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나는 서울을 떠나며 친구 부부의 도움을 받아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며 나온 쓰레기에서 작은 비닐과 플라스틱도 열심히 닦아 분리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난 성인이 된 이후로 습관처럼 손수건과 개인 물병을 세트로 들고 다니고, 안 썩는 쓰레기 종류를 신경 쓰고, 재활용 분리수거에도 열심히 참여한다. 그런데 친구가 말하길 ‘OTHER’라는 단서가 붙은 재활용 마크는 재활용이 안된다고 한다. 금시초문이었다. 이유는 여러 합성소재가 섞여서 그렇다는데, 그럼 재활용 마크는 왜 붙이는 거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 후 5월경 쓰레기 매립 및 처리에 관한 문제를 고발하는 MBC 스트레이트 보도[1]를 보았다.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진 조직폭력배들이 입법과 행정체계의 미비를 빌미로 쓰레기 산이나 공장을 만들어 수십억 단위의 돈을 챙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바람직한 쓰레기 처리 방향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이전에 서울에서 친구가 알려준 ‘OTHER’를 비롯하여 크기가 작은 플라스틱, 나무젓가락, 빨대, PVC 소재 등이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안내도 있었다.
나는 낙향 후 부모님과 살고 있다. 부모님은 꼼꼼한 스타일이 아니다. 특히 어머니는 요리엔 흥미가 있지만, 정리하고 치우고 버리는 일에는 에너지가 없다며 아무렇게 쓰레기를 버리는 편이다. 두 분의 완벽한 뒷정리는 내 몫이다. 겨우 겨우 비닐과 플라스틱, 스티로폼, 종이 들을 분리하라며 매번 잔소리하거나 내가 다시 다 정리해야 그나마 집안의 분리배출이 원활히 유지되는 편이다. 그런데 또, 영어도 모르는 부모님께 ‘OTHER’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은 재활용 마크가 있어도 재활용이 안되고, 가령 크기가 작은 플라스틱 뚜껑, 빨대 등도 재활용이 안되니 그냥 종량제 봉투에 버리라고 또 다른 잔소리를 해야 하는 게 귀찮고 겁이 났다. 그래서 사실 한 동안은 무시하고 이전처럼 하시도록 그냥 두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후, 나는 두 분 각자에게 자세히 위 내용을 말씀 드렸다. 여전히 완벽하진 않지만 두 분의 기분 좋은 변화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다 보면 난 짜증이 몰려온다. 온통 ‘OTHER’이기 때문이다. 열에 아홉은 ‘OTHER’이다. ‘도대체 재활용 마크는 왜 붙지?’ 를 매번 절감한다. ‘OTHER’가 아닌 제품을 사고 싶어도 거의 없다. 라면, 과자, 인스턴트 커피, 화장품 기타 등등. 인터넷 쇼핑몰 후기에 꼭 쓴다. ‘OTHER’가 아닌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제품을 생산해주시면, 귀사의 제품을 더욱 선호하겠노라고……. 한편, 나는 ‘다른 나라는 어떨까?’ 궁금한 마음에 아이들 간식으로 인기 있는 독일산 하리보(HARIBO) 비닐을 확인해 보았다. 가장 작은 크기의 개별 비닐 포장 봉투조차 모두 재활용 가능한 재질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활용 분리수거에 대해 그 어느 선진국 국민들보다 진심인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7년 환경성과평가 보고서에서 한국을 ‘폐기물의 80% 이상을 재활용하고 폐기 방식도 매립에서 재활용으로 전환한 모범국가’이며, 폐기물 중 실질적으로 재사용되는 물질회수율도 59%로 OECD 평균(34%)보다 훨씬 높다고 했다. 그런데 이는 실제 재활용률이 아니고, 재활용 분리 수거장에 입고되는 양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그러니까 모범국민은 맞지만 모범국가는 아니다. 국민들이 열심히 분리 배출한 결과일 뿐. OECD의 평가는 허상의 숫자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OTHER’ 사례와 같이 재활용 처리장으로 분리 수거되어 들어오는 상당수의 쓰레기가 재활용되지 않고 있다. 30~40%는 다시 매립 또는 소각의 단계를 거쳐야할 ‘버려지는 쓰레기’로 재분류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이미 사회현상으로 굳어진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1~2인 가구의 증가’와 최근 전세계적인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택배로 식자재를 주문하고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는 문화가 크게 성장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19%, 종이 25%, 비닐 9%, 스티로폼 14% 등 배달 문화 뒤에 남겨진 포장 쓰레기들 또한 급격히 증가했다. 안 그래도 재활용되지 않는 제품들이 너무 많은데, 쓰레기 양이 빠르게 늘고 있다니 특단의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독일에는 ‘판트(Pfand)’라는 제도가 있다. 왠만한 슈퍼마켓 입구에는 페트병을 넣으면 알아서 압착해주고 소비자에게 병 보증금도 돌려주는 대형 기계들이 서넛 있다. 작은 편의점에서는 직원이 직접 페트병 보증금을 내어준다. 물론 간혹 ‘Pfand’ 마크가 없는, 즉 재활용되지 않는 제품들도 있다. 하지만 그 수는 소수다. 판트는 페트병뿐 아니라 캔, 유리병 등에도 적용된다. 독일 포장시장연구협회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재활용 가능 페트병으로 분류된 폐기물 중에서 판트로 수거된 페트병의 재활용률은 97.4%라고 한다. 반면 같은 해 조사된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보고서는 한국의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률이 EU 기준으로 집계했을 때 22.7%에 그친다고 보고했다[2].
쓰레기 문제 있어서, MBC 스트레이트 탐사취재팀이 제기한대로 우리나라는 UN에서 정한 최악의 쓰레기 처리 방법인 ‘매립’이 가장 많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나는 실질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는 구조적인 개선을 시급한 당면 과제로 꼽고 싶다. 무엇보다 ① 제품생산 시 실질적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에만 재활용 마크를 붙이도록 할 것과 ② 제품의 구성성분이나 포장 등에 있어 일정부분 이상을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만 생산하도록 하는 입법과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최근 유럽 및 미주에서 거대 기금들의 기업투자 요건으로 떠오르고 있는 ESG경영 (Environment 환경, Social 사회, Governance 지배구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재활용 마크의 책임조각(阻却) 사유인양 법조문 단서처럼 붙은 ‘OTHER’와 독일의 높은 실질 재활용률을 자랑하는 마크 ‘Pfand’를 떠올리며, 나는 양국의 대조적인 재활용 처리 실태와 그 결과를 생각해 본다. 언뜻 거창하고 멀게 느껴지는 환경이나 지구의 미래 가치뿐 아니라 가깝게는 그것이 기업 투자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1] MBC 스트레이트 129회 [쓰레기 대란이 온다] 2021.04.18
[2] 신정아 『나라경제』 2021년 03월호 <독일, 한 해 판트(Pfand)로 수거된 페트병 재활용률 97.4%>에서 재인용
차유노
정책연구소 함께살기 연구원,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후 현장에서의 실천적 운동에 매진. 주로 빈민운동과 환경운동에서 활동. 현재, 조그만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운동을 통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노력 중
한국사회의 구성원들 간 삶의 질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고 사회경제적 변화들이 한국사회의 전면적인 탈바꿈을 요구하는 지금, 정치공동체의 조직, 구성, 운영에 대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함. 상대적 자율성과 적응의 원리를 내재하여 내외적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온 복지국가는 여전히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 이에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안착되지 않은 복지국가를 최신의 버전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심층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을 동시에 고려해, 제안하고자 함. 특히 다양한 분야의 현장에서 활동중인 분들의 살아 있는 방안들을 제안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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