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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약간 철지난 감이 있지만, 잠시 지난해 11월 국내외 언론의 관심 속에 개최되었던 중국공산당 19차 당 대회와 관련한 얘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당시 국내외 언론은 이 대회가 개최되기 한두 주일 전부터 보도의 초점을 시진핑 일인의 권력이 얼마나 강화될 것인지에 맞추었다. 이 같은 기조는 당 대회가 진행되는 기간 내내, 그리고 그것이 끝난 지 한 참 후에도 지속되었는데, 이제는 아예 정설화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 결과물이 소위 ‘시황제’라는 용어가 언론과 학계에 자연스럽게 통용되도록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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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19차 당 대회 개막식(사진: sbs)

그렇지만 필자는 과연 당시 당 대회가 시진핑 일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회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필자가 보기엔 이는 국내 대다수 언론을 포함한 부르주아 언론과 식자들의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체제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무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즉 평상시에 태자당이니 상해방이니, 장쩌민 계열이니 후진타오 혹은 시진핑 계열이니 하면서 주관적 기준으로 제멋대로 중국공산당 주요 간부들의 계보를 그려놓고 그들 간의 권력다툼을 둘러싼 이합집산의 과정으로 중국의 정치체제를 그려왔는데, 위 19차 당 대회에 대한 보도도 정확히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이 같은 계파 가르기나 계보그리기는 무엇을 근거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최고지도부 내부의 은밀한 내막에 대해 서구 언론과 국내 언론은 도대체 어쩌면 그리 잘 알 수 있을까? 그런 기사를 쓰는 사람들은 중국공산당 규약 중에 ‘분파결성 금지’를 공식화하는 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평소에도 이 같은 의문을 많이 품고 있었지만, 이러한 의문에 대해 별반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단지 결론으로서 거의 ‘소설수준’에 가까운 위의 정치 시나리오만이 당 대회와 같은 중요한 정치적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 한동안 떠들썩하게 언론지면을 장식하다가도, 평소에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무대 이면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 전부였다.

필자가 보기엔 이 같은 보도 태도는 부르주아언론의 뿌리 깊은 사회주의 사회와 정치제도에 대한 계급적 적대감 그리고 무지와 편견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서구처럼 다당제와 자유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일당 독재를 실시하는 사회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적일 수 없다는 생각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있다. 그러기에 일반 대중과 당원은 권력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으며, 집권당인 공산당은 소수 몇몇 지도급 인사들에 의해 주도되고, 또 몇 년에 한 차례씩 개최되는 당 대회는 이러한 지도부의 밀실협상 결과를 추인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선거에 의해서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는 ‘다당제’를 제외하고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최고 권력기관으로서 전국인민대표자대회(약칭 ‘전인대’)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성원들은 5년에 한 번씩 직접 및 간접 선거를 결합한 방식으로 전국적으로 선출되어 진다. 예컨대, 농촌의 향(乡)·전(镇)·현(县)(한국의 면·읍·군에 해당), 도시의 구(区) 단위 이하 까지는 직접선거를 실시하며, 그 이상인 시와 성 그리고 전국 대표는 이들 하부단위에서 선출된 대표들에 의해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또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18세 이상의 정상적인 공민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데, 이는. 아직도 만 20세 이상이 되어야 정치적 권리가 주어지는 한국보다도 오히려 선거연령의 하향화가 일찍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인민대표자 후보로 나설 수 있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당과 사회단체 추천을 받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다른 유권자나 인민대표자의 일정 수 이상 추천을 받아 스스로 후보 등록을 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경우는 우리보다 그 기준이 낮은데, 10인 이상의 추천이면 누구라도 등록이 가능하다.(헌법 제7장29조) 참고로 한국의 무소속 출마자의 경우를 보자면, 도지사·교육감 입후보자는 1,000~2,000명, 도의원·교육의원 입후보자일 경우는 100~200명의 추천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구 시·군의원 선거의 경우에도 50명 이상 100명 이하의 추천인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문턱이 낮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중국유학 초기인 2000년 초반 ‘남방주말(南方周末)’과 같은 도시 신문에서는 이러한 개인 출마 후보가 늘고 있다는 보도와 인터뷰가 한창 열을 올리던 기억이 새롭다.

이 전인대는 매년 3월초에서 중순까지 대략 보름 정도의 회기를 갖고 정기 대회가 개최된다. 여기서 대표들은 정부의 사업보고를 듣고, 결산과 예산 그리고 중요한 보고사항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며, 행정부·사법부·군 고위 인사를 임명한다. 그리고 대회가 폐막된 후에는 약 200여명 남짓으로 구성되는 전인대 상무회의가 남아서 평상시 전인대 역할을 대신하면서, 법률제정과 같은 입법 활동 등을 계속해서 전개한다. 그리고 이 같은 인민대표자대회는 전국단위에서만 존재할 뿐만 아니라, 성과 시, 현·전·향 및 구 단위까지도 결성되어 있다. 이는 일종의 중국식 지방자치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신중국 성립 후 1954년에 제정된 초기 헌법에 이미 규정되어 있으며, 중간에 문화대혁명에 의해 잠시 중단된 이후 개혁개방을 맞아 다시 회복되었다. 때문에 대충 1980년도부터 계산하더라도 이미 4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5년에야 비로소 첫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된 한국의 지방자치제 보다 15년이나 앞선 셈이다.

이렇듯 중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나름대로 완결된 체계로 자리 잡고 있으며, 주민들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제도와 공적기구들은 모두 한국이나 다른 서구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법률체계 속에 명문화되어 있으며, 그에 입각한 운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집권당인 중국공산당인데, 그에 대해서도 의외로 한국 사람들이 아는 바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 비근한 예로 최고 권력기관인 당 대회를 들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른 점이 많이 있다. 필자가 보기엔 5년에 한 차례씩 열리는 당 대회는 사실상 현대 정당에 있어 상당히 수준 높은 민주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중국에서 생활할 무렵인 2012년 마침 제17차 당 대회가 준비되는 과정을 관찰한 적이 있는데, 거의 일 년에 걸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 지부라고 하는 기층 당 조직으로부터 시작해서 향·전·현·시·성 단위로 차례로 ‘상향식’으로 대표들이 선출되어 올라와야하기 때문인데, 당시 8천만 명이라는 거대한 당원을 가진 중국공산당이 이 모든 절차를 거치는 대는 자그만 치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당 총서기가 당 대회 개막식 날 보고하는 ‘당대회보고서’ 역시도 대략 2년 정도의 시간을 갖고 준비한다. 먼저 기초소위가 결성되어 학자와 전문가, 당의 원로, 각 분야 및 각급 당 기관의 의견을 수렴하여 초안을 작성하는 것 외에도, 이 같은 초안은 수차례의 수렴과 확산을 거듭하면서 수만 명의 참여자들의 의견이 반영되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문장 하나하나, 사용되는 개념 하나하나까지 정밀하게 다듬는 과정을 몇 차례나 되풀이 하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급조되거나, 국회의원과 당 지도부가 연구기관 등에 의뢰해서 형식적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는 부르주아 정당들의 당대회보고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사회주의 민주제도는 모두 결국 형식에 불과하며, 몇몇 당 권력자들에 의한 전횡을 막아낼 수는 없는 것일까?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다당제에 의한 정권교체 역시도 독재정부의 등장을 막지는 못하며,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지는 못한다. 위에서 소개한 ‘인민대표자대회’라고 하는 제도와 절차는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일단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 본래의 취지만 잘 지켜진다면, 서구의 민주주의와 똑 같이 민주적이며, 오히려 더 광범한 대중의 참여를 보장하는 정치제도일수 있다. 서구든 중국이든 결국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운영되는가가 관건이며, 아무리 제도가 좋다한 들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결국은 인간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다당제’와 정권교체의 ‘신화’에 빠질 필요는 없으며, 중국의 전인대 또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김정호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사회를 연구할 목적으로 16년간 중국 유학생활을 보냈다. 중국인민대학과 상해재경대학에서 각각 금융(학사)과 재정(석사)을 전공했고 최종적으로 북경대에서 레닌의 정치신문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8월 귀국하여 울산에 정착해 현재 울산 평등사회노동교육원에서 교육강사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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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송기호 Posted on 2019.02.17 at

    잘 읽었습니다.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공산당 영도, 인민주권, 법치주의라는 ‘삼통일’이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족: 우리 한자 읽는 음으르는 ‘향 전 현’이 아니라 ‘향 진 현’이 아닐까 합니다만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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