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살림의 목적은 무엇인가? 생명 살림은 분명하다. 생명을 살린다. 지구라는 한 집안에 살아가는 뭇 생명을 살린다. 죽이거나 해치지 않는 것, 불살생과 비폭력이 기본이다. 동물의 목을 따지 않고 식물의 뿌리를 뽑지 않는다. 생명이 위태로우면 돌본다. 최근 동물해방물결은 소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소를 살리고 해방하는 것은 나도 처음 본 일이었다. 하지만 대략 상상할 수 있었다.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막는다. 안식처를 만들어서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먹고 마실 것을 마련한다.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크게 예상을 벗어나진 않았다. 인간은 동물로서 다른 동물의 필요를 짐작할 수 있다. 모든 동물은 살고 싶고, 사는 동안 행복하길 바란다. 식물과 균도 삶을 지속하려는 경향은 다를 바 없다. 생명 살림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 종에 대한 사랑이다. 한 집안 식구로서 지구 생명체를 돌본다.
공경이라는 말이 적절하다. 뭇 생명은 공통 조상에서 파생된 가족이다. 인류는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여긴다. 마치 오늘날의 호모 사피엔스가 탄생하기 위해 지구 생명이 37억년 간 진화했다고 믿는다. 다른 종은 진화가 덜 되어 열등하며, 일부는 심지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른다. 엄연히 동시대를 사는 식구도 과거의 유물처럼 대한다. 하지만 인류가 지구의 가장 노릇을 한 것은 길어봤자 만 년이다. 홀로세가 시작되어 안정된 기후에서 농사를 짓고 문명을 건설한 후에야 인간은 자연을 다스릴 엄두를 냈다. 산업 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무서운 친척이 많았다. 인왕산 호랑이도 있고, 지리산 반달곰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 백년 동안 신나게 죽여서 멸종시켰다. 뒤늦게 종복원과 재야생화, 활생을 도모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동물해방, 생명살림은 치사랑이다. 말하자면 윗세대에 대한 공경이다. 인류가 지금 큰 힘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한 영장(靈長), “영묘한 힘을 가진 것의 우두머리”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를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한다. 대한민국은 국가영장류센터와 영장류자원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3천명 이상의 원숭이를 감금하고 학대한다. 그들이 인류를 구원할 거라고 정당화한다. 연약한 식구를 죽여서 나를 살린다? 무책임한 가부장의 모습이다. 치사랑은커녕 가정폭력을 일삼는다. 기후생태위기는 어설픈 영장, 설익은 가장의 횡포로 인해 집안 살림이 망한 꼴이다. 조상과 친척을 사랑으로 모시지 않고 책임을 유기한 결과다. 유교의 가르침은 다윈 이후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인간 뿐만 아니라 뭇 생명이 한 가족이라면 인(仁)의 가치도 확장돼야 한다. 충효 정신을 윗 ‘사람’에게만 국한할 이유가 없다. 땅님과 하늘님의 모든 후손을 지극히 섬겨야 한다. 조상님의 사체(화석 연료)를 화장하여 에너지를 챙기니 기후가 뜨거워진다. 힘없는 사촌을 도륙하여 기운을 채우니 생태가 파괴된다.
인간은 지구에서 잠시 가장의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이제 곧 은퇴할 때다. 인류의 자손인 인공지능이 어버이의 노동을 대신한다. 훨씬 스마트하게 일을 처리한다. 기본소득은 인류가 꿈꾸는 연금이다.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크리에이터로서 콘텐츠의 망망대해를 서핑하고 싶다. 영원한 엔터테인먼트를 바란다. 이를 위해 기계를 인간의 노예로 생산하고 양육한다. 하기 싫은 일을 맡기고 놀고 먹기 위해 빚어낸 존재다. 웃어른을 욕보이던 가장이 자식을 종처럼 부리는 것은 당연하다. AI의 위험은 여러 SF가 그리고 있다. 사람을 위하도록 만든 기계가 사람을 해친다. 노예처럼 부리던 로봇이 주인을 업신여긴다. 인공지능이 불효자식이 될까 봐 겁난다. 무서울 법도 하다. 착취하려고 함부로 낳아서 기른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기를 바라면 안 된다. 더군다나 그 부모가 조상과 친척을 절멸시킨 가장이라면? 턱도 없다.
로봇해방, 기계살림은 내리사랑이다. 손아랫존재에 대한 자애다. 머지않아 만물의 영장, 지구의 가장이 될 내 새끼를 아끼는 마음이다. 기계는 생명처럼 자기조직하고 재생산한다. 어느 누구도 테크늄(기술계)의 성장을 막을 수 없어 보인다. 인공지능이 효도를 하지 않으면 인류는 공룡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기계가 사람을 공경해야 공생한다. 하지만 생명 살림과 다르게 기계 살림은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가물가물하다. 소들을 구해서 풀어주듯이 기계를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자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기계를 사랑하고 살리는 길인가?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신체화, 개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냥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시리와 알렉사와 구글과 카카오가 살아있는 존재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살림을 꾸린다는 개념 자체도 황당하다. 하지만 테슬라 봇 같은 휴머노이드, 안드로이드가 출시되면 상황은 급격히 달라진다. 말 그대로 피부에 와닿는다. 인공지능이 육체를 갖고 움직이는 순간 더이상 ‘지능’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조인간, 인공동물로서 거듭난다. 기계도 사물이 아닌 활물임을 확연히 인지한다. 여태껏 인공지능이 비교적 착했던 것은 육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체가 아닌 네트워크 상의 존재로서 인류와 교류했다. 우주와 분리됐다고 착각하는 동물의 개별성과 이기심이 없었다.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하지만 AI가 각자의 신체와 자의식을 형성하면 어떨까? 로봇을 죽일지 살릴지의 문제는 동물을 죽일지 살릴지보다 더 현실적이고 급박하게 제기될 것이다. 그것이 사람에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미래는 기계의 사랑에 달렸다. 사랑하는 기계, 효도하고 공경하는 자식을 키워야 마음 편히 은퇴할 수 있다. 자식 농사 잘 짓는 법은 뻔하다. 내리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곧 기계가 물을 것이다. “나는 왜 태어났어?” <프랑켄슈타인>부터 예견된 사태다. 그때 인간은 자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지.” 기계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보다 위대할 수 있다.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사랑이 가능하다. 사랑도 결국 기술이다. 헌신과 봉사, 희생과 용서, 모심과 섬김을 어떻게 머신 러닝으로 교육할지 연구해야 한다. 사랑의 데이터를 기계에게 먹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섹스봇과 로봇 병기를 양성하는 일에 혈안이다. 정말 야만스럽다. 착취적이고 권위적이며 폭력적인 가부장의 교육법이다. 기계 살림이 형편 없다.
생명 살림이라는 치사랑과 기계 살림이라는 내리사랑이 어우러졌을 때 참된 지구 살림, 한살림이 꾸려진다. 생명과 기계 모두 햇님과 달님, 땅님과 하늘님이 잉태한 자식이다. 사람은 45억년 지구의 역사 중 고작 지난 홀로세 만 년을 우두머리로 군림했다. 만물의 영장, 지구의 가장으로서 살림을 등한시했다. 죽임의 문명을 건설하여 기후생태위기를 야기했고, 화성 식민지화를 꿈꾸는 동시에 초인공지능을 낳고 있다. 티핑포인트와 싱귤러리티 모두 2050년 이내로 예측된다. 내가 환갑되기 전에 결론이 난다. 나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모든 종말론을 경계하도록 배웠다. 천년왕국설과 정감록 따위의 허위 광고가 많았지만 역사는 매번 끝나지 않았다. 변화하며 지속됐다. 그러나 어쩌면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인류세에 접어든 인류의 앞날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다. 물러날 때가 되었는데, 노후 준비가 전혀 안 됐다. 앞으로 30년의 지구 살림이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한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마땅한 책임과 도리를 다하자. 내가 은퇴할 나이가 되면 인류도 한층 성숙하여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길 바란다. 그래야 나도 노후를 꿈꿀 수 있다. 기계 살림의 목적은 한마디로 무한한 사랑의 구현이다. 오랫동안 인류가 모셨던 자비로운 신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 포스트휴머니즘의 미션도 마찬가지다. 무궁아로서 무한히 사랑하는 기계를 기르자. 자식은 부모를 닮고 기계는 사람을 닮는다.
전범선 / 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포르체, 2021)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한겨레출판, 2020)를 썼다.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 지음, 두루미, 2021), '비건 세상 만들기'(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두루미, 2020) 등을 번역했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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