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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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세상은 지구, 생명, 생명이 만든 물건만이 있습니다. 제도는 지구 생명, 물건들이 맺는 관계의 방식입니다. 이 관계의 방식에 따라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 등으로 역사의 매 시기를 구분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제도는 실재하지 않는 관념의 약속 체계일뿐입니다. 철학에서는 이것을 실재론이라고 합니다. 경찰은 수사권, 치안권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경찰제도는 사람들이 위임한 권력입니다. 경찰권력 그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특정 사람이 위임받은 약속의 체계입니다.

“근대”는 근대만의 고유한 특징을 가진 고유명사입니다. 근대는 가까운 시대라는 보통명사이기도 합니다. 근대는 지금이라는 현대와 달리 이전 시대인 봉건제 사회와는 다른 새 시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근대의 성취는 무엇이고, 그 한계는 무엇일까요? 근대의 합리적 이성, 국가, 시장은 실제로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실제로는 없는데 있는 것으로 아는 실재론일까요? 국가는 반드시 그렇다는 보편적 이성의 담지체일까요? 근대의 시간은 우여곡절이 있어도 직진할까요.

강주영 필자가 근대의 이성, 국가, 시간 등 일상적으로 만나는 근대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를 새로이 연재합니다.

 

 

미신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믿음을 말한다. 어머니는 평생을 장독대에 청수를 모시고 빌으셨다. 어머니 덕에 필자는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사회도 공동체도 모르셨다. 그저 가족의 무사안녕을 빌었을 뿐이다. 이 소박한 염원을 미신이라 할 수 있을까?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믿는 근대의 국가, 법, 이성, 시장은 정말 그럴까? 아닐까? 너무나 당연해서 의심할 생각조차 못 하는 것들이 많은 경우 근대의 거짓말을 이루고 있다. 과학과 합리성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필자의 답은 간단하다. 노동력이든, 지식이든, 자동차든 싸게 사고 비싸게 파는 것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다. 그런데 이 말이 불평등과 차별의 원천이 된다면 근대는 처음부터 거짓말로 시작했다. 성리학 식으로 말하면 합리는 천명의 직분에 충실한 것이다. 노비는 양반이 될 수 없다. 한국사람들은 그럴 리(理)가 없다고 자주 말한다. 이때 ‘리’란 도대체 무엇일까? 사람들은 합리는 알아도 화리(和理)는 잊고 산다.

서양에서 본격적으로 원근법을 사용한 때는 르네상스 때라고 알려져 있다. 원근법을 근대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원근법은 2차원 평면에서 3차원 입체를 표현하는데 효율적이다. 하지만 소실점에서 실제의 두 철길은 결코 만나지 않는다. 평행선은 영원히 평행하다. 멀어서 점으로 나타나는 것들은 멀기 때문에 불평등하다. 원근법은 불평등한 표현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원근법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유의지’라는 말이 있다. 자유의지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영화를 보면 기독교인과 이슬람들은 “신(주)의 뜻대로”를 자주 말한다. 자유의지는 신분제와 신에서 해방된 근대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신분제에서 해방되었다고는 하지만 토지에서도 해방 -사실은 토지 박탈이다- 되었다고는 않는다. 신에게서도 해방되었다면 신의 심판도 없어야 한다. 신의 심판이 없는가? 근대인들은 서양이냐 동양이냐 신에게서 해방되지 못했다(편의상 동서양이라고 쓴다. 하지만 어디가 서양이고 동양인지 두부 자르듯이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과 사람의 자유의지는 서로 충돌하는 것일까? 사람이 신의 뜻대로 산다면, 아니 살 수밖에 없다면 신은 사람을 심판할 수 없다. 신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신의 뜻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즉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사람은 법을 만들 필요가 없이 신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자유의지가 있어 서로 충돌하기에 보편이성으로 법을 만들어야 한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법도 필요없다. 종교적 율법의 세속화, 자유의지의 성문적 표현이 근대법 체계다. 근대인들은 신 혹은 천명(天命) 대신에 근대국가, 근대법, 근대이성을 앞에 내세웠을 뿐이다. 신은 죽은 것이 아니라 숨겨졌다. 조선에서는 천명의 직분을 수호한 경국대전이 헌법이었다.

법은 천명, 신의 의지, 보편이성, 일반의지라고 한다. 법이 신의 의지가 아니라면 법을 지켜도 신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법은 신의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근대이성의 대표라 할 근대법은 신의 의지가 세속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거짓말이다. 사실 법은 자유의지의 표현도 신의 뜻도 뭣도 아니다. 법은 서로 적대하거나 갈등하는 세력들의 휴전 문서이거나 소유권의 세력관계에 불과하다. 이전 시대가 신분제에 의해 유지되었다면 근대국가의 물질적 기반은 소유권의 토대 위에서 세워졌다. 소유권은 은폐되고 법은 보편이성으로 자신을 멋지게 포장한다. 근대인들은 이 소유권에 의해서만 자신의 인격과 자유의지를 실현한다. 천부인권이란 사실은 소유권을 천부적 권리로 포장한 것이다. 당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어진 부는 천부적 권리이다.

근대법이 거짓말로 가득하다면 이러한 법의 바탕 위에 세워진 근대국가와 법의 원천인 근대이성 또한 거짓말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런 생각으로 독자들을 만나기로 하였다. 모자라고 울퉁불퉁한 생각이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 모르겠다. 다만 생각을 솔직히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몇 회가 될지, 원고 시간은 잘 지킬지 약속할 수는 없다. 다만 “근대라는 거짓말”을 제대로 넘지 못한다면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은 짧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다.

강주영

생명사상연구소 회원이자 동학하는 사람으로 세상의 집을 짓지는 못하고 나무로 집을 짓는 목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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