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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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제성장의 공급측면에 대한 제약을 돌파하는 방식들의 계층을 생각해 보자. 다시 한 번, 나는 이러한 제약들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약하고 단명했던 방식에서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나아간다. 각 단계마다 나름의 경제논리, 특징적인 관행들, 뚜렷한 한계점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한계점들에 대한 봉착이 결코 자동적으로 다음 단계로 유도하지 않는다.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전략, 태도, 아이디어에서 방향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 접근할 때까지는 케인스가 초점을 맞춘 특수한 경우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고 다양한 경제상황과 역사적 순간들에서도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보증하지 못한다. [경제성장에 대한 공급제약을 극복하는] 사다리의 계단을 타고 오르는 것은 경제성장에 대한 수요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한쪽의 사다리와 다른 쪽 사다리 사이에는 약한 것에 대해서는 약한 것, 그리고 강한 것에 대해서는 강한 것이라는 잠재력의 느슨한 유사성을 관찰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일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 스펙트럼의 끝에 도달함에 따라 상황은 변한다. 공급을 확대하는 것은 또한 수요를 확대한다. 단지 투입물의 축적만이 아니라 생산성 증가에 의해서 경제성을 견인하는 방식으로 공급과 수요는 서로 조정한다. 스펙트럼의 끝에서 우리는 널리 확산된 지식경제의 발전, 즉 포용적 전위주의를 다시 만난다.

이와 같은 공급확대 방법들을 탐구하기 위해 나는 발견적인 장치를 채택한다. 나는 공급측면을 대표적 혹은 양식적 기업(특정한 순간에 전체 생산체계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관행을 가진 기업)의 입장에서 보겠다. 임의의 순간에 경제의 공급제약을 밀어내는 이러한 방식들의 약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기업들과 그 사다리를 더 멀리 타고 오른 다른 기업들이 실제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단지 기업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경제를 그와 같이 보는 것은 구성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극심한 방향 상실과 모순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일정한 관행들과 이와 관련된 태도와 아이디어들은 경제를 지배하고 경제에 특징적인 충동을 제공한다. 생산주체들의 이러한 지배적인 행동과 의식에서 가장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의 노력이 얼마만큼 경제제도를 불변적이고 심지어 비가시적 것으로 방치하는가 아니면 반대로 이러한 제도적 안배의 한계들을 얼마만큼 밀쳐내는가에 있다.

제1단계에서 대표적 기업은 재고를 최소화하면서 명백한 수요에 대응해서만 생산한다. 이러한 기업은 향후 수요를 기대하여 재고를 생산하지 않고 산출물을 확대하지 않는다. 이러한 기업은 자신의 관행이나 기술에 대한 혁신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향은 경제성장이 일어나려면 경제성장이 오로지 수요에 의해서만 추진되어야 하는 가정적인 한계 사례를 나타낸다.

제2단계에서 그 기업은 장래 수요를 예상하고 재고를 비축한다. 그러나 기업은 신규시장과 신규고객들을 개발하거나 생산방법을 바꾸려고 하지 않으면서 수동적으로 그렇게 한다.

제3단계에서 기업은 원가절감이 재조정을 필요로 하는 정도(예컨대, 더 적은 인력과 더 은 자본으로 같은 일을 하는 것)를 제외하고는 생산제품과 생산방식에 대한 중요한 혁신 없이 생산을 확대한다. 기업은 신규고객과 신규시장을 발굴하고 동시에 기존 시장에서 경쟁사들을 상대로 입지를 강화하려고 노력한다. 기업의 주요한 관심사는 경쟁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자본수익을 증가시키고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이다.

제4단계에서 기업은 확장과 혁신을 수행한다. 기업의 혁신은 효율성을 높이고 기성의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비용을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기업의 혁신은 더 높은 자본수익을 가져오는 개선된 형태의 친숙한 제품을 만든다. 그러한 혁신은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자본을 절약한다. 혁신은 생산을 혁명적으로 전복하지 않는다. 혁신은 많은 작은 개선들의 축적으로서 전진한다.

제5단계에서 이 기업은 크리스텐슨의 용어로 말하자면 와해성 혁신을 수행한다.158 이 기업은 신규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결합하여 훨씬 더 낮은 가격으로 기존 제품의 변형을 생산하고 따라서 더 많은 수의 소비자들에게 그것을 이용할 수 있게 하거나 새로운 것을 생산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새로운 소비자들을 찾고 그들의 욕구를 일깨운다. 그러한 혁신은 변혁적이고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자산을 창출하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 및 심지어 욕구까지도 창출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여기서 양식적 기업은 경제의 수요측면뿐만 아니라 공급측면에서도 작용한다. 그러나 양식적 기업은 경제적 제도와 경제정책이 경제성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제약에 대한 반복적이고 상호적인 돌파구를 확보하지 못한 맥락에서 그렇게 작용한다. 과거에나 현재에나 시장경제의 모든 실례에 해당하는 이와 같은 경제질서에서 헨리 포드의 불가능한 계약(자신의 노동자들이 포드사 승용차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그들에게 임금을 후하게 지불하겠다는 약속)에 대한 제도적 등가물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와해성 혁신은 이 장이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한 경제 전반적인 해법의 결핍, 즉 수요와 공급의 상호조정의 문제에 대한 성장 촉진적인 해법의 부재에 대한 저항적이고 기회 탐색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의 적응을 대변한다. 기성의 사고방식과는 달리 그러한 해법은 경쟁의 실패들을 줄곧 제거해온 시장경제의 현재 형태에 대한 하나의 변종이 작동하는 방식들에서 자생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노선들을 따라 재해석한다면 와해성 혁신은 거시적 차원, 경제 전체에서 수요와 공급 사이에 상방향의 성장과 상호조정의 부재라는 문제를 해결할 방책이 없다는 사정으로부터 미시적 차원에서, 자신의 사업 분야에서 이윤을 획득하는 와해성 기업의 방식이다. [전체]경제가 와해성 기업을 위해 수요를 창출해주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이 와해성 기업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 와해성 혁신은 거시적인 문제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방식이다. 와해성 혁신가들은 이윤을 추구할 뿐 수요와 공급의 양 측면에서 경제를 확장시키는 심층적인 원인(경제의 제도적 안배, 사람들에 대한 교육방식, 국가조직과 정부권력을 둘러싼 경쟁의 조직)은 이러한 혁신가들의 영향범위와 관심 바깥에 있다.

우리는 더 많은 와해성 기업들의 출현과 발전을 장려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한계점을 보완할 수 없다. 우선적으로 기업의 와해성 혁신은 성공의 보증수단이 아니다. 와해성 혁신을 시도해온 대부분의 기업들은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자본절약적 혁신을 추구하는 것으로 만족한 비와해성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였다. 와해성 혁신은경쟁적 이점이라는 하나의 요소만으로 경제를 장악할 수도 있는 관행이 아니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경제의 공급측면에서 기회와 능력에 대한 접근을 넓히고 광범위한 다수대중의 노동수익과 구매력을 향상시키는 과업은 기업가적 창의성을 고도로 발휘한다고 해서 실행할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그러한 과업은 시장 바깥에서 시장의 제도적 가정들을 형성하는 정치와 사상의 거대한 요소들에 의해 정해지는 구조변화를 요구한다.

우리는 그저 더 많은 와해성 기업들을 확보하는 대신에 더 많은 와해성 인물, 즉 와해성 혁신의 개인적 실천가들을 확보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개인들은 포용적 전위주의의 조건들을 통해 형성될 수도 있다. 급격한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도 수혜자들이 의연하고 유능하게 대처하도록 만들어주는 교육에 대한 변증법적 접근,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실험주의 충동의 전파, 필수적으로 보호받는 이익, 안전장치, 기부재원의 보호 등이 그러한 조건들이다. 와해성 개인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질에 적합한 정치적 질서뿐만 아니라 경제적 질서가 필요하다. 그러한 질서는 와해성 개인들의 충동들을 신생기업의 엘리트들에게 국한시키는 질서일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대표적 기업에 의해 제공된 발견적인 장치의 한계들에 도달한다. 와해성 개인들의 견해는 경제 체의 견해로 변모하고 경제질서를 쇄신하고자 정치와 사상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의 견해로 변모한다.

제6단계 공급의 제약들에 대한 돌파구는 기업의 미시적 관점을 버리고 경제적 안배들뿐만 아니라 그러한 안배들의 배경으로서 교육과 정치의 변화라는 거시적 관점을 취한다. 일단 우리가 이와 같은 전포괄적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러한 입장의 야망과 잡성에 주눅이 들 위험도 있다.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떤 수단으로 작업할 수 있을까? 과업의 모든 부분은 물질적, 도덕적, 지적 자원들을 전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이러한 자원들의 부족은 이러한 과업의 의미조건이다.

고전적 발전경제학의 현재로서는 비현실적이고 결함을 지닌 메시지(성장의 동력이 노동자와 자원을 생산성이 더 낮은 농업에서 생산성이 더 높은 제조업으로 이전함으로써 성취되어야 한다)의 이력은 이러한 난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포함하고 있다. 생산의 모든 부분에서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존재한다면, 경제의 부문별 구분이 명료성을 상실한다면 경제의 일 부문(제조업)에 대한 집착은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는다.

과거에 가장 선진적이었던 공장제 대량생산은 지금으로서는 선진적이지도 않고 세계경제의 성장전선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렴을 더는 보증해 주지도 못한다. 세계에서 생산적 전위부문들의 네트워크에 대한 참여자들이 장악한 생산사슬에서 상품화되고 부수적인 제품의 공급자(나는 이러한 대량생산을 전위의 짝패라고 불러왔다)인 경우를 제외하고 값싼 노동을 활용하고 그러한 생산적 전위부문들의 네트워크에서 유리된 채로 대량생산을 발전시키고 상대적으로 빈곤하고 낙후한 경제로 생존하는 것[철 지난 포드주의]은 지금도 가능하다.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이 다루었던 역사적 현실에서조차도 가장 선진적인 관행을 모든 부문에 전파하는 것보다 사람과 자원을 가장 유리한 부문으로 이동시키는 전략은 상황에 대한 하나의 적응을 의미하였다.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는 가장 선진적인 관행이 다양한 부문에 존재하지만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이 다루던 역사적 상황에서는 가장 선진적인 관행이 다른 모든 부문보다 한 부문(제조업)과 더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이제 발전경제학의 낡은 메시지를 거의 무용지물로 만드는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그 메시지는 강력한 진리를 불완전한 형태로 표현한다. 그 진리는 광범위한 경제성장을 창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을 경제전반에서 발전시키고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은 더 이상 어떤 특정 분야에만 관련되지 않는다. 그러한 생산방식이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아니라는 증거는 그러한 생산방식이 대부분의 노동자와 기업들의 접근이 봉쇄된 프린지로만 존재하기는 하지만 모든 부문에서 존재한다는 점이다.

경제의 공급측면에 대한 제약을 극복하는 가장 유망한 방법은 포용적 전위주의의 의제를 수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포용적 전위주의의 조건들을 이해한다면 포용적 전위주의를 조각들로 분해하고 이를 실행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실행함으로써 경제의 평균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의 일회적인 수용(미국에서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신경제로서] 일어났듯이)을 통해서가 아니라 관행의 일반화를 통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관행은 동일한 투입요소의 추가적 투입에 대한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제거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혁신을 습관화하고 혁신의 매력과 보상을 증가시킨다.

포용적 전위주의의 조건들에 대한 앞선 분석에서 내가 탐구하였던 경제의 공급측면에 대한 전진이 또한 수요 확대에 대한 제약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경제의 공급측면에서의 전진이 어떻게 그 역할을 하는지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분석의 다른 부분(생산의 자원과 기회의 접근을 위한 법적 제도적 조건뿐만 아니라 지식경제의 급진화와 보급을 수반해야만 하는 노동의 법적 지위에 대한 일련의 변화)을 고려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장 안에서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 그리고 자본 이용자들과 자본 제공자들 사이에서 권력(자본배정과 업무조직을 결정하는 권력)의 분배를 쇄신한다. 자본 혹은 노동의 수익에 대한 더 큰 몫을 주장함에 있어서 더 큰 힘을 포함한 경제적 편익은 경제적 권력에서 직접적으로 나온다. 경제성장에 대한 공급제약을 타파하는 제6단계 조치들은 문화와 국가에서의 권력을 재할당하는 교육과 정치에서의 변화들을 배경으로 경제에서의 권력의 재조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들은 수요제약도 타파한다.

지식경제의 모든 일반화된 형태에서 [주식]회사형식과 통일적인 재산권은 더 이상 생산수단에 대한 접근기회의 분산을 위한 유일한 법적 도구가 아니다. 재산권의 분해(생산장치의 부분들에 대한 광범위하고 다양하고 파편적이고 조건적이고 임시적인 지분들의 창출)는 동일한 생산자원에 대한 다양한 종류의 지분과 지분보유자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재산권의 분해는 또한 균형을 더 훌륭하게 달성하기 위하여 현재의 안배들이 하는 것보다 더 큰 범위에서 경제적 주도권의 분산과 자원의 집중을 결합할 수 있게 만든다. 회사형태는 여타 상이한 당사자들 간의 계약적 관계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까지 수용하면서 간단히 스펙트럼의 한쪽 극이 된다. [매우 사무적인] 팔길이 쌍무계약은 반대쪽 극에 놓여있다. 스펙트럼의 광범위한 중간 범위에서 우리는 스펙트럼상 계약적 측면으로 기우는 불완전하고 계속적인 관계적 계약이나 스펙트럼상 기업조직 측면을 가리키는 합명회사(partner)와 합작투자(joint venture)164까지 계약의 성격과 회사의 성격을 동시에 공유하는 협력형태들을 발견한다.

이러한 경제에서 경제적으로 종속적인 임노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이상 자유노동의 지배형태가 되지 못할 것이다. 자유노동의 고차적이고 더 순수한 형태(독립자영업과 협동기업)가 점차적으로 우위를 차지한다. 자유노동의 증가는 19세기 중반까지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공유한 자유노동형식들의 서열에 대한 관념을 현실화한다. 그러나 자유노동은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성취하지 못했던 것, 즉 시장경제의 제도적 형식과 법적 표현 형태를 다시 상상함으로써 이들의 이상을 실현한다. 떠오르는 그림은 노동자-기업가, 전문가 또는 기술자들의 팀들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경제의 상이다. 이러한 팀들은 거의 모두 일회성의 즉각적인 급부이행을 지향하는 팔길이 계약을 넘어서지만 그 대부분은 기업형식에 미치지 못한다.

생산적 자원과 기회에 대한 접근을 분산시키기 위해 시장질서를 이와 같이 제도적으로 개편하는 것만이 심화되고 확산된 지식경제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예컨대,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을 이러한 경제의 특징의 하나로 고려해보자. 노동자가 대량생산 아래서 기계의 움직임을 모방하는 대신에 인공지능이 광범위한 역량을 통해 현재까지 이미 그래왔고 앞으로도 더 그렇게 되겠지만 기계가 노동자를 이긴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는 기술적인 장비보다 앞서 간다. 노동자는 우리가 공식의 형태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한 까닭에 아직 기계가 수행할 수 없는 일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확보한다. 노동의 기술적 분업의 이상은 기계와 반(反)기계로서 노동자의 결합이다.

그러나 생산조직이 회사, 통일적인 재산권, 자유노동의 형식들 중 경제적으로 종속적인 임노동의 우월성에 계속적으로 의존하는 한 기계와 반기계로서 노동자의 결합은 실현시킬 가망이없는 이상이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에 대한 어떠한 변화도 소유자와 그의 명의로 기업을 지배하는 자들의 영리적, 권력적 이익에 종속되고 말 것이다. 공급측면의 변화는 자본과 노동 간의 힘의 균형을 이동시키면서 수요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법적혁신들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나는 이와 같은 장기적이고 다소 요원한 혁신의 사례에서 단기적이고 근접한 변화의 사례로 눈을 돌려보겠다. 포용적 지식경제의 제도적 의제의 가장 이른 조치들도 경제의 공급측면과 수요측면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조치들은 생산의 자원과 기회에 접근할 주체와 접근방법을 재구성한다. 중소기업에 유리하게 선진적 관행과 기술의 접근을 조정하는 활동과 (지식경제의 확산을 목적으로) 정부와 신생기업 간의 분권적이고 다원주의적이고 실험주의적인 조정과 기업들 간의 협력적 경쟁을 조직하는 정책들과 제도들로 밑받침되는 성공적인 관행을 확인하고 보급하는 활동이 그러한 조치들에 속한다. 이러한 각각의 활동에 대해서도 역량강화효과를 무색하게 하는 소득효과와 자산효과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자유노동의 주요 형식으로서 경제적으로 종속적인 임노동의 극복은 불안정한 고용관계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고 조직하고 대표하는 법적 체제의 발전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그러한 체제는 계약상 안배들의 지구적인 네트워크에 기초한 생산의 재편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부가되는 급격한 경제불안을 초래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즉, 그러한 법적 체제는 자본에 맞서 노동의 권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이중적인 노동시장의 공고화를 방지하는 데에 일조하고 생산성에 복무하도록 혁신을 장려함으로써 노동수익을 증가시키는 경향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다수를 위한 지식경제는 그 과정의 각 단계에서, 초기 및 중간의 단계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해 잠재력을 더욱 성취하는 단계에서도 수요확대에 대한 제약을 타파하는 경우에만 공급확대에 대한 제약을 타파한다. 우리가 기존의 시장체제에서 경쟁에 대한 제약들을 제거하기만 한다면 경제학의 지배적인 관념들이 자동적으로 일어날 거라고 주장하는 바를 포용적 전위주의는 시장질서의 조직에 대한 누적적 변화를 통해 달성한다. 지배적인 관념들이 자연스럽고 자생적인 현상으로 간주한 것은 실제로 경제적 제도와 관행에 대한 광범위한 변화의 보상일 뿐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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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 역자 :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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