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엇이 문제인가?
기대를 모았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한반도는 다시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일명 ‘빅딜’로 이름 붙여진 미국의 요구에,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주장하는 북한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핵을 넘어서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 등 북한의 재래식 무기의 상당 부분을 폐기할 것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수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의 요구는 마치 ‘패전국’에 대한 요구와 유사해 보인다. 반면 자신들의 상응 조치는 오로지 ‘북한에 대한 경제발전’을 운운하는 립 서비스 정도이며, 어떠한 구체적인 조치도 없이 자신들의 요구만을 강요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상대방보다 힘의 우위에 있는 점을 이용하여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말과 행위를 ‘갑질’이라고 하듯이, 지금 미국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국의 갑질’이라 이름 할 수 있을 것이다.
회담에서 북한은 영변 핵 시설의 모든 것을 폐기할 용의와 함께 민생과 관련된 제재조치의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많은 언론들이 이를 ‘스몰딜’이라고 말하지만, 북한 핵 생산의 핵심 부분을 파기한다는 점에서 보자면 북한의 양보는 상당한 수준이며, 중대한 진전이라 할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스몰딜-빅딜’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북미간 회담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회담 이후,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은 물론 재래식 군사력까지 포함하는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지만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강경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해법을 거부하고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빅딜’ 방식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극단적인 극우적 입장을 가진 볼턴의 목소리가 미국의 목소리가 되고 있다. 지난 실무협상에서 단계적, 동시적 해법에 동의했던 비건 특별대표까지 나서서 ‘빅딜’에 의한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지금 미국이 보여주는 태도는 역사적으로 실패로 판명된 ‘선 비핵화’로의 후퇴에 불과하다.
이에 맞서 최근 북한은 최선희 부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협상 중단’의 가능성을 비치면서, 북한이 더 이상의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또한 조만간 핵 시험과 미사일 시험 동결 조치를 지속할 것인지를 포함해 ‘최고지도자’의 공식 성명이 있을 것을 예고하였다.
지금의 현 상황은 북한과 미국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상대방이 이를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요구하는 ‘외나무다리 싸움’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북한은 자신의 요구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최종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미국은 소위 말하는 플러스 알파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내 놓으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의 협상은 물론이고, 2018년 이전 상황으로의 후퇴도 염려된다.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모두가 인정하듯이,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70년 이상을 적대해 온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북미간 협상은 아무리 급해도 신뢰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과정과 함께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방식은 북한의 주장처럼 단계적이고, 동시적일 수밖에 없다. 제1차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보여주었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은 미국의 갑작스러운 ‘빅딜’ 요구로 인해 아무런 결과를 내놓지 못하였다. 그래서 문제의 분명한 원인의 하나는 미국의 무리한 협상 요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그처럼 무리한 요구를 제기했을까? 과연 전술적인 변화였을까? 아니면 전략적인 변화였을까? 미국의 이러한 요구의 배경으로 제기되는 핵심 이유로 미 국내정치 상황이 거론되고 있다. 코헨의 의회청문회 등등으로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북미 회담에서의 합의문 서명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요구를 제기함으로써, 국내 정치의 분위기를 일부분 변화시키고, 나아가 그러한 요구를 관철했을 때의 정치적 이익을 계산해 넣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설명 역시 결렬의 원인은 미국에 있으며, 미국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세기적인 회담을 걷어찼다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여담으로 현재 미국의 지형을 보면 북한에 대해 비판할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상황을 보이고 있다.
회담이 끝난 이후, 일부 매체를 통해 흘러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애초부터 미 국무부 등에서는 회담에 대해 기대하지 않았고, 이미 회담을 걷어찰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미 실패를 예견하고, 아니 실패로 만들 예정인 회담이었고, 이는 미국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번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협상의 판을 뒤집고, 자신들의 강경한 요구를 내세우는 전략적 변화를 알리는 공식무대로 삼았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충분히 다 밝혀지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우리로서는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북미 회담의 구조 속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이 제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당사자임과 동시에 우리 정부 스스로 중재자임을 자임했다는 점에서, 이번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우리 정부를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거 제1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우리 정부의 기민했던 모습,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최선을 다했던 정부의 모습을 이번에는 전혀 볼 수 없었다. 그저 회담이 끝나면 개성공단을 재개하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는 마치 ‘주어진 떡을 잘 받아먹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다보니 회담에 대한 상세한 정보도, 진행 과정에 대한 내용을 접하는 데 있어서도, 그리고 미국 내에서의 동향과 그 예측에 있어서도 모든 부분에서 뒤통수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언제든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구조 속에서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감당해야 할 대가는 평화가 아닌 전쟁, 화해가 아닌 적대와 갈등이었다. 이번 북미회담은 우리가 한반도의 불안한 평화와 적대적 구조의 구경꾼이 아니라 핵심 당사자여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하노이 이후, 북한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남조선은 워싱터의 동맹’이라고 규정하고 따라서 ‘중재자가 아닌 플레이어’라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지난달 22일에는 개성 연락사무소에서 전격적으로 철수하였다. 하노이 이후, 적잖은 당황스러움을 표출했던 북한이 내부 논의를 정리하고, 하나씩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내는 과정에 있다 할 것이다. 과연, 이것이 올해 신년사에 말했던 ‘새로운 길’이 될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걸었던 기대의 상당부분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의 상황에서 마땅한 교훈을 찾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과거로 회귀할 수밖에 없으며, 그 고통은 오롯이 우리 몫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2. 우리를 둘러싼 구조와 국면의 힘
과거 프랑스의 역사학자였던 브로델은 인류의 역사를 장기지속의 역사, 국면, 그리고 사건 혹은 일상생활의 역사로 고찰한 바 있다. 인간의 힘으로 중·단기간에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역사가 진행되었고, 그 속에서 인간은 국면이라는 중기지속의 역사를 살고 있으며,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브로델의 논의를 잠깐 빌려와서 지금의 우리의 상황을 보면 한반도를 둘러선 거대한 구조가 있으며, 이 속에서 남북의 관계 변화 등의 국면이 존재하고 있고, 매일 매일의 일상적인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중 한반도를 둘러싼 구조는 백낙청이 말한 세계체제 속의 ‘분단체제’이든, 혹은 김학재가 말하는 ‘판문점체제’이든, 어쩌면 우리의 손으로 직접 해결하기 힘든 강고한 역사적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듯이, 현재 한반도의 평화는 핵문제를 중심으로 한 북한과 미국의 오래된 적대관계 즉, 정치군사적 대결 체제, 대결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구조를 해체하는 핵심 당사자가 북한과 미국이라는 점도 지난 역사적 과정을 통해 대부분 동의하게 되었다. 이 거대한 구조는 지난 1980-90년대의 냉전 체제의 붕괴 속에서도 해체되지 않았고, 중국과 미국의 새로운 패권 경쟁이 점차 가시화되는 현 시점에서도 변화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과거 2000년대 남북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마련된 북미간 직접 협상, 그리고 지난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현 구조의 해체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구조의 해체를 위한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힘은 바로 남북의 관계 변화였다는 점이다. 2000년 북미간 직접 협상의 과정에서도 남북의 관계 변화가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고, 현재의 상황에서도 2018년의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관계의 극적인 변화가 배경으로 놓여있다. 즉, 한반도의 거대한 구조가 비록 우리가 직접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 하더라도, 이의 해체와 새로운 구조의 창출에는 남북관계가 핵심적인 변수로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몇 년 전 발표한 논문을 통해 ‘국면의 힘’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즉, 비록 거대한 구조가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지만, 그리고 그러한 구조의 변경에 우리가 직접 도장을 찍을 수 있는 핵심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구조의 변경에 작동하는 힘을 만들어낼 수 있고, 구조의 변화 속에서 얼마든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즉,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구조 속에서 이를 변화시키고, 핵심 당사자들을 불러 모으고, 자리를 함께 하게 하고, 합의 내용을 중재하고 조율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남북의 관계에 있다. 이는 어려운 이론적 작업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적으로도 이미 증명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즉,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해 우리의 발언권이 커지고, 한반도에서의 우리의 주도적 역할이 강화된다면, 강고한 구조 즉, 북미간 대립에 개입할 수 있는 힘이 커지고, 우리의 요구를 반영한 구조 해체와 새로운 관계의 설정에 마땅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00년 정상회담을 전후한 시기가 그러했고, 비록 구조 해체의 지점까지 도달하지 못 했지만, 미국의 군사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남북 협력을 지켜내었던 2007년의 정상회담을 전후한 시기가 그러했다.
우리는 바로 이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러한 힘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이 힘을 ‘국면의 힘’이라고 명명했고, 이 국면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강대국 간의 파워게임에서 어떻게 우리의 위치를 정하고,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남북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고, 이 힘을 통해 어떻게 우리의 요구를 관철해 나갈 것이며, 이러한 힘을 어떻게 더 강화시켜 갈 것인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의 사고의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2018년의 상황을 다시금 복귀해보자. 북한의 신년사를 통해 변화의 계기가 마련되었지만, 이것이 곧바로 북미간 협상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고, 거대한 구조 해체의 길로 곧바로 갈 수는 없었다. 바로 변화의 계기를 통해 남북이 먼저 화해와 협력을 만들어내고, 그 힘을 통해 북한과 미국을 마주 앉도록 하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 이후의 상황은 또 어떤가? 6월의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참여를 거부했을 때에도 남북의 정상이 소위 ‘번개 회담’을 통해 국면을 바꾸어 놓지 않았는가? 그 결과 6월 12일의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미가 의미 있는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
‘국면의 힘’은 곧 남북의 화해와 협력의 힘이다. 물론, 남북관계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한반도 구조를 직접 해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북한과 미국의 적대 관계를 직접 변화시킬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국면을 구조에 갇힌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는 한미동맹이라는 ‘구조의 종속’에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가진 힘은 여러 가지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남북관계의 힘은 남북의 국내 정치가 모두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지행할 때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국내 정치와 직접 관계된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 9년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대결과 갈등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차지하고 남북관계의 후퇴를 가져온다면 ‘국면의 힘’은 아예 기대할 수도 없다. 역사적으로도 남북관계의 발전은 우리 내부의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해왔다. 이렇게 본다면, 브로델이 일상의 하찮은 것이라 치부했던 정치, 바로 그 정치의 발전, 그리고 정치적 힘에 기반을 두어 남북관계의 발전을 끊임없이 지속해 나가는 것이 유일한 출로라 할 것이다. 이 역시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바이다.
‘국면의 힘’은 2000년 정상회담 당시, 남북관계의 획기적 변화 속에서 미국의 북한과의 접근, 일본의 북한으로의 접근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남북이 ‘국면의 힘’을 발휘한다면, 미국의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막아내는 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고, 네오콘 세력이 집권하면서 북한에 대한 전쟁의 위협, 남북간 협력에 대한 제동 등의 국면에서도 남북관계를 관리하고 발전시킨 결과 그러한 강압적 정책을 막아내었던 역사적 경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댈 수 있는 것은 바로 ‘국면의 힘’이다. ‘국면의 힘’은 결국 남북관계의 화해와 협력의 발전을 의미하며, 이럴 때 만이 우리는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다. 이번의 북미 정상회담의 과정과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국면의 힘’이 뒷받침 못할 때, 아니 ‘국면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심각한 교훈을 주고 있다.
3. 남북관계의 주도적 힘이 문제해결의 길이다
앞서 ‘국면의 힘’이 주도적 힘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남북관계 만능론 혹은 남북의 독자적 해결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한반도는 그 주변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들이 버티고 있고, 오늘날에는 미-중이라는 패권 국가가 각축을 벌이는 지역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한반도의 이러한 지정학적 특징을 미국의 어떤 학자는 만일 한반도가 지금의 한반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 위치했다면, 지역의 강대국이 되었을 것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가 단지 ‘국면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우리가 ‘국면의 힘’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남북관계의 힘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고, 우리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는 데서 유일한 원천이자 출로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면의 힘’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의 중재자나 운전자 정도의 힘이 아니라 더 많은 힘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동맹’과 ‘민족’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생각한다. 즉, 한미동맹을 통한 문제 해결이거나 남북의 민족적 협력을 통한 해결 등을 주장한다. 어찌 보면 이는 과거 냉전의 시절 익숙했던 혹은 과거 남북관계를 놓고 언론이 그려놓았던 ‘자주파’니 ‘동맹파’니 하는 허구적 대립의 프레임 속으로 우리의 생각을 제한하는 것이다. ‘국면의 힘’은 우리의 주도적 역할과 함께 ‘동맹’과 ‘민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를 우리 내부, 남북관계, 그리고 한반도와 그 주변 국가들과 어우러져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국면의 힘’은 우리가 만들 수 있고, 만들어내야만 하는 힘이고 그런 점에서 우리의 역할과 남북의 주도적 힘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국면의 힘’을 강조하는 입장은 민족적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국면의 힘’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우리는 이미 지난 3번의 정상회담을 통해 ‘전쟁 없는 한반도’와 군사적인 긴장 완화와 의미 있는 조치들을 담은 ‘군사합의서’의 채택, 남북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약속했다. 바로 남북 간에 합의한 사항들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동시에 ‘국제법’과도 같은 제재의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남북간에 진전시킬 수 있는 협력 사업을 창의적으로 모색하고, 진행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지금 상황을 보면, 우리 정부는 남북간의 협력을 마치 미국에 저당 잡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제재 해제 여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미국의 제재 여부에 따라 진행해서는 안 된다. 유엔 결의안은 북한에 대한 벌칙으로서 경제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는 점 또한 분명하게 못 박고 있다. 우리가 충실하게 유엔의 결의안을 따른다면, 경제적 제재와는 별도로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과 회담을 해야 하고, 또 주변국에도 이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 결의안 내에는 광범위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공간과 여지가 남아 있다. 지금처럼 하나부터 열까지의 모든 일을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미래의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에 남북협력을 위탁하고, 승인받는 구조를 스스로 부과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유엔이 인정하는 식량과 의약품과 같은 인도주의적 지원은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지금 우리 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남북의 협력을 미국의 손아귀에 쥐어주는 ‘자발적 종속’과 비슷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남북간에 먼저 논의해야 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조차도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먼저 논의하고, 간섭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의 합의 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지금의 상황에서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특사 파견 등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헤아리고, 북한과 미국을 협상으로 잡아당길 수 있는 설계자로서의 위치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중재자로 놓지만, 중재자를 넘어 설계자이자 인도자가 되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대립하는 지점에서 우리의 요구를 반영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안을 설계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중재자가 아니라 설계자이며 동시에 북미 양국을 모두 아우르는 인도자가 되어야 한다. 이 힘은 바로 ‘남북관계의 힘’을 통해 얼마든지 뒷받침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의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주변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강력한 지지를 표하고 있는 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 만큼 우리의 외교가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눈치 보기에 급급해 중국과 러시아 등과의 소극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시점에서 ‘국면의 힘’, ‘남북관계의 힘’을 증진시키고, 이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이라 할 것이다. 지금 시민사회는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역할을 간절히 바라고 있고, 여러 가지 노력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정부에 의해 가로막혀 있지는 않은지, 정부와 시민사회 간 원활한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정부는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시민사회의 요구를 과감히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제재라는 장애물이 존재하지만,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을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와 시민사회간의 협력은 남북관계의 힘을 만들어내는 국내 정치의 힘을 증진시키는 것이자, 동시에 민주주의적 토대 위에서 남북 협력을 진전시켜 갈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은 지금과 같은 미국의 무리한 요구, 그리고 북미간 협상의 결렬이라는 국면에서 자칫 사실을 왜곡하고, 보수(혹은 극우)적 주장이 여론을 형성해가는 상황에서, 오해를 바로잡고 올바른 사실 인식이 가능하도록 하는 강력한 사회적 힘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 강화는 대북-통일 정책에서는 결코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현 정부가 보여주었던 대북 접근은 사실상 시민사회를 외면하고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해나가는 방식이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의 일련의 상황에서 이러한 정부의 태도와 입장을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었다 할지라도 이러한 태도와 입장이 지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 볼 수는 없다.
사실, 이상의 제안들은 대단히 추상적이고, 어쩌면 별다른 대안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중심에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한 ‘국면의 힘’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을 설득하는 것도, 주변국과의 협력을 모색하는 것도 이 남북관계의 힘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이는 지난 역사적 과정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남북관계를 비롯해서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의미있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은 바로 2000년 정상회담을 전후한 시기였다. ‘햇볕정책’으로 이름 붙여진 대북-통일정책을 통해서 한반도 문제, 남북관계에서 우리의 요구와 희망이 처음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고,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햇볕정책’은 북한에 따뜻한 햇볕을 내리쬐어 옷을 벗긴다는 의미이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통일정책-외교정책에도 얼어붙었던 냉전의 사고를 벗어나게 해준 강력한 ‘햇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햇볕정책이야말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국면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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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시작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길은, 많은 사람들이 처음 예상했던 것처럼 어렵고, 힘든 길을 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딱 그러한 어려움을 마주하고 서 있다. 그러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힘을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남북의 관계 개선이었고, 그 힘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까지 갈 수 있었다.
지금 ‘갈림길’에 놓여있는 한반도 상황에서 우리가 반드시 새겨야 할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바로 그렇기에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바로 남북관계의 변함없는 발전일 것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남북관계의 발전과 그 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려는 이 지점에서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정영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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