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0 : ‘미려 중국’
기본과 근본은 다르다. 근본에 이르기 위해 기본을 다지는 것이다. 20세기의 절대가치였던 부국강병 또한 기본에 그친다. 근본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건강이 목표이고, 부강은 방편이다. 마오쩌둥이 강한 나라를 세웠고, 덩샤오핑이 부유한 나라를 만들었다면, 시진핑은 부강 넘어 새로운 문명적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집권 2기의 아젠다가 바로 ‘미려중국’(美麗中國)이다.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가 2049년 건국 100주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비전이다. 당헌에 삽입한 생태문명이라는 세계관과 시장에 도입하고 있는 순환경제라는 방법론 역시도 아름다운 중국이라는 근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 다지기라고 하겠다.
생태문명, 순환경제, 미려중국이라는 마스터플랜을 이행하기 위한 로드맵이 ‘3060’이다. 2030년에 탄소배출 정점을 찍고, 206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시간표이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의 공장’이며, 앞으로 도시로 진출할 농촌의 인구도 5억을 헤아린다. 당장 탄소 배출을 절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목표이다. 2030년부터 탄소 감소로 전환해서 2060년에는 탈탄소 생태문명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진핑만큼 기후위기를 자주 거론하는 지도자도 드물다. 국내외 연설문을 찬찬히 읽노라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책임대국으로서 책무를 다하겠다는 사명을 거듭 표명한다. 허언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힘들다. 실제로 그의 집권 10년 동안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클린 에너지 분야를 선도하고 있음은 이미 소상히 살펴보았다. 중국이 풍력 발전에서 미국을 앞지른 것이 2012년이다. 2018년에는 세계 풍력 터빈의 1/3을 중국이 생산했다. 태양광 발전에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누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태양광 발전 비용이 80% 이상 떨어진 것도 중국의 기술 혁신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왜 태양광 패널의 대개가 중국산인가는 시장 논리로 능히 설명이 된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경제적으로 가장 합리적일 뿐더러, 기술적으로도 가장 앞서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는 중국의 트리나솔라(Trina Solar)이다. 스마트 마이크로 그리드 및 다중 에너지 보완 시스템과 에너지 클라우드 플랫폼까지 운영하면서 천상자원과 가상자원을 결합하여 미래를 개척하는 선구적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진코솔라(Jinko Solar)와 선테크 파워(Suntech Power) 또한 태양광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이다. 이들이 건재하기에 100% 재생에너지만 쓰겠다는 RE100에 참여하는 중국 기업들도 경쟁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린 모빌리티로의 전환 속도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수소차와 전기차는 국책 산업이다. 20세기 미국이 가솔린-엔진-자동차 시대를 선도했다면, 21세기의 중국은 전기-배터리-자율차 시대를 주도하고 있다. 이미 세계 최대의 전기차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제조와 판매 분야에서 타국의 경쟁을 허락하지 않는 초격차 선도국이다. 중국의 리튬 이론 배터리 셀 제조 역량은 전 세계의 3/4에 육박한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오늘날의 테슬라와 같은 입지를 다지는데도 중국에서의 생산과 소비가 결정적이었다. 세계 전기버스의 90%가 중국 안에서 운행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긴 고속철도 역시도 중국 전역의 도시와 도시를 그물망처럼 엮어내며 에너지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미국의 대륙횡단철도가 20세기를 열어냈다면, 중국의 스마트고속철도가 21세기를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은 에너지 수입국에서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신하고 있다. 산유국에서 석유와 가스를 수입하던 나라에서 재생에너지와 신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수출하는 ‘산전국’(産電國)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그린 에너지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그린 파이낸스를 통해 목돈을 투자한다. 케냐가 자랑하는 헬스게이트(Hell’s Gate) 국립공원 근방의 올카리아(Olkaria)에는 지열 발전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80km 떨어진 나이로비 시내까지 청정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해발 4000미터 푸나 주제나(Puna Jujena) 고원에 자리한 카우차리(Cauchari) 발전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태양광 발전소로 중국이 거액을 투자한 곳이다.
중국삼협총공사(China Three Gorges, CTG)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력발전 공급자이다. 총 47개국에서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브라질에서는 48개 수력발전소 가운데 14개 발전소를 중국이 담당한다. 풍력발전소 11개도 중국이 가동시키고 있다. 브라질 전력의 10% 이상을 중국 기업이 도맡고 있는 것이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도 풍력과 태양력 프로젝트에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되었다. 화력 발전소로 따지면 21개에 달하는 12,000 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즉 중국은 이미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배터리, 전기차의 최대 생산국일 뿐 아니라, 청정 에너지에 대한 최대 투자국까지 된 것이다. 이처럼 재생에너지 기술을 수출하고 자본을 투자하면서 중국은 석유를 수출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러시아와는 상이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지하의 화석자원이 아닌 천상의 신재생에너지 슈퍼파워 국가로 재탄생한 것이다. 즉 ‘미려중국’은 국내용 레토릭으로 그치지 않는다. 대외적 매력공세, 소프트파워와 스마트파워 세계전략과도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
지구공학, 기후 엔지니어링 분야도 개척하고 있다. 대기의 탄소를 지구 깊숙이 다시 집어넣는 탄소포집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인공위성을 통하여 지구의 생태 변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지구와 태양 사이에 우주 반사기를 설치하여 지구의 기온을 조절하고, 달을 탐사하며 자원을 채굴하는 프로젝트 모두가 “3060 미려중국” 이라는 비전 아래 진행되고 있다. 인공강우(Cloud-seeding) 실험도 활발하다. 드론이나 소형 비행기를 하늘에 보내서 비나 눈 결정을 만들어 공기를 깨끗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로켓으로도 쏘아 올릴 수 있다. 2019년 가뭄이 심했던 안후이 성에서는 총 327차례나 로켓을 통해 인공 적으로 비를 내리게 했다.
티베트 고원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을 대처하기 위해서도 기후공학은 적용된다. 티베트 고원은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로 흘러가는 주요 강줄기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북극과 남국에 이은 제3극(The Third Pole)이라고도 불린다. 장강과 황하, 인더스와 갠지스, 메콩강이 모두 여기서부터 발원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인구를 헤아리면 인류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대로 빙하가 계속 녹아내리도록 방치하면 강물 범람과 해수면 상승 등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이 세계의 지붕에서도 인공기후 만들기가 전개되고 있다. 기상 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빙하의 수명을 연장시키자는 것이다. 이름하여 천하(天河) 프로젝트이다. 기후 재난을 면하고자 기술을 개입시키는 인류의 필사적인, 사활적인 발버둥이라고 하겠다.
실로 중국이 구현해가고 있는 어스테크, 그린테크, 기후테크 분야의 대약진은 기술의 차원에서 그치지가 않는다. 인간이 축적해온 기술의 집약, 통치와 정치와도 직결된다. 농업문명에는 왕권에 기초한 일인의 독재 체제가 안성맞춤이었다. 산업문명에는 시민권에 근간한 만인의 민주주의가 최적화된 모델을 제공했다. 생태와 생명과 건강과 안전이 최고의 가치가 될 미래문명에 부합하는 거버넌스는 어떠한 꼴로 진화할 것인가. 거버넌스 테크놀로지, 거넌테크의 영역에서도 중국은 전인미답의 실험에 나서고 있다.
그린 거버넌스 : 권위주의와 환경주의
중국공산당은 소련처럼 강철 노동자가 지배하는 산업문명 국가를 지향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러했다. 마오쩌둥의 신중국 1.0은 노동자가 아니라 농민에 근간한 혁명으로 새로운 사회주의국가를 표방했다. 덩샤오핑의 신중국 2.0은 시장을 포용하는 혁신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좌우합작의 새 모델을 창출했다. 시진핑의 신중국 3.0은 생태문명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시 주석이 즐겨 인용하는 ‘녹수청산이 금산은산이다.’(綠水靑山就是金山銀山, 맑고 깨끗한 산과 물이 귀중한 자산이다.)라는 말이야 말로 일백년 중국공산당의 변화 과정을 함축한다.
즉 중화인민공화국은 마오를 통하여 농업문명에서 산업문명으로 이행하였고, 덩을 통하여 상업문명으로 이행하여 소강사회를 이루었으며, 시의 지도 아래서 생태문명이 구현되는 대동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이다. 마르스크도 레닌도 그 누구도 전망하지 못했던 녹색 사회주의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덩샤오핑이 물과 기름처럼 여겨졌던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결합한 새모델을 개척해 낸 것처럼, 환경보호와 경제발전 사이의 긴장을 타개해가는 기술적 혁신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즉 테크놀로지와 에콜로지가 공진화하는, 테크와 에코가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중국 특색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새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신중국 3.0의 가장 큰 과업이라고 하겠다.
달리 말해 중국은 권위주의적 환경주의 모델을 조합해내고 있다. 과학자와 기업가, 시민사회에 역량을 분산시키기보다는 중국공산당의 집중화된 권위와 실력에 바탕하여 환경지식과 기술혁신을 종합하고 총괄한다. 생태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라는 관성적인 친화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경제모델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SF 형식을 차용한 미래전망에서 이러한 신생국가의 등장을 예견한 지식인들이 있었다. 하버드 대학의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캘리포니아 공대의 에릭 콘웨이가 공저한 <다가올 역사, 서양문명의 몰락>이 그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기후 붕괴 이후에 등장할 제2기 중화인민공화국을 전망한다. 자유시장과 민주주의가 기후재난에 무력한 채 지구적 재앙을 초래하고, 결국 두 번째 신중국이 등장하여 재앙 이후 인류의 문명을 재건해간다는 것이다. 그 상상의 시나리오는 전혀 근거가 없지도 않다. 실제로 오늘날 중국의 그린/클린 에너지 혁명은 이미 국가가 주도하는 ‘발전주의적 환경주의’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2세기의 제2기 중화인민공화국을 기다릴 것도 없이, 시진핑의 신중국 3.0이 이미 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에 의해 산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지속가능한 미래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는 것은 20세기와의 연속성도 확보한다. 197-90년대 동아시아의 기적을 일구었던 ‘발전국가’ 모델을 기후재난 시대에 맞게 변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동아시아만이 북미와 서구에 맞먹는, 그리고 양 지역을 합한 것보다 더 큰 경제 규모로 부상한 기적을 이루었다. 이제는 전 인류적 과제가 되고 있는 환경문제도 발전국가 모델로서 해결해 내겠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흑묘백묘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쥐를 잘 잡는 것이 좋은 고양이다. 기후재난을 해결하는 것이 21세기 인류의 최대의 과제라고 한다면, 그 방편이 민주주의든 권위주의든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중국 특유의 실용주의의 발로이다.
비판하는 쪽은 다시 달이 아니라 손가락을 쳐다본다. 생태문명건설이라는 목표가 아니라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 시장이냐 국가냐,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 일당독재냐 다당제냐,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 실제로 ‘권위주의적 환경주의’와 ‘환경주의적 권위주의’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권위주의의 지속을 위하여 환경주의라는 매력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니 실제로 그런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하면 환경주의적 권위주의는 기각되어야 하는 것일까? 반드시 환경주의는 민주주의라는 단일경로로만 달성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20세기의 주술이자 교조적 발상이지는 않을까? 권위주의적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삼았던 환경주의에서 획기적인 성과들이 우후죽순 솟아나고 있다면, 그 이전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도리어 되물어 보아야하지 않을까? 중국이 진정으로 생태문명을 건설하는 녹색 중국이 된다면, 그것은 지구 전체에도 퍽이나 이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인류의 존망이 달려있는 사활적인 과제에 제도와 체제 경쟁은 부차적인 사안일 수 있다. 최상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최선임이 진화론의 골자이다.
거꾸로 질문해 볼 수도 있다. 기후 위기가 이토록 화급할 때, 구조적으로 우왕좌왕을 허용하는 민주주의로 인류의 생존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 로마클럽의 보고서가 나온 지도 50년이 흘렀다. 리우회의가 열린 지는 30년이 지났다. 벌써 7년이 지난 파리기후협약은 정녕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주는가? 기후재난과 6번째 대멸종을 해결할 거버넌스가 민주주의의 확장이고 심화일 것인가?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민주주의가 승리한 지난 30년 동안 기후위기와 생명다양성의 위기는 더욱 악화되었던 것이 아닌가? 정말로 민주국가들이 모여서 기후정상회담을 열심히만 하면 실질적인 해결책이 나오는 것인가? 그렇지 못하다는, 그러하지 못했다는 냉철하고 객관적인 판단이 내려질 때가 아니겠는가? 그러하다면 생태-권위주의는 그것이 권위주의이기 때문에 절대로 수용할 수가 없는 것인가? 살아남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숭고한 가치가 민주주의이고 자유주의인 것인가? 자유민주주의는 생존과 생명을 능가하는 만고불변의 절대가치인 것인가? 혹 그런 것이 아니라면 녹색 권위주의 또한 진지하게 숙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인류의 존속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독점 시장을 허무는 사상의 해방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실제로 농업문명이 가능했던 홀로세 1만년 전체를 돌아보아도 민주주의는 극히 짧은 시공간에서만 작동했던 예외적인 시스템이다. 인류세의 도래를 맞이하여 뉴노멀 뉴거버넌스에 대한 근본적인 상상력을 재가동시켜야 할 시점에 당도한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의사소통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만큼 한가한 국면인지 잘 모르겠다. 의사결정에도 우왕좌왕해도 될 만큼 느긋해도 될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신속한 결단을 내리고 철저하게 집행하는 권위주의 모델에 매혹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홀로세와 산업문명 시대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떨쳐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나마 살 길이 겨우 조금 열릴 지도 모른다. 그런 절박한 위기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관성적으로 관념적으로 민주주의 타령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현재가 대안이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녹색 권위주의의 실험을 그저 일국의 프로파간다로만 치부하고 말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로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간절함 속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문명을 창조해내기 위해서는 관성적 관념부터 청산해야 한다. 그래야 생산적 논쟁을 촉발하고, 정치적 상상력을 해방시킬 수 있다.
뉴플래닛, 뉴플랜 : 홀어스, 홀이코노미
실제로 중국은 그들의 그린 거버넌스를 글로벌 모델로 삼고자 한다. 붉은 중국이 아니라 녹색 중국으로 리브랜딩하여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중국 모델이야말로 기후재난 시대의 가장 적절한 거버넌스가 될 수 있다며 어필한다. 즉 중국을 인류세를 선도하는 신문명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기후는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는 전 지구적이고 전 인류적인 과제이기에 중국의 실험은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의 영토가 광대하고 인구가 방대해서만이 아니다. 개혁개방 이래 세계와의 연결망이 더 많아지고, 더 많은 자원이 오고 가며, 더 많은 환경적 영향을 주고받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린 차이나가 글로벌 차이나로 이행하는 길목에 일대일로가 자리한다.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는 근간이 되었던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문명을 통과하지 않고도, 곧바로 생태문명으로 단번에 도약하는 풀패키지 발전모델을 공급해 주겠다는 것이다.
상징적인 나라가 UAE이다. 20세기 석유 경제로 부흥한 중동의 신흥국가이다. 21세기에는 탄소 중독에서 벗어나 기술 중심의 탈탄소, 탈석유 국가로 전환해가야 한다. 이 UAE의 새나라 만들기에 중국이 적극 협력하고 있다. 탈석유 경제로의 대전환에는 필히 디지털 대전환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2019년 기준으로 UAE의 스마트폰 시장의 75%가 중국산이다. 안전성, 발전, 투명성, 예측가능성, 효율성, 지속가능성 등등의 이름으로 중국산 디지털 기술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서방의 거듭된 경고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가성비 높은 디지털 테크의 요구와 수요는 일대일로 전방에 걸쳐 도리어 늘어나고 있다. 2018년 시진핑 주석이 방문했을 때 UAE의 경제부 장관은 일대일로를 ‘세계를 향한 중국의 선물’이라고 격찬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그 이듬해 답방하여 아랍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규모의 UAE가 일대일로의 빛나는 진주라고 화답했다. 즉 중국은 그린 거버넌스의 이름으로 그린 테크와 함께 테크노크라시도 동반 수출하고 있다. 저비용, 저탄소 솔루션을 제공하며 제품과 운영체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패키지로 보급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린 거버넌스의 혁신적 생태문명에는 데이터 테크놀로지가 결합이 되어야 스마트하게 진화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 빅데이터, 스마트 인프라, 블록체인 등이 모두 결합되어 모든 이와 모든 곳과 모든 것을 모든 순간과 연결해 내는 것이다. 그린 테크노크라시의 근간에 디지털이 토대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야말로 지속가능한 미래형 생태문명으로 이행하는데 필수적인 신생 자원이라고 하겠다. 알리바바가 항저우에서 실험하고 있는 ‘시티 브레인’ 역시도 도심에서의 실시간 교통 측정으로 대기를 오염시키는 이동 시간을 최소화시키는 등, 환경 문제에 대한 솔루션으로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중국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는 이 디지털-에코 시티의 모델 또한 일대일로를 따라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어 갈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더 크고 더 많고 더 깊은 데이터 확보를 추구하고 있다. 지구 전체가 데이터로 통합되는 “BIG EARTH DATA” 프로젝트도 입안이 되었다. 2019년 1월 중국과학원은 5백만 기가바이트의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했다. ‘CASEarth Databank’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데이터 뱅크에는 미생물부터 지형과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부가가치 창출 등 일대일로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모든 실시간 정보를 수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지상의 빅데이터를 규합해내기 위해서는 천상의 인공위성도 가동되어야 한다. 이미 2016년 중국이 소유한 첫 해외 인공위성 기지도 발족이 되었다. 스웨덴의 북부 키루나(Kiruna) 지역이다. 본디 철광석 생산으로 유명했던 장소이다. 극지방 위성 접근에 용이한 장소인 데다가, 스웨덴은 NATO에 가입하지 않는 국가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키루나의 철광석 채굴을 위하여 중국 노동자들이 파견되었던 오랜 인연도 있었다. 그들이 모여 살던 뉴키루나는 일종의 차이나타운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 역사적 꽌시를 디지털과 접목하여 지구 관측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은 것이다. 여기서도 토질의 영양분부터 공기의 질까지 Big Earth Data를 수집하고 있다. 원거리 정보수합, 항공사진, 그라운드 모니터링 등등 방법도 다양하다. 그리하여 대지와 대기와 대양을 막론하고 에너지와 인간과 도시 등 모든 정보를 총망라하여 파악하고 장악하는 것이다. 생태관찰과 재난방지, 환경보호, 도시건설, 교통관리 등등 빅어스데이터는 디지털 실크로드의 신경중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즉 인간과 자연의 소통, 사람과 사물의 소통에 대한 정보를 융복합시키는 새로운 실시간 계획이 수립된 것이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경제학 등등을 통합한 슈퍼컴퓨터 프로그램도 마련이 되었다. 이름하여 통합평가모델(Integrated Assessment Models) “IAMs” 이다. 아이엠스(IAMs)는 기후 정치에도 필수적이다. 비로소 지질권과 생물권과 인간권과 기술권을 통합하는 정보 체계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국의 그린 거버넌스는 당 중앙에 사후 정보가 집중되는 일국 단위의 ‘과학적 사회주의’가 아니다.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지구 규모의 ‘수학적 사회주의’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자원을 배분하는 판단과 결정을 담당했던 테크노크라트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화된 판단과 자율화된 결정이 새로운 ‘자연 경제’를 형성해가는 전대미문의 신문명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알고리즘을 장착한 최적화된 녹색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탐문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인류는 비로소 홀어스에 부합하는 홀이코노미, 전 지구적 단위의 한살림의 방법론을 찾아낸 것인지도 모른다. 지구에는 무해하고 인류에는 이로운 만인-만물-만사의 멋진 신세계, 뉴플래닛 뉴플랜의 여명기에 당도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신중국이 여전히 중화인민공화국,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이다. 이제야말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높은 수준의 공산주의 유토피아가 가능한 조건이 무르익고 있는지 모른다. 충분한 생산이 보장되고 공정한 분배도 확보되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지구적 차원의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지구적 정보를 실시간으로 축적하는 ‘지능화된 지구’(Intelligent Earth)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지질권과 생물권과 인간권을 통합하는 기술권(techno-sphere)이 지구 전체를 감싸야만 불투명한 의사소통과 불합리한 의사결정의 비효율성을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이다. 소외되지 않는 노동부터 만인의 돌봄과 만물의 보살핌까지도 우리에게는 정녕 정밀한 수학이 필요하다. 그래야 생태문명이라는 원대한 목표의 달성에 조금이나마 근접해진다. 그래야 안정적인 기후를 유지할 수도 있고, 찬란한 생물다양성도 지속할 수 있으며, 주기적인 팬데믹의 출현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DIGITAL)의 중국어 번역어가 ‘수마’(数码)이다. 디지털은 0과 1, 수와 마의 결합과 조합으로 지상에서는 구현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가상공간에서 창출한다. 20세기가 자동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자율의 세기가 될 것인 바, 자동이 자율로 진화하면 ‘자율적 자연’이라는 신자연이 펼쳐진다. 이전에는 존재한 적이 없었던 만인-만물-만사의 자율적 신세계, 디지털 네이처가 개창하는 것이다. 고로 디지털 혁명은 다보스가 설파하는 것처럼 산업혁명의 네 번째 국면, 제4차 산업혁명이 아니다. 앞으로 400년은 더 지속될 디지털 혁명의 첫 번째 국면을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산업의 싹을 틔운 곳은 명명백백 실리콘밸리였다. 그러나 낯선 신세계, 디지털 문명이 만개하고 있는 곳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테크노차이나의 최종판이자 결정판으로 디지털 차이나를 살펴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개벽학은 동학 창도 이래, 이 땅의 자각적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이다. 동녘의 오래된 유학과 서편의 새로운 서학이 합류한 문명의 융합을 거대한 뿌리로 삼는다. 그러함에도 한국학, 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구부터 남미까지, 인도양부터 시베리아까지, 지구적 규모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구적 단위로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특히 인간이 창조한 인공의 세계, 인공지구와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의 도래를 주시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간의 공진화, 생명과 기술과 의식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후원으로 다른백년과 함께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