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가격이 바닥을 찍은 것 아니냐는 미디어들의 호들갑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이 서울 아파트 가격이 바닥을 찍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서울 아파트 가격의 낙폭이 줄고 있고(한국감정원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를 보면 서울 아파트 주간 매매가격은 23주 연속하락 하고 있지만, 주간매매가격지수의 낙폭이 3월 25일 -0.09%, 4월 1일 -0.08%, 4월 8일 -0.07%, 4월 15일 -0.06로 줄어드는 현상이 보인다), 강남권역을 중심으로 급매물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정도다.
바닥이 아니라는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지금 서울 아파트 시장이 바닥이라는 얘기들은 터무니 없는 곡학아세거나 악질적인 참주선동에 불과하다. 예컨대 가격에 선행하는 지표라 할 거래량이 눈에 띄게 는다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신고일 기준 서울 아파트 월간 매매거래량은 18년 9월 12,222건으로 피크를 찍은 후 10월 10,092건, 11월 3,526건, 12월 2,278건, 19년 1월 1,865건, 2월 1,574건, 3월 1,786건, 4월 1,968건으로 급감), 청약불패라고 불리던 서울에서 청약미달이 속출(홍제역 헤링턴플레이스, 청량리역 한양 수자인, e편한세상 광진그랜드파크)하는 점, 아파트 시장의 열기를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인 청약경쟁률이 급락한 점(18년 4분기 평균 37.5대1 vs 19년 1분기 8.6대 1), 매매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이 2월 하순 59.4%를 기록했는데 이는 6년 만에 처음이라는 점(2017년 말 서울 평균 전세가율은 73%까지 치솟았음. 일부 지역에선 80%를 넘어 90%에 육박하기도)등 만 보더라도 서울 아파트 시장 상황은 온통 암울하다.
낙폭이 줄고 몇몇 급매물이 소진된다는 정도의 소식을 가지고 바닥 운운하는 건 견강부회의 전형이다. 혹여 지금이 바닥이라는 미디어들의 합창을 믿고 덜컥 집을 샀다간 자칫 봄이 온 줄 알고 물 바깥에 나갔다 동사하는 개구리 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
내려갈 일만 남았다
또한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서울 아파트 바닥’ 운운하는 소리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 인구의 증감(특히 생산가능인구의 증감), 인구의 이동(도시화 정도) – 거시경제지표(경제성장률, 1인당 국민소득, 고용률 및 고용의 질, 가계부채 등) – 금리 등의 유동성 – 토지 및 주택의 수급 – 정부정책(보유세 및 양도세 등 세제, 대출 정책, 공급정책, 개발이익환수장치, 주거복지정책 등) |
이 요인들을 가지고 대한민국, 더 정확하게는 서울 아파트 시장의 장래 몇년간의 전망을 해보자. 우선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줄고 있으며 살인적인 집값을 못 견디고 서울을 탈출하는 대열이 끊이지 않는다. 거시경제지표도 나쁘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3%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여 만에 최악으로 나타났는데 그 영향으로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이 워낙 악화되는 중이라 수출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이 극적으로 개선되길 기대하기도 어렵다. 고용의 양과 질도 단기간에 개선이 난망이고 가계부채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또한 기준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몇년간 공급{서울 아파트 착공실적(지난해 서울 아파트 착공실적은 4만 4673가구로 2017년 5만대하 981가구에 비해 12%감소했으나 2017년을 제외하곤 8년 중 가장 많았고, 2011~2016년 평균인 3만 4372가구보다 무려 30%가량 높음.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착공물량도 지난해 17만 8966가구로 8년 평균인 16만 698가구를 웃돌았고 2011~2014년에 비해 46~64%가 높은 수준) 및 인허가실적(재건축 사업시행인가 받은 물량이 2022년 이후 대거 시장에 출회될 예정. 그것도 동남권에), 3기 신도시(30만 가구)}도 충분하며, 정부정책도 투기세력에게 우호적이진 않다. 어떤가?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들 가운데 향후 서울 아파트 시장에 유리한 요인들이 하나라도 있는가?
지금 서울 아파트 시장은 가을의 초입기
주택 경기 예측 모형 중에 ‘벌집순환모형(Honeycomb Cycle Model)’이라는 것이 있다. 이 모형은 가격과 거래량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주택경기를 예측하는 모형인데, 모형이 벌집모양의 6각형 패턴(1~6국면)처럼 생겼다고 해서 ‘벌집순환모형’이라고 한다. 이 모형에 대입해 서울 아파트 시장을 분석해 보면 서울 아파트 시장은 2013년 이후 6국면의 회복진입기(거래량 상승, 가격 보합), 1국면의 회복기(거래량 상승, 가격 상승), 2국면의 호황기(거래량 하락, 가격 상승)를 거쳐 현재 3국면의 침체진입기(거래량 하락, 가격 보합)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작년 가을 정점을 찍은 서울 아파트 가격은 꺼지기 전에 잠깐 밝아지는 촛불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쉽게 말해 정부정책의 급변이나 다른 외부 변수가 없다면 서울 아파트 시장 앞에는 침체기와 불황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계절로 따지자면 서울 아파트 시장은 봄과 여름을 통과하고 이제 겨우 가을의 입구에 진입한 셈이다. 겨울은 아직 시작 되지도 않았다. 보다 혹독한 시간들이 서울 아파트 시장을 찾아올 것이다.
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 및 토지+자유연구소 토지정의센터장. 각종 매체에 다양한 주제로 컬럼 기고.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유형의 '사유화' 된 특권을 '사회화'해 평등한 자유가 실현되는 세상을 꿈꿈. '한국사회의 속살'(2007),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2008), '부동산 신화는 없다'(2008), '투기공화국의 풍경'(2009), '위기의 부동산'(2009, ),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2012)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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