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소개: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저명한 프랑스 경제학자의 불평등 분석은 잘못된 현실의 변화를 위한 전망을 제시한다
열린광장 세계의 시각 2020.04.15 0 COMMENTS편집자 주:
피케티의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 역시 대단한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한마디로 99%의 일반시민과 미래세대를 위한 정치경제학자임을 분명히 하며, 이번 신작에서도 자신의 기본입장인 일정액 이상의 자산가에 대하여 국제공조적인 강력한 누진과세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렇게 확보한 재정을 기반으로 젊은 세대에게 기본자산(프랑스 경우, 1억5 천만원)을 제공할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이에 깜짝 놀란 자산가 계급은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할 이데올로거를 물색하기 시작하였고 FT 지면에 비판적 서평을 제공한 라구람 라잔이 대표적 인물이다. ‘99% 대 1%’를 위한 경제(조세)논쟁이 시작된 셈이며, COVID-19 이후 경제질서의 재구성에 핵심적 주제가 될 전망이다.
토마 피케티 (Thomas Piketty)가 저술한 영향력 있는 2013년 저서 «21세기 자본»의 팬들은 오래 기다려온 속편에 열광할 것이다. 속편은 훨씬 묵직하고 (말 그대로 영어판은 1000페이지 이상으로 구성되었다), 엄청난 학문적 내용을 담으면서 현실 세계를 향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저서는 불평등 타개를 위한 아이티(Haitian)혁명과 같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봉기에 대해 매혹적으로 설명하고 프랑스 혁명과 같이 잘 알려진 사건에 대해도 흥미로운 세부 사항을 담았다.
불평등 해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국가를 향해 대규모 재분배 프로그램을 실행하도록 요구를 담고 있는 피켓티의 신작은 그를 따르는 신봉자에게 새로운 내용을 제시한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넘쳐나는 것은 우선 그의 야심이다. 피케티는 노예제도, 봉건제도, 식민주의, 카스트와 같은 시대에 걸친 사회 제도를 ‘불평등 레짐’이라 총칭한다.
피케티가 위에 언급한 역사적 제도의 주요 특성을 어찌 평가하는 지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여러 가지 경우의 역사적 자료를 활용하여 수입 및 자산의 재분배를 조사하며 오늘날 상황이 과거의 혐오스러운 사건과 얼마나 유사한지 보여준다. 우리가 주변 상황에 대해 우려하지 않고 있다면 이제라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확고한 암시를 제시한다.
피케티는 마르크스(Marx)와 달리 사회 구조(상이한 집단의 재산 소유권 및 경제적 지분)가 생산 기술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마르크스는 쟁기를 통해 봉건제 영지가 가능했고 증기 기관이 발명됨으로써 자본주의 시대의 공장이 운영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피케티는, 대신에, 재산권 및 재산권 분배의 특징은 주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피케티의 주장은 일종의 대중세뇌(brainwashing)를 시사하는 듯 한 이중적 표현이다.
분명히 봉건 유럽의 성직자, 인도의 브라만 및 영국 국교회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사회 내에서 최고 계층을 차지하기 위해 대중의 생각들을 조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산 및 전쟁 기술보다 이데올로기가 권력과 지위를 더욱 보편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은 불분명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 저서가 강조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만약 불평등이 주로 이데올로기에서 기인한다면 개혁가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바꿔야 한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유권자들은 표면상 민주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점차 증가하는 불평등 수준을 억제하기 위해 왜 노력하지 않는가?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노동계층은 자신들의 진정한 이해 관계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허위의식(계급과 계급의식)’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피케티는 직접적으로 해당 질문을 다루지 않지만 평범한 대답을 넌지시 던진다. 대중에게 단지 구체적 자료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남긴다. 예를 들어 그는 1901년 프랑스에서 누진상속세가 공표된 이후 발표된 통계가 “’평등주의적 프랑스’라는 관념 약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주장에 논쟁을 제기한다.
그는 “프랑스는 진보의 반대자들이 묘사하는 ‘소규모 자작농의 국가’와 전혀 비슷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했다. 피케티는 진정한 경제 불평등 상태를 문서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이런 증거를 통해 유권자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변화를 추진해야 하는가? 피케티는 일상적 수입, 소유적 자산, 환경오염의 탄소배출에 대해 고율의 누진세를 요구한다. 이후에도 누군가가 부를 계속 유지한다면 분명히 상속에 따른 재산 덕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공산주의에 현혹되지 않았으며 국가가 모든 재산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중소기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한다. 피케티는 성공한 사업가가 지나친 부를 축적하지 않고 납세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성공의 길을 열어주는 ‘잠정적(임시) 소유권’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정부는 재정수입을 활용하여 더욱 평등한 교육 체계를 만들고, 모든 젊은 계층이 학업에 더욱 매진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본적 자본을 제공하며, 모든 시민들이 세후 평균소득의 60%에 달하는 최저 기본소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로, 그는 우리에게 유토피아의 꿈같은 사회를 그려 준다. 이는 진지한 안건이며 전 세계의 상당 부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최근 이코노미스트/유고브의 여론 조사에서는 미국에서 30세 이하의 민주당원 중 60 퍼센트가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 또는 엘리자베스 워렌 (Elizabeth Warren)을 지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분석의 결과는 상당히 잘못되게 유도되었다. 피케티의 자료 해석은 의문스러우며, 그가 제시한 방안들은 번영을 추구하는 과정에 훨씬 방해가 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더욱 공평하고 민주적인 참여를 원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시위 운동을 무시하라며 거대 엘리트 계층의 중앙집권적 계획을 추진한다.
먼저 자료분석부터 시작한 피케티는 공동연구자들과 함께 수입 및 자산에 대해 자료를 수집해왔다. 하지만 어떤 결론적 추론에도 불구하고 사전적인 강력한 가정은 여전히 필요하다. 피케티는 본 저서와 이전 저서에서 오늘날 부유층은 대개 유한계급이라고 가정한다. 마치 엄청난 금융 재산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얻었으나 결국 일부 재산의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세금을 낸 리릴안 베탕쿠르 (Liliane Bettencourt) 화장품 회사 로레알의 상속인과 같다고 말이다. 그녀와 같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일이 어떻게 해로울 수 있겠는가?(당연한 일이다).
피케티는 혁신적 평등주의의 꿈을 포기했기 때문에 소련 공산주의가 붕괴했다고 탓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편향적인 시선일 뿐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베탕쿠르는 오늘날의 부유층을 대표하지 않으며 특히 미국의 부유층과 다르다. 미국 상위 계층의 소득은 대부분 레이건 (Reagan) 대통령의 세금인하 이후인 1980년대에 증가했다.
필자의 동료 에릭즈윅 (Eric Zwick) 및 공동 저자들이 전미 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논문에서 밝혔듯 사업가들은 공동경영과 같은 기업구조로 옮겨가고 있는데, 이들의 급여소득이 현재의 이윤 또는 자본금 이익률로 오해의 소지가 있게 기술되어 있었다. 그들은 해당 부분을 수정하면서 오늘날 미국의 최고 소득자들은 변호사, 의사, 자동차 딜러와 같이 자수성가 형 ‘일하는 부자’이고 신체적 노동이나 자본 수익을 통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술을 통해 수입을 벌어들인다는 사실을 밝혔다.
만약 오늘날 부자 계층에게 피케티가 원하는 만큼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세금을 부과하면, 노력으로 형성되는 생산활동 및 조세 수입에 상당히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부유한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부를 스스로 처분할 통제권을 지니면, 이미 보여준 바 있듯 자신들의 자산을 좋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한 가지 장점이 있다.
검증되지 않은 기업가들에게 부를 물려주면 얼마나 많은 재원이 낭비될까? 잠정적 소유권은 사회의 생산성 제고에 매우 해로울지도 모른다. 피케티는 유럽과 미국이 높은 누진세도 불구하고 강력한 성장을 누렸던 1950년에서 1980년 사이의 화려한 전후 시기를 가리키며 그러한 주장을 일축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바램이 이루어질 수 있는 증거가 될까? 타일러 코웬(Tyler Cowen)과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이 주장해 왔듯이 전쟁 이후 급격한 성장은 폭격을 입은 도시의 재건, 대공황 이후 막혔던 무역의 재개, 여성의 노동력 참여 증가와 같은 특별한 요소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경우는 반복될 가능성이 낮고 그것들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해당 사건을 통해 강력한 교훈을 얻어내기란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전후 시절이 그렇게 좋았다면 유권자들은 왜 대처와 레이건의 진보적 정책을 수용함으로써 그 시기를 종결시켰으며 프랑수아 미테랑 (François Mitterrand) 대통령은 1981년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사회주의 안건을 포기했을까? 피케티는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의 원인이 혁신적 평등주의의 꿈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편향적 사고일 뿐이다. 소련이 흔들리기 훨씬 전부터 영국 및 미국 내에서는 높은 세금과 큰 정부를 대한 환멸이 팽배했다. 이에 대해 피케티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절세 및 탈세를 막아야할 정권시절에 국제조세제도를 강구하지 못했다며 비난한다.
그의 주장은 이 점에 더욱 강경할 지 모른다. 피케티가 선호하는 ‘매우 높은 수준’ 고액의 세금시기 (1950-1979)에는 실제로 미국에서 징수한 개인 소득세가 GDP의 7.6 퍼센트 정도로 세금이 낮아진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에 그가 탐탁치 않게 여기는 1980-2018년 기간에는 평균이 더욱 높은 7.9 퍼센트로 나왔다.
피케티는 오늘날 국제적 합의 및 나은 정보를 통해 세금의 허점을 없앨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당시 허점이 만연했다면 높은 누진세가 강력한 성장과 병행한다는 그의 주장과 맞지 않는다. 1950년에서 1979년 사이 높은 수준의 세금 시기에 사실 아무도 해당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면 실제로 높은 세금을 시도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과세 및 재분배를 향한 피케티의 일관된 집념은 그의 전반적인 이상을 흐리게 한다. 조세정책은 불평등(특히 탈세)의 유일한 원인이 되지 못한다. 무역, 기술, 승자독식 시장, 독점 규제 등 분야에서 불평등을 기술하는 그의 의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설명에서조차 정부가 더욱 많이 재정을 지출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피케티는 양질의 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하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최고의 교사들이 낙후된 지역 내의 문제학교를 기피하는 국립 중앙집중식 프랑스 제도를 비난한다. 아주 부유한 계층에게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제공되는 충분한 교육자원이 문제를 바꿀 수 있을까? 중산층 교육행정가들은 계급적 이해관계라는 관점을 따르지 않고 더욱 빈곤한 학군보다 그들이 선호하는 중산층 학군에 더 많은 재정 자원을 할당하는가?
마지막으로, 참여사회주의라는 피케티의 매혹적인 이상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즉, 약간의 민주주의와 약간의 평등주의를 선택의 메뉴에서 고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유럽에서 이러한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욱 큰 강제성이 필요할 것이라고 인정한다. 유럽연합으로 형성된 초국가집행 단위에서는 개별국가의 거부권이 없고, 모든 회원 국가에 공통된 재정준칙이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유계층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그렇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민주적이면서도 중앙집권화 될 것이며 다수에 대한 독재행위가 도덕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통제에 대한 판단력이 거의 없을 것이다. 많은 영국 국민들은 바로 이러한 유럽의 관점에서 브렉시트 투표를 거부했다. 더욱 나쁜 것은 스위스 등 유럽연합의 외부에 있는 국가들이 피케티가 구상하는 유럽 연합으로 이루어진 초국가의 정책에 반대한다면 그는 해당 국가들에게 인정사정 없는 제재로 위협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오믈렛을 만들려면 계란을 깨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폴레옹 (Napoleon)이나 로베스피에르 (Robespierre)에 해당하는 말이지 사회 민주주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늘날 불평등은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단순히 수입 또는 자산에 대한 불평등뿐만 아니라 기회, 능력에 대한 접근, 지역에 대한 불평등이다. 부유층을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뒤쳐진 계층이 새로운 기회를 찾도록 돕기 위해 더 많은 지출 및 세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서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오래된 정책이 아닌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본서에 쓰여진 많은 학문적 성과를 읽고 배워라. 하지만 해결책을 찾으려면 더욱 회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자본과 이데올로기» 저자: 토마피케티 (Thomas Piketty), 역자: 아서 골드해머 (Arthur Goldhammer), Belknap Press 펴냄, 권장소매가: £31.95/$39.95, 1104 페이지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
비판적 논평자
인도중앙은행 전 총재, 시카고대학 부스경영대학원 교수이며 «세 번째 기둥»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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