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나는 환경관련 기관에 근무하면서 일본의 원전 시설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쓰나미로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사고지점 근처에만 가도 외교부에서 방사능 노출에 조심하라는 문자가 연속 날라왔다. 그때마다 뉴스에서 보았던 대형 쓰나미와 원전사고 장면들이 소름 끼치도록 생생히 떠올랐다. 일본의 원전 시설들을 견학하면서 시종일관 듣는 내용은 원자력 발전은 효율적이고 안전하다는 소리였다. 예쁜 모자를 쓴 미녀 안내원이 상냥하게 웃으며 설명을 하니 나도 웃으며 열심히 들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올해 우리나라는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달리 G7회의에 초대받지 못했다. 주최국 독일은 한국을 배제했다. 독일은 원전 배제 주도 국가이다. 그런데 G7이 있기 전, 윤석렬 대통령은 우리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로써 ‘원자력 에너지를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확보’하고 ‘재생에너지를 현재 30%에서 20%로 축소’할 것을 발표했다. 이제 감이 오지 않는가?
심지어 군사 동맹인 NATO에서조차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발표하고 환경위기 공동대응 결의를 하는 마당에 윤 대통령은 회의 전은 물론이거니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조차 원전 판매에 열을 올리고 친원전 메시지를 날리고 있으니 홀홀단신 전 세계와는 거꾸로 나아가는 것 같다.
더욱이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뉴스타파[1]에 따르면, 산자부는 ‘원전 확대’ 정책 결정과 함께 소형모듈원자로(SMR)의 시장 규모가 약 3,500억 달러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는데, 이 수치는 17년 전 작성됐다가 ‘예측 실패’로 결론 난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산자부가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추기 위해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자료를 인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전 세계 원자력 에너지 발전량은 최대 호황기에 19%였고, 2021년도에는 그것의 절반인 10%에 머물렀다. 반면 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 도입 용량은 같은 해 82%를 차지했고, 신규 투자금액으로 치면 68%에 달했다. 수력 에너지를 포함한 전 세계 재생 에너지 발전량은 작년 기준 28~29%에 이른다. 이는 원자력 에너지의 2.8에서 2.9배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신규 투자금액이 발전 설비 도입 용량 보다 적다는 것은 그만큼 재생에너지가 더 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 10년 사이 똑같은 전기량을 발전하는데, 건설 비용 및 안전 비용을 포함한 원전 에너지의 발전단가는 33% 증가한 반면, 가령 태양광 에너지의 발전단가는 95% 감소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인 IRENA에 의하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시장에 매년 1,200조원 정도의 투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렬 정부는 원전 10개를 독자 수출하겠다고 선언했으나, 현재 원전 에너지 시장은 점점 수축하는 단계로 여건 상 독자 수출도 불가능하며 세계에 10개를 수출할 시장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보급률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6.8%로 꼴지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EU 국가들은 평균 40%, 일본과 미국은 20% 이상이고, 중국도 29%의 보급률을 보이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인 IAEA를 포함한 전세계 국제기구들은 원전 에너지가 재생 에너지보다 더 이상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않고 그 시장 또한 작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 6일, EU의회는 원자력과 가스 에너지가 2050 기후 목표인 탄소중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택소노미(taxonomy)[2]에 포함된다고 결정하였다. 그 조건은 원자력 에너지의 경우 1) 사고저항성 핵연료와 2) 영구처분장을 2025년까지 적용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그린 에너지 자금 지원이 가능하다.
사고저항성 핵연료는 수소발생 속도를 늦춰 사고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우리나라는 연구개발 시작단계에 있다. 노심을 개발하고 테스트하는 데에만 최소 5년은 소요된다고 한다. 영구처분장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어 아예 그 개념조차 없다. 조건 2)에 따르면 ‘고준위 폐기물’을 영구처분장에 처리해야 하는데, 우리는 ‘사용 후 핵연료’라는 이름으로 재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영구처분장을 만들려면 실험용으로 월드컵경기장만한 거대한 암반구조가 있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전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를 EU의 택소노미의 원자력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결코 지키기 어려운 조건이다. 결국에는 탄소국경세를 적용하고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 이상 시장성도 없고, 저렴하지도 않고, 인간과 자연에 건강한 에너지가 아닌 원전 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바보짓’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객관적인 통계와 데이터, 전 세계 선진 국가들의 합리적인 방향성을 무시한다면, 대한민국은 겉멋만 든 화려한 후진국에 불과하며 국제사회의 따돌림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1] 2022.07.08 https://newstapa.org/article/FGQWe
[2] EU의 친환경투자기준 녹색분류체계, 이 분류에 따라 EU는 1조 유로 규모, 즉 1,300조 원에 달하는 기금을 기후변화대응 ‘그린 딜’에 투입할 예정이다.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후 현장에서의 실천적 운동에 매진. 주로 빈민운동과 환경운동에서 활동. 현재, 조그만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운동을 통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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