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제아무리 진주목걸이를 걸친다 한들 돼지다. 마찬가지로 힘에 의한 정글의 법칙에 외교 철학을 칠갑한다 해도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이를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 12월 초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중 하나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각자의 버전으로 트럼프식 자국우선주의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에게는 국제조약이나 국제기구 등 미국의 이익을 약화시킬 만한 모든 것은 나쁜 것이었다. 그는 브뤼셀에서 “미국무부의 미션은 미국의 주권(이익)을 재천명하는 것”이라면서 “미국의 우방들이 우리를 돕기 바라며, 그들 역시 자신들의 주권(이익)을 추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기서 폼페이오 장관은 여러 번 실수를 범했다. 다자주의를 가장 신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국제적 무대 브뤼셀에서 다자주의를 공격한 셈이니 우선 장소를 잘못 선택했다. 그리고는 브렉시트를 영국이 자국의 통제력을 되찾는 노력이며 다자주의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라고 치켜 올리며 브뤼셀 청중의 호응을 얻지 못할 발언을 이어가는 등 그의 연설에서는 도무지 외교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실수는 불가능한 일을 성사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그의 의도는 미국 우선주의 모조품이 확산되면 새로운 형태의 세계 자유질서가 탄생할 것임을 동맹국들에게 설파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서방국가들에게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각자 알아서 눈 앞의 자국의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 모순을 한번 들여다보자. 폼페이오 장관 또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나 중국, 북한 등에 자국이기주의를 주장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 해당 국가의 통치자들은 이미 십분 자국이기주의에 동의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폼페이오는 이들이 세계질서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한다(아니면 미국이?). 그래서 이 적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상호적 다자주의를 버리는 것이라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EU, UN, 세계은행, IMF 등 국제기구는 우리의 자유(이기적) 행동에 족쇄가 되고 있으므로 개혁을 하거나 없어져야 한다. 그는 “조약이 많아질수록 우리 삶도 더 안전해진다? 공무원이 늘어날수록 정부가 일을 더 잘한다? 정말인가?”라 묻고는“No”라 답했다. 그런데 이런 말장난 하나에 넘어갈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그 질문 안에 폼페이오 장관이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으니 바로 팩트를 그의 철학과 연결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공직자 숫자가 아니라 공직자들이 하는 역할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직원은 3만 2천명으로 그리 크지 않은 규모다 .미국의 재향군인회가 그 열 배 이상에 달하는 37만 7천명 직원을 거느리는 점과 대조적이다. 미 농무부의 직원은 10만 5천명이다. 반면 세계은행에는 딱 만 명의 직원들만 일하고 있으니 이는 미국 내무부보다도 작은 규모다. IMF역시 2천4백 명으로 운영 중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UN에도 4만4천 명이 고용되어 있을 뿐이다. 인원부족이 만성적인 EU가 불투명성, 책임감 부재 등의 비난을 받을 만도 하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런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조약 수가 늘어나면 안보가 좋아진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이 역시 허수아비 논증 오류에 불과하다. 보통은 대대적인 국제 협상을 두고 그런 말을 하기 마련이나 폼페이오 장관은 아무것도 제안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파리 기후협정과 이란 핵 협상, 국제형사재판소, UN 인권이사회,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등 트럼프 정부가 탈퇴한(할) 것들을 언급했다.
그는 다음 목표가 세계무역기구(WTO)의 탈퇴임을 넌지시 밝혔다. 중국의 발전은 세계무대에서 후퇴하는 미국에게 “독묻은 사과”라 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 미국은 후퇴 중인 와중에 어떻게 국제기구들을 세울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핵심은 따로 있다. 12월 첫째 주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정부 안에 흐르는 불협화음을 분명히 드러내며 전세계에 호의를 베풀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는 중국의 부상을 막는 것으로, 그는 관련 기구들을 없애 중국을 약화시키고 싶어한다. 자신의 한 손으로 없앤 것을 다른 한 손으로 건네는 셈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진정한 국가들”의 새로운 자유질서를 요구하고, 곧이어 각국들이 자신의 운명을 따라야 함을 주장했는데, 연설 어디에서도 이를 “서구”나 “서방”으로 특정하지 않았다.
상호주의를 포기한 국가들은 자연스레 서로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한다. WTO가 좋은 예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를 세계주의의 음모라 칭한다. 그런데 미국의 친구 영국에게 WTO는 영국이 자유롭게 항해를 즐기는 넓은 바다이다. 상식적으로 자국이기주의자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국가를 만났을 때 상호적 이익을 추구하기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폼페이오 장관의 연설에 브뤼셀은 침묵으로 응대했다. 하지만 그의 연설을 중국 관중이 들었다면 모두 기립박수를 쳤을 것이다(반면에 중국의 시진핑은 국제무대에서 상호적 다자주의를 열렬히 역설했다). *( )는 다른백년 의견임.
Edward Luce
F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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