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결정적 시각에 우크라이나를 보호하겠다는 수많은 약속을 남발해왔다. 또한 이곳 정세에 부단히 “불 위에 기름을 뿌리는(火上浇油)” 짓을 해 왔다. 우크라이나 정세가 급변한 이후에, 이러한 미국에 대해 사람들이 재차 주시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는 비디오 담화에서 서방국가가 우크라이나를 포기했다고 원망했다. 홀로 분발해 전쟁을 치르도록 내팽개쳐진 것이다(任其孤军奋战). 이에 어떤 서방의 인터넷동호인은 심지어 “이 전쟁을 격발시키고 각종방식으로 우크라이나와 함께 대치하겠다던 미국은 어디로 갔는가?”라고 격한 질문을 던지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정말로 잃어버리기만 했나? 사실은 전적으로 상반 된다. 미국은 바삐 움직였고, 바쁜 중에도 남을 속여 불속으로 밤을 줍게 하듯이(火中取栗), 우크라이나의 전쟁 중에 더 많은 “전략적 이익”을 착취하기에 바쁜 중이다. 백악관이 발표한 미국의 최신 러시아·우크라이나 정세에 대한 논평은 특별히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하나는 제재 등의 조치를 통해서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버려진 아이(弃儿)”가 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토가 이전의 어떠한 시기보다 단결하고 확고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로 병칭되는 “기쁜 소식”을 듣기를 강조하여 왔다. 미국이 러시아를 소진시키기 위해 필요한 바둑돌에 불과한 우크라이나에게, 워싱턴은 거듭 파병을 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 외에는, 단지 “우크라이나 인민의 국가수호에 대한 지지”라는 말 한마디와 “인도주의 구제의 제공으로 그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겠다고” 표시할 정도이다. 이로써 세상 사람들께 미국은 그들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위선을 재차 보여 주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마치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은(推入火坑) 이후, 오히려 옆에 서서 고의로 관심을 가진 듯(故作关心地) “나는 당신을 지지한다. 힘내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마치 보는 듯하다(仿佛看到). 당연히 말하건대 오늘날까지 우크라이나 정세의 변화발전은 지정학적 비극의 한 장면이다. 이는 처음부터 미국의 전략적 이기심과 근시안에서 나온 “쓰라린 결과(苦果)”이다. 일찍이 1998년 미국 상원이 나토의 동진확대를 비준할 당시, 미국의 “봉쇄전략의 아버지(遏制战略之父)”라고 불리는 죠지 캐논은 바로 오늘날의 비극을 예언했다. 이러한 나토확장은 미국을 창건한 제헌 공신들이 지하에서(九泉之下) 통곡하도록(不得安宁)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독선적인(自以为是) 미국 정치엘리트들은 자기들은 언제나 위기 중에 어부지리를(渔利)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 곧, 수년 내에 미국이 모순을 도발해 내어 “위험한 바닷가 해안에서는 저 멀리 떨어져서 지휘하여(离岸领导)” 가만히 앉아서 그 성과를 따낼(坐享其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워싱턴은 거의 원가도 들지 않는(没有成本的) 불을 돋우는 자와(拱火者) 같은 짓을 한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눈앞의 이익만 챙기는 것이다. 자기 때문에 최전선에 몰린 현지 인민들이 부닥치는(遭遇) 불행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자기들의 고려할 범위 밖의 일이다. 위기가 정말로 도래했을 때는, 처음에 이른바 “약속”은 왔다 갔다 하는(绕来绕去) 외교적 언사로 끝나버리고 만다. 현지 민중의 아픔과 고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정객들이, 아니나 다를까(却又) “인도주의”의 간판을 걸고 와서는, 잘난 측 뽐내며 거리를 누빈다(招摇过市). 이러한 미국의 모습은 작년 아프칸의 몰락한 정권을 포기할 당시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不禁让人想起). 미국은 수차례 말끝마다(口口声声) 아프칸에 “인도주의”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말해 왔다. 더욱 사람들을 놀랍게 만든 것은, 미국이 아프칸에 이른바 “인도주의”원조를 제공해 준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아프칸 중앙은행이 미국에 보관한 70억 달러를 얼마 전에 인출해 나눠버린 점이다. 아프칸 문제를 시작한 자로서(始作俑者) 미국이 자기의 전략적 사욕을 충족시킨 후에 현지에 남긴 것은 단지 “눈사태가 일어난 이후의 기아와 빈곤”이었다. 이로써 100만 이상의 아이들에게 심각한 영양부족을 일으킨 것이다. 말끝마다 인의도덕을(仁义道德) 말하면서, 이익계산으로 배만 채우는 워싱턴의 이기심과 위선의 전략적 본색은 국제정치가 실천되는 현장에서 한 차례씩 한 차례씩 폭로되고 있다. 어떤 보고서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9.11”이후 발동한 전쟁, 곧, 아프칸에서부터 이라크, 파키스탄, 예맨, 소말리아, 필리핀, 리비아, 시리아 등의 나라에서 최소한 3,700만의 사람들을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하도록(流离失所) 강제했다는(迫使住)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미국이 간섭하는 곳마다 충돌·혼란·공포주의가 나타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대국이 대국으로 되는 까닭은, XX동맹이라면서 주위를 끌어들여 파당을 결성하는(拉帮结派) 능력이 많고 강한데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一己私利) 챙기는 능력이 얼마나 많고 강한지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제 평화를 유지하는 책임과 능력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로지 자기만의 사사로운 이익만 생각하고, 사방에 걸쳐 선동으로 사건을 일으키고, 끊임없이 재난과 병란을(祸乱) 수출하는 나라, 바로 이게 미국이다. 설령 이런 나라가 아무리 강대해도, 결국 신용이 파산하고 패권이 종식되는 것은 응당 필연적이다. 그들에 대하여 여전히 패권의 환상에 젖어 있고 심지어 나쁜 놈의 앞잡이가 된(为虎作伥) 여러 나라와 지역들에게, 우크라이나 위기는 아주 좋은 본보기이다(提示):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곤경에 처한 때에 오히려 “좋은 소식”을 선언하는 “동반자”라고 일컫는 자들은 절대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출처: 환구시보 사설 / 통일뉴스 게재 / 일자: 2022.03.03 번역: 강정구 동국대 명예교수
READ MORE러시아는 향후에도 여전히 주요 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다 지난 8월 모스코바에서 진행된 군사퍼레이드 광경 바이든 행정부는 부상하는 중국에 대응하는 명확하고 단호한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집권했습니다. 행정부의 공개성명, 초기 국가안보 계획문서, 초기 외교적 진출은 모두 기후변화 및 COVID-19 대유행과 같은 초국가적 위협과 함께 증가하는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에 대항하는 것이 워싱턴의 국가안보 초점이 될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러시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뒷자리에 앉았다가 지난 4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
READ MORE강대국, 특히 미국과 중국이 기꺼이 안보현안에 대한 해결 당사자가 되지 않고서는 우리시대의 커다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의 성공여부는 지정학적 게임에서 서로가 상대방의 지분을 얼마나 인정하고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심각한 기후변화의 문제와 인류가 만든 지구온난화를 줄이는데 필요한 글로벌 에너지 및 기술의 변화에 관하여, 군비통제 및 대량 살상무기 확산의 제한, 21세기의 고도로 상호의존적이고 디지털로 연결된 경제의 관리에 적합한 글로벌 무역 및 경제 거버넌스의 개선 등. 현안들에 대하여 미국과 중국이 해결책에 함께 나서지 않는다면 다른 대안이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점점 명백해지는 것은 상기 두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해에 따르는 방식에 따라 문제들을 방치해 두면, 현재의 세계질서와 이를 불완전하게 작동시키는 기구들에 대한 피해가 없이는, 이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두 강대국은 확실하게 세계경제와 군사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두 국가 사이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균형이 꾸준히 중국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에 갈등이 심각하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두 국가의 세계 군사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들의 경제규모는 세계생산량의 2/5를 약간 넘을 뿐이고 세계무역의 4분의 1 미만을 겨우 차지합니다. 1960년대에는 미국단독으로 세계GDP량의 40% 그리고 세계교역량의 15%를 감당하였습니다만, 2020년에 와서는 세계GDP량의 60%와 교역량의 75%가 미국이 아닌 유럽과 기타 중견국가들에 의해 창출되고 있습니다. 설령 미국이 오늘 세계경제와 무역시스템을 주도할 의지가 있다고 해도 – 명백한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트럼프 전대통령이 처음 시도했고 지금은 바이든 대통령이 자기 스타일로 ‘미국 우선주의’의 포퓰리즘 버전을 이어가고 있지만 – 더 이상 이를 시행할만한 경제적 규모와 비중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지난 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가상정상회담으로 이루어진 3시간 동안의 대화는 확실히 서로 환영하는 분위기를 풍겼고 핵미사일에 대해서는 의미가 있는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세계경제와 글로벌 거버넌스와 같은 현안의 주제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허한 장면들만 연출되었습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은 세계무역 거버넌스를 약화시키기 위해 서로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국과 미국 간의 ‘1단계 무역 합의’는 ‘자유무역’이 아니라 양국 만을 위한 ‘관리무역’입니다. 중국은 미국상품의 할당량을 구매하기로 동의했습니다. 더구나 이달 초 체결된 거래에서 유럽연합(EU)은 할리 데이비슨과 켄터키 버번에 대한 보복관세를 미국에 할당된 양의 유럽산 철강 및 알루미늄을 허용하는 대가로 해제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이후 강화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지금도 여전하고 미국은 1980년대식 수출자발적 규제와 관리무역의 수준에 비견할 만큼 후퇴하고 있습니다. Tom Westland(시드니 대학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역사연구자)이 자신의 칼럼에서 설명했듯이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경제학에서 경쟁은 참가자 자신이 아니라 중립적인 심판이 가장 잘 관리합니다.’ ‘시진핑과 바이든 간의 책임감있는 경쟁이 어떤 모습일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현재 세계 2대 경제대국들 간의 경제적 상호작용을 관리무역이 주도한다고 평가한다면, 이를 “경쟁”이라고 칭하는 것은 잘못된 명칭입니다’. 제3의 세력을 구성하는 중견국가들이 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이대로 조각하게 방치하는 경우에는 각국의 국익과 국제공익을 이들 강대국의 양두 세력에게 넘겨줄 것입니다. Westland가 지적한 것처럼, ‘미중 1단계 무역협정’은 최악의 그리고 현명하지 못한 반-경쟁 정책을 상징하면서,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선호되는 산업을 보호하는 한편, 미국산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호주나 캐나다의 농산물과 천연가스의 국제교역을 배제시킵니다. 오늘날 세계의 번영과 안보를 위협하는 이러한 지정학적이며 경제적 단층선은 동아시아의 뒷마당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함께 지역의 절반을 차지하는 호주, 일본, 한국, 아세안과 같은 중간 강대국(Middle Powers)은 이제 한 측면에서는 주요 경제 파트너를, 다른 면에서는 주요 안보 동맹 또는 파트너를 포용하는 전략을 고안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양 강대국의 편입강제로 온통 짓밟히지 않기 위하여 필수적인 그들의 이익과 글로벌 규칙을 보호해야 합니다. […]
READ MORE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 내용은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강경한 대응정책이 중국의 실리에 입각한 비상식적 상술과 국제적 규범을 벗어난 행위에 대한 교정적 조치로서 ‘새로운 현실주의’라고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중국에 대한 과장된 비난의 동의여부를 떠나, 미중 관계가 ‘자유와 민주적 가치’라는 허식적 논리가 아닌 강대국 간의 파워게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이번 여름 전세계 여행업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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