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의 변)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국내 주류언론들의 보도내용을 보면 참으로 황당하고 걱정이 앞선다. 대선을 앞두고 이들이 보인 수구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 – 진보적 후보들에 대한 의도적인 조작과 흠집내기 과장의 보도에 이어서, 격동하는 국제질서에 관하여 전국민을 청맹과니로 만들려는 듯 미국중심의 서구언론들 내용을 비판도 없이 그대로 복사하여 전달하고 있다. 이에 우크라이나를 둘러쌓고 있는 국제적 긴장에 대하여,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인 유럽지도자들의 서로 상반된 견해와 나토를 비판하면서 푸틴의 입장을 수용해야 한다는 미국의 진보적 시각 그리고 미국무부의 중재요청을 받은 중국의 입장 등 5건의 칼럼을 소개한다.
첫 번째의 아래 칼럼 내용은 제2차 대전 이후 전개된 유럽의 현황을 일목하고 우크라이나의 긴장상황에 대한 현실적 대응을 고민하면서도 푸틴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며 수용하자는 유럽연합의 고위직을 지낸 전직 정치인의 견해이다. 그의 칼럼 제목인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다’가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는 EU가 미국과 별도로 독자적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한 지속될 것입니다.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최고위 대표인 Josep Borrell이 지적했듯이, 유럽연합은 유럽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관한 회담에서 “중립적인 구경꾼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마드리드 – 유럽은 다른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조약, 규칙 및 제도의 복잡한 구성으로 실현된 안보 프레임-워크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한 정교함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안보질서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합니다..
유럽의 안보조치는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구축되었습니다. 이의 토대는 1945년 얄타 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소련 지도자 스탈린이 지정학적 영향력의 핵심지역으로 유럽을 분할하여 재편함으로써 유럽의 안보태세를 보다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기반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30 년 후인 1975년, 유럽안보 및 협력에 관한 회의의 헬싱키 정상회담은 냉전의 긴장완화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회의를 통하여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창설되었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몰락으로 유럽안보체계의 핵심이 흔들었습니다.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러시아가 직면하게 될 변화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1991년 12월 25일 공식적으로 소련을 해체한 연설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살게 되었다” 라고 선언하였습니다. 1989과 1991년 간의 불과 3년 사이에 크레믈린은 서유럽보다 면적이 광대한 지역(동유럽)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였습니다.
고르바초프가 언급한 “세로운 세계”에서 잃어버린 영토 중에 러시아 지도자들의 마음과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우크라이나입니다. 예브게니 프리마코프(Yevgeny Primakov)는 제가 나토 사무총장으로서 냉전종식 후 동맹의 첫 번째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협정을 협상했을 때 러시아의 외무장관이었으며 “우크라이나는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반복했습니다.
1997년 5월에 유럽동맹과 러시아의 상호관계에 관한 기본법이 조인되었으며, 약 6주 후 마드리드에서 열린 NATO 정상회담에 헝가리, 폴란드, 체코 공화국이 초청되었으며, 우크라이나의 경우 NATO와 특별한 파트너십에 관한 헌장에 서명했습니다. 그것은 동맹에는 가입하지 않을 것이지만 서방과의 특별한 대화상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우크라이나는 유럽안보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무역센타에 대한 테러공격 당시 저는 크리미아에서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던 Leonid Kuchma와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극적인 소식과 함께 세계는 미국에 대한 연대로 돌아섰지만,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유럽안보의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21세기 초에 새로운 위협들이 돌출하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러시아는 헤게모니적인 미패권이 이끄는 탈냉전의 질서에 점점 불편해졌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7년 뮌헨 안보회의에서 천명하였듯이 “미패권에 의한 단극 모델은 오늘날 세계에서 용납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소연방 붕괴 이후 동유럽 지역의 재배치는 특히 영토적 권력개념을 가진 러시아 외교정책에 파괴적이었습니다. 러시아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전면적인 통제를 가졌던 국가들에 의해 형성된 러시아 영토의 완충장치의 점진적 축소는 크렘린을 궁지에 몰아넣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크라이나를 잃을 것이라는 러시아의 판단은 미패권에 의한 단극적 세계질서보다 훨씬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배경이 우크라이나의 긴 국경을 따라 러시아가 대규모의 군대를 배치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체를 합병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렘린은 우크라이나를 자국의 영향력 범위 내로 유지하기 위해 분명히 노력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럽안보의 질서를 위하여 지켜야 할 기본원칙은 분명하며,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불법병합은 특히 국가의 영토 무결성에 대한 존중을 명백히 위반했습니다. 불행히도 우크라이나 국경을 따라 긴장된 현재 상황은 우크라이나의 안정과 유럽의 안보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위기에 대한 외교적 해결책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은 분명히 시급하며 지난 몇 주 동안 많은 그러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미국 및 NATO 와 안보회담에 참여하고 OSCE 프레임워크 내에서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외교적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입니다.
EU는 우크라이나 동부인 돈바스 지역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에 창설된 프랑스,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로 구성된 비공식 연락그룹인 이른바 노르망디 형식과 같은 현 위기에 대한 외교적 해결책을 찾기 위한 다른 노력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EU는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이러한 협상을 적절하게 주도해야만 합니다. EU의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인 Josep Borrell이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EU는 유럽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관한 회담에서 “중립적인 구경꾼으로 남을 수는 없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언명한 “당신없이는 당신에 관하여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에 대한 공약을 감안할 때, Borrell의 주장은 대서양 전역에서 공유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칙과는 별도로 실용적인 고려사항이 필요합니다. 유럽연합의 상황은 냉전 이후 유럽안보의 구도가 구축된 이후 크게 변화했습니다. 12개 회원국가에서 27개 국가로 확대되어 세계최대의 경제블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공동 외교안보정책(European 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을 통해 효율적인 외교정책의 모든 수단을 축적했습니다. 이제는 실제로 이를 적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고르바초프는 냉전이 끝날 무렵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유럽도 변했으며 평화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유럽안보의 구도도 이러한 새로운 현실을 반영해야 합니다.
출처: 프로젝트-신디케이트 2022년 1월 21일자
JAVIER SOLANA, 스페인의 외무장관과 나토 사무총장을 역임한 이후, 유럽연합의회 사무총장 및 외교안보 최고위직을 지냈으며, 현재는 브루킹스 연구소의 특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다른백년 명예 이사장, 국민주권연구원 상임이사. 철든 이후 시대와 사건 속에서 정신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너와 내가 우주이고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로 만나야 연대가 있고, 진보의 방향으로 다른백년이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활동 중이다. [제3섹타 경제론], [격동세계] 등의 기고를 통하여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논리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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