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도 사대를 했다. 대한민국도 사대를 한다. 과거에도 했고, 지금도 한다. 다만, 당시에는 사대의 대상이 중국이었고, 지금은 미국이다. 또한 당시에는 사대와 함께 ‘교린(交隣)’이 있었지만, 지금은 ‘종속’만 있다.
여전히 둘러싼 주변 환경이 변화지 않았고, 여전히 과거는 ‘오래된 현재’로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의 세종은 중국을 속이고(극복하고) 민본(民本)의 최고봉인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나, 지금의 정권은 미국을 속이고(극복하고) 국가의 명운이 걸린 ‘민족자주와 자결’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왜 과거는 가능했고, 지금은 불가능한가? 고민해보고 또 고민해볼 일이다. 다만, 이 글은 위 물음에 대한 것은 온전히 독자들 스스로의 문제의식과 문재인 정부가 풀어내어야 할 숙제로 남겨놓고, 총론적인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만 다루고자 한다.
아시다시피 헌법에서는 국가와 대통령에게 통일과 관련한 의무를 다음과 같이 강제시켜 놓는다.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중략)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제4장 제1절 66조 ③항에는 대통령의 의무에 대해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라고 명확히 한다.
그 ‘평화적 통일정책’ 수립을 위해서는 통일부라는 정부부처를 두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이행해내기 위해서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평통)라는 헌법기구를 둔다.
그런데도 필자가 과문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위 두 단위에서 평화적 통일정책 수립과 범국민적 평화통일운동을 시대정신에 맞게, 또 민족의 이익에 맞게 전개해내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는 지금까지도 ‘평화부’, ‘남북협력부’의 역할만 하고, 평통도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을 범국민적으로 확산시키는 대중운동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거기다가 정부는 정부대로,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지난해 판문점선언과 평양연설에서 약속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 한다’를 지켜내지 못하고 외세(미국)에 휘둘린다.
또 다음의 예시도 대한민국에게 다가온 적신호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비록 대한민국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가 총 34개국) 가입국이나, 불행히도 대한민국호가 침몰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되어서 그렇다. 여전한 대립과 갈등, 분열과 분리, 소외와 배격의 일상화 결과로 말이다.
자살률(고독사 포함) 1위, 이혼율 1위, 낙태율 1위, 저출산율 1위, 고아수출 1위, 성형수술율 1위, 고령화율 1위, 노인빈곤율 1위, 청소년 흡연율 1위, 교통사고율 1위, 인구대비 사기범죄율 1위, 실업율 2위, 연간 노동시간 2위, 행복지수 최저 2위 등등 그 수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지표다.
몸에 좋다는 건 뭐든지 다 잘 먹는 대한민국인데, 대한민국의 건강은 왜 이 모양일까? 왜 삶의 질은 이렇게 최악이 되었을까? 여느 때보다 근본 질문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연동하면 ‘대한민국이 살 맛 나냐?’고했던 박근혜정부 때의 물음이 여전히 유효함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독립과 함께 민주공화국 헌법을 설계했다.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분단체제와 국가보안법에 의해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막혀있었고, 이념적으로는 반공-종북이데올로기에 의해 분단적 사고가 지배하면서 왜곡된 민주의식을 양산해내었다.
87년 6월항쟁 이후 이를 넘어서려는 항쟁이 촛불이었다. 무능과 (부정)부패로 일관하고, 국정농단만 일삼은 박근혜 정부를 직접 탄핵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정부가 문재인 정부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그런 소명과 사명을 자신들의 정치적 DNA로 분명히 해야 하고, 뼛속까지 민본의 관점이 차있어야 한다.
현실은 야당 뒤에 숨고, 미국핑계를 댄다.
즉, 대한민국의 국가성은 여전히 반공-종북이념에서 자유로워져 있지 못하고, 분단적 사고가 여전히 국민을 지배하게 한다. 한반도의 번영의 유일성이라 할 수 있는 통일과 평화는 좌우의 날개와 같지만, 통일의 날개는 꽉꽉 묶여둔다. 평화와 비핵화도 비핵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가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에 사활이 걸린 미국의 이익 때문인데도 한반도 평화는 예의 그 비핵화에 저당 잡힌다.
뿐만 아니라 위 지표의 확인에서도, 시대적으로도 대한민국은 지금 분단으로 인한 국력 소모가 그 한계에 봉착해 다른 출구가 없다면 도저히 소생해낼 수가 없는, 즉 기술과 노동시장은 선진국들과 동남아를 넘어서지 못하고, 내수경제로의 전환도 인구학적 관점에서는 불가능한 그런 상황이다.
상황이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시험 답안지 써내듯 한 그런 20년 집권플랜이 아니라, 세종이 당시 중국의 반대와 양반들의 저항을 무릅쓰고서라도 민본관점에서 이뤄낸 한글창제와도 같은, 또 조광조에 의해 태동된 균전제와 같은 ‘민본 100년’의 설계가 필요했다.
첫 단추를 분명 그렇게 꿰맸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그런 국민적 실망과 분노, 분단적폐세력들의 ‘허망한’ 공격에 노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동맹과는 균형을 맞추고, 남과 북은 운명공동체로 연결되었음을 자각하고, 제도권 밖의 촛불세력과는 비토하지 말고 연대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촛불민심으로 다시 항심(恒心)하고, 그 토대위에서 다시 국정철학을 새롭게 리마인드(remind)하고, 리셋(reset)해야 한다.
‘벌써’ 2년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아직도’ 3년이나 남았다.
의미적으로는 20년 집권플랜에 욕심낼 것이 아니라, ‘민본 100년’을 설계해야 함이다. 역사의 요청이기도 하지만, 그래야만 그들이 바라는 20년 집권도 덤으로 얻을 수 있어서 그렇다.
아주 짧은 보론:
시진핑의 방북(5월 20-21일)으로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북이 플랜B를 가동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언명한 ‘새로운 길’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음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 해법은 북이 애초에 제안한데로 북 핵기지 심장 영변과 대북제재를 맞교환 하던지, 아니면 영변+@로 제시되고 있는 영변+ICBM과 미국의 대한반도 지배전략(핵우산전략)을 포기하던지 둘 중 하나이고, 문재인 정부 또한 한반도 비핵화문제에 대해 당사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민족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상회담의 정신;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의거해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북은 중국과 러시아를 통한 독자적인 ‘한반도 비핵화’의 길과, 문재인 정부에게는 한미동맹에 기댄 미국의 입장으로 ‘어설픈’중재자로 계속 남겠다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진핑의 방북이 그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6월 말 한미정상회담 이전 남북, 혹은 남북미 정상회담에 올인 하다시피 한, 이런 행간의 사정을 모를리 없는 북이 남북정상회담 대신 조중 정상회담을 한다? 메시지가 분명한 것이다.
그런만큼, 문재인 정부는 외교적으로 상황만 관리하려 들지 말고 정말 올해 안으로(이유는 미국의 대선, 대한민국의 선거일정 등으로 볼 때) 대북정책, 통일정책, 비핵화와 평화문제에 대한 재검토를 진지하게 해야 한다.
민 플러스, “문 대통령에게 묻는다: 헌법 ‘제66조 3항’과 ‘한글’ 창제가 갖는 그런 의미를 이해하고 계시는가요?(20190425)”를 참조하여 재구성함
![](https://thetomorrow.jinbo.net/wp-content/uploads/2018/12/김광수-박사-사진4-1-200x215.jpg)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 『수령국가』 저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후원으로 다른백년과 함께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