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레스 푸지데몬 전 스페인 카탈루냐(영어명 카탈로니아) 자치정부 수반은 스페인 민주화 이후 가장 심각한 정치적 위기로 꼽히는 카탈루냐 독립 문제의 정점에 서 있다. 카탈루냐는 프란치스코 프랑코 총통을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독재세력에 맞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며 1975년까지 카탈루냐어 사용이 금지되는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1978년 프랑코 총통 사후 헌법 재정으로 스페인 왕국이 입헌군주국으로 전환되면서 카탈루냐도 자치권을 회복했지만, 공화국으로의 독립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카탈루냐 작은 산간마을에서 나고 자란 가난한 빵집 아들 푸지데몬 전 수반은 ‘돈키호테’의 기세로 카탈루냐 독립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카탈루냐 지역 언론인으로서 잔뼈가 굵은 푸지데몬 전 수반이 2007년 인구 10만이 채 안 되는 소도시 카탈루냐 지로나의 시장으로 정치인으로 변신한 지 10년 만이다. 상대는 스페인 북서부의 프랑스 국경과 맞닿은 갈리시아 지방의 판사 집안에서 태어난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다. 20대에 중앙정치에 입문해 내무장관 등 4개 부처 장관을 역임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국제사회의 예상을 깨고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성사시키며, 90%의 찬성률로 독립선언까지 이끌어 냈다. 하지만 라호이 총리가 카탈루냐 자치권을 박탈하고 반역 협의로 푸지데몬 전 수반을 비롯한 자치정부 지도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초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했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벨기에로 도피해 사실상 망명 생활을 시작했지만 카탈루냐 독립의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자치정부 해산으로 오는 12월 치러질 조기 지방선거가 마지막 반전의 기회다. 친독립 정당ㆍ정파들이 카탈루냐 의회 135석의 과반을 차지한다면, 1641년 첫 독립시도 이후 400년 역사를 이어온 카탈루냐 분리독립 운동 역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스페인서 독립 꿈 키운 카탈루냐 시골마을 빵집 소년
푸지데몬 전 수반은 1962년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에서 프랑스와 국경을 맞닿고 있는 지로나의 한 산간마을 아메르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빵집을 해 온 다복한 집안의 여덟 형제 중 둘째였다. 유력한 정치인 가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증조 할아버지와 삼촌이 아메르 시장을 지내는 등 정치와 무관한 배경도 아니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카탈루냐에 내린 뿌리가 깊다. 아메르에서 기초 교육을 받았고 바니올레스 인근의 ‘산타마리아 델 콜렐’ 기숙학교로 옮겨가기 공부를 계속했다. 이어 지로니아 대학으로 진학했다. 전공도 카탈로니안 철학이었다. 고교생이 된 16세부터 지역 일간지 ‘디아리 디 지로니아’에서 주로 축구 소식 등을 전하는 기자로 일할 정도로 일찌감치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기자 일에 전념키로 하면서 대학을 졸업하진 못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삶도 카탈루냐와 떼놓고 보기 힘들다. 카탈루냐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신문사 ‘엘 푼트’에 1981년 입사해 편집국장까지 지내며 경력의 대부분을 쌓는다. 1990년대 언론인으로서 유럽 각지를 다니며 쌓은 경험은 그를 카탈루냐 민족주의자로 한 걸을 더 나아가게 만든다. 그 결과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지원을 받아 1999년 통신사 ‘카탈루냐통신'(CAN)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2002년까지 CAN에서 국장으로 일한 뒤에는 영자지 ‘카탈루냐 투데이’를 만든다. 카탈루냐 내부와 국제사회를 향하는, 스페인 중앙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카탈루냐의 독립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언로(言路)를 차례로 뚫은 것이다.
일찌감치 카탈루냐 민족주의에 눈을 떴던 푸지데몬 전 수반이 독립 구상을 구체화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1년 슬로베니아 방문이 결정적이었다고 그의 전기 작가 카를레스 포르타가 전한다. 당시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하기 위한 주민투표에 이어 내전까지 치른 뒤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쟁취했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스페인 중앙정부의 거듭된 압박에 ?감옥 행도 불사하겠다?며 결사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정파 합종연행 속 카탈루냐 수반에… ‘18개월 내 독립 선언’ 강단
푸지데몬 전 수반은 2006년 우파 선거연합 ‘일치와 통합'(CiU)에 몸 담으며 전업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CiU는 1980년 치러진 첫 지방정부 선거 이후 줄곧 여당 자리를 지키다 2003년 선거에서 처음으로 야당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2007년 선거에서 내각책임제 방식으로 선출되는 지로나 시장직에 도전했지만 실패한다. 하지만 2011년 선거 승리로 시장 자리에 오르면서 정치인으로서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뒤이어 치러진 선거로 2016년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으로 깜짝 선출되며 카탈루냐의 유력 정치인으로 급부상한다. 2015년 선거 결과에 따라 연립정부 구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카탈루냐 독립 문제를 두고 정당ㆍ정파들이 이합집산한 결과였다.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자치정부 전임 수반 아르투르 마스가 이끌던 CiU는 2015년 선거를 앞두고 친독립파 ‘카탈루냐민중수렴당'(CDC)과 비독립파 ‘민주연합당’으로 분열된다. 마스 당시 수반은 이에 자신의 지지세력인 우파 CDC와 카탈루냐 양대 정당 중 하나인 사회당에서 떨어져 나온 ‘카탈루냐공화좌파당'(ERC)과 결합해 묶어 ‘준스펠시'(JxSiㆍ찬성을 위해 다 함께)라는 이름의 새로운 선거연합을 결성한다. 준스펠시는 선거에서 39.6% 득표율로 제1당(135석 중 62석)을 차지하며 선전 하지만, 집권을 위한 과반의석(68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준스펠시는 이에 선거연합에 참여하지 않은 정당으로 선거에서 10석을 얻어 캐스팅보터가 된 ‘인민연합후보'(CUP)과 연정 협상을 벌인다. 공산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했지만, 강경 분리ㆍ독립파라는 점이 고리가 됐다. 하지만 CUP는 연정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카탈루냐 독립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마스 당시 수반이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마스 당시 수반은 막판까지 CUP를 설득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수반 후보로 나서지 않기로 한다. 결국 강경 분리독립파인 푸지데몬 전 수반이 연정구성 시한을 목전에 두고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 후보로 선출된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정치적 타협으로 어부지리 격으로 행운이 따라 수반에 오르게 됐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선출 직후부터 마스 전임 수반의 아바타가 될 것이라는 우려에 직면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카탈루냐 주지사에 공식 취임하면서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에 대한 충성맹세를 하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2016년 1월 12일 치러진 주지사 취임식에서 푸지데몬 전 수반은 스페인 헌법을 놓고 취임선서를 하는 관행도 깼다. 그러면서 ?카탈루냐가 18개월 내에 스페인에서 독립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독립선언 후 반역죄로 체포영장.. “민주주의자 단결할 때” 호소
푸지데몬 전 수반이 취임 일성으로 카탈루냐 독립을 외쳤지만, 집권 초만해도 스페인 중앙 정계에서는 푸지데몬 전 수반이 이끄는 카탈루냐 집권세력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념 기반이 다른 좌ㆍ우파가 섞여 있는데다, 카탈루나의 독립이냐 분리냐에 대한 시각 차까지 더해 각 당내 정파간의 이해관계마저 얽히고설키는 상황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푸지데몬 전 수반은 올해 초 자신의 카탈루냐 독립 로드맵에 반대하는 내각 인사 5명을 전격 경질하는 등 권력기반을 착실히 다져나갔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개입으로 실패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전망을 깨고 분리독립 주민투표도 지난 10월 1일 성사시켰다. 스페인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풀뿌리 시민단체들의 도움을 받았다. 스페인 정부가 막판 수천여명의 경찰을 투입해 투표소를 급습했지만, 전체 투표소의 10%가량을 폐쇄하는 데 그쳤다. 개표 결과 카탈루냐 독립 찬성이 90%, 반대가 8% 가량으로 집계됐다. 투표율 42%로 226만명의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한 결과다. 카탈루냐 의회는 10월 27일 독립선포안을 표결 끝에 재적 의원 135명 중 70명의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하지만 ‘자치정부가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부과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스페인의 전반적 이익을 침해할 경우 중앙정부가 필요한 모든 수단을 쓸 수 있다’는 헌법 155조에 따라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현 자치정부의 해산 및 오는 12월 21일 조기 지방선거를 결정했다. 아울러 스페인 법원은 카탈루냐 분리ㆍ분리 독립을 추진한 해임된 자치정부 장관 8명을 체포 구금했다. 최대 징역 30년형을 받을 수 있는 반역죄와 소요죄ㆍ선동죄 등의 협의를 적용했다. 벨기에로 사실상 피신했던 푸지데몬 전 수반과 장관 4명에 대한 체포영장도 발부해 유럽연합(EU)에 협조를 요청했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벨기에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조건부로 석방된 뒤 7일 “카탈루냐가 공화국이 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바로 민주주의를 통해서다”라며 카탈루냐 독립 추진 의지를 꺾지 않았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특히 “스페인 정부가 과거 (스페인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이 무장 투쟁을 하던) 테러의 시절에 ‘폭력을 끝내면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고 수없이 되풀이된 말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벨기에 당국은 추후 푸지데몬의 스페인 송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내전 끝에 독립을 쟁취한 슬로베니아의 역사에서 카탈루냐 독립의 가능성을 찾았지만, 푸지데몬 전 수반은 민주주의라는 명분과 국제사회의 개입을 통해 카탈루냐의 미래를 확보하는 길을 걷고 있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보낸 서한을 통해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민주적 프로젝트’라며 국제사회의 감시를 촉구했다.
하지만 EU 등 국제사회의 반응은 푸지데몬 전 수반 등에 호의적이지 못하다.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논설을 통해 “카탈루냐 자치의회가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충분한 논의를 진행하지 않은 채 강행해 법적으로 하자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푸지데몬 전 수반이 카탈루냐가 독립을 선언하면 신속하게 EU 회원국 지위를 획득할 것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유권자들에게 제공한 점을 문제로 꼽았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강경 대응이 불 보듯 뻔한데도 이렇다할 대응책 없이 독립선언을 강행한 것도 크나큰 정치적 실수라는 평가다.
반면 푸지데몬 전 수반은 스페인 중앙정부 결정에 따라 오는 12월 치러질 카탈루냐 조기 지방 선거 승리를 반전 카드로 삼으려는 모양새다. 친 독립 정당들이 선거에서 68석 이상을 얻어 과반을 확보한다면 카탈루냐 독립을 향한 명분을 한층 더 쌓을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푸지데몬 전 수상은 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카탈루냐를 위해, 정치범 석방과 공화국 독립을 위해 모든 민주주의자가 단결할 때가 왔다”고 호소했다.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사회부, 국제부, 경제부 등을 거침. 사라진 정치를 찾아 오늘도 여의도 바닥을 더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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