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
탈북이주의 역사가 시작된 지도 벌써 20년이 흘렀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탈북인을 통해 ‘먼저 온 통일’을 꿈꾸는 대리체험을 해왔다. 이제 그들과 우리가 함께 만나 잘 살아가는 모습이 곧 사람의 통일을 미리 실험해보는 예비실험의 장이라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전쟁을 부추기는 서북청년단판 ‘먼저 온 통일’들이 광화문을 중심으로 시위를 벌이면서 반북을 외치는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타자화된 명칭으로 호명해오면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만들어온 것은 아닌지 돌아다볼 때이다. ‘먼저 온 통일’은 악몽이 되었다. 신화와 꿈에서 깨어나 살아있는 생활세계에서 북한출신주민을 만나서 소통해야 할 때이다.
원래 진보진영에 대한 탈북인들의 반대 정서는 그 역사가 깊다.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이지만, 지난 20여년간 진보진영 측에서 탈북인을 회피하거나 혹은 침묵해야 할 주제로 여겨지거나 심지어 배신자로 여기는 정서가 자초한 결과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촛불정부와 탈북인간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진보정부인 문재인 정부 들어서 탈북민정책이 박근혜 시대와 똑같이 일말의 개혁노력이나 관심도 보이지 않은채 그대로 반복되었다는데 그 원인이 있었다고 보인다. 근본적인 성찰과 개혁이 필요하다.
이 글은 먼저 우리의 시선이 어떤 인식틀을 가지고 그들을 보았는지 되돌아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새로운 평화체제로의 이행과정이 이미 도래하고 있으나 탈북민 정책은 과거 낡은 분단체제의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탈북인을 보는 시각 역시 진영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수/진보진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탈북인의 생활세계를 중심으로 탈북인의 정체성과 남한에서 국가와 탈북인관계, 탈북민정책청사진, 시민사회와의 관계, 정착서비스 전달체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연재물을 기획하면서 우선 탈북인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1. 탈북인을 보는 프레임과 착시현상
탈북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북한을 보는 대립적 프레임에 의해 규정된다. 북한을 보는 첫 번째 시각은 북한을 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대립과 극복대상으로 북한을 본다. 두번째 시각은 북한을 존중과 협력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러한 두 개의 대립적 프레임은 다시 북한주민을 보는 시각을 규정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적 프레임에서 북한주민은 적국의 주민이거나 혹은 동포로 규정된다. 그런데 탈북인에 이르면 그 시각은 또 다시 변환한다. 보수진영이 한국에 온 탈북인을 일종의 우리에게 귀순한 투항자라고 보는 한편, 진보진영은 탈북인을 가난한 (불쌍한)동포로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진영프레임에서 본 탈북인은 북한에 온 탈북인 아무개는 개인이 아니다. 그(그녀)는 북한의 대리인이자 북한주민이자 소수자인 탈북민 3만명의 일원으로 이중 삼중으로 망막에 포착되는 피사체로서 회피대상, 거꾸로 특별한 관심대상이다. 보수진영은 북한의 인권을 소리높여 규탄하고 진보진영은 남한의 인권상황의 개선을 외친다.
이러한 보수/진보 프레임 속에서 탈북인들도 나뉘어진다. 어떤 이들은 북한의 인권을 외치는가 하면 그들이 남한에서 겪고 있는 차별과 국가폭력에 대해 개탄하는 이도 있다.
이러한 현상이 초래된 배후에는 분단체제가 있다. 분단체제에서 탈북인을 보는 두 개의 대립적 인식틀은 고정관념을 양산하였고 그 결과 많은 오해와 왜곡을 초래하였다. 필자는 북한이탈주민 아무개를 북한이라는 프레임을 통하지 않고 생활세계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한다. 보수든 진보든 북한-북한주민-탈북인이라는 집단이미지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탈북인을 귀순자나 정치적 박해자 혹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경제적 이주자 혹은 이주동포라는 고정된 이미지라는 프레임은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북한주민 홍길동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고 그가 왜 북한을 떠나게 되었고 한국에서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하는지 구체적인 생활세계로부터 출발해 그들의 삶과 상황을 이해한 후에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그들의 인권을 말해야 할 것이다.
북한체제의 배신자인가? 혹은 폭압한 정권의 희생자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탈북민을 북한체제의 배신자 혹은 폭압한 정권의 희생자로 보는 양극단의 시각이 병존하였다. 그간 보수에게 있어서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는 북한 체제를 공격하는데 있어 효과적인 무기였으며 아직 유효시한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지라도 북한주민 인권문제가 지닌 폭발력은 여전하다. 트럼프는 북한협상에서 필요하다면 인권문제라는 폭탄을 다시 꺼내들 수 있다. 언제라도 백악관으로 탈북자들을 다시 불러들여 북한주민의 인권에 귀 기울이는 인권애호가의 자세를 취할 것이다.
북한사회를 비판하기 이전에 남한사회에서 탈북민 인권은 이미 문제적 상황에 놓여있다. 탈북민의 인권은 입국경로부터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유보되는 상황에 놓여졌다. 국민도 비국민도 아닌 상태에서 국정원 합동신문과정에서 6개월이나 계속된다. 합동신문-하나원 총 9개월을 거쳐 한국국민으로서 주민증을 받은 이후에도 이어지는 적응교육과 정보수집 협조, 그리고 정기적인 신변보호경찰관의 수시점검, 국정원 요원들과의 만남이 십 수 년간 계속 이어지며 그게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내내 그들의 관찰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한국의 시민이기 이전에 정치적 취약계층인 북한이탈주민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비록 문재인정부 들어 합동신문과정이 비록 3개월로 줄어들기는 했으나 이러한 변화는 무의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 우리 정부는 북한인권을 말하면서 탈북인들의 인권을 무시하면서 그들을 북풍의 소재나 간첩의 단골 공급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여왔다.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 10년동안 이러한 자가당착적 자기모순은 더욱 심화되었다. 탈북인들의 수가 김정은시대 들어 1/3 수준으로 현저하게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탈북행위 그 자체가 마치 북한체제 붕괴의 조짐이라도 되는 양 과장하기를 서슴치 않았으며, 심지어 전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공식연설에서 북한주민을 향해 탈북을 적극 권유하기조차 하였다.
북한체제의 배신자라거나 혹은 폭압한 정권의 희생자라고 보는 양극단의 시각은 탈북인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그들의 실체를 왜곡하고 변형한다. 이러한 왜곡은 보는 자 자신의 관념의 산물이다. 탈북인은 배신자도 희생자도 아닌 북한출신주민이다. 그러면, 북한사회에서 북한주민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왜 폭정에 저항하지 않는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탈북하게 되었는가를 먼저 탈북배경을 이해해보고 이를 통해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자.
2. 탈북추이와 원인: 북한주민은 왜 탈북하게 되었을까?
탈북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 온 탈북인들은 흔히 국경을 넘어 한국에 올 때의 급박하고 힘들었던 상황을 되풀이 이야기한다. 목숨을 걸고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탈북인들은 정치적 동기에 의해 탈북한 것인가? 혹은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여 한국에 온 경제적 이주자인가?
탈북의 동기에 대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간에는 서로 다른 의견이 대립한다. 보수주의자의 시각에서는 북한인권 문제 혹은 정치적 탄압에 대한 주민들의 반격이라고 탈북현상을 이해한다. 진보주의자들은 탈북문제를 일종의 경제적 이주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사례분석 결과는 이와 다른 그 무엇이다.
탈북이주의 추이
휴전직후 1953년부터 2000년까지의 47년간 북한이탈주민 누적인원은 총 947명에 지나지 않았다. 북한이탈주민이 본격적으로 한국사회로 유입된 계기는 북한내부의 경제적 위기인 고난의 행군이다. 식량을 구하러 중국으로 갔던 북한 식량난민의 일부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2001년을 기점으로 입국인원이 1천명을 넘었고 2009년 2,914명을 정점으로 입국자 수가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여 2017년 12월에는 1,127명, 2019년에는 1,047명까지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입국자 수의 증가와 감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왜 탈북하였고 어떤 사람들이 탈북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북의 시작, 식량난
2000년대 이전 북한의 경제위기 시대의 탈북사유는 아주 단순하고 자명해서 이견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바로 식량난과 미증유의 기아사태 때문이었다. 배급의 중단과 굶주림은 북한주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두만강을 건너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1990년대의 북한의 식량위기는 수많은 식량난민들을 배출하였다. 배출요인으로는 식량난으로 인한 생존위협 외에도 경제난·식량난의 악화 속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 ‘북한주민들의 외부정보 접촉’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탈북의 유인요인(pull factor)으로는 조선족 사회의 보호, 민간단체의 구호활동, 취업기회, 여성에 대한 수요, 가족결합, 대한민국 정부의 정착지원정책 등이 있다.
식량난이 어느 정도 진정된 이후에 시장화이후 다소 생활여건은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의 한국 입국규모는 2009년까지 계속 증가해왔다. 국경연선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 특히 여성들이 탈북대열에 새로이 합류하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에 있을 당시부터 한국에 오기 위해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은 식량난민과 구분하여 직행파라고 불리웠다. 국경이동을 넘어 조중접경지역에서 중국, 남한, 북한, 조선족이라는 다문화가 공존하는 단둥지역의 사회문화적 행태를 주제로 한 연구들은 조중접경지역의 이문화가 소통하면서 상호침투하는 분위기를 통해 국경지역에 거주하는 북한주민들이 탈북에 이르는 배경과 동기를 설명해주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북한주민의 국경을 넘는 초국적 이주행위를 주목한다.
물론 고난의 행군시기 식량을 구해 국경을 넘었던 북한주민은 전부 북한으로 도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식량을 구하러 중국에 나온 후에 식량여건이 나은 중국에서 계속 살기도 하였고 일부는 한국에 오는 등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한국으로 오는 탈북주민 대열을 형성했다. 중국에서 거주하다 한국으로 오는 탈북주민 외에도 북한 거주 당시부터 한국을 목표로 탈북하는 이른바 ‘직행 탈북이주자’들이 새로이 등장하게 된다.
식량난민 vs 직행파
첫 번째 집단은 중국에 장기체류해온 식량난민 집단이다. 1990년대에 국경을 넘었던 탈북자들은 대부분 자기 선택을 중시하는 적극적인 이주자들이 아니라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렸던 취약계층들로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북한을 떠난 일종의 식량난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이 중국에 장기적으로 머물러 있다가 결국 한국으로 오는 선택을 하는 그룹이다.
결론적으로 탈북입국자 수가 정점에 달했던 2009년도에는 중국거주 북한출신주민들과 직행이주자들이 비슷한 비중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보기에는 똑같은 북한주민으로 보이지만 두 집단은 서로 이질적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두번째 집단은 북한에서 남한을 목표로 이동하는 직행파집단이다. 북한이탈주민 수가 정점을 향했던 2000년대 중반에는 식량난민으로 중국에 체류했던 집단과 직행이주자 집단이 합해지게 되면서 2009년 이르면 근 3천명까지 늘어나게 된다.
김정은 정권이후 탈북입국자 급격한 감소의 원인과 향후 전망
2009년의 2,913명을 정점으로 탈북 국내입국자 수는 점차 줄어들다가 김정은 등장이후 2012년에는 1,502명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10여년간 계속 증가해왔던 북한이탈주민 입국인원이 왜 감소하게 되었을까?
고난의 행군 이래 중국으로 배출된 채 거주해온 북한 식량난민의 자연감소한 결과이다. 식량난민들은 그간 꾸준히 한국에 입국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직행이주자가 급격히 감소한 결과이다. 직행이주자가 감소원인으로는 대한민국 탈북민 정착지원정책의 변화, 한국 정착상황의 어려움 등이 북한내부에 전해져 대한민국 드림의 거품이 꺼졌다는 점이 큰 요인이다. 한국사회의 어려움에 대한 보고가 직행탈북이주의 대열이 줄어드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물론 김정은 정권의 탈북자 예방과 이탈방지를 위한 강력한 국경경비정책 등이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판단되면, 김정은의 등장이후의 정책(시장에 대한 관용, 월경단속 강화)가 중요한 요인이다. 이같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북한에서 한국을 목표로 출발하는 탈북이주자의 감소에 작용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3. 탈북이주 20년, 살아있는 북한출신주민을 생활세계에서 만날 때
그러면 이러한 탈북배경에 비추어 탈북인을 정의해보자. 인구학자인 박경숙은 1990년대 중반 북한사회를 강타한 배급제의 붕괴와 이로 인한 기아는 약 80여만명에 달하는 인구의 감소를 가져왔다고 보고한다. 굶주림에 시달린 북한주민들은 식량을 구하러 중국 등 제 3국에 나오게 되었는데 이들 중 일부가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일종의 식량난민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이후 북한에서 시장화가 진전되면서 시장경제를 선망하는 북한주민, 비공식일을 하는 과정에서 비법행위 등에 연루되어 곤경에 처한 북한주민들이 ‘직행’이라는 이름으로 집단을 이루면서 식량난민들이 앞서 갔던 탈북과 입국의 대열에 다시 합류하게 되었다. 즉 이들은 시장화과정에서 밀려나 더 이상 북한에서 살기 힘들어진 사람들 혹은 앞서 온 식량난민의 가족, 친지들이다.
이 두 집단이 합류한 결과 탈북이주민 수는 2000년부터 10년 동안 탈북입국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2009년에 이르면 2,914명에 이른다. 그러나, 김정은정권 집권이후에는 강력한 국경단속과 대한민국드림의 거품이 사라지면서 국내 입국 탈북인은 연 1,000명대로 감소하게 되었다(2017, 1127명, 2019년 1137명, 2019년 1047명). 탈북인 초기정착민은 거의 식량난민이며 2000년대 중반부터 오기 시작한 직행이주자들은 북한시장화 과정에서 탈락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북한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이며 식량난민의 가족 혹은 친지들이다.
탈북인들은 북한에서 출신성분이 적대계급에 속해 불이익을 받거나 숙청된 사람들도 일부 포함되며 정치적으로 망명한 사람들도 극소수 있다. 그러나 탈북인의 절대다수는 고난의 행군당시 발생한 식량난민을 뿌리로 한다. 또 하나의 기둥을 이루는 북한 시장화이후에 온 직행파들이다. 이들은 시장경험이 풍부하고 시장경제에 대한 동경심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바로 한국으로 오는 직행파들의 비중이 감소하는 중이다. 식량난민과 직행이주자들은 가족 친지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탈북이주 동기와 배경으로 미루어 탈북인에 대한 상을 다음과 같이 그려본다.
식량난민들은 극한적인 굶주림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정이 해체되는 경험을 겪었다. 직행이주자의 경우에도 탈북하면서 가정이 이산되고 빈몸으로 야반도주하여 한국에 왔다. 이들은 한국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면서 고등교육을 받아 좋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하기를 원한다. 북한에서 사회화된 이들은 국가를 중시여겨 한국사회에서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탈북인들은 모두 금의환향을 꿈꾼다. 미래에 언젠가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서 고향사람들과 자랑스럽게 만나고 싶어한다. 비록 자신은 북한사회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떠났으나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 자신의 멋진 모습을 고향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를 꿈꾼다. 고향이 잘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치열한 경쟁의 어려움에 시달렸기에 반드시 북한이 한국처럼 되어야 좋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김화순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인력경영학 박사, 한신대학교에서 북한 공장체제와 노동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분단체제를 넘어 평화체제 이행기에 사람의 통일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지에 관해 고민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분단체제의 노동: 북한출신주민이 경험한 남북한의 직업세계(단독저서, 도서출판 선인 2018』, 『북한이탈주민의 직업변동과 취업지원정책의 평가(공저, 한국노동연구원, 2013)』 등이 있으며, 주요논문으로는 “생존의 정치: 북한의 ‘공장사회’와 노동자(2018)”, “탈북인의 신민적 정치참여(2018)”, “직행이주 탈북자의 탈북결정요인(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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