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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가 큰 고비를 넘었다.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던 이 지사는 지난 5월16일 1심 법원에서 기소된 모든 혐의에 ‘전부 무죄’ 선고를 받았다. 다양한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던 이 지사지만 검찰에 의한 기소는 단순한 의혹 제기나 흑색선전과는 달랐다.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로 판단하고 기소한 만큼, 자칫 지사직 상실형도 나올 수 있었다. 아직 2심, 3심 판단이 남았지만 이 지사는 이번 판결로 큰 힘을 얻게 됐다.

위기가 기회가 된 것일까. 경찰, 검찰, 법원을 거치면서 곤혹을 치렀지만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 지사를 둘러싼 의혹이 조금씩 씻겨나간 형국이 됐다. 부인 김혜경씨가 막말을 일삼아 온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의 주인이라는 의혹은 경찰에서 ‘주인이 맞다’고 결론을 내서 한때 파란이 일었지만 검찰은 증거부족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배우 김부선씨와의 스캔들 및 조폭 연루설, 일베 가입 의혹 등을 부인했다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죄 혐의를 받았던 부분도 증거불충분으로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친형에 대한 강제입원 시도 과정에서 성남시장으로서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는 법원에서 무죄 판단이 나왔다. 검찰은 이 혐의에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이 지사의 지지율이 크게 뛰었다. 리얼미터의 6월 조사에서 이 지사는 10.1%를 기록해 전달의 7.2%에 비해 3% 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처음으로 두 자리 수도 돌파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조사 대상에서 제외돼 일시적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이 지사에게 드리웠던 의혹의 구름이 상당 부분 걷히면서 긍정적인 작용을 했으리라는 추정 역시 가능하다.

“지금까지 먼 길 함께해 주신 우리 동지들, 지지자 여러분, 앞으로도 서로 함께 손잡고 큰 길로 계속 함께 가기를 기대합니다.” 판결 후 그의 소감에서는 이제 족쇄를 풀고 본격적으로 대선가도로 나가는 시동을 걸겠다는 의지도 언뜻 읽힌다.

 

■ 즉흥적 대응인가, 직선적 소통인가

이재명 경기 지사는 흔히 ‘자수성가형 흙수저 정치인’으로 불린다. 스스로도 자주 언급하듯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소년 노동자’였다. 독한 약품에 절어 살아야 했고 왼팔이 프레스 기계에 눌려 똑바로 펴지지 않는 장애까지 얻었다.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변호사가 됐지만 매끈한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점잔을 빼다가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것도 아니다. 몇 차례 낙선을 거친 끝에 성남시장부터 차근차근 밟아 도지사까지 됐다.

그가 영향을 받았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예처럼 매끈하지 못하다는 것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기에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지사를 따라다니는 스캔들과 의혹도 매끈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수면 아래 있다가도 선거철이 되면 재탕, 삼탕으로 상대 후보 측이 다시 끄집어낸다. 이번 법원 판결의 시초가 된 고소 역시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다.

비록 좋은 취지였다고는 하나 변호사 시절 검사 사칭에 연루되었다는 점이나 음주운전을 한 이력이 있다는 것도 끈질기게 그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된 의혹은 이번 판결이 마무리되면 법적으로나 사실관계 측면에서 더 논란이 되긴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 해도 개운치는 않다. 어두운 가족사를 이해한다 하더라도 형수에 대한 폭언 논란처럼 왜 그런 거친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자체에 대한 반감을 무시할 순 없다.

이재명 지사에 대한 우려는 주로 이런 부분에서 나온다. 기성 언론보다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직접 소통에 밝은 것은 장점이지만 거친 발언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자신을 입장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악의적인 보도나 비방에는 소송으로 대응하는 것까지는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성남시장 시절 자신에 글에 폭언성 댓글을 단 누리꾼의 신원을 공개적으로 추적한다는 글을 올린 것은 너무 나갔다는 비판도 나왔다. 성남시장으로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일개 시민의 ‘신상털기’에 나선 것에 시선이 곱지 않았다.

즉흥적이고 원색적인 대응은 이외에도 많다. 역시 성남시장 시절 시의회가 무상교복 사업비 예산을 부결시키자 반대한 의원을 추정한 명단을 페이스북에 공개해 논란을 빚었다. 논문 표절 논란이 벌어지자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의 석사 학위가 필요하겠나’라고 말했다가 사과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경기 지사 선거 당시 인터뷰 논란도 그렇다. 당선이 확실시되자 각 언론사에서 생방송 소감 인터뷰가 진행됐는데 경기 지사로서의 포부를 묻는 질문보다 선거 당시 불거졌던 스캔들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 지사는 여기에 날선 대응을 했고, 인터뷰를 중도에 그만둬 버리기도 했다. 언론의 잘못이 있었다 해도 대중 정치인으로서 이미지에 플러스가 되기는 어려운 대응이었다. 김경수 경남지사처럼 드루킹에 대한 질문을 받고도 침착하게 답변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캐릭터 덕분에 열성 지지층이 많은 만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안티 역시 만만치 않다. 이 지사가 무죄 판결을 받은 뒤에도 그런 분위기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조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얼마 전 시작한 권리당원 자유게시판에는 이 지사에 대한 비방 게시글이 가득차기도 했다. 반면 지지층의 결집도 무섭다. 지난 2017년 한국일보와 아르스프락시아가 트위터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재명 지사의 팬클럽인 ‘이재명과 손가락혁명군’이 공격성과 활동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집단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이 지사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높아 이 시장의 트윗을 직접 받아 지지자들이 확산시키는 ‘중앙집중형’이기도 했다.

 

■ 이재명은 합니다

이 지사의 그런 단점은 다시 또 장점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다. 즉흥적이고 원색적인 대응을 뒤집으면 빠르고 직선적인 소통과 화끈한 실행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지사의 페이스북을 둘러보면 이런 것까지 도지사가 자세하게 알고 있나 싶을 정도로 세부적인 정책 진행 상황을 일일이 올려놓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 적용되는 전기료가 더 저렴해질 수 있도록 도내 아파트 단지의 계약방식을 재검토하라고 안내했다는 소식, 통신 대리점과 본사의 불공정 거래를 막겠다는 소식, 민간 대형 빌딩에도 건축물 승인 시 청소원과 경비원을 위한 휴식공간을 마련하도록 했다는 소식을 세세하게 안내한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그토록 바랐던 ‘닥터헬기’ 항공망 구축을 학교운동장과 공공청사를 이착륙장으로 개방함으로서 해결했다는 소식도 보인다. 평일 공식 활동은 라이브로 올라온다.

트위터에서는 정책 제안이나 제보를 받고 담당 공무원에게 확인 지시를 하는가하면 시민들에게 진척 상황과 결과 보고도 한다. 밤늦게까지 트위터에서 업무 지시를 하는 모습이 구시대적인 행태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이 지사는 자신은 주말이나 밤중에 트위터로 민원에 답을 하더라도 담당 공무원은 근무시간에 체크해서 해결하면 된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꼭 민원을 공식적인 절차로만 받는 것도 구시대적이며 아무나 트위터로 민원을 내고 빠른 일처리를 진행하는 것이 현대 기술을 이용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재명은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떠오르는 문구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제목이자 자주 선거에서 캐치프레이즈로 내거는 문구다. 이 한 마디가 이재명을 말해 준다. 성남시절부터 정책 실행력, 퍼포먼스 자체는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성남시장 시절에는 100%에 육박하는 공약 이행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나친 보여주기, ‘쇼’라는 해석도 있다. 성남시장 시절 부채에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것도 과잉대응이었으며 자신의 치적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그런 ‘쇼’라도 해서 자신의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다는 점 자체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늘 말로만 천리길을 가는 백년하청 정치인이 아니라 어쨌든 뭐라도 한 가지라도 바뀌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시민들은 환호한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경기도청 국기게양대에 세월호기를 내걸었던 것도 그렇다. 누군가는 ‘쇼’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쇼조차 이런저런 눈치에 하지 못하는 정치인이 대부분이다.

성남시장 시절 무상교복, 무상 산후조리, 청년배당 등 복지 확대 정책으로 눈길을 끌었던 이 지사는 이 정책을 경기 전체로 확대하고 있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에 대한 높은 관심도 보여주고 있다. 돈은 많지만 투자할 곳이 없는 저성장 시대,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계라는 인프라에서 나오는 엄청난 초과 이윤을 구성원 모두가 나눠서 쓰는 시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24세 청년들에게 연 100만원을 지급하는 청년 배당 역시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대표적인 기본소득 주창자로 일론 머스크, 로버트 라이시 등과 함께 이재명 지사를 꼽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부터 공약에 나왔듯 기본소득 정책은 국토보유세와 지역화폐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국토보유세를 걷어 전 국민에게 1인당 매월 40만 원가량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되 이를 지역화폐로 준다는 방식이다. 국토보유세는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에서 토지 부분만 떼어 내 소유자별로 합산해 과세하자는 주장이다. 이 지사는 건설원가 공개, 후분양제, 공시가격 등 부동산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지사는 국토보유세에 대해 “시뮬레이션 해 보면 국민의 95%는 세금을 안 내거나 내는 것보다 더 많이 돌려받고 상위 5%만 내는 것이 돌려받는 것보다 많다”고 주장한다.

지역화폐 역시 이미 성남시장 시절 청년배당을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한 적이 있다. 지역화폐는 이제 경기도 전역에서 발행되기 시작했다. 이 지사는 지역화폐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소상공인은 살리는 선순환을 가져올 거라고 본다. 그러나 경제의 기본 메커니즘조차 이해하지 못한 설익은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뒤섞여 있는데 일도양단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 숨막히게 달려온 1년

이재명 지사는 취임 1년을 앞두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숨 막히게 달려와 10년 정도 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경기 지사에 당선됐지만 되자마자 압수수색을 받고 기소까지 됐다. 민주당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불거져 나왔다. 1심 무죄 판결로 어느 정도 먹구름이 걷혔지만 이미지에 너무 많은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어느 정도 족쇄가 풀린 만큼 앞으로 적극 펼칠 실제 정책 성과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 기반도 없었던 ‘흙수저’ 이재명 지사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힘도 결국은 ‘성과’와 ‘정책 실행력’이었기 때문이다.

 

■ 참고자료

[연합뉴스 2019-06-23] 이재명 “숨 막히게 달려와 1년이 10년 같았다”

[노컷뉴스 2019-06-19] 이재명 비판·욕 도배 ‘당원게시판’…난감해진 민주당

[프레시안 2019-06-11] 이재명의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에 주목하는 이유

[경향신문 2019-05-26] 이재명, 2022년 대선일까 2022년 지방선거일까

[경향신문 2019-05-16] 벼랑 끝에서 ‘대선 가도’로 돌아오는 이재명

[경향신문 2019-05-16] 친형 강제입원 시도 혐의에 재판부 “직권남용으로 보기 어렵다”

[경향신문 2019-04-27] 기본소득이 지역화폐를 만났을 때

[경향신문 2018-12-11] 직권남용 1건·선거법 위반 2건…‘법의 심판대’ 오른 이재명

[한겨레 2018-09-13] 집값 불로소득 막을 근본대책 ‘이재명발 국토보유세’ 주목

[한겨레21 2017-3-20] 이재명의 기본소득이 뜨겁다

[한국일보 2017-02-18] 문빠, 힘인가 독인가

[연합뉴스 2012-11-02] 성남시 공무원 승진인사, SNS가 갈랐다

황경상

경향신문 미래기획팀 기자. 사회부, 문화부, 정치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발맞춘 새로운 콘텐츠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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