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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국

여권은 늘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가방 속 두 번째 주머니. 10년 가까운 습관이다. 집안 책상 서랍이 아니라 매일 매고 다니는 가방 안에 항시 여권을 두고 지낸다. 언제라도 마음이 동하면 곧장 떠날 수 있는 임전태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만큼 출타가 잦기도 했다. 3년 내내 유라시아를 유랑할 때는 물론이요, 귀국하고 나서도 방학마다 새 도시를 찾아 나섰다. 학기 중에도 학교 일로 나라 일로 기업 일 등으로 한 달이 멀다 하고 외국을 드나들었다. 이번만은 새삼 가방 안에 여권이 잘 있나 확인해 보아야 했다. 그만큼 오랜만에 나라 밖으로 나아가고, 바다 밖으로 날아간다.

마지막 입국은 2020년 2월 말이다. 강과 산 등 자연에도 헌법적 권리(Nature’s Right)를 부여하기 시작한 남반구의 개벽국가, 뉴질랜드를 돌아보고 돌아온 터였다. 당시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기는 했다. 이웃나라 호주에서 어마어마한 산불이 일어났다. 캥거루와 코알라 등 수많은 동식물의 생명을 일시에 앗아갔다. 거대한 산불의 재가 바다 건너까지 넘어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하늘이 노래질 지경이었다. 일견 말세의 풍경을 보는 듯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북반구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전 지구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귀국하고 나서 처음으로 한 일 또한 약국에 들러 마스크를 사는 것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오랫동안 얼굴을 가리고 살지는 몰랐다.

2년 반 사이 목적지는 크게 달라졌다. 2020년 가을에는 쿤밍에 가려 했었다. 쿤밍에서 열릴 계획이었던 생물다양성 국제회의에 동아시아의 1020세대를 모아 ‘지구세대’의 등장을 연출해 보고 싶었다. 중남미 코스타리카에도 가보려 했다. 지구 유일의 지구대학(Earth University)이 있는 나라이다. 도대체 그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고 가르치는지 샅샅이 살펴보고 싶었다. 스페인어 공부까지 시작했던 한 해 전의 기억이 까무룩하다. 작년 여름에는 칼라사타마가 후보지였다. 핀란드 헬싱키 근방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스마트시티이다. 북유럽 특유의 주민 참여형 리빙랩으로 꾸려진다는 소식에 탐방해 보고 싶었다. 하이테크와 로우(low)테크의 공진화, 딥(deep)테크 시티가 아닐까 했다. 항저우도 가보려 했다. 유라시아 허브도시 시리즈 20권의 제1편으로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았던 항저우를 삼으려 했던 것이다. ‘실리콘로드’(Silicon-Road)를 만들어가고 있는 알리바바의 본사가 있다는 점과 2022년 가을 아시안게임의 개최 예정지였다는 점도 고려했었다. 결국 네 곳 모두 가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셧다운과 락다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시무룩한 나날이었다.

모처럼의 출국, 출발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공항으로 향했다. 본디 공항의 공기를 아낌없이 추앙한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묘묘한 곳. 항상적인 드나듦과 오고감으로 말랑말랑한 상상력이 피어나는 곳. 공항 서점에서 난생 처음 보는 잡지를 일부러 골라 읽지는 못해도 눈으로 살피며 브레인스토밍 하는 일도 몸에 베인 습관이다. 그런데 인천공항 2터미널의 단골 서점은 굳게 닫혀 있었다. 면세점도 활기가 영 예전만 못하다. 레스토랑도 일찍 문을 닫는다. 값비싼 라운지에서 저녁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팬데믹으로 직격타를 맞은 공항은 여전히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되지 못한 것 같았다.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아시아와 아메리카와 유럽 등등 주요 도시들의 이름이 다언어/다문자로 깜빡거린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절로 설레임이 일었다. NEW YORK(뉴욕), Улаанбаатар(울란바토르), 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방콕), AMSTERDAM(암스테르담), Jakarta(자카르타), Тошкент(타슈켄트), ROME(로마), TORONTO(토론토), 東京(도쿄)…… 거개가 가 본 도시들이다. 아련한 그 도시의 풍경들을 복기해보는 것만으로도 두뇌가 재활성화 되는 것 같다. 2년 반 동안 푹 묵혀 두었던 20만년의 노마드 DNA가 재차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 거대한 도시들을 바람처럼 쏘다닌 것은 우리 인류가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타는 듯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려는 곳은 공항 표지판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도시이다. 아마도 앞으로 찾는 도시들의 대개가 그러하지 싶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로부터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로 관점과 초점이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바를 탐구하고 탐색하고 탐험하는 실험 현장의 최전선을 찾아다니려고 한다. 과거의 견문에서 미래의 탐문으로 여정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는 내 나름의 뉴노멀이라고 하겠다.

 

2. 출구

우여곡절 끝의 출국이지만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유독 비행 시간이 길었다. 10시간이면 너끈히 도착했을 곳을 14시간이 걸려서야 당도할 수 있었다. 러시아를 거치는 북방항로를 우회해야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동구와 서구의 분단체제가 재가동되고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러시아의 역할이 중단된 것이다. 비행기는 중앙아시아의 고원지대와 중동의 사막지역을 가로질로 유럽의 서쪽 끝으로 향했다. 그만큼 비용도 늘어나고 탄소도 많이 배출했을 것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뉴노멀의 하나가 바로 비행기 티켓을 구입할 때 탄소배출량이 표기된다는 것이다. 전염병에 전쟁에 기후재난까지, 총체적 비상상태가 일상적 신상태가 되는 뉴노멀 시대를 실감한다.

과연 유럽은 폭염과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40도를 훌쩍 넘는 불볕더위에 사람도 땅도 동식물도 타들어 갔다. 전쟁의 후폭풍도 현실화되고 있었다. 물가는 폭등하고 식량 위기도 가시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흑토의 곡창지대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으니 밀 생산의 차질은 불가피한 일이며 빵을 주식으로 삼는 유럽 식탁의 위기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나마 여름은 근근이 버틸 수 있으나 다가오는 겨울이야말로 복병이라 하겠다. 러시아가 서유럽에 공급하던 생명선 천연가스 밸브를 잠궜기 때문이다. 북극과 북해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버티어 내야 한다. 부랴부랴 원전을 재가동하고 석탄발전까지 재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면 그럴수록 탄소배출은 더더욱 늘어날 것이고 기후 격변의 속도는 더더욱 가팔라질 것이다. 출구를 찾지 못하는 초가속적 악순환이다.

전전긍긍하는 서구에 비해 동구는 제법 느긋하다. 러시아는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이다. 그리고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인물은 <유라시아 견문>을 하며 깊이 공부해본 바, 동시대 200여개 국가의 수장들 가운데 단연 빼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품성과 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종 연설의 육성을 직접 읽어볼 필요가 크다. 지략과 전략과 세계경영에서 푸틴에 견줄 수 있는 리더가 없다는 것이 당시의 결론이었다. 그나마 못지않은 메르켈이 독일을 진두지휘하면서 대서양과 유라시아 사이 균형을 취할 수 있었다. 그녀가 부재하자 곧장 유럽은 물론이요 세계 전체가 푸틴의 책략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바이든은 중간선거에서 치명타를 입을 것이고, 미국도 유럽도 제 발을 크게 찍어 ‘고난의 행군’에 들어설 것이다. 20세기 말/20대 초반 생애 첫 배낭여행을 하며 선망하고 동경하던 ‘서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땅 넓고 물 많고 에너지 풍부한 러시아는 딱히 아쉬울 것이 없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인류의 마지막 프런티어, 시베리아도 품고 있다. 2050년 지구의 평균 기온이 1.5도씨 상승하면, 저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에 사계절이 생겨난다. 기나긴 겨울과 짧디짧은 여름 대신에 사시사철이 골고루 피어나는 것이다. 세계 10대 강 가운데 4개의 강이 시베리아에서 흐른다. 그래서 세계 최대의 호수 바이칼도 시베리아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나는 저 곳이 인류의 새로운 출구가 될 것만 같다. 19세기 유럽에서 아메리카로의 대이주 또한 기후위기와 식량위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최신의 지구사/환경사의 결론이다. 21세기 중반 유럽에서 아시아에서 시베리아로의 대이주가 예상되는 것이다. 서둘러 시베리아에 새로운 미래도시를 건설하는 21세기판 개척단을 꾸려야 하지 않을까. ‘유나이트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United States of America)에서 ‘유나이티드 시티즈 오브 시베리아’(United Cities of Siberia)로-

좌석 앞 모니터의 항공지도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21세기판 출애굽과 시베리아의 생명도시 네트워크애 대한 상상을 무럭무럭 키워가던 차, 돌연 화면이 정지되고 KLM(Royal Dutch Airline) 기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30분 후면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 착륙한다고 한다. 창문 아래로 반듯반듯한 저지대의 땅이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네덜란드는 5년 만이다.

 

3. 출로

짐을 기다릴 것도 없었다. 기내용 여행가방 하나로 충분했다. 속옷과 스포츠웨어 몇 벌에 책 10권 가량이 한달 살림의 전부였다. 노트북과 노트와 킨들, 그리고 이동형 프린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가 있다. 위케이션(Work + Vacation) 또한 포스트-코로나의 뉴노멀이다. 적성과 체질에 딱 맞는 새로운 일하기 방식이다.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유로화를 출금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오랜만에 지갑 안에 있는 시티뱅크 카드를 꺼냈다. 시티은행을 사용하는 이유 또한 단순하다. 전 세계에 가장 많은 지점을 확보하고 있는 은행이다. 여기저기 쏘다니며 수수료 없이 출금하기에 가장 유용했다. 정작 한국서는 현금을 찾는 일이 드물다. 모든 것이 모바일로 해결되는 스마트 금융의 선도국이 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300 유로를 찾고 난 다음에는 곧장 기차표를 끊었다. 암스테르담은 유럽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도시였다. 런던과 파리와 베를린과 로마에 견주어도 나는 단연 암스테르담이 좋았다. 휘날리는 무지개 깃발과 도시의 공기에 자욱하게 스며든 마리화나 냄새와 특유의 다닥다닥하고 복닥복닥한 분위기까지. 지구상 최강의 자유도시를 깊이 사랑하였다. 그러함에도 이번에는 암스테르담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일말의 주저 없이 목적지를 향해 직항했다.

다만 표를 구하는 밴딩머신 앞에서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도시의 이름이 곧바로 뜨지 않는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구글을 검색했다. 인구 3만 남짓의 작은 도시, 이웃도시 에더(Ede)와 기차역을 겸하고 있던 것이다. ‘에더-바헤닝언’(Ede-Wageningen)역이라길래 나는 에더가 동쪽(East)을 뜻하는 네덜란드어인가보다 짐작했던 것이다. 동서남북을 나눌 것도 없는 자그마한 도시이다. 에더를 에둘러 바헤닝언을 향하여 네덜란드의 동쪽으로 이동했다. 한 시간 만에 도착한 에더-바헤닝언 역, 에더에 사는 사람들은 걸어서도 시내까지 이를 수 있다. 바헤닝언에 사는 이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더 들어가야한다. 그만큼 바헤닝언은 <론리 플래닛>에도 소개되지 않는 외딴 도시이다. 시내가 가까워지자 비로소 이 곳을 알리는 도로 간판들이 눈에 들기 시작한다.

“Waganingen : City of Life Science”

생명과학도시를 표방하는 이 도시를 찾아서 삼청동의 11번 마을버스부터 바헤닝언의 C3 마을버스까지 꼬박 20시간을 직진한 것이다. 한 달을 머물기로 한 WICC 601호에 짐을 풀고 산책에 나섰다. 본래 시차적응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절로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난다. 걷고 걷고 또 걷고, 하루 종일 하염없이 걸으며 그 땅과 합을 맞추어 본다. 첫인상을 몸으로 각인시키는 또 하나의 습관 또한 2년 반 만에 재가동되었다. 새 기운이 온몸 가득히 퍼지기 시작한다. 재출발이자 새출발이다. 산업문명의 끝자락, 출로를 찾아서 부러 이곳까지 이르렀다.

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개벽학은 동학 창도 이래, 이 땅의 자각적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이다. 동녘의 오래된 유학과 서편의 새로운 서학이 합류한 문명의 융합을 거대한 뿌리로 삼는다. 그러함에도 한국학, 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구부터 남미까지, 인도양부터 시베리아까지, 지구적 규모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구적 단위로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특히 인간이 창조한 인공의 세계, 인공지구와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의 도래를 주시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간의 공진화, 생명과 기술과 의식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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