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거의 끝났다. 한반도와 북동 아시아에서 지난 100년이 고생과 혼란의 시대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동안 동아시아는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들, 극우 그리고 극좌 독재 경험들, 엄청난 희생과 참극을 낳은 ‘미친’ 사회 실험들과 세계 역사에서 전례가 거의 없는 기근들을 경험했다. 그 쓰라린 경험들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음 100년에 대해서 희망이 많다.
유감스럽게도, 다음 100년이 지난 100년만큼 고생스럽지 않을 수도 있지만, 확실히 쉽지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라는 지역은 매우 어려운 만성적인 문제도 있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외부 세력들과의 관계에서 매우 심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의 100년 동안의 동아시아를 생각할 때에 장밋빛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어려움과 도전을 솔직하게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향후 100년간 직면할 도전이 많다. 당연히 현 시점에서 예측할 수 없는 도전이 있지만, 중국의 부상, 남북한 관계, 미국의 영향력의 약화, 인구 고령화 등은 해결하기 어려운 도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남북한 평화통일, 100년 내 가능할지 의문
지금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통일이 우리 소원이라는 주장은 입이 닳도록 반복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한 진보세력도, 보수세력도, 그리고 북한의 유일한 소리인 북한 어용언론도 통일을 이루는 방법은 ‘평화적인 단계적 통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북한의 상황을 보면 ‘평화스러운 단계적 통일’을 달성하는 방법이 지금도 없고, 100년 후에도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우리가 세계 정치 지도를 보면,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나라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 나라들이 평화스럽게, 자의에 의해서 통일을 이룬 적이 거의 없다. 동서독 통일은 당연히 동독 체제붕괴 때문에 가능하게 된 흡수통일이었다. 예멘 통일은 원래 단계적인 통일로 시작했지만 매우 짧은 기간 안에 피가 많이 흐르는 내전을 초래하였다.
남북한 상황을 보면, 평화스러운 단계적 통일을 기대할 근거가 아예 없다. ‘합의 통일’의 길을 굳게 가로막는 장애물은 남북한의 경제력의 격차이다. 북한 엘리트 계층은 남한과 통일을 할 경우, 통일국가에서 불가피하게 주변화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자행했던 심각한 인권침해 때문에 감옥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정치범 수용소만 봐도, 북한 독재 정권은 1970-80년대 남한 독재 정권보다 수십 배나 수백 배 참혹한 인권침해가 있었다. 그래서 노동당 간부나 보위원들은 통일이 될 경우 처음에 신변 안전 약속을 받더라도, 그들이 별 힘을 가지지 못하는 통일한국의 정부가 약속을 지킬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우려는 충분히 근거가 있다. 그들은 감옥으로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인권 침해와 별 관계가 없는 간부들조차도 통일한국에서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잘 될 경우에도 권력을 잃어버리고, 잘 안될 경우에는 감옥으로 가고 포승줄에 묶여서 재판소를 들락거려야 하는 시나리오를 당연히 환영할 수조차 없다. 이 세상에 민족주의나 혹은 다른 숭고한 사상 때문에 특권과 권력을 버리려는 정치 엘리트 계층이 어디에 있을까? 북한 엘리트 계층은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거의 유일한 통일방법은 흡수통일이다. 얼마 전까지 현실주의적으로 가능하게 보였던 흡수통일의 시나리오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이었지만, 요즘에 북한에 의한 흡수통일, ‘赤化統一‘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상황이 바뀐 기본 이유는 북한 핵개발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의 성공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의 가능성은 북한에 의한 흡수통일의 가능성보다 여전히 많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흡수통일 이외에 다른 통일의 시나리오가 없다는 것은, 흡수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흡수통일은 생길 수 있는 일이지만, 바람직한 것인지 의심이 있다. 요즘에 남한 언론은 흡수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자주 주장하지만, 그들의 주장을 더 자세하게 보면, 흡수통일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임을 볼 수 있다.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감은 비합리주의적인 감정이 아니다. 남북한 경제력 격차를 감안하면, 흡수통일 이후 남한이 북한을 개발시키려 천문학적인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갈등과 혼란이 심각해지는 국제 사회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을 희망은 별로 없다. 그래서 막대한 통일비용은 남한 납세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 비용으로도 흡수통일이 초래할 사회적 모순과 갈등을 완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흡수통일 이후에 남한 주민들은 북한 사람들을 ‘복지 악용자’로 볼 것이고, 북한 주민들은 남한 주민들이 이기주의와 물질주의에 빠진 거만한 부자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통일한국 사회에서의 대립과 갈등이 매우 심할 것 같다. 물론 나중에 새로운 남북 갈등을 극복할 수 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간은 1-2세대, 즉 40-50년이라고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흡수통일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은 매우 심한 위기 뿐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한에서 생길 반체제 혁명이나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만이 이러한 흡수통일을 불러올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심한 위기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무력 충돌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50년 동안 한반도에서는, 1894-95년에 청나라와 일본이 한반도를 전장으로 삼았고, 1904-05년에 러시아와 일본이, 1950-53년에는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10여개 국가들이 한반도를 전장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가능성이 지금 어느 정도 높은지 알 수 없지만, 없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흡수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시나리오를 무시하면 안 된다. 이 세상은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제일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남북한의 장기적인 평화공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평화 공존이 어느 정도 가능할지 알 수 없다.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위협하는 것은 외부 세력의 대립과 다툼뿐만이 아니라, 내부 문제도 있다. 현 단계에서 제일 위험한 도전은 북한의 핵, 미사일 프로그램이다. 북한이 1970년대 북핵개발을 꿈꾸기 시작했을 때, 핵 프로그램의 기본 목적은 억제 전략이었다. 특히 1990년대 들어와 소련의 핵우산이 없어진 다음에, 경제 기반이 매우 약한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해외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 핵무기 개발이 제일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 대령의 비극적인 최후는 북한 엘리트 계층의 선택이 옳았음을 잘 보여준다. 카다피는 원래 핵개발을 시작하고, 서방의 약속을 믿었으며, 국제제재 해제와 경제지원을 약속받고 핵개발을 포기했다. 결과가 무엇일까?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카다피는 피살되었고 그와 가까운 리비아 엘리트 계층은 권력도 안전도 잃어버렸고, 생명까지 잃어버린 사람들도 없지 않다.
남북한 평화 공존(의 전망)
전술한 바와 같이, 흡수통일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불가능한 일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주의적인 유일한 통일 시나리오인 흡수통일 시나리오에 대한 준비를 사전에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남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다른 시나리오도 있다. 평화 공존이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평화공존이 통일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렇게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세계 역사 경험이 잘 보여주듯이, 정치 대립이나 외부 세력의 간섭에 의해서 분단된 나라들은 나중에 통일할 수도 있지만, 통일은 당연하게도 거의 다 흡수통일이다. 한편, 수많은 경우에는 같은 언어와 문화에도 불구하고, 계속 분단된 상태로 남아 있다. 좋은 사례는 20세기 초 열강의 대립과 경쟁 때문에 생긴 거의 20개의 아랍 국가가 있다. 원래 아랍 통일 운동이 있었지만 별 성과가 없었고, 1970년대 이후 아랍 통일 이야기마저 없어져 버렸다. 스페인 제국 관리들이 마음대로 구획한 행정구역 때문에 생긴 남미의 25여개 공화국들은, 또 다른 사례이다. 뿐만 아니라, 독일은 통일국가라고 할 수 있지만, 똑같은 언어를 쓰는 오스트리아 뿐 아니라, 인구의 70% 이상이 독일어를 사용하는 스위스는 어떨까? 이 사실을 감안하면 상식과 달리 독일 연방 공화국도 분단국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이유는 수많은 아랍국가들도, 남미의 스페인어권 국가들도, 유럽의 3개 독일어 국가들도 각자 서로 다른 국가별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남북한에서도 서로 다른 정체성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여론조사를 보면, 남한에서 나이가 젊을수록 통일에 대한 관심도 지지도도 낮다. 북한 내부 상황은 파악하기 매우 어렵지만, 부분적인 자료에 의하면 북한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있는 것을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정체성의 탄생보다 더 강력한 것은, 북한 엘리트 계층이 ‘통일을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것이다. 권력독점을 유지하려는 북한 권력 계층뿐만 아니라, 경제력을 유지하려는 북한의 신흥 부르주아 계층도 같은 통일관을 가지고 있다. ‘돈주’로 알려진 북한 사업가들은 고난의 행군 때부터 갈수록 하나의 사회세력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흡수통일이든, 환상뿐으로 보이는 ‘단계적 합의통일’ 이든지 싫어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북한 국가가 무너진다면, 사업을 잘 하는 북한 부르주아 계층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그들은 북한 시장에 진출할 남한 대기업과 경쟁할 능력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기업들과 자본은 북한 기준으로 크지만, 남한 기준으로 보면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돈주들은 북한식 시장경제가 아닌 정상적인 시장경제를 잘 모른다. 그 때문에 그들은 당연히 간부들만큼 통일을 반대할 것이다.
물론 남북한의 평화공존 구조를 이룰 수 있는 조건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북한국가의 장기적인 생존이다. 북한 국가가 생존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거의 모든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험해 온 개발 독재의 전략 외에 다른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2011년까지, 북한은 여러 번 시장화를 겨냥하는 개혁을 시도하거나 계획했지만 이 개혁은 국내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제대로 실시되지 못 하고 폐기되었다. 시도되거나 계획한 개혁 가운데 제일 유명한 사례는 2002년의 7.1조치이다. 그러나 요즘에 북한 상황이 많이 바뀌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다. 김정은과 그 측근들은 말로는 중국식 개혁을 맹비난하지만, 사실상 1970년대 말 80년대 초 중국과 매우 비슷한 경제 개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등소평시대 중국과 달리, 김정은 시대 북한은 시장경제를 건설하지만 정치 자유화와 개방정책을 절대 실시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정책의 핵심은 등소평 초기 중국처럼 농업개혁이다. 2012년부터 북한 농가는 자신을 분조로 등록하고, 앞으로 몇 년동안 농사를 지을 밭을 국가에서 받은 다음에, 이 밭에서 수확한 곡식의 일부를 국가에 바치고 남은 것은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구소련식 농업정책의 상징이었던 협동농장은 갈수록 유명무실화 되고 있다. 현물세로 볼 수 있는, 국가에 바쳐야 하는 수확은 총수확고의 3분의 1 수준이어서,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결국 북한 식량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공업부문에서 북한은 기업소책임제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농업에서 실시하는 포전담당제와 비슷한 경향이 있다. 기업소는 완성품의 일부만 국가에 바치고, 남은 것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팔 수 있게 되었다. 기업소 지배인도, 자본주의 국가의 사장과 비슷한 경영의 자유를 받았다.최근 북한의 비공개 자료를 보면, 중앙계획경제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농업개혁과 공업개혁뿐만 아니라, 1990년대 많이 강화되어 온 시장세력에 대한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김정일 시대 사실상 개인소유인 중소기업도 많고, 장마당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업과 거래도 많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김정일 시대 이러한 신흥 부르주아 계층을 겨냥하는 단속과 진압이 가끔 있었다. 당시에 돈주로 알려진 북한 부자는 큰 집도 있고, 수입소비품도 있고, 승용차도 있지만, 하루 아침에 수용소로 갈 가능성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이후 상황이 사뭇 달라졌다. 시장에 대한 단속이 사라지고, 중소기업이나 신흥 부르주아 계층은 김정일 시대에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한 자유와 안전을 즐기고 있다. 당연히 이와 같은 정책은 경제성장을 불러왔다. 예를 들면,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성장률은 4-5% 수준을 달성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만성적인 식량난이 많이 완화됐다. 여전히 식량난이 있지만, 굶어죽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 정권이 조용히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하고 있지만, 주민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완화하려는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여전히 절대독재국가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범 숫자를 감안하면 세계에서 북한만큼 주민을 억압하고 단속하는 국가가 없다. 북한에서 정치범 숫자는 8-10만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북한의 총인구 대비 정치범의 비율은 스탈린 시대 소련의 수치와 거의 비슷하다.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도 정치자유화는 없으며, 해외에 대한 지식의 확산을 가로막는 정책, 즉 ‘쇄국정책’이 전례 없이 강력하게 집행되고 있다. 결국 김정일 시대 남한 드라마나 미국 영화를 몰래 보았던 사람들조차, 최근에는 불법영화 시청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고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다. 김정일 시대에 경비가 매우 허술해서 누구든지 쉽게 건너갈 수 있었던 중-북 국경은, 지금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경비가 삼엄하고, 초소와 군인들이 매우 많으며 철조망도 많이 생겼다. 결국 탈북도 어려워지고, 중국을 통해서 DVD와 휴대폰을 비롯한 해외에 대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물건을 받기도 많이 어려워졌다.
유감스럽게도 김정은 뿐만 아니라, 북한 정치 엘리트 계층의 입장에서, 이러한 절대독재와 쇄국정책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들에게 다른 대안이 없는 것 같다. 북한이 관리하기 거의 불가능한 도전은, 매우 잘 사는 남한이 바로 밑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이다. 남북한의 1인당 소득격차는 최소 1:14, 최대 1:30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최소치인 1:14의 수치로 계산한다고 해도, 세계에서 남북한만큼 1인당 소득격차가 심한 이웃나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북한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의 매력은 막대한 것이다. 북한 엘리트 계층은 이 매력을 잘 가로막아야만 국내안전을 보장하고, 자신들의 권력, 특권 그리고 생명까지 유지할 수 있다. 북한 엘리트 계층이 남한의 매력을 잘 차단하지 못한다면, 북한 민중들은 1989년의 동독 민중처럼 즉각적인 흡수통일을 요구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그들의 뜻대로 된다면, 그들은 몇 년 이내에 통일에 대해서 실망을 느낄 것이다. 북한 민중들의 희망은 비현실주의적인 것이기 때문에, 거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동독 주민들도 지금 대부분 통일을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90년대 말에는 30% 정도가 통일이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북한 엘리트 계층은 자신의 권력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쓸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쇄국 정치’이다. 북한민중이 남한을 비롯한 외부세계를 잘 알 수 없을 때만 억압과 통제가 가능하다. 두 번째는 주민들에 대한 ‘단속과 탄압’이다. 체제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약간의 불만을 보여주는 사람조차 끔찍한 정치범관리소로 끌려가는 것을 볼 때, 인민들은 체제에 도전할 생각조차 못 한다. 이것은 매우 참혹하다. 하지만 북한 엘리트들의 입장에서 다른 대안이 없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한 또 하나의 ‘절대 수단’이 있다.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다. 북한은 어떤 조건이라고 해도 핵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북한은 낙후된 경제로 인해서 우수한 재래식 무기를 생산할 능력도 없고, 또한 핵무기를 통해서 해외의 공격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동안 북한은 미국의 공격에 의해서 이라크 후세인이,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도 무너진 것을 보고 해외 공격에 대한 공포가 많다. 그러나 북한 엘리트 입장에서 볼 때, 제일 핵심적인 사례는 필자가 이미 앞에서 말한 카다피 대령이다. 이 전례를 잊을 수조차 없는 북한 지도부는 막대한 보상에 대한 약속도 믿을 수 없고, 비핵화를 자살이라고 믿을 확실한 근거가 생겼다. 북한 지도부는 핵, 미사일 개발을 동결할 수도 있지만, 비핵화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 된 지 아주 오래 되었다.
그 때문에, 남북한의 평화공존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수많은 윤리적인 문제와 도전을 유발할 것이다. 특히 남한 진보파와 지식인들은 그 때문에 불안감이 많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북한 평화공존 체제에서, 남한의 파트너는 남한의 일부 지식인이나 민족주의자들이 꿈꾸는 ‘이념적인 북한’이 아닐 것이다. 사실상 남한과 매우 오랫동안 공존할 휴전선 이북의 국가는 봉건주의 시대 귀족과 매우 유사한 세습 엘리트 계층이 통치하는 개발독재 국가이다. 이 개발독재 국가는 박정희, 전두환 독재시대보다 인권 침해 규모도, 노동운동 진압도 훨씬 광범위하고 매우 심할 것이다. ‘개발독재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고, 필요할 때는 핵무기를 협박외교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러한 유감스러운 사실에도 불구하고 평화공존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물론 남북한 관계의 악화를 회피하기 위해서, ‘개발독재 북한’의 그림자에 눈을 감을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러한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될 경우에, 남한은, 특히 남한 진보파는 1960-70년대 미국의 대한(對韓)태도와 매우 비슷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당시 미국은 박정희 정권이 인권침해를 많이 저지르는 것을 알았으며 미국 좌파뿐만 아니라 우파들도 반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한미동맹 유지와 남한에 대한 후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역설적으로 당시 미국의 태도를 열심히 비난해 왔던 남한 진보파는 사실상 똑같은 노선을 선택할 것 같다. 차이점은 김정은식 개발독재는 박정희 개발독재보다 인민들의 피와 땀이 훨씬 많이 흐를 것 같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필수적으로, 역사에서 이와 같은 타협이 불가피하고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상주의가 많은 진보적 지식인과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객관적인 모순 때문에 윤리적인 고생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김정은정권이 노동 운동을 탄압하고, 비판적인 경향이 있는 지식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증거가 많이 노출된다면, 이러한 보이지 않는 윤리적 타협이 많이 공개화돼 버릴 것이다.
물론, 남한 보수파 지식인들과 사상가들도 문제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은 1960-70년대 박정희 전두환 개발독재를 높이 평가하고, 당시의 인권침해와 노동운동에 대한 억압이 경제개발과 사회발전, 그리고 국가안보를 위해서 치러야 할 불가피한 대가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이 사람들의 주장이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렇게 주장하는 보수파 지식인과 사상가들은 북한에 똑같은 논리를 적용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북한이 1960년대 남한처럼 개발독재로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것을 필요악으로 볼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보수파 사람들은 ‘개발독재 북한’에서 인민들의 피와 땀이 얼마나 많이 흐르고 있는지, 참혹한 지식인 탄압이 있는지 열심히 고발할 것 같다.
평화공존, 윤리적 문제보다 지정학적 문제로 봐야
그러나 남북한 평화공존을 이루기 위해서, 윤리적인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지정학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들 문제 가운데, 제일 어려운 것은 대북 억제 수단 정책이다. 북한은 1960년대부터 핵개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북한이 핵개발을 한 제일 중요한 목적은 억제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정권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지출해가며 핵, 미사일 개발을 시도한 이유는, 자신들이 후세인 대통령이나 특히 카다피 대령처럼 되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은, 세계에서 핵확산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북동 아시아에서 심각한 불안정을 초래할 정책이므로, 비판과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권력과 안전을 유지하려는 북한 엘리트 계층의 논리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김정은 시대 들어와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을 많이 가속화시키고, 이 부문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전문가 대부분도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이룩했다. 2017년 7월에 북한은 미국대륙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9월의 6차 핵실험 때는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 이 성공 때문에, 북한이 가진 수단이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 보유한 수단이 바뀐 것은, 그들이 달성하려는 목적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다. 최근까지 분명히 방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핵, 미사일 프로그램은 다음에 공격적인 성격을 띌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북한이 LA나 뉴욕을 하루아침에 소멸시킬 능력을 가진 조건 하에서는, 두 번째 남침이 발생할 때 미국이 옛날처럼 남한을 지킬 의지가 있을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2017년 7월까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이 군대를 파견하고 최악의 경우 수만 명의 군인의 희생으로 남한을 지킬 수 있었다. 2017년 7월 이후, 미국이 남한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수만 명의 군인 뿐 아니라, 수백만 명의 미국 시민들이 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을 지킬 의지가 옛날보다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잘 아는 북한은, 새로운 상황에서 미국에 압박을 가하고, 미군의 철수를 이뤄낼 수도 있으며,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 미국의 참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도 있다. 그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내각 수상이 1950년 여름에 성공하지 못했던 ‘남조선 해방’의 꿈을 2030년이나 2035년에 완성할 희망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위험한 시나리오를 가로막는 방법은, 가능한 한 빨리 북한이 핵, 미사일 개발을 동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북핵, 미사일 동결은 아직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남한 외교의 제일 중요한 목적은 북한이 미국 대륙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다음에 열릴 것 같은 협상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동결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더 할 수 없게 된다면, 자신의 무장 능력을 빠르게 발전시키지 못한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을 억제할 능력을 보유하지만, 남한을 흡수통일, 즉 적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능력을 얻지 못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타협도 바람직한 것이다. 북한 엘리트 계층의 일부가 1970년대 말부터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적화통일 야망을 다시 불태울 때도, 다수는 가능할지 모르는 적화통일보다는 자신들의 안전과 경제발전이 더 중요한 목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북핵·미사일 동결조약에 대한 합의의 대가로 남한과 국제사회는 북한에 막대한 지원을 제공하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북한에 대한 양보 조건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타협은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일 수 있다. 미국 국내에서, 북핵동결은 파렴치한 협박자에게 보상을 주고 굴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 많겠지만, 객관적으로 말하면 동결협상이 없다면 북한은 갈수록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가까운 지역에서 현상유지를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북한 정권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 중국은 이러한 타협을 받아들일 것이다. 미국에서 강경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반대할 수도 있고, 북한측도 이러한 타협을 받아들일지 의심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말로 ‘南伐’에 대한 야심을 가지게 된다면 동결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러한 동결은 거의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을 이룬 다음에야 남북한의 장기적인 평화공존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동결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남한이 북한의 경제발전과 북한의 ‘개혁’을 도와주는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정은 정권은 집권이후 경제 부문에서 꽤 많은 성과를 이룬 것 같다. 그래도 현 단계에서 ‘북한의 초기 개발독재’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제일 중요한 장애물은 해외투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해외투자가 없기 때문에, 특히 매우 낙후된 북한 인프라 개발이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 철도는 살아있는 철도역사 박물관이라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도 평양에서 신의주까지 자동차를 타고 포장도로로만 갈 수가 없다. 한편, 태양열 패널의 대중화 때문에 북한도시는 밤에 옛날만큼 어둡지 않은데, 그 기술은 가정용일 뿐이다. 공장과 공업에서의 전력난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북한경제에 대한 해외투자와 대북지원이다. 남한 유권자와 보수파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지만, 남북한 교류는 상호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불가피하게 원조이다. 경제력이 약한 북한은 남한에서 지원을 받는 수밖에 없다. 국내 정치 우려 때문에, 정부와 여당은 대북 지원을 차관이나 투자 혹은 무역이라고 위장할 수 있지만, 이것은 눈속임일 뿐이다. 그러나 대북지원을 할 때 주목해야 하는 몇 개의 조건이 있다.
첫째로 대북지원을 할 때 소규모 개발을 선호해야 한다. 지원금을 일시불로 북한 정부에 준다면, 그 돈은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북한 정부는 남한에서 막대한 지원이 들어온다면, 당연히 경제 발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권유지를 위해서 쓸 것이다. 남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북한 정부에게 당연한 일이다.
둘째로, 북한에서 인프라를 개발할 때 그 공사를 계속 통제하고, 한 단계가 완성된 이후에만 추가 개발을 위한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로, 인프라 개발을 비롯한 공업개발 뿐만 아니라, 사회자본 개발을 무시하면 안 된다. 바꾸어 말해서, 북한 기술자, 전문가들을 교육시키고, 대체로 말하면 현대지식을 가르치는 인재교육에 돈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그 입장에서 보면, 2016년에 폐쇄된 개성공단은 대단히 바람직한 사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 상황에서, 미국의 압력 때문에 개성공단의 재개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서 남북한 평화공존 시대가 올 때, 개성공단과 같은 공업지대가 여러 곳 있으면 매우 좋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한측은 북한에서 철도 개발과 도로 개발에 많은 지원을 제공하면 좋을 이유가 있다.
당연히 이와 같은 대북 지원을 할 때는 북한 정치사회 체제에 대한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평화공존의 시기에도 북한은 여전히 매우 참혹한 세습독재 국가로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남한에 대해서 압박과 협박, 가끔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는 위험한 국가로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유감스러운 사실을 인정할 때도, 북한과의 장기적인 교류와 대북지원은 중지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동아시아의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
한반도 역사를 보면, 오래 전부터 거의 바뀌지 않는 상수는 외부 세력들의 막대한 영향력이다. 특히 지난 150년동안 한반도에서 일어난 유혈 충돌의 대부분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강대국의 대립에 의해서 초래된 것이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식민지화,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내부적인 원인이 없지는 않았지만 압도적인 이유는 전략적으로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해외세력들의 다툼 때문에 생긴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상황이 다음 100년동안 바뀔지 의심스럽다. 흥미롭게도 지난 40-50년 동안 한국(당연히 남한을 의미함)은 국제 질서에서 예외적인 자율을 즐겼던 시대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다. 기본 이유는 1960년대 초 전례 없는 고속 근대화를 성공한 한국이 대부분 이웃 나라에 비해서 경제력이 강했고, 시장이나 무역 파트너로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한국을 따라잡으러 많이 노력하고 있고,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한반도의 입장에서 보면, 제일 중요한 변화를 불러오는 것은 중국의 부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과 매우 높은 기술수준을 가졌던 중국은 200여년의 혼란과 위기의 시기를 마치고, 다시 한번 세계 1위 또는 2위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당연히 이와 같은 부상은, 한국의 미래에 매우 심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관계가 있는 것은, 미국이 상대적인 쇠퇴이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200년 후에도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소프트파워까지 제일 많은 4-5개 국가 중 하나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상대적인 국력’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1960년대 미국의 GDP는 세계 GDP의 40%를 차지했지만, 지금 20%에 불과하다. 미국은 대부분의 다른 선진국들과 다르게 여전히 견조하게 성장하고 있는데, 중국을 비롯한 기타 국가들은 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도전에 직면한 미국은, 조만간 자신의 대외정책과 군사전략을 바꿔야 할 지도 모른다. 지금 세계 어디에나 주둔군이 있고, 필요가 생길 때 자신의 이익 그리고 동맹국가들을 세계 어디서나 잘 지킬 수 있지만, 그 능력도 지금보다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미국은 어느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하거나, 철수하지 않더라도 너무 위험하고 어렵게 보이는 충돌을 회피할 경향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어느 지역에서 철수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남미는 문화관계와 지리적 위치 때문에 미국은 남미를 끝까지 통제하려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은 경제적 가치도 높고, 공유하는 가치와 문화관이 있기 때문에 역시 쉽게 포기할 지역이 아니다. 중동은 현대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전략자원인 석유 매장량 때문에 아직 가치가 높은데, 셰일가스와 재생 에너지 기술 때문에 가치가 많이 떨어질 수 있어서 철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동아시아는 어떨까?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동아시아(그리고 한반도)를 무조건 전략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생각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사실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핵심 국익을 감안하면 이 지역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유럽이나 남미보다 가치가 낮다. 중국이 동아시아 전체에서 패권국으로 등장할 경우에도, 미국이 입을 전략적인 타격은 생각만큼 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지역과 여전히 경제교류와 유익한 무역을 여전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섬나라인 일본을 지키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미일동맹을 잘 유지할 수 있지만, 동북아나 동남아 기타 국가들에 대해서 미국이 얼마 정도 관심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이들 국가가 적극적으로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려 노력할 경우에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들 국가가 이러한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 경우에는, 미국은 이 지역에서 부상하는 중국의 직접적인 압박 때문에 철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인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한국에서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철수한 경우에 한국이 중립 국가가 되거나, 동북아 균형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지만 이루어지기 매우 어렵고, 가능성이 극히 낮다.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2017년에 벌어진 사건들을 보면, 문제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북한문제가 많이 첨예화 되었지만, 한국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한국 지도부는, 자주적 외교의 필요성을 많이 강조해 온 문재인 대통령도 미-중-북 삼각 관계에서 생기는 일들에 대해 별 영향을 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감안하면, 당연히 미국과 중국과 비교할 수조차 없다. 북한은 경제가 매우 빈약하지만, 절대무기로 볼 수 있는 핵·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가졌다는 이유로 미-중과 평등한 입장에서 회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다른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중립 지위를 얻고 유지해 온 나라들이 별로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 가운데 거의 유일한 전례(前例)는 스위스다. 그러나 스위스는 유럽 기준으로도 막강한 경제력이 있고, 유럽에서 제일 훌륭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은행, 신용 부문에서 예외적으로 중요한 나라이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이 이와 같은 중립 지위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스위스는 유럽에 위치해 있다. 유럽국가들은 수백 년 전부터 서로 대립해 왔는데, 국력이 대체로 비슷한 몇 개의 강대국이 있었다. 독일·영국·프랑스는 대체로 국력이 비슷한 나라들이다. 스페인·이탈리아·폴란드도 약소국이 아니다. 이들 국가는 원래 경쟁과 대립을 열심히 했는데, 그 때문에 스위스와 같은 중립국가들은 이 대립을 잘 이용할 수 있었다.
한국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동아시아에서 중국은 지배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유럽 최강국인 독일의 인구는 유럽 총인구의 5분의 1에 불과한데, 중국의 인구는 동아시아 총인구의 5분의 4 이상이다. 경제력 부문에서의 불균형은 아직 이만큼 심하지 않지만, 중국의 부상 때문에 나중에 비슷해질 가능성이 있다. 유럽에서 중소국가는 강대국의 대립과 다툼을 이용할 수 있는데, 동아시아의 중소국은 미국이 철수하거나, 미국과의 관계가 나빠질 경우에는 중국의 영향력을 막을 방법이 아예 없다.
한국의 독자 핵개발, 전혀 현실성 없어
그런데 한국도 자신의 국력을 많이 강화하는 방법이 있다. 독자적인 핵개발이다. 그러나 한국이 핵개발을 시작한다면, 이 정책은 불가피하게 미국을 비롯한 국제질서에서도 제재를 불러올 것이며, 무엇보다 중국에서 매우 심각한 보복조치를 초래할 것이다. 중국은 대한(對韓) 무역 보이콧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사회를 보면, 사회의 주류는 국제제재와 중국의 무역 보이콧이 야기할 경제난을 10-15년 동안 견디고, 핵을 굳게 지킬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핵개발을 시작한 한국이 이와 같은 국제적 압력과 생활수준 하락에 직면한다면, 2-3년 이내에 핵개발을 결정한 정권을 퇴진시키고 외부 압력에 굴복할 것 같다. 그 때문에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국가 이익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대안인 ‘한국 핵무장(南核)’ 은 아무 현실주의가 없는 대안일 뿐이다.
한국에서 미국과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당연히 국제주의 경향과 친미경향이 심한 한국 보수파는 이러한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고, 요즘에 진보파에서도 한미동맹을 옛날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 때문에 한미동맹을 잘 유지하는 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알 수 없다. 100년 후에도 굳건할 수 있지만, 20-30년 후에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때문에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한국이 미래에는 중국이 지배하는 동아시아에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중국이 패권을 쥔 동아시아의 모습을 예측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몇 개의 알 수 없는 변수도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은 언제까지 권위주의 국가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정권이 오랫동안 잘 지속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중국에서 권위주의 체계가 무너질 경우조차 중국의 세계관과 정치문화는 별로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바꾸어 말해서, 민주국가가 된 중국에서도 이웃 나라에 대한 태도·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여전히 매우 중요한 사상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우리의 기본 가정은 중국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즉 권위주의 국가로 남아 있다는 가정이다.
毛澤東 이후의 중국 역사를 보면, 중국은 이웃 나라, 그리고 자신의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의 국내정치나 사상에 별 관심이 없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즉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이 통제하거나 동맹관계를 맺은 나라이면, 대부분의 경우 자유민주주의 국가, 최소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위장한 체제가 있어야 했다. 당연히 미국은 가끔 독재국가와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좋은 사례는 제2차 대전 때 미국과 소련의 동맹관계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예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미국 정부가 독재국가를 많이 지지했을 때조차, 이들 국가는 인권침해를 가능한 한 많이 숨기고, 선거·의회와 같은 민주주의의 상징을 실시해야 했다. 물론 미국에서 지원을 받은 독재국가들은 수많은 경우 국내에서 가혹한 억압을 했다. 미국 외교관과 정치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았을 경우에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했지만, 가끔 극한 인권침해와 탄압을 예방하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관계가 있는 나라들의 내정에 아무 관심도 흥미도 없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회에 대해서도 강제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수출하려 노력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다른 나라에 수출할 의지가 아예 없다. 중국측의 거의 유일한 조건은, 대외정책에서 중국에 도전하지 않고 안정된 정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기타 국가의 국내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미국이 거의 100년 동안 실시해 온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강제 수출 정책은 좋은 결과가 있기도 했지만, 나쁜 결과를 낳은 경우도 매우 많다. 중국은 민주주의를 요구하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한국이 중국 영향권에 속하게 될 경우에도 여전히 민주주의 정체(政體)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민주주의는 한계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제일 중요한 조건은 바로 중국의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여기에서 좋은 사례는 2008년 광우병 위기이다. 당시에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에 광우병의 위험이 있다는 소문이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 주장의 근거의 유무와 무관하게, 제일 중요한 것은 광우병의 공포와 당시 정부에 대한 불만 때문에 한국에서 대중 운동이 전개되었다. 광우병 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 수십만 명이 광화문으로 나갔다. 그 후에 오랫동안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공포가 남아있었고, 지금까지 광우병 이야기에 대한 기억 떄문에 미국산 쇠고기의 판매에서 문제점이 없지 않다. 한미 무역 구조를 보면, 미국에서 쇠고기는 매우 중요한 수출품이다. 그러나 광우병 위기 때 미국측은 심한 손실을 입었지만,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중국에게 이러한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2000년의 마늘 파동과, 2017년의 사드 대립은 중국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사건이다. 중국은 이런 사태가 생긴다면, 즉시 보복 조치를 취한다. 만약에 미국산 쇠고기가 아니라 중국산 쇠고기를 상대로 광우병 위기가 벌어진다면, 중국은 즉시 현대자동차에 안전 문제가 있고, 삼성 갤럭시 휴대폰에서 위험한 전자파가 나온다는 이유를 들어서 한국의 수출선을 가로막았을 것이다. 무역 문제에서 중국은 확실히 압박으로 대답하고, 자신에 대한 도전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물론 체결된 협상은 중국측에 유리한 경우에는 절대로 바뀌거나 재협상되지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 민족주의도 문제가 될 것이다. 현재 중국은 공산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그 유일한 사상은 중국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중국은 국내정치에 많이 간섭하지 않아도, 중국 민족주의와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관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10여 년 전에 심한 문제가 된 동북공정으로 알려진 고구려 역사 사건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영향권에 흡수된 한국은, 중국과 엇갈려진 역사를 모습을 그리지 못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간도는 당연히 중국 땅이며, 옛날 고구려와 발해도 중국 역사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중국 영향권에 흡수된 한국은 여러 문제가 있는데, 지금처럼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한국도 문제가 없지 않을 것이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두 가지 있다. 첫째, 미국이 제공하는 안전보장에 대한 신뢰는 문제가 되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성공적으로 핵무기·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북한이 있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이 남침을 당할 경우에 얼마 정도 한국을 지킬 의지가 있을지 모른다. 필자는 미국이 한국을 지킬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전략적 상황에서 이것은 과거와 달리 확실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둘째 문제점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할 경우 한국이 자기 이익과 별 상관이 없는 대립에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고 병합을 시도할 때 미국이 대만을 지킬 것이다. 이 때 미국측은 확실히 한국과 일본의 비행장과 기지를 사용해야 한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이것은 중국에 선전포고하겠다는 의미로 보일 것이다. 결국은 한반도에 위치한 미군기지와 비행장은 중국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한국도 중국과 전쟁상태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의 핵 우산은 절대적인 성격을 띄고 있어서 대부분 상황의 경우 한국이 별로 위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미-중 대립에 흡수될 수 있는 한국은 보호자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아주 새로운 국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영향력 과대평가하는 한국인들
솔직히 말해서, 한국 사람들은 러시아를 언급할 때 러시아의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영향력을 과장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15년 동안 러시아는 어려운 과도기를 마치고 비교적 잘 사는 나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대립에 빠졌다. 그 때문에 지금 언론을 보면, 러시아 관련 이야기가 많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러시아는 기타 강대국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많이 다르다. 러시아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서 매우 작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현재 러시아를 볼 때, 구소련의 부활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에 러시아 정치가 푸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권위주의 경향이 심해서 그렇다. 그러나 구소련하고 2017년 러시아 사이에는, 무시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구소련은 세계 어디에나 수출해야 하는 포괄적인 사상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 활동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는 전략적인 이익 그리고 국가 위신을 향상시키는 것에 노력했다. 바꾸어 말해서 구소련은 멀고 먼 지역에서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 큰 돈을 투자할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2017년 러시아는 결코 그렇지 않다. 러시아는 대외정책을 돈을 투자하는 대상보다는 돈을 버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 때문에 러시아는 지금 대규모 해외 지원 프로그램도 하지 않으며, 동맹 관계를 맺을 때에도 동맹국가에 그리 많은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 법칙에 예외가 하나 있다. 그 예외는 구소련 지역이다. 러시아 정부와 주민 대부분은 구소련 지역을 러시아의 당연한 영향권으로 보고, 이 지역에서는 정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적지 않은 투자를 할 의지가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구소련에 속한 적이 없다. 그 때문에 앞으로 러시아가 중국을 대체해서 북한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완전히 아무 근거가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북한에서 영향력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은 돈 밖에 없다. 그러나 방금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러시아는 돈을 쓸 생각이 없다. 중국은 요즘에 북한과 사이가 많이 나빠졌지만, 여전히 북한으로 석유를 거의 공짜로 공급하고 있다. 반대로 러시아는 지난 몇 년 동안 말로는 북한과 우호관계를 강화한다고 하는데, 사실상 석유를 국제 시장 가격으로만 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지 않다. 북한 지도부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이웃 나라들이 위험하지만 러시아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덜 위험한 나라’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외국의 말들은 다 믿지 말아야 하는 말이지만, 러시아의 말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조금 더 신뢰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러시아는 중개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떤 위기가 발생할 경우에 북한이 중개세력이 필요하게 된다면, 러시아가 이러한 세력이 되는 것이 거의 당연한 일이다.
러시아가 북동 아시아에 대해서 관심이 별로 없지만, 현 단계에서 러시아의 전략적인 목적·구조는 중국이 달성하려는 전략적인 목적·구조와 매우 비슷하다. 북동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목적은 ‘안정과 현상 유지’, ‘분단된 한반도’, ‘북한 비핵화’이다.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는 북동 아시아의 안정과 현상유지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북동 아시아의 심한 위기나 급격한 변화는 거의 확실히 러시아의 국가이익에 손해를 주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당연히 남북한 통일을 원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들 목적은 러시아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 러시아는 많은 비용을 치르고 투자를 할 생각이 별로 없다. 그런데, 별로 바람직하는 통일이 만약에 정말로 이루어진다면 얻을 떡이 없지 않다.
예를 들면, TKR과 TSR 철도 연결 프로젝트, 북한을 통과하는 천연가스 파이프 건설 프로젝트, 그리고 전기망 연결 프로젝트는 현 상황에서 실현될 희망조차 없다. 물론 러시아측은 이러한 3대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멀지 않은 미래에 실현할 수 있다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 암시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러시아가 3대 프로젝트를 할 수 없는 기본 이유는, 한반도의 장기적인 지정학적 불안정성이다. 3대 프로젝트는 모두 다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사업이다. 확실한 예산을 알 수 조차 없지만, 수십억 달러, 즉 수조 원 정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언제든지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고, 한국이나 미국에서 강경파가 정권을 잡을 수도 있고, 중국도 이런저런 이유로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러시아가 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동결되어 버릴 수도 있고, 심지어 완전히 사업이 중지되어 버릴 가능성도 있다. 당연히 수십억 달러를 그냥 한반도 땅에 파묻으려는 러시아 정부 기관이나 기업들이 하나도 있을 수 없다. 남북한 통일의 경우, 통일이 불가피하게 야기할 혼란기가 끝난 다음에, 3대 프로젝트가 실현될 수 있다. 통일이 아니더라도, 한반도에서 안전을 유지할 수 있는 남북 평화 공존 아래에서 프로젝트가 가능할 수 있다.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을 보면, 러시아의 기본 목적이 현상유지이다. 하지만 남북한이 통일을 실제 정치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평온하게 공존하는 것을 실제 목적이라고 한다면, 평화공존은 현상유지보다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흥미롭게도 러시아 정부 관리들의 공식 반응을 보면, 여전히 러시아가 통일을 지지한다는 형식적인 주장이 가끔 나오지만, 마음 속에서 원하지 않는 통일의 필요성보다는 러시아 국익에 유익할 장기적 남북 평화공존에 대한 희망을 더 많이 표시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의 길, 남북통일 아니다
필자는 자신이 낙관주의자도 아니고, 비관주의자도 아니며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한반도에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남북통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북한의 경제력 차이를 감안하면,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시나리오는 흡수통일 뿐이다. 흡수통일은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불러올 수 있지만, 단기·중기적으로 남북한은 흡수통일 이후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국제정세 때문에, 북한 급변사태가 유발할 수 있는 국제 위기는 미, 중을 비롯한 강대국이 참전하는 대규모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 때문에 흡수통일보다는 한반도에서의 평화공존이 훨씬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말이지만, 흡수통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흡수통일이 불가능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흡수통일을 불러올 수 있는 사건은 급변사태, 구체적으로는 민중들의 봉기나 엘리트 계층 내부에서 벌어질 쿠데타이다. 보통의 경우 좋아하든 싫어하든 외부세력은 이러한 급변사태를 예측하기도, 예방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흡수통일을 가져올 수 있는 ‘급변사태의 준비‘는 진보파이든 보수파이든 책임있는 대한민국 정부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이다. 어느 정도 흡수통일은 진도 9.0이나 10.0의 지정학적 대지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진을 준비하는 것은, 지진이 벌어지는 것을 부추기는 것도, 환영하는 것도 아니다. 남한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시청이나 도쿄 도청과 같은 입장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흡수통일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것은 남북한의 장기적인 평화 공존이다. 평화 공존을 촉진하기 위해, 양측은 사실상 서로 별다른 국가로 인정하고 통일을 지금처럼 많이 강조하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1970년도 초 동서독처럼 수교까지 아니더라도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평화공존이면 남북한은 정상적인 무역과 경제교류를 하는데, 이 교류는 정치와 분리해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한 유권자들이 별로 좋아하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남북한의 경제력과 생활수준 차이를 감안하면, 남북한 간의 교류는 평등주의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서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부자 국가인 남한은 잘 못사는 국가인 북한에 직·간접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와 같은 남북한 평화 공존 시대에도 북한은 극한 원리주의 절대독재체제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개방의 잠재적인 영향과 매력이 너무 커서, 북한 엘리트 계층은 주민들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참혹하게 진압해야만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유지할 수 있으며 북한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유감스럽지만 현실이다. 그래서 남한은 북한과 교류를 할 때, 북한 인권침해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서 어느 정도 눈을 감을 것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장기적으로 말하면, 북한 국내에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성장은 인권과 노동 운동 부문에서도 개선을 불러올 수 있지만, 이것은 하루 아침에 생길 것이 아니다.
남북한 평화 공존은, 이상적인 것보다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차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선과 악 사이에 있는 것보다는, 악과 차악 사이의 선택들이다.
뿐만 아니라, 남한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중 대립에서 조만간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동맹을 여전히 유지할 수도 있고, 중국과 동맹 관계를 맺을 가능성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두 시나리오 모두 다 문제점과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당연히 강대국과의 동맹은 불평등한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의 불평등성과 부작용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약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에 흡수, 종속될 때도 불평등한 관계이며 부작용은 많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한미동맹의 유지가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장기적으로 말할 때, 미국의 상대적 쇠퇴로 인해 한미동맹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의문점이 없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은 남한을 예측하지 못한 위기에 빠지도록 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남한은 미-중 충돌에 흡수될 수 있다. 물론 남한이 한-중 동맹을 선택할 경우에도 같은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다.
그 때문에, 남한이 미-중 관계의 악화를 환영하지 않고, 미-중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노력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수많은 남한 지식인들의 희망과 달리 남한은 미-중-북 삼각형 관계에 미칠 수 있는 힘이 없다. 그 때문에 남한이 할 수 있는 것은 갈등을 증폭시키지 말고, 미-중 긴장을 고조시키지도 않으면 좋다.
그래서 남한이 직면한 다음 100년은 지난 100년만큼 어려울 수도 있다.
러시아출생의 동양학자, 사회 평론가, 한국학자, 역사비평가.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 80년대 김일성 종합대학에 유학. “북한을 비이성적인 정권으로 간주하는 대부분의 해석과 달리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행동하는 세력으로 설명하는 전문가"라는 평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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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상의 과제이며 민족공동체의 숙원인 평화통일 방해를 넘어, 아예 노골적으로 미국의 Two Korea 정책 홍보에 나서고 있군요. 평화공존이라는 그럴 듯한 핑계로…
강요된 73년째 별거도 서러운데, 왜 꼭 이혼 도장까지 찍으라고 앞장서서 주장하시나요? 트럼프 등장 이전까지는 미국조차도 감히 한반도 통일 반대, 두개의 국가로 완전 분립을 감히 노골적으로 주장하지 못했는데…
미국이 어쩌고 저쩌고를 떠나, 우선 위헌반체제 주장일 뿐만 아니라, 소모적인 분단대결을 항구화 하자는 주장 외에는 두개의 국가로 아예 나눠지면, 더 나은 평화가 도래할 거라는 아무런 구체적 근거나 대안이 없네요. 만약 이런 주장대로 개헌이 되어, 대한민국 헌법에서 한반도 영토조항이 휴전선 이하로 변경되고, 평화통일 과제가 삭제 된다면, 이북5도청이 패쇄되고 평화통일 주장은 위헌반체제 범죄 행위로 되겠지요?
전세계가 환영했던 7.4공동성명에 기초한 6.15통일시대도 한민족 스스로 포기하여 완전히 막을 내리고…
남북이 합의하고 이행해 온 지금 이대로 평화통일(6.15통일시대 통일 영역 점진적 확장 방식)은 왜 굳이 부정하지요? 이명박근혜가 약속을 파기하고 부정했다고 6.15통일시대의 성과물(개성 금강산 10.4선언 등)들을 아예 없던 일로 하자고요?
돈 안들고, 돈 벌며, 소모적인 분단대결비용만 줄여 갈 수 있는 지금 이대로 6.15평화통일 약속 이행, 재가동을 촉구하기는커녕, 왜 굳이 지레 평화통일 자체를 포기하자는 위헌반체제 논지를 촛불정국 전후 지금 이 시점에서 돈들여가며 애써 주장하시나요?
그것도 조중동문을 통해?
진정,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강요된 분단대결을 우리민족끼리는 끝내기로 하고, 지금(2,000년6월15일자) 이대로 평화통일을 선언한 6.15공동선언과 그 이후 평화통일 영역의 확장 과정을 잘 살펴보세요.
지금 이 시간 남북 직통선 재개가 즉각 가능한 의미도!
개성공단 즉각 재개 및 확장 약속 이행도!
금강산 관광재개로 년간 수십만의 편안한 만남이 즉각 가능한 현실도!
지금 뉴스에서는 Two Korea를 노골적으로 공언한 미국 트럼프 정부가 대한민국 정치경제의 단기 흥망이 걸린 평창평화올림픽 성사를 직접 방해하며, 반미감정을 유발시키는 어이없는 고립주의 태도를 보이고 있네요. 허참!
전 two korea 관점을 응원합니다. 제 또래 대다수도 더 이상 허구의 민족에 기댄 통일은 원하지않아요.
전형적인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끝도없이 욕심을 부리는 분이군요.
평화통일이 아무 대가 없이 주어지면 정말 좋겠지만 국제정세와 지리적 요건이 그걸 불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혹시 한국이 주도적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왜 아직까지 통일이 되지 않고 갈수록 가능성이 사라져만 갈까요?
혹시 통일의지가 없어서라고 생각하시면 ‘요새 젊은 것들은 노오오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꼰대랑 똑같은 사고회로를 돌리시는 겁니다. 주변국의 방해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우리가 주변국들을 설득 가능한지부터 먼저 따져봐야죠. 그런데 주변국 뿐 아니라 당사자인 남북한도 별로 통일하고 싶어하지 않는거 같은데요. 이런걸 보통 환경과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여건이 안되는데 계속 들이받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곧 머리가 깨져서 죽겠지요.
평화는 사실상 여러 세력간의 균형상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당장 모두가 으르렁 거리더라도 당장 싸움이 나지 않으면 그게 평화죠. 평화와 통일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가능성이 0라는 것에 동의한다면(이분은 여기 동의하지 않겠지만) 둘 중 중단기적으로 확실한 이득인 평화를 선택하는게 이해 당사자들의 당연한 선택입니다.
혹시 작성자 님이 이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시는건 남북 통일에 딱히 이해관계가 없는 금수저거나 외국인이라서 인가요?
구호적인 남북통일보다 현실적인 남북한 평화공존이 대안이 될 수 있겠네요.
관찰자의 시선에서 나오는 적확하고 냉철한 현실인식입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민족공동체 운운하면서 통일을 지상과제로 생각하는 분들은 통일이 가져올 심각한 수십 년 동안의 과도기적 고통을 간과하는 이들이죠.
이미 남한과 북조선이 갈라선지 70년이고, 분단체제의 위협 하에서도 남한은 민주화와 번영을 이루는데 성공했습니다. 앞으로 70년쯤 더 갈라져 살면서 북조선이 알아서 민주화와 발전을 이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낙관적, 감상적인 통일론을 버려야 더 안전하고 번영하는 한반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탁월한 석학을 이제서야 알았다니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오랜만에 접하는 희대의 명문이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첫댓병맛’의 법칙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네요. ㅋㅋ
첫댓은 전형적인 NL식 장밋빛 민족주의에 도취된 꼰팔육 감성 댓글임. 아직도 북한이 같은 민족으로 보이냐?? 시대착오적 역사관에 갇혀 대한민국의 미래를 암흑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생각이라면 그대야 말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맞다.
난 통일이 필요하다고 보진 않지만 같은 민족이라고 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글에서도 설명하듯, 핵심은 남북은 이제 같은 민족이 아니다가 아니라 같은 민족이어도 다른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 있다임. 체제가 달라도 언어와 민족성이나마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 북한에 대한 소소한 열쇠이자 향후 평화공존 체제에서 북한과의 협력을 진행하는 키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