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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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사진1 : 달려나가는 청년들, 海或瘋市集2017]

나는 어른이 미웠다. 세상도 미웠다. 대학, 군대, 취업의 터널을 지나며 나는 침몰하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배가 침몰하던 그 해에는 이 나라에서 뛰쳐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서 그런 어른처럼 될 것만 같았다.

위계질서는 어린 시절 나의 금기어였다. 그것은 책임을 방기한 무능력한 개인들과, 혹은 책임을 과도하게 짊어진 독재자였다. 그것이 한국이었고 그것이 어른이었다.

그리고 나는 틀렸다. 한국, 일본, 대만을 돌고 돌아서 알았다. 10년을 뱅뱅 돌아서야 세상은 미궁처럼 복잡하단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지난한 여정 속에서 나는 편견과 편향으로 가득찬 내 모습을 보았다.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도 어른이 싫었다. 나는 보이는데로 섣부른 판단을 했다. 일본에서 만난 어른들은 개인주의적이고 협동은 불가능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단체만 있고 개인이 없다고 비난할 때가 언제였는데 말이다.

그것은 그저 자신의 복잡한 삶, 그리고 그보다 더 복잡한 오래된 문화 속에서 온 가치와 우선 순위의 차이였을 뿐이다. 그 차이가 이해가 될 때 즘에야, 나를 둘러싼 복잡한 세상을 조금이나 포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중요한게 무엇인지 보였다. ‘시스템’, ‘바빌론’, ‘현대 문명’이라고 내가 싸잡아 비난하던 것은 오랜 시간 모두가 함께 만들어 온 힘의 결집체였다. 시스템에는 사람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사진 2: 대만의 대표 축제 Ocean Home wild market의 포스터.(왼쪽) 대만 전역의 청년들은 자원봉사를 통해 축제를 완성한다. (오른쪽)]

대만의 한 축제를 만드는 장이었다. 그곳에는 100여명의 초보자들이 함께 모여 1달간의 행사를 준비했다. 10년 넘게 지속되온 그 잔치는 그야말로 영혼있는 시스템이었다. 일사분란했지만 동시에 느긋하고 깊었다. 그 속에서 참여자 한 명 한 명은 전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었다. 아무도 배제되지 않았다. 내가 그간 정의내린 시스템은 서구의 것이고 딱딱하고 목적만 추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과 다른 느낌이었다.

축제 준비의 한 장면이 나에게 영원히 각인되었다. 키작은 여성이 우리 모두의 앞에 서있었다. 그는 제 몸집만한 판넬을 들고 있었다. 커다란 판넬에는 우리가 한 달간 지켜야 할 수칙과 해야할 것들이 자질구레하게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자신있는 목소리로 모든 세부조항을 읽은 뒤, 그는 판넬을 뒤짚었다. 판넬에는 커다란 글씨로 ‘愛'(사랑)가 적혀있었다. 우리가 한 달간 해야 될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백 여명이 넘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부둥켜 껴안았다.

[사진 3: 판넬에는 커다란 글씨로 사랑이 적혀있었다.]

이제 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은 책임감 넘치고, 가장 낮은 것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좁은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던 것은 어른이 아니라 나였다. 운좋게 세상을 떠돌다 만난 어른들이 내 시야를 넓혀주었다. 정말 어른이라는 것은 복잡한 세상을 복잡한 그대로 맞이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었다. 책임을 질 수 있고, 무엇보다 모든 연결을 느끼고 묵묵히 가는 사람들이다.

그제서야 세상은 어른들 투성이로 느껴진다. 아직 미숙하고 부족하고 자책할 수 있더라도,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한국, 일본, 대만을 돌고 돌아서야 나는 어른이 되기로 결심했다. 너무 멋진 어른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우리가 가진 느낌을 이 세상에 만들길 바란다. 커다란 물이 흐른다. 역류하고 휘몰아치고 막힌 길이 있더라도 확실하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고석수

대만, 일본, 중국, 제주 강정 등, 동아시아의 섬에서 다양한 형태로 살아왔다. 동아시아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모시는사람들)을 출판했다. 전남 곡성에 산다. 몸, 마음, 지구를 아우르는 항해학교를 만들고 있다. 물의 길을 다시 꿈꾸는 프로젝트이다. 배를 타고 섬들을 잇는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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