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기생들과 늦봄 나들이로 들린 곳이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한 사직단이였다. 몇 년전에도 썰렁한 빈터에 공원이라는 황당한 이름으로 홍살문만 외로이 서있던 곳에 언젠가부터 조선조 초기에 세웠을 법한 제단을 재연하여 그럴 듯하게 꾸며 놓았다. 아직 찾는 이가 적은 탓인지 문화해설을 맡은 분이 우리 일행의 관심에 탐복하며 열과 성을 다하여 사직단의 유래와 배경을 설명해 준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씨조선의 개국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 가장 먼저 세운 것이 사직단이요, 다음으로 세운 것이 종묘이며, 사직종묘단을 다 이룬 후에야 비로소 법궁인 경복궁을 지었다 한다.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그리고 문득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이 느껴졌다.
사직(社稷)은 터의 신과 곡물의 신을 모시는 제단이다. 터를 의미하는 ‘社’라는 것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이 땅에 존재하는 만물이 근거하고 살아가는 공간이다. 곡물을 뜻하는 ‘稷’은 땅위에 사람들이 춘하추동 멈춤없이 열심히 활동한(노동한) 결과물이다. 사직단은 땅을 의미하는 하단석과 하늘을 의미하는 상단석사이에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을 상징하는 가운데 넓은 돌을 끼여넣은 삼층석 모양으로 쌓여져 있다.
하늘과 땅의 만남은 생물지기(生物之氣)를 뜻하고 이러한 기운의 바탕위에서 사람들이 활동을 하면서 비로소 생생지활(生生之活)이요 생육지장(生育之張)의 온갖 일들이 이루어진다. 조선개국의 산파역인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통하여 생물지기와 생생지활을 모든 일의 근본으로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도록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임금은 인애(仁愛)로서 백성을 보살피고, 신하는 사직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임금을 보좌하는 것으로 본령을 삼는다고 설파했다.
선조들이 사직단을 무엇보다 먼저 세우고 이를 소중히 지킨다는 것은 유학의 가르침, 그중에도 맹자의 민본(民本)사상을 통치의 근간으로 삼고자 한 것으로 추측한다. 동아시아의 민본사상은 국가통치제도가 비록 전제군주제라 하더라도 나라의 주인이자 근본이 백성임을 선언하는 종교수준의 가르침이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영혼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생업에 종사하는 인민들이 온세상의 주인됨(農者天下之大本, 民心卽天心)을 분명히 하고, 인민을 괴롭히고 수탈하여 사직을 어지럽히는 자는 그가 임금일뿐 아니라 설령 신적 존재라도 갈아치우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서양의 역사도 왕권신수설에 기초한 고대 및 중세국가를 거친다. 그러나 서양의 통치자는 강력한 군사적 물리력으로 바탕으로 외부의 침입과 위험으로부터 신민을 보호해주는 댓가로 신민들은 왕권과 지배통치체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국가의 기본으로 했다. 고대시대에서 전쟁에 패한 지역민들은 지배상층부에 재물과 봉사를 제공하는 말하는 축력(畜力) 또는 기계같은 존재였다.
중세시대 역시 인민 대부분도 농노라는 이름으로 소속된 영주의 영토를 벗어날 수 없는 반노예적 존재에 불과했다. 십자가원정이라는 계기를 통하여 무역과 상업이 발달하고 자유도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민계층의 중산층이 형성되여 가면서 기존의 통치자들과의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하고, 이여서 상공업의 급속한 확장과 증기기관의 발명 등으로 자유임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지면서 기존의 통치체계와 시회질서의 일대 재편성이 불가피해 진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은 자연스레 기존질서를 거부하는 인식적 전환과 이를 변혁시키려는 사회적 정치적 실천을 유발한다. 왕권신수설은 인민의 일반의지에 기초한 사회계약론으로 전환되고, 전승에 의존하였던 지역단위의 통치개념은 현실이해에 기초한 국가 또는 민족이라는 뚜렷한 이념으로 발전한다. 전통적 사회는 타협이 불가한 수준의 계급사회로 분화되여, 수백년간 유럽중심의 시민혁명과 계급투쟁과 제국주의의 탐욕으로 인해 수많은 사건과 전쟁을 겪으면서 반성과 상찰위에 탄생한 것이 서양의 민주적 헌법일 터이다. 개인 및 계급과 지역간 철저한 이해관계와 갈등속에서 (문명사학자이신 김기협선생의 표현대로 말하면 원자론적 관점에서) 상호를 조정하고 일상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사회계약의 으뜸문서로 헌법이 탄생된 것이다. 긴 세월을 통하여 매우 분명하고 투명한(clear & distiinct) 제도적 규정과 절차로서 헌법의 내용을 완성해 냄으로서 공의에 기초한 근대적 시민권를 확립해 낸다. 지난 20세기는 유럽이 이룩한 근대적 헌법정신을 학습하고 실현해가는 과정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실, 유럽과 미주지역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가 공히 표준적 규범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2016년 현재, 수많은 나라 그중에서도 트럼프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미국의 예로서, 서구적 헌법가치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통치제도로서 얼마나 부실하고 엉터리인가를 절감한다. 모범국가로 생각했던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도 역시 ‘민주화이후의 반동적 후퇴’를 경험하고 고백한다. 위에 언급한 문명사학자 김기협 선생님이 주장하는 ‘서세동점의 끝’은 단순히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괄목한 발전상황뿐만 아니라, 서구가 이룩한 문명과 제도의 한계에서도 분명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것은 제도적 절차적 형식으로서 ‘민주’라는 한계이다.
여기서 필자는 다른백년의 운동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동아시아적인 ‘민본’사상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물론 서구에서 이룩한 민주적 제도적 절차적 규정으로서의 헌법은 인류사의 금자탑이다. 그러나 2016년 일상에서 만나는 민주적 헌법은 영혼이 빠져나간 근육질의 육체와 같다. 제도와 절차라는 근육질의 민주헌법위에, 조선이라는 국가를 세우며 선조들이 고민했던 ‘민본’이라는 동아시아적 혼을 결합하여 담아내는 새로운 정치사상적 시도, 이는 21세기에 다시 시작하는 중체서용(中體西用)적 화두이다.

다른백년 명예 이사장, 국민주권연구원 상임이사. 철든 이후 시대와 사건 속에서 정신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너와 내가 우주이고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로 만나야 연대가 있고, 진보의 방향으로 다른백년이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활동 중이다. [제3섹타 경제론], [격동세계] 등의 기고를 통하여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논리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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