 싶어 졌다. 국가가 운영하는 정규교육은 별로 받은 게 없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너무나 훤한 엄마는 살려면 조금 있다 전기차를 사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역시 우리 엄마, 눈치는 가끔 없어도 세상 물정엔 일가견 있다. 스마트 전기차를 사고 싶은 나의 희망은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 수소전기자동차, 수소전기 저장기술까지 그 관심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집에는 이미 내가 운전할 수 있는 차가 두 대나 있으므로 친환경차를 사는 일은 엄마의 말씀대로 간단히 보류되었다.
20년 전, 미국에서 교수와 학생 간의 비교적 평등한 관계나 도서관을 비롯한 건물마다 깔려진 카펫, 24시간 개방된 음악대학 연습실, 기숙사 층층마다 세 개의 휴게실에 있는 피아노 – 그 중 하나는 그랜드 피아노다 – 등을 보고 당시 한국 캠퍼스와 비교해 보았을 때 부럽기도 했지만, 장애인을 위한 비탈진 입구를 가진 교내 곳곳 건물이나 휠체어가 타고 내릴 수 있는 시내버스의 구조면에서 장애인 접근권이나 이동권이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또한 당시에는 시내버스를 한번 타면, 버스기사님이 그 시간에 해당하는 종이를 쭉 찢어준다. 그 시간 이후 공짜로 탈 수 있는 차표와 같은 것인데, 내가 있던 이스턴워싱턴주 스포켄카운티 치니에서는 4시간(으로 기억한다) 안에 아무 버스를 타면 다 무료였다. 심지어 같은 버스의 번호도. 한국에서 이명박 서울 시장이 30분 단위로 다른 버스 노선에 한해 환승 시스템을 적용한 것에 비하면 그 기간이나 규모 면에서 한참 앞선다. 이는 시민의 이동의 자유를 보장함과 동시에 운행 차량의 수를 줄여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말그대로 일거양득이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1],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런스시는 2019년 9월부터 3개 노선 버스요금을 무료로 해주는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는 주민들에게 소득과 인종 등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단을 마련해 주는 한편, 버스 이용을 통해 차량 운행을 줄여 이산화탄소 감축에 기여하겠다는 명분이라고 밝혔다. 이용자들의 호응도 좋다. 버스회사의 손실은 시 재정으로 충당한다. 매사추세츠 주의 다른 도시인 우스터시도 무료버스를 시범 운행할 계획이다.
이미 전세계 약 100여개 도시들이 무료 대중교통 서비스 제공하고 있다. 런던은 교통혼잡세를 확대할 추세라고 한다. 당시 신문에 따르면, 미국 뉴욕시는 2021년부터 맨하탄 60스트릿 남단상업지구에 진입하는 차량에 교통혼잡세 부과하고, 혼잡세는 11~14달러 전후로 예상된다. 이를 재원으로 버스 및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개선하고 확장할 계획이다. 탑승비용을 무료 또는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낮추는 방안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그린뉴딜을 위한 교통전략이자 복지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방정부별로 현실에 맞게 차별적으로 적용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가장 혼잡하지만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 경기부터 단계별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 본다.
요즈음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주제로 시위하는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힘 당대표 이준석의 모욕적인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20년 가까이 장애인들의 주장은 선거 때마다 받아들여질 듯하다 예산이 깎이고 없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턱도 없이 부족한 장애인 택시만을 운영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내뿜는 장애인 택시 차량 운행을 유지 및 확대하는 것보다 지하철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여 일반인들처럼 장애인도 보다 자유롭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대처하는 더욱 효율적인 방안이 아닐까? 무엇이 그들의 20년 ‘한(恨)’ 속에 지하철 출퇴근 길 위에 서게 하는 지, 미국 하버드에서 공부했다는 이준석은 똑똑히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1] 한겨레신문 2020년 1월 15일자에서 재인용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후 현장에서의 실천적 운동에 매진. 주로 빈민운동과 환경운동에서 활동. 현재, 조그만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운동을 통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노력 중.
후원으로 다른백년과 함께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