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의 역전
“개벽은 깨어 있는 자세”입니다. “중도는 배제를 거부하는 포함의 태도”입니다. “보듬는 태도”로써 “편도에서 중도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구구절절 열 번이고 백번이고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실로 개벽학은 동학 외골수를 사절하는 바, 유학과 서학도 두 팔 벌려 보듬어 삼학을 회통해야 합니다. 서학의 최전선을 달리고 있는 과학 공부를 제가 유난히 강조하는 것도 서구 중심주의 비판이라는 20세기의 과제에 붙들려 21세기의 격변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패착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하늘에는 동과 서가 따로 없습니다. 인류세는 남과 북,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동시에 닥쳤습니다. ‘지구적 한국인’으로서의 시공간 감각을 연마해야 합니다. 그래야 개화와 개벽의 대합장, 대합창도 가능해집니다.
반면 우리의 대화 속에 은근슬쩍 외면당하고 있는 쪽이 유학입니다. 해방공간을 살피면서도 천도교와 원불교를 먼저 다루었습니다. 개화좌파와 개화우파의 갈림길에서 중도를 모색했던 개벽파의 샛길과 새 길을 앞서 탐색했습니다. 그러하면 유학은 척사파 이래 도태되고 말았던 것일까요? 유교는 20세기와 호흡하지 못하고 그 사상적 수명을 다해버린 것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럴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합니다. 2,500년 유장한 유교사에서 100년의 난세는 일순일 뿐입니다. 과연 필사의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다만 개화를 맹목하야 관심이 미치지 못하고 조명을 비추지 않았을 뿐입니다. 악플보다 무서운 것이 무플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해방공간의 재재인식, ‘인식 3.0’을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유교계의 동향을 살피려고 합니다. 깨어 있는 자세로, 배제를 거부하는 포함의 태도로, 어루만지는 손길로 유교의 와신상담, 환골탈태를 반추하려고 합니다.
듬직한 길잡이가 있습니다. 노관범 교수입니다. 제가 귀국하면 꼭 찾아뵈어야 할 분으로 선생님과 함께 꼽아두었던 두 명 가운데 한 분입니다. 서울대 규장각에 몸담고 계십니다. 관악산에서 뵌 지도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분의 <고전통변>을 너무나도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제가 즐겨 쓰는 ‘고금합작’이라는 말도 이 책을 통해 길어 올린 발상입니다. 전통과 근대를 두 동강이 토막 내지 않습니다. ‘유교 망국론’이야말로 유교 국가를 경험한 적이 없는 일본이 주조한 식민주의 담론이었음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장기적 호흡 속에서 전통의 근대화, 유교의 현대화를 치밀하고 치열하게 탐색합니다. 경탄해마지 않은 역작이자 노작이었습니다. 그 후속편이 바로 <기억의 역전>입니다. 20세기를 지배한 개화파의 역사인식을 근저로부터 뒤집고자 하는 학문적 야심이 옹골찹니다. 제 처녀작인 <반전의 시대>와 문제의식이 통하는 바 없지 않았습니다. 때가 무르익으면 노관범과 조성환의 “21세기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 연재를 기획해보고 싶습니다. 동학 2.0과 유학 3.0 사이 창조적 대화가 기대됩니다.
<기억의 역전>에는 해방공간의 재재인식도 담겨 있습니다. 이관구가 집필한 <신대학>에 대한 논문이 그것입니다. ‘속 대학’이 아닙니다. ‘새 대학’을 표방했습니다. 전혀 새로운 현상만도 아닙니다. 주자의 <대학>을 조선의 풍토에 맞게 변환한 것이 율곡의 <성학집요>였습니다. 반 천년이 흘러 또 한 번의 조선적 <대학>이 모색되었던 것입니다. 고로 ‘대학 3.0’이라 하겠습니다. <대학>의 경세론을 계승하되 시세에 맞추어 변주한 것입니다. 하여 동방의 유자들에만 의탁하지 않았습니다. ‘고금동서의 성철(聖哲)’을 망라하여 치평(治平)의 정도를 탐구합니다. 경제학에서는 콜베르와 그린빌이 언급되고, 철학에서는 베이컨과 데카르트, 칸트가 호명됩니다. 가히 ‘고금합작’의 전범이라 하겠습니다.
모름지기 치국평천하의 첩경은 적확한 시대인식에 바탕한 정확한 시대정신의 구현에 있습니다. 응당 해방정국의 치국이라 함은 북조선과 남한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미국과 소련까지 아울러야 평천하의 정도를 개창할 수 있었습니다. 유학자로서 해방정국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번뜩입니다. 단도직입 ‘거짓 유신’(僞維新)으로 요약합니다. 단칼에 시대의 핵심을 파고들어 정곡을 짚었습니다. 개화좌파와 개화우파를 쌍끌이로 비판합니다. 진정한 정치 주체로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집단들이 남북분단과 사상분열의 격류 속에서 과도한 정치과잉을 노정하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직언합니다. 탁류 속에 웃자란 풋내기들이 설치고 다니는 꼴을 차마 보아줄 수 없던 것입니다. 저마다 영웅을 자처하며 언설을 쏟아내고 행동을 표출하지만, 실은 미국과 소련을 택일하여 거기에 맞추어 조선의 미래를 설계하고 그렇게 설계된 조선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외세 앞에서 경쟁적으로 전개하는 ‘사적인 정쟁’과 다르지 않노라 일갈했습니다. 정신도 정조도 없는 사사로운 소인들이 무리배가 되어 소련의 들러리와 미국의 하수인이 되어 농간을 부리고 있음을 통렬하게 고발했던 것입니다.
미/소에 대한 일침도 빛을 뿜습니다. 양자 모두 ‘민족제국주의’라고 단언합니다. 소련은 시베리아 및 동유럽을 경략하고 공산주의를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태평양 여러 섬 및 동서 대륙의 요지를 경략하고 자본 세력을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한쪽은 민주주의를 칭탁하고 다른 쪽은 공산주의를 칭탁하나, 그 수단과 방법은 달라 보여도 민족제국주의의 실행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안고 있음을 꾸짖습니다. 공산주의에 심취하여 소련에 아부하거나, 민주주의에 미혹되어 미국에 아첨하는 풍조 속에서 자국 정신이 완전히 망각되고 있음을 탄식합니다. 참된 애국자가 제 자리를 잡지 못해 떠돌고 있음을 개탄했습니다. 거짓 선비 나부랭이들(僞士者流)이 시대 풍조에 도취되어 민주주의의 참뜻도 모르고 눈이 멀고 귀가 멀었다(盲聾)며 신지식인들에게 비수를 겨누었던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물론이요 민주주의까지 싸잡아 민족제국주의의 선전선동에 불과함을 직시한 것이니, 과연 ‘깨어있는 자세’, 각자(覺者)의 성성한 태도입니다.
이 ‘거짓 유신’에서 탈출하는 사상해방의 전위로 호명된 것이 바로 ‘홍유’(鴻儒)입니다. 뇌수에 젖어 있는 사대사상으로부터 벗어난 진정한 유자를 호출했습니다. “자기의 이목이 없이 그저 고인의 이목으로 자기 이목을 삼는 태도, 말하자면 철학적 주체성이 없이 단지 고인을 숭배하는 풍조”를 목청껏 비판합니다. “아무리 대성거철의 언설이라도 실물에서 시험해 입증되지 않는다면, 본심으로 반성해서 타당하지 않다면, 믿지 말아야 하고 그래야만 천고의 미몽을 박차고 탁월한 홍유가 될 수 있노라” 쉰 소리를 내었습니다. “불행히도 한국의 도학계는 한학 수입 이래 조금도 창조가 없는 바”, 그 적폐를 해방정국의 개화좌/우파도 답습하고 있다고 호통 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세를 고쳐 잡아 집필한 저술이 바로 <신대학>입니다. 분단체제 아래 총체적인 ‘거짓 유신’의 정치적, 사회적 풍토를 극복하고 한반도 전체 주민이 통일국가의 국민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도덕과 정신과 지식을 함양해야 한다는 자각의 표출이었습니다. 격물(格物) 장에서는 과학을 설파합니다. 치지(致知) 장에서는 철학을 논파합니다. 제가(齊家)는 ‘이재’(理財)로 바꾸었습니다. 가계를 꾸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했습니다. 나라살림과 국가경영, 경제학과 경영학을 필히 익혀야 했습니다. 백미는 국가사상을 주창하는 정치학 대목입니다. 해방공간의 그 혼탁한 백가쟁명에도 정작 튼튼한 국가사상은 부재하다고 역설합니다. 아랫사람은 일신일가만 알고, 윗사람은 실용과 괴리된 철리만을 고담할 뿐이라 갈파했습니다. 전자는 노예근성의 발로이고 후자는 사대사상의 표출인 바, 독자적인 국가론이 없기에 독립의 실사구시를 탐구하지 못하고 남의 머리와 손발을 빌려오는 것이라 성토했습니다. 이렇게 자각적이고 자립적인 정신이 없다면 제대로 된 국가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 경고했으니, <신대학>이 출간되고 70년이 더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대학>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구절을 통으로 인용해 봅니다. “참된 수구 때문에 나라를 그르쳤다면 그 나라에 그래도 해볼 만한 데가 있지만, 거짓 유신 때문에 나라를 그르쳤다면 그 나라에 도리어 해볼 만한 데가 없으리니, 누가 능히 이를 알겠는가!” ‘거짓 유신’에 휘말리고 미/소에 휘둘리는 개화 좌/우파에 죽비를 내리쳐 통뼈를 때리는 팩트 폭력입니다. 도리어 ‘참된 수구’에는 그 올곧은 자세로 말미암아 갱생과 경장의 여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최익현과 유인석부터 김창숙에 이르기까지 꼿꼿하고 떳떳했던 유림들의 부단한 혁신, 척사파의 중단 없는 진화에도 제가 살뜰한 눈길을 주고 애틋한 연정을 품는 까닭입니다. 그 이행기의 가교가 ‘단군과 접속한 유교’, ‘민족 유교’ 대종교라고 보는 바, 만주 벌판의 그 가열 찬 무장투쟁은 명명백백 척사파의 서릿발 같은 자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유라시아 견문>의 말미, 동북 3성을 여행하며 영하 40도의 추위가 어떠한 것인지 몸소 체험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 혹한에도 굴하지 않으며 붓을 놓고 총을 들었던 ‘홍유’들의 행진을 보듬는 태도로 뜨겁게 껴안아주고 싶습니다.
2. 군자들의 행진
‘기억의 역전’은 해방공간에서부터 이미 도모되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주의 담론의 자장 속에서 망국의 원흉으로 낙인찍힌 유교를 재평가하는 학술적 시도가 일찍이 제출되었습니다. 1949년 출간된 현상윤의 <조선유학사>가 그것입니다. 탈식민주의의 일성이었습니다. 실천유학의 관점에서 조선의 유교운동사를 거시적으로 복원코자 했습니다. 이론과 사상이 아니라 실천과 운동으로써 유교를 재조망했던 것입니다. 과거사 다시쓰기는 늘상 미래를 전망하는 현재/현장/현실 참여의 욕망과 긴밀한 법입니다. 해방 이후 새 나라 만들기에 유교인들 또한 적극 개입코자 하는 열망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역시나 한국전쟁이 결정타입니다. 북조선을 적대하며 미국 품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이승만의 호위 아래 ‘거짓 유신’ 세력이 말하고 글 쓰는 상징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재야의 유교운동사는 제도권의 유학사로 대체됩니다. 상아탑의 창백한 지식인들이 유학 연구를 주도하면서 실천유학과 유교운동사는 가뭇없이 중단됩니다. 남북의 분단체제 수립과 더불어 고금의 분단체제도 확립된 것입니다.
해방공간 현상윤의 작업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걸작이 바로 이황직 교수의 <군자들의 행진>입니다. 4.19에 대한 가장 참신하고 파격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사를 NL(보국)과 PD(안민)로 양분하는 것 또한 개화좌파적 발상입니다. 4월 혁명을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미완의 시민혁명’으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개화우파적 접근입니다. 이황직 선생은 또 다른 민주화 대서사를 제시합니다. 4.19에 대한 ‘기억의 전복’을 시도합니다. 장엄한 유교운동사의 대산맥에서 불끈 솟아오른 또 하나의 봉우리로써 4월 혁명을 재인식합니다. 무수한 자료를 섭렵하고 관계자들의 꼼꼼한 인터뷰를 통하여 유교인들이 참여한 건국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기저에 척사운동과 독립운동이 근거했음을 인맥과 학맥 등 다기한 네트워크 분석을 통하여 꼼꼼하고 촘촘하게 복원해 냅니다.
이를 통해 개화우파의 수장 이승만을 끌어내린 결정타로서 4.25 교수단 데모는 장구한 유교 운동사의 저력이 빚어낸 현대적인 성취로 변모합니다. 4.19가 의거에서 혁명으로 도약하는데 현대적인 유교인들, ‘모던 군자’들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입니다. 이로써 근대적 혁신을 수행한 ‘모던 유교’의 이미지 또한 극적으로 반전합니다. 국망의 아픔에서 건국의 열기로 역전됩니다. 식민지 근대의 고통에서 현대 민주화의 함성으로 반전합니다. 뜨거운 열정의 정조가 역동적인 운동사와 접목합니다. 그리고 그 근간에서 공의(公義)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유교의 종교성을 발굴하고 ‘유교적 영성’을 재발견합니다. 극기복례, 소인을 넘어선 군자들로부터 현대 민주주의의 주체, 시민적 덕성을 탐색합니다. 단발을 하고 수염을 밀고 말쑥한 양복에 넥타이를 매었을지언정 그윽한 분노와 도덕적 대의로 무장한 학자들의 행진으로부터 두루마기를 두르고 삿갓을 쓴 채 최고통치자에게도 준엄한 비판과 통촉을 아끼지 않았던 순의와 순절의 근대화를 목도하는 것입니다.
<행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비로소 ‘20세기 유교사’의 일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21세기 하고도 1/5이 다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야 겨우 ‘대한민국 유교사’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5-60년대의 건국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편도 또한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사상계>를 필두로 한 기독교 계열 지식인에 편중되었던 개화우파적 편향을 수정하여 중도와 정도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동서가 융합하고 고금이 융통하는 시공간으로써 20세기 중반의 남한을 조명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전통과 현대 사이의 공백을 메우게 되었음이 득의입니다. 유교가 근대와 접속하여 새로운 역사, 독립운동과 건국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대서사를 면면하고 의연하게 그려가고 있었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백년간 고독했던 척사파에도 현대적인 생명력을 부여해 준 것입니다.
이제야 ‘4월의 시인’, 모더니스트 김수영이 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라고 노래했던가를 가로 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의 데뷔작은 <공자의 생활난>이었고, 대표작 <풀> 은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必偃)”는 <논어>의 한 대목을 현대적인 시어로 조탁한 것입니다. 고로 저항시인 김수영이 추구했던 중도라 함은 군자들의 행진, 모더니즘과 유교사상이 합류하는 고금합작의 대도(大道)였다 하겠습니다. ‘거대한 뿌리’의 그 위대한 절창 또한 바로 그렇게 탄생했던 것입니다.
3. 유교 3.0
이황직 선생의 전공은 사회학입니다. <군자들의 행진>의 후속작은 무려 토크빌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아메리카와 아시아를 아울러 유교와 민주주의를 탐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깨어있는 자세’, 미더운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곧장 떠오르는 분이 김상준 교수입니다. 역시 서구의 민주주의 이론에 해밝은 사회학자이자 동아시아 문명에 정통한 모던 선비이기도 합니다. 대작 <맹자의 땀, 성왕의 피>의 표지를 장식한 붓글씨 또한 당신이 직접 쓰신 것입니다. ‘다른 유교와 다른 기독교’, 일생을 통해 신학과 유학의 회통을 도모하는 이은선 교수의 작업도 든든합니다. 유학과 동학과 서학을 자유자재 가로지르는 백승종 교수도 동렬의 반열에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황태연, 한형조, 나종석 등 목록은 자꾸 늘어납니다. 이들 모두가 까도 아니고 빠도 아닙니다. 유교를 맹목적으로 배척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유교를 무조건으로 옹호치도 않습니다. 유교의 근대적 혁신을 천착합니다. 척사파로부터 유교를 구출하여 21세기로 이행시킵니다. 20세기의 유교에서도 옥석을 가려 원석을 보석으로 재가공하는 심열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남방의 불교를 수용하여 신유학, 유교 2.0이 달성되었던 것처럼 서방의 과학을 학습하여 개신유학, 유교 3.0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21세기의 공동가치를 찾기 위해서” 유교의 혁신을 북돋고 우군으로 삼아서 인류문명의 대연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동존이(求同存異)의 미덕으로 범개벽파를 결집시켜야 비로소 인류세를 개벽세로 전환시키는 대사업도 완수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어서”
그럼에도 <역전>과 <행진>에도 아쉬운 바 없지 않습니다. 유교 3.0 또한 대학 3.0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최근 제가 몰두하고 있는 방향은 소학 3.0입니다. 소학의 근간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대학이 아무리 번듯한들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기초부터 근본부터 착실하게 다져야 합니다. 요즘 지하철을 오갈 때마다 빠져들며 시청하고 있는 콘텐츠가 넷플릭스의 <Beginning of Life>입니다. 사람됨의 바탕이 형성되는 유아기의 뇌 형성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명품 다큐입니다. 소학도 부재하고 가학도 무너져버린 현대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닙니다. 소학 이전 태학까지 숙고하게 만듭니다. 개벽학 또한 20대를 전후로 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해서만은 곤란하다는 생각마저 일어납니다. 개벽소학의 밑바닥을 든든하게 꾸려야 하겠습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2세부터 5세까지 한 생명이 이 세계를 향하여 던지는 질문이 무려 4만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물음에 어떻게 반응하고 응답해 주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인생 전체의 궤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과연 돌아보노라니 율곡은 조선의 소학 <격몽요결>을 집필했었고, 최남선 역시 20세기의 <산수 격몽여결>을 정리했던 바입니다. 우리는 우리시대의 소학을 만들어갈 필요가 절실합니다. 저는 당장 짝과 더불어 송파구청에서 ‘21세기 소학운동’을 실험해보고자 합니다. 소학 3.0, ‘개벽 어린이집’을 출범시키고 싶습니다.
또 하나 미진한 점은 사상사와 운동사의 복원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기억만 역전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기억의 반대말이 망각인 것도 20세기적 발상입니다. 기억도 망각도 흘러간 시간, 과거를 기준으로 삼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달이 눈부신 21세기에는 기억을 기계에 아웃소싱할 수 있게 됩니다. ‘생각하는 유기물’ 사람과 ‘생각하는 무기물’ AI가 공존 공생하는 Life 3.0 시대에는 기억의 반대말이 상상이고 창조일 공산이 한층 높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역전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고 창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술이창작(述而創作)의 최적기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제도 혁신을 수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하 현대사상계에서 유교가 다시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포스트-민주주의’, 근대적인 대의민주주의의 오작동이 동서를 가리지 않고 번다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한성장과 무한욕망의 충족에 바탕한 선거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신/구대륙을 막론하고 자욱하기 때문입니다. 국제질서만으로는 인류의 평화를 담보할 수 없음을 절감했기에 천하위공, 천하일가를 재론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상계 역시 이미 개화좌파와 개화우파를 가리지 않고 유교 3.0의 우산 아래 합류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유교좌파와 유교우파로 재편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 개신유학자들은 19세기형 척사파도 아니요 20세기형 개화파도 아닙니다. 과연 현대적인 제도 혁신에도 적극적입니다. 벌써 천지인 삼재에 기초한 ‘의회 삼원제’ 구상도 제출이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구상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곳은 미국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장소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주입니다. 서방의 민주주의와 동방의 현능주의를 조화롭게 결합시킨 21세기형 ‘인텔리전트 거버넌스’를 주 정부 차원에서 모색하고 있습니다. 부제에는 동서 사이의 중도, middle way를 추구함을 못 박아 두었습니다. 물질개벽을 주도하고 있는 실리콘밸리가 정신개벽의 실험장이기도 하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명상과 요가와 태극권과 아유르베다의 메카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절반이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계인바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대융합, 신대륙과 구대륙이 회통하는 창조적인 허브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캘리포니아 전체가 200년 전 토크빌과 2000년 전 순자를 융합하여 제도개벽(Renovating Democracy)을 실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북을 아우른 고려(코리아)가 캘리포니아 만 못할 소냐 싶습니다. 모던 군자들 또한 유교를 대학의 학술에만 가두지 말고 현실과 현장 속의 경세학으로 거듭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 판 <신 경세유표>를 저술할 수 있어야 정녕 ‘유교 3.0’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시 유교계로 우회했습니다. 편도를 벗어나 중도로 진입하여 정도를 찾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즉 개화우파와 개화좌파 모두가 ‘구개화파’, 적폐로 전락하고 있는 작금에 곱씹어 볼만한 유산과 자산이 적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유교 3.0과 서학 3.0이라면 기꺼이 개벽파와 대연정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편벽된 마음을 거두고 고루고루 배우고 두루두루 익혀야 하겠습니다. 다시 개벽파로 재진입합니다. 저도 해방공간에서 제출되었던 정산 종사의 <건국론>을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던 바입니다. 그 원불교의 개벽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백낙청 선생과 홍석현 회장의 행보도 흥미롭습니다. 각기 개화좌파에서 개벽좌파로, 개화우파에서 개벽우파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상극했던 개화 좌/우파에서 상생하는 개벽 좌/우파로 상호 진화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그렇게 20세기의 ‘거짓 유신’, 껍데기는 가고 향그러운 흙가슴과 조우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토록 염원하는 개벽천하의 신세기와 신천지를 목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개벽학은 동학 창도 이래, 이 땅의 자각적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이다. 동녘의 오래된 유학과 서편의 새로운 서학이 합류한 문명의 융합을 거대한 뿌리로 삼는다. 그러함에도 한국학, 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구부터 남미까지, 인도양부터 시베리아까지, 지구적 규모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구적 단위로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특히 인간이 창조한 인공의 세계, 인공지구와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의 도래를 주시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간의 공진화, 생명과 기술과 의식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후원으로 다른백년과 함께 해 주세요.
개벽과 유교탈레반이라니 누가 이렇게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