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하 특감)이 나온다. 박정희 유신 정권 말기인 1978년 개발 열기로 들떠있던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그린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반장이 바로 이 특감을 모델로 한 배역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실제 모델
영화는 1973년 개교한 신흥 사립고 상문고가 모티브가 됐다. 1978년 상문고에 이 특감과 나란히 입학해 6회 졸업생이 된 시인이자 영화감독 유하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반장에게 ‘이석수’라는 명찰을 달아줬다. ‘공부 잘하는 반장’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이 특감이라는 이유에서다.
상문고 동문들의 바람처럼, 이 특감은 지난해 3월, 대통령의 친족과 수석비서관급 청와대 고위 공직자의 비위행위를 상시적으로 감찰하는 초대 특감 자리에 오르며 명예를 높였다.
하지만 법으로 보장된 임기 3년의 절반을 채우지 못하고 사실상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감찰에 착수해 미운 털이 박힌 지 한 달 남짓, 우 수석을 직권남용과 횡령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 한 지 겨우 열흘 남짓이 흘렀을 뿐이다.
이 특감은 우 수석에 대해 군복무 중인 아들의 ‘꽃 보직’ 논란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를, 가족회사 ‘정강’과 관련해 횡령 혐의를 각각 적용했다. 22년간 검찰에서 잔뼈가 굵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이 특감은 ‘효자동 잔혹사’의 희생양이 될 위기다.
엘리트 공안검찰 된 상문고 반장
공부 잘하는 상문고 반장 이석수는 보수적 ‘공안통’으로 검찰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한다. 22년간 검찰에 몸담은 그는 1995년 현역 시ㆍ구의원들이 줄줄이 연루된 ‘인천시 교육위원 선출 금품수수 사건’을 처리하며 처음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이후‘북풍(北風)’ 사건(1998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1999년), 김선일씨 피살 사건(2004년) 등을 맡았다. 대부분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일들이었다.
이 특감은 검찰 조직이 정치적 부담을 느낄만한 사건 수사에 참여할 기회를 자주 얻었다. 의혹만 무성했던 북풍공작(1997년 대선 당시 안전기획부가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북한과의 연루설을 퍼뜨린 사건)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혀낸 수사에 참여한 게 대표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검찰 조직이 심리적 압박을 느꼈을 법한 때다. 당시 수사팀의 진용을 꾸린 이는 박근혜 정부 두 번째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홍경식 변호사였다.
특별검사제가 처음 적용된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도 이 특감 손을 잠시 거쳐갔다. 서울지검 공판 검사였던 그에게 당시 특검 수사결과에 따라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을 기소하고 공소를 유지하는 일이 주어졌다. 검찰이 당초 무혐의 처분했던 피의자에 대해 재판정에서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현직 검사 신분으로 검찰의 수사 결과를 뒤집어야 하는, 사법 사상 유례가 없는 이벤트의 주연으로 캐스팅 된 것이다. 물론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내는 적통 역할은 훗날 법무부 장관에 오르는 이귀남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이 맡았었다.
이 특감은 부산지검 공안부장이던 2004년에는 이라크에서 선교사 김선일씨가 이슬람무장단체에 납치ㆍ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가 특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김 씨 살인 사건에 대한 내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 재판정에서 살해범들을 단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게 당시 검찰의 설명이었다.
감찰통으로 변신…“보수적이지만 공정”
변신의 계기는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 검찰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참여하면서 찾아왔다. 국민참여재판제 및 양형기준제 도입, 국선변호제도 확대, 변호인의 피의자신문 참여 등 일련의 사법개혁 작업이 이때 이뤄졌다.
이후 이 특감은 대검찰청 감찰2과장(2006년), 감찰1과장(2007년) 등을 거치며 ‘감찰통’으로 자리매김한다.
여신도 성폭행 혐의 등으로 도피 중이던 종교단체 JMS 정명석 교주 측에 수사기밀을 유출한 현직 검사가 면직처분을 받는 등 감찰을 맡은 동안 엄정한 잣대를 들이댔다. 현직 검사가 면직 처분된 것은 1999년 법조비리 파문 당시 검찰 수뇌부 사퇴를 요구하는 항명파동으로 면직됐던 심재륜 대구고검장 이후 8년만이었다.
검사 신분으로 지난 2006년 한겨레 신문에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기고했다 이 특감에게 직접 감찰을 받았다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수적 공안검사이지만 냉정하게 판단하고 사사로움에 얽혀 수사하지 않는다”고 그를 평가했다.
이 특감은 그러나 “상문고 출신 법조인 중 가장 먼저 별(검사장)을 달 것”이라던 주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감찰 직을 내려놓은 지 3년만인 2010년 춘천ㆍ전주지검 차장검사를 끝으로 검찰 생활을 마감했다.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특별검사팀에서 특검보로 참여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초대 특감 후보를 지명할 당시 청와대는 “감찰 업무의 전문성과 수사경험을 두루 갖췄고, 특검보를 역임하는 등 풍부한 법조경험을 갖고 있어 최초로 시행되는 특감의 적임자로 판단했다”며 이 특감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1년 5개월이 지난 지금 청와대는 그를 국기를 흔든 중대한 위법 행위자로 내몰고 있다.
“민정수석도 감찰 대상, 그냥 안 넘어간다”
이 특감은 지난해 3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민정수석도 감찰 대상”이라며 “명백한 비위행위가 포착이 된다면 유야무야 넘어갈 생각은 결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문제가 되는 것도 대통령이나 민정수석이 아니라고 거부하면 적당히 물러서겠다는 것이냐”는 서기호 정의당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특감은 “특별감찰관이라는 게 잘못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면 3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국가 예산만 축내는 그런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박지원 의원의 지적에 “세금만 축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이 특감은 그러나 우병우 수석에 대한 감찰에 착수하며 제대로 ‘밥값’을 하려 하자 여권의 강한 사퇴 압력에 직면하고 말았다. 청와대까지 이 특감을 흔들었다.
김성우 홍보수석이 직접 나서 특정 언론에 감찰 진행 상황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사실이라면 이는 본분을 저버린 중대한 위법 행위이며 국기문란 행위”라고 공세를 퍼부었지만, 이 특감은 일단 버텼다.
그리고 검찰이 특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특감 직을 내려놓았다. 그는 사표를 낸 후 “이건 이 기관(대통령 특별감찰관)을 없애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한겨레 신문에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특감이 청와대와 각을 세우면서 ‘제2의 조응천’이 될지 모른다는 얘기가 진작부터 돌았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있다가 지난 2014년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배후로 지목돼 청와대에서 쫓겨난 조응천 더민주 의원은 이 특감과 대학 81학번,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이기도 하다.
조 의원은 “내가 당했던 일이 생각난다”며 “(우병우 지키기에 나선) 청와대의 자의적 국정운영이 국기문란”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공은 검찰로…현직 민정수석 수사 의구심
청와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특감을 무력화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이 특감은 인사청문회에서 “모든 자리가 마찬가지듯이 처음 하는 사람이 길을 잘 닦아 놓으면 앞으로도 이 자리가 계속 의미가 있게 된다”고 했던 다짐을 잊지 않은 모양이다.
이 특감은 사표를 낸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런 상황에서 제가 이 직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 태도는 아닌 것 같았다”며 “앞으로 검찰 수사도 앞두고 있고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 잘 조사받도록 하겠다”고 뼈 있는 한 말을 남겼다.
온갖 의혹이 제기되고 이 특감과 마찬가지로 검찰 특별수사팀의 압수수색까지 받는 상황인데도 현직에서 버티고 있는 우병우 수석을 향한 시위 성격이 강하다.
이 특감은 지난 22일에는 사퇴 의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정부의 방침이 아닙니까”라고 되묻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운영 방식이 얼마나 자의적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공은 다시 이 특감과 우 수석을 동시에 수사하는 검찰 손으로 넘어갔다.
지금으로서는 사정 라인을 지휘하는 현직 민정수석을 제대로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지배적인 게 사실이다. 다만, 윤갑근 대구 고검장이 이끄는 검찰 특별수사팀이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예단할 수는 없다.
“업무가 의미가 있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해 특감 직을 수락했다”는 이 특감이 지금의 상황을 어떤 식으로 감당해 나갈지도 지켜볼 일이다.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사회부, 국제부, 경제부 등을 거침. 사라진 정치를 찾아 오늘도 여의도 바닥을 더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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