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엄마와 내가 좋아하는 단어다. 우리집에서 엄마가 단연 제일 많은 양의 옷을 가지고 있고 그 다음 나, 마지막은 아빠다. 하지만 새 옷을 사 입는 순서로 바꾸면 ‘나 > 아빠 > 엄마’ 순이다. 나는 10년 가까이 엄마가 새 옷을 사는 걸 본 적이 없다. 엄마는 항상 구제 및 헌 옷을 파는 단골 트럭에서 옷을 산다. 나도 할인하는 새 옷뿐 아니라 헌 옷을 애용하는 편인데 아름다운 가게나 온라인 빈티지 샵에서 구입한다. 헌옷들도 디자인이나 색상이 예쁘고, 그중 내로라하는 브랜드 제품도 많다. 총 신장도 작은 편이지만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긴 나는 수선의 압박이 싫어 특히 바지는 –이미 기장 수선된– 헌 옷을 즐겨 사는 편이다. 가방이나 신발도 종종 이런 식으로 산다. 엄마와 난 패션의 지향점은 다르지만 어느 정도 의류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측면도 있다. 헌옷, 우리 모녀에겐 여러모로 고마운 단어다.
고마웠던 우리의 헌 옷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다시 골목길에, 아파트 쓰레기장 옆에 동네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초록색 헌옷 수거함으로 발신인 없는 편지처럼 툭 들어간다. 우리는 옷을 구입하고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초록색 상자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록색 상자 안에 모인 옷들은 일부 복지시설로 가고 5%만이 국내에서 유통되며, 나머지 95%가 해외로 수출된다. 수출할 때는 디자인이나 색상, 브랜드를 불문하고 커다란 한 뭉치, 오직 양으로 킬로그램당 가격을 받는다. 큐브 모양의 커다란 한 뭉치 옷은 이제 어디로 날아갈까? 주로 몽골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팔려가는데 한때는 우리나라의 수출 효자 품목이었다고 한다. 2019년 기준, 한국은 미국, 영국, 독일, 중국에 이어 세계 5위의 헌옷 수출국[1]이다.
최종 수입국에서 헌 옷들은 각자 제 몫을 다하고 있을까? 어디선가 기부나 중고거래를 통해 누군가 입을 거라던 그 옷은 안타깝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세계 각국에서 개발도상국이나 최빈국(最貧國)으로 날아와 쓰레기 운하와 강을 이루고 있다. 가령 방글라데시는 중국과 함께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 제2위 의류 생산국이 되었는데, 현재 헌 옷뿐 아니라 의류 공장에서 나온 폐기물과 자투리천으로 거리는 그야말로 쓰레기 천지다. 글로벌 브랜드의 왠만한 공장은 이곳에 있다. 방글라데시 운하와 강에는 물고기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한편 아프리카 가나는 목초지가 사라진지 오래다. 당신은 쓰레기 산과 바다를 본 적 있는가? 소들이 헌 옷과 의류 폐기물 때문에 쓰레기 산위에서 풀 대신 옷을 뜯는다. 거대한 옷의 무덤은 썩지도 않고 계속 쌓여만 가며 어떤 사람들은 쓰레기를 뒤져 먹고 산다. 가나 인구의 두 배가 넘는 옷이 매주 수입된다. 뭉치로 들어오는 옷을 수입하기 때문에 그 안에 입지 못하고 버려야할 불량인 상태의 옷들이 상당수인데, 이는 진짜 ‘쓰레기’를 수입한 셈. 그 양이 많아도 너무 많아 지역 폐기물처리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하고 그냥 아무데나 폐기하기에 쓰레기 산이 생기고, 바다 깊은 곳엔 어부들이 입지도 사지도 않은 옷 뭉치들이 가라앉아 있다. 파도가 실어온 먼 나라의 옷들이 어부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엄청난 양의 옷이 밀려와 버려지는 건 무엇보다도 특히 북반구의 패스트 패션 (Fast Fashion)[2]과 과잉생산, 과잉소비 때문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70억 인구를 위해 전세계에서 매년 생산하는 옷은 100억개, 1년 안에 버려지는 옷은 330억개[3]이다. 지난 20년 동안 옷을 입는 사람의 수는 채 2배도 늘지 않은 반면, 의류생산량은 5배 이상 늘어났다. 패션업계는 전 세계에서 두번째로 환경을 가장 많이 오염시킨 산업이다. 전체 산업용 폐수의 20%가 의류산업에서 나오며, 팔리지 않는 새 옷 소각 등으로 의류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전 세계 선박 및 항공산업을 합친 그것을 능가한다.
싼 값에 옷을 쉽게 사고 버리지만 그 제작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염색과정에 드는 에너지 양은 엄청난데, 이를 테면 하얀 티셔츠 한 장 가격이 4,900원이지만 그 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의 양은 한 사람이 3년 동안 마실 수 있는 물의 양 2,700L와 맞먹는다. 한편 우리는 플라스틱을 입는다. 옷은 60% 이상이 합성섬유로 된 플라스틱이다. 버려진 헌 옷은 말 그대로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되지 못하고 99%가 쓰레기 매립지로 가거나 소각된다. 합성섬유로 만든 옷은 완전분해도 불가할뿐더러 세탁 시 섬유가 마모되면서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한다.
이 시점에서 ‘제로 웨이스트 (Zero Waste) 패션[4]’ 등 최근 의류 산업에서 진행하는 친환경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DON’T BUY THIS JACKET” (이 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문구로 유명한 미국 의류회사 파타고니아 (Patagonia)는 지난 5년간 헤진 자사 옷을 고쳐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공정무역 등을 통해 확보한 친환경 소재로 만들고 폐플라스틱에서 뽑아낸 섬유도 적극 활용한다. 아무리 친환경 제품이라도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버려지는 옷은 환경을 파괴하니 필요 없으면 이 옷을 사지말라[5]고 한다.
또한 이탈리아 중부도시 ‘프라토라’의 작은 구역에 수백 개의 기업들이 각각 하나의 공정에 특화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지난 100년간 연마한 재활용 기술을 바탕으로 보다 지속가능한 길을 제시한다. 전 세계 헌 옷의 15%가 이곳에서 재활용된다. 탄소화기계와 거대 세탁기를 거쳐 최소한의 쓰레기만 남기고 새 섬유로 재탄생한다. 새 옷을 만들 때보다 탄소 배출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애초 색상별로 분류하기 때문에 염색제 사용도 거의 없다[6].
만약 2020년 여름처럼 코로나 19로 인해 수출국이 전부 봉쇄되는 일이 또 발생[7]하면 국내에서 그 많은 헌 옷을 어떻게 소각하고 처리할 것인가? 나는 그럼 무얼 할 수 있을까? 파타고니아와 같은 탄소 중립을 위해 애쓰는 기업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당사(當社) 주식을 사볼까? 하지만 최선은 친환경적인 옷을 사는 것보다 지금 입고 있는 걸 오래도록 잘 쓰는 것. 오늘부터 새 옷이든 헌 옷이든 꼭 필요하지 않다면 사지 않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쇼핑 말고 다른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푸는 것으로, 그동안 나를 예쁘고 따뜻하게 꾸며주고 입혀준 고마운 옷들에게 보은(報恩)하는 마음으로.
[1] BACI, Product trade by year and country, 2019
[2] 패스트 패션 (Fast Fashion) : 스파(SPA, 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또는 제조소매업은 패스트 푸드처럼 빨리 음식이 나와 먹을 수 있듯이 최신 유행을 채용하면서 저가에 의류를 짧은 주기로 세계적으로 대량 생산 · 판매하는 패션 상표와 그 업종, https://en.wikipedia.org/wiki/Fast_fashion
[3] KBS 환경스페셜, “헌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2021.07.01
[4] 제로 웨이스트 (Zero Waste) : 버리는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철학, 동아닷컴, “단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패션 브랜드”, 2020.07.23
[5] 뉴스;트리 KOREA, “헌 옷도 자원이 된다…’의류폐기물’ 줄이는 방법들”, 2021.09.29
[6] BBC NEWS KOREA, “헌옷 재활용 메카 된 이탈리아의 소도시”, 2020.12.18
[7] 조선일보, “그 많던 우리 동네 헌 옷 수거함, 어디 갔지?”,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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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구성원들 간 삶의 질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고 사회경제적 변화들이 한국사회의 전면적인 탈바꿈을 요구하는 지금, 정치공동체의 조직, 구성, 운영에 대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함. 상대적 자율성과 적응의 원리를 내재하여 내외적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온 복지국가는 여전히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 이에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안착되지 않은 복지국가를 최신의 버전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심층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을 동시에 고려해, 제안하고자 함. 특히 다양한 분야의 현장에서 활동중인 분들의 살아 있는 방안들을 제안하려 함.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후 현장에서의 실천적 운동에 매진. 주로 빈민운동과 환경운동에서 활동. 현재, 조그만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운동을 통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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